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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97화 (97/170)

97편

<-- 14. 그녀가 집을 나가나요? -->

황제와의 영양가 없는 대화는 어이없게도 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머슨 말고는 대화 할 사람도 없어 고민상담 따위는 기대도 안했는데 무려 황제와 그 비슷한 것을 하고 있게 됐다. 물론 대화는 통하지 않았고, 그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가 쏘아 내면 황제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정도 였지만.

목이 따끔해질 정도가 되자 다급하게 황제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의 눈꼬리가 가늘어지며 매섭게 올라갔다. 황제는 피곤한지 이마를 한 번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나요?”

“잡는다고 잡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얼떨결에 자리에서 따라 일어나 황제의 뒤를 따랐다. 주인 없는 방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만큼 염치없는 편은 아니라, 이만 황궁 밖을 나갈 생각이었다.

“갈 곳이 없다면 있어도 된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황제는 내 어깨를 잡고 밀어 다시 의자에 앉혔다. 갈 곳 없다고 말 안한 것 같은데? 마치 황제는 내가 조금 더 여기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뭐, 워낙 똥촉이라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 오시는 데요?”

게다가 갈 곳이 있는것도 아니고, 황제의 권유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 지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구요. 저 혼자 여기 있는 게 좀 눈치 보이잖아요.”

“아무도 오지 않는 빈 방이니 걱정마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마음 편히 있어.”

장식품 하나하나까지 공을 들여 예쁘게 진열 해 놓은 이 방이 그저 빈 방 이라니. 이건 방에 대한 모욕이자 어마어마한 낭비다. 낭비.

“다녀 오마.”

어미새처럼 말하고는 황제는 나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어렴풋이 들리는“만찬 약속이...”어쩌고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시종의 목소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난처해 보였다.

“성군으로 묘사됐었는데, 땡땡이나 치고.”

역시 소설은 믿을게 못 된다. 난 다짐했다. 소설과 이 세계가 별개의, 독단적인 세계라고 생각하기로. 이 곳이 어떤 곳인지는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소설에 연연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 살아 있는 존재들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창작물이 아니라 고유의 성격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엄연한 하나의 실존인물들이다.

“그러니까 황제가 땡땡이를 치든, 성녀를 좋아하지 않든 이질감 같은걸 느낄 필요는 없어.”

황제가 편하게 있어도 된다 했으니, 난 사양 않고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잠이 오는 건 아니었다. 눈 감으면 머슨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수만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 쳐 절대 잠에 들 수 없게 만들었다.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천장을 바라 보았다.

건전지가 다 된 로봇처럼 가만히 그러고 있었다. 해가 막 떨어져 어스레한 기운이 창문 너머로 풍겨온다. 몸을 돌려 누우면 습관적으로 팔을 뻗는 나를 발견했다. 닿는 것이 머슨의 따뜻하고 탄탄한 가슴팍이 아니라 낮은 침대 매트리스 위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허전함이 밀려온다. 길이 없는 우주 한복판에 혼자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생겨날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에서 나 혼자.

그리고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 왔다.

“...한계다.”

신이시여. 슬픔에 젖어 비련한 모습을 보인지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인간적이고도 매우 아름답지 못한 시련을 주시다니요.

난 배를 붙잡고 문 밖에 귀를 가져다 댔다.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들이 일정하게 들리고, 시녀들이 잡담을 하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식은땀이 흐르고 아랫배는 누군가가 발로 꽈악 짓밟은 것처럼 아파왔다. 이 고통 낯설지가 않아. 아니 오히려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으윽-.

활발해진 배변활동이 날 미친 듯이 괴롭히고 있었다. 생애 처음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가량의 먼 거리의 친척집으로 향할 때 화장실이 없어 극한 지옥을 맛 보았던 그 순간과 비슷했고, 전날 술을 왕창 먹고, 그 후폭풍으로 화장실을 가려는 순간에 말 많은 전공교수님에게 붙잡혀 인내의 한계를 느꼈던 때와 아주 흡사했다.

“쓸데없이 방만 넓고 개인 화장실 같은 거 하나 없냐.”

다리가 베베 꼬이고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괜히 눈에 띄는게 싫어, 복도가 한적할 때 몰래 나갈 생각이었으나, 한적이고 나발이고 이제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 지금 내 장에서 빨리 배출해 달라며 소리치는 이것(?)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구 뿐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나가려는 순간에 주위가 떠들썩해짐을 느꼈다. 행색이 초라한 외부인인 나는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 받기 딱 좋았으나, 황제가 준 손수건도 있고 여차 하면 날 이 방으로 안내했던 기사를 불러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하면 되는 노릇이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죽기 일보직전인데, 남들 시선이 무슨 대수냐.”

난 망설임 없이 문을 잡아 돌렸다. 그리고…

“누, 누구시죠? 여긴 어떻게…”

“크리헬은 어딨나.”

난 영화속 스파이처럼 아주 은밀하고 신속하게 문을 닫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미친, 쟤가 왜 여깄어?!”

머슨이었다. 그 라면 황궁 안으로 들어오는 것쯤이야 손 안대고 코풀기겠지만 문제는 왜 들어왔냐는 것이다. 왜! 나 때문에?! 어떻게 알고!

꾸르르륵-

환장하겠다. 배 속에서 돌고래들이 날뛰며 기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난 손톱으로 문을 박박 긁으며 연약한 항문에 힘을 바짝 주고 버텼다. 나 죽어.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는 머슨에게 기사들이 몰려온 듯싶었다. 칼집이 갑옷에 스치는 소리가 여럿 들리더니 내 방문앞에 멈춰섰다.

“정체를 밝혀라!”

“크리헬은 어딨나.”

“가, 감히! 네 놈이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존함이 아니다!”

이어서 으랴합-! 하는 기합소리와 머지않아 윽! 으로 끊기는 외마디 비명이 여러차례 들렸다. 그건 그렇고, 넓은 황궁 중에 왜 하필 여기, 이 방문,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미처 날 뛰는 이 곳 앞이냐고!

세상이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값비싸 보이는 장식품들로 눈이 돌아갔다. 입구가 넓고 아래가 깊숙이 파인 것만 보면 몇 초 후에 내가 그 위에 뽀얀 엉덩이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됐다. 나중은 분명 후회하겠지만 그 순간 만큼은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할텐데.

“아냐, 아직 인간이길 포기 하면 안돼.”

아랫배를 부여잡고 문과 혼연일체가 된 듯 바깥상황을 계속해서 엿들었다. 시녀가 비명을 지르며 멀어지고, 복도는 잠시 잠잠해졌다. 이제 가장 만나기 껄끄러운 머슨만 좀 어떻게 사라져 주면 좋을 텐데. 그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늦었군, 크리헬.”

뭐라고?

“죄송합니다. 언제나 갑작스러우셨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죽이진 않았다.”

“감사드립니다.”

아마 머슨에게 달려든 기사들을 말한 것 같았다. 내 앞에서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 마음껏 권위가 묻어나는 어투를 썼던 황제가 저자세로 머슨에게 이야기하자 다른 사람 같이 느껴졌다. 물론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던 머슨이 황제를 익숙하게 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 것을 찾으러 왔다.”

“드릴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미 마왕님의 손에 있으십니다.”

“아니, 여기 있어. 나한텐 없지.”

뭔 대화를 복도 한가운데에서 하냐! 방으로 들어가서 차 한잔 여유롭게 하고 대화를 하던지 해라!

“으으윽”

이제는 숨만 쉬어도 그것(?)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 것 같았다. 허공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참아도 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사실 난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라고 최면 까지 걸어 봤지만 다 헛수고였다. 당장에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이 문을 부수고 저 둘을 밀쳐내어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었다.

“찾는게 무엇입니까?”

“내 아내.”

“...성녀님 말씀입니까?”

저 둘의 대화내용 같은 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머슨과 황제 둘 다 한껏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으나... 여기에서 가장 시리어스한건 나야 이것들아! 난 더 이상 어떠한 것으로도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려왔다.

“내 아내를 찾으러 왔다.”

참느라 온 몸에 힘을 주어 머리끝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오고 결국 난 문을 걷어 차버렸다.

“그러니까 그게 누구…”

“씨발, 화장실이 어디예요!!”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향해 둘의 시선이 동시에 닿았다. 머슨의 손이 나를 가리킨다.

“여기. 내 아내”

아내 타령 할 때냐? 니 아내 지금 똥독 올라서 죽게 생겼다! 난 황급히 황제의 손목을 붙잡고 일단 뛰었다.

“뭐, 뭐냐?! 아내라니, 이건 무슨 소리야”

“닥치고 화장실이 어딘지나 알려줄래요?”

황제에 대한 예우 따위는 말아 먹은 지 오래였다.

========== 작품 후기 ==========

*에리나 : 내가 생각한 머슨과의 재회는 좀 더 아련하고, 눈물없이는 못 볼 그럴 장면이었는데 똥으로 좌지우지 되는 이런 장면이 아니었는데 (엉엉)

*독자님 : 읽다가 충전기에서 타는 냄새가 났어요ㅠㅠ!

작가 : 헐!! 조심하세요!!! 저도 예전에 멀티탭에서 스파크 일어나가지고 꼼짝없이 전기통구이 될뻔했던 기억이... 8ㅅ8!!!

*독자님 : 머슨이 똥마려운 강아지 처럼 안절부절할것 같네욧 〉〈!!

작가 : 똥이 마려운건 머슨이 아니라...

에리나 : 닥쳐

*독자님 : 작가님! 남은 편수별 진행상황을 알려주세요! (에리나 가출종료, 성녀파국, 임신 등 힌트좀주세요!)

작가 : 음... 많은 스포가 되지 않을 선에서 독자님의 궁금증이 해소될만한 답변을 드리자면 에리나가출 종료는 이번 챕터에 마무리 되구요, 성녀 파국은 에피소드 2개 정도 후에 있을 예정이고, 임신은 성녀 파국전에 언급됩니다. 완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독자님 : 16회 만에 나온 황제

작가 : 와 대박... (감탄에 절로 기립박수) 솔직히 이정도면 황제가 독자님한테 장가가야 할 수준

황제 : (이런 관심 처음이라 매우 수줍다.)내 인생에서 난 서브남이 아니야.

독자님 : 먼 개솔

*독자님 : 마왕루트 인걸 알지만 황제와의 검열삭제씬, 꽁냥꽁냥 로맨스씬 보고싶네요

작가 : (왜 때문인지 황제와 에리나 씬은 생각도 안해본 작가) (깨달음)그... 평행우주라는게 있죠 (응?)

*독자님 : 다시 머슨과 알콩달콩한 모습 보고싶다. 근데 조금은 굴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해서... 미안해, 머슨. 그러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남일)

작가 : (팝콘) ㅇㅇ. 그러겡 왜 쓸데없이 숨기고 그러닝? 자업자득일세

머슨 : ? (작가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독자님 : 에리나! 머슨의 몸과 마음을 다 훔쳐놓고 떠나면 머슨은 어떡하니? 둘이 대화가 필요해 ㅠㅠ 머슨은 피가 마른다고!

작가 : (독자님, 최소 머슨 대변인)

머슨 :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독자님을 만나 매우 기쁘다.)에리나 돌아와

*독자님 : 노블중 끝까지 보는건 이것 뿐이예용!

작가 : (이 정도면 최소 전우애) 끝까지 함께해요 독자님! (결연한 의지)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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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지 못하고 올립니다.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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