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편
<-- 14. 그녀가 집을 나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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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다. 겁에 질려 달아난 곳이 황궁일 줄이야. 황궁 앞을 힐끗 거리며 서성이는 나를 보고 성문을 지키는 기사가 다가와 위협적으로 물어 왔다. 넌 누구냐, 여기에 왜 왔냐 등의 아주 당연한 것들을. 난 뭐라 대답하기 전에 가방을 뒤져 그것을 꺼냈다. 지난 연회에 황제가 억지로 쥐어주다 시피 했던 그 손수건을. 효과는 좋았다. 기사는 그것을 확인 하자,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말투도 공손 해지고, 나를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던 그가 이제는 주변을 경계하며 나를 지켰다. 대낮인데다 권위가 하늘을 치솟는 황궁 앞을 노리는 위험인물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난 기사의 안내를 받아 어느 방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종을 울려주십시오.”
말을 끝으로 기사는 방을 나갔다. 지나치게 넓고 화려한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자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 왔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미쳤나봐.”
단순히 생각을 정리할 장소가 필요했었다.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벼 내 신경을 어지럽게 했고, 한적한 곳을 찾아 발걸음이 옮겨지는 대로 왔더니 이곳 일줄이야. 장소가 장소 인지라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방해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겨우 찾으니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고급 쇼파와 의자가 떡하니 있었음에도 난 한자리에 서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진정시키는게 먼저였으니까. 이 책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내용이 아님을 인정하고, 앞으로 머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머슨은 기억을 잃지 않았음에도 성녀를 무뚝뚝하게 대해왔다. 아무 기억이 없으니 눈치 없이 성녀 앞에서 나에게 애정행각을 했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성녀가 있건 말건 전혀 개의치 하지 않아 했다. 이 말은 즉. 케일은 성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읽은 것들은 뭐야? 그 소설은 도대체...”
내가 소설에 개입해 상황이 바뀐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녀와 황제는 내가 만나기도 전부터 소설과는 다른 성격의 인물로써 삶을 살아왔고, 그나마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머슨 마저도 사실은 기억을 잃은게 아니랜다.
‘에리나 양은 지금 망상에 빠져 있어요.’
왜 갑자기 성녀의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얄궂게 웃고 있는 성녀의 환영이 눈 앞에 나타나자 손으로 휘휘 저어 지워버렸다. 그리고 지워진 그 자리에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차마 손을 내저어 없애버리지 못했다.
‘난, 케일이 아니야. 머슨이야. 에리나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게.’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고, 거짓이라기엔 지극히 순수했다. 전부 다 알고 있다. 머슨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 쯤은. 그러나 무서웠다. 머슨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신했음에도 3년 동안 철썩 같이 믿었던 모든 게 다 거짓이 되어 버리니, 과연 내 확신도 ‘진실’ 이라 당당히 말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 영화 트루먼 쇼가 오버랩된다. 어느 공간에 갇혀 수천, 수억개의 눈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고, 난 그들의 실험대에 올려져 여러 가지 상황에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것 같았다.
“인사도 안하나?”
“앗. 놀래라.”
내 어깨를 툭 건든 황제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으로 날 내려다 보았다.
“들어 온지 한참 됐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이것 저것요.”
황제는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나를 배려하는 건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다과가 예쁘게 플레이팅 된 티테이블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의자를 빼내어 날 앉히더니 애 다루듯 쿠키 까지 손에 야무지게 쥐어준다.
“의외 인걸? 다신 안 올 것처럼 쌩하고 가버리더니.”
“저도 놀랍네요.”
“도움이 필요한가? 돈? 권력남용? 남자?”
“손님들에게 항상 이렇게 무례하세요?”
“너한테 유독 그러지.”
“영광이네요.”
“별 말씀을.”
난 손에 들린 쿠키를 한 입에 우겨 넣었다. 예의 따윈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구태여 어설프게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그게 더 우스꽝스러울 테니까.
“남자, 권력, 돈 다 필요해요. 주실수 있으세요?”
“억지로 주는 취미는 없어서.”
“필요 하다니까요.”
“정말 간절한 이들은 의자에 그렇게 등을 대고 얘기하지 않아. 초점 나간 맹한 눈동자도 아니지. 말의 어미가 공기 따라 휙휙 날아가는 진정성 없는 말투도 아니고.”
“...그럼 왜 물어본거야.”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으나 황제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원하는게 없어 보여서”
“완전 잘 못 보셨는데요? 저 야망 하나는 끝내 주거든요.”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안정적으로 월급 받고, 나라에서 주는 공무원 혜택 다 누린 다음 연금으로 부족하지 않은 노후를 보내다 눈 감는 아주 치밀한 야망!
“야망 자랑하고 싶어서 온건가?”
“먼저 운 띄운 건 폐하시거든요.”
“질문의 맥락을 튼건 너다.”
쿠키를 집어 황제에게 건냈다. 그가 받아 들더니 먹지도 않고 내 입으로 밀어 넣어 준다. 맛있긴 했으나, 내 의도와는 다른 전개라 조금 당황했다. 뭘 좀 입에 넣으면 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말하는 것 좀 그만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 건낸 건데... 오히려 내 입을 막아 버리다니. 이거 고단순데?
아까보다 크기가 좀 더 큰 쿠키라 씹어 넘기는데 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황제는 내가 다 먹을 때 까지 말도 걸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입가에 묻은 가루를 혀로 핥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대뇌피질 전문의원이 오진을 했나?”
“비슷해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신용하고 있었는데 혼자 바보짓 한게 됐어요.”
“안타깝군. 나도 한번 진료 받아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말 했잖아요. 제 전문이라고.”
황제가 몸을 일으켜 내 옆에 다가와 섰다. 어깨를 토닥이곤 내 귀 바로 옆으로 황제의 얼굴이 다가온다.
“다른 훌륭한 의원들은 많을 것이다. 내가 소개시켜 주지.”
“확신 하시나요?”
황제는 진심이었으나 장난기 어린 투로 내게 말했다.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황제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라 그의 눈이 움찔 하는 것 까지 전부 보인다.
“...뭐?”
“그 의원들이 훌륭하다는 거. 확신 하시냐구요.”
그가 놀라 머뭇 거리는 건 처음 본다. 하지만 얄밉다 생각했던 감정을 담아 놀릴 기분은 아니었다. 그의 호흡이 불안정하게 뚝 뚝 끊기며 내뱉어 지는 것이 입술 위에 닿는다.
“치료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또 그들을 찾으니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확신할 수 있지.”
“그러네요.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의원이라면 그럴 만 해요. 전, 오로지 저 혼자 믿었기에 아니었나 봐요.”
황제에게서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얹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머슨을 만졌던 감각들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제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했어요. 이곳에서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으로 가는 방법 같은 건 사실 없는게 아닌가. 사실 난 에리나 홀든 그 자체고 내가 과거에 겪었다고 생각 한건 모두 다 망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 까지 들었어요. 그 짧은 순간에... 그런데 더 비참한게 뭔 줄 아세요? 그가 사실은 모든걸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 한 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기억이 있든 없든 우리 사이는 변하지 않겠구나 라는 비겁한 안심.”
황제는 전혀 알아 듣지 못할 말이었으나, 나는 봇물 터지듯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하소연을 했다는 느낌 보다는 말로써 내 생각을 정리했다가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한동안 내 옆에 서있던 황제가 다시 맞은편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입술위에 걸쳐진다.
“대뇌피질 전문의원 이야기 한 거지?”
난 찰나의 진지함을 털어 버리고 그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네, 맞아요.”
========== 작품 후기 ==========
에리나 : (과거) 난 왜 능력1도 없는 마을 주민 역으로 빙의된걸까?
에리나 : (현재) 마왕남편 + 마력상승 + 황제짱친 + 천신뚜까팸. 이래봬도 주인공^^
*독자님 : 개인지에 내신다면 베스트 코멘트에 제가 뽑히고 싶군용 후훗, 글고 작가님 우리 머슴 햄볶하게 해주세영 8ㅅ8!
작가 : 머슨, 독자님이 원하시는데 넌 어떨 때 가장 행복하니?
머슨 : 에리나랑 삐-- 하고 삐---하면서 삐---하는거.
작가 : ...
*독자님 : 울면서 가다가 황제가 줍줍 하는건가요?
작가 : (황제 나올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아시는 독자님) (엄지 척) (내공이 느껴진드아아앗)
*독자님 : 작가님 코멘트 답글 받는게 아이돌 티켓팅 하는 기분이예용!! 〉〈
작가 : 티켓팅 하니까 떠오르는데... 대학동기가 좋아하는 인기 남돌 콘서트 티켓팅을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영혼까지 털렸죠. 제 인생중 가장 뜨거운 싸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아련)
*독자님 : 타차원 인간인건 언제 밝히나용?!
작가 : 아직 에피소드가 몇 개 더 남았습니다. 하지만 멀지 않았어욧!!!
*독자님 : 에리나랑 머슨 결혼은 언제하나여? 애부터 낳는거 아닌가요...
작가 : ... ... ... (모스부호 아닙니다.) (당황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한 것 뿐) 그...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할까요? 하하
*독자님 : 에리나가 손수건 스킬을 시전하였습니다.
같이 댓글 보던 작가 친구 : (이 정도면 독자님들이랑 같이 연재하는 수준ㅋ)
작가 : 몰랐음? 우린 한 몸이야....
독자님 : 누구 맘대로
*독자님 : 쩔쩔매는 마왕 카타르시스 느껴져용!!〉〉
작가 : 카타르시스 하니까 또 생각나는데... 오늘 레지던트이블6를 보고왔습니다.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어서 배변을 꾸욱 참았다가, 영화가 끝나자 마자 화장실로 갔는데 카타르시스가 촤아아악
독자님 : 글 에서 냄새나긴 처음
*독자님 : 작가님 머릿속에 있는 내용 스캔떠서 읽고싶어요!!
작가 머릿속 : 보쌈, 치킨, 피자, 살빼야 되는데, 육회비빔밥, 김치찌개...
*독자님 : 성녀 언제바름? 너무 꼴보기 싫어여 ㅠㅠ 제발 쟈좀 OUT 부탁함미다
작가 : 사실 최근 까지도 작가가 생각해 놓은 성녀의 결말이 엄청난 비극 까진 아니었습니다.(성녀입장에선 비극이겠지만 우리들의 눈에선 넘 가벼운 수준) 그런데 요즘 생각을 고쳐먹고 있어요. 파하국으로.....
*독자님 : 자까님! 댓 보신다하셔서 이제 자주 쓸게여〉〈
작가 :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운다) 감...흡..사함다.. (감동)
*독자님 : 헐 제 댓글 삭제 된적 있어여 ㅠ 작가님 답댓 기다리고 있었는뎅 ㅠ
작가 : 흐어얼?! 무슨일이죠?!!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애덤스미스 보이지않는 손이...
독자님 : 작가 드립이 보이지 않았으면.....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siva617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독자님 아이디 적으면서 왠지 모르겠지만 어깨가 움츠려듬)
*와...팬아트 ㅠㅠ 금손 안깐콩깍지님 감사합니다 ㅠㅠㅠ 아이디처럼 머슨과 에리나가 콩깍지가 씌워져 알콩달콩한 모습이네여 (주인공들 팬아트 받고 부러워 죽는 작가)( 1일 1표지 감상에서 2표지감상으로 늘다) 헷 정말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