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편
<-- 1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나요? -->
난, 살았다 라는 단어가 생각남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머슨은 곧바로 침대로 옮겨졌고, 피에르와 레이넌의 정성어린 간호 아래에 피와 불길하던 검은 빛은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게 되었다. 머슨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일에 대해서 난 한치의 거짓도 없이 전부 설명했다. 당장 오늘 일만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3년 전 머슨과 처음 만났던 그 순가부터 모조리 다. 레이넌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 마치 예능 프로그램 쇼의 방청객을 보는 듯 했다. 반면 피에르는 침착한 태도로 일관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했으나 그 또한 감정을 완전히 숨기기는 힘들었는지 드문 드문 안면 근육이 움찔거렸다.
천신의 이야기 까지 모두 끝내자 레이넌은 결국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천신을 만나 앙갚음을 해주고 오겠다며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피에르가 발로 옆구리를 한 방 걷어 차는 것으로 제지시켰다.
“아무리 세장짜리 천신이라도 상대하기엔 버겁습니다. 게다가 레이넌 님도 완전히 회복 된 건 아니잖아요.”
“으윽- 그럼 가만히 두고만 보냐?! 이건 명백히 우리 마족을 향한 선전포고가 틀림 없어!”
“천마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겁니까?”
“그게 두려워 피할 수는 없지!”
피에르는 자신의 보라색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레이넌의 손목을 잡고는 억지로 자리에 앉히게 했다.
“누가 그게 두렵데요?”
말 하고는 고갯짓으로 침대에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머슨을 가리켰다.
“우리 멋대로 전쟁에 관해 결정했다간 또 무슨 벌을 받을지 몰라요.”
놀랍게도 이 말 한마디에 레이넌의 기세가 팍 꺾여 버렸다.
“그래. 일어나도 수 십번은 일어나야 할 전쟁을 막아온 게 마왕님이셨으니까.”
“막았다기 보다는, 마왕님을 보고 지레 겁먹어서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다는 게 정확 하죠.”
“어쨌든! 마왕님은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걸 싫어하셨잖아! 천족과의 마찰이 일어날 때 마다 마왕님 선에서 항상 해결하셨고 말이야.”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뭐 천마전쟁을 일으켜요?”
다투는 레이넌과 피에르를 뒤로 하고 머슨이 누워있는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얼굴 위로 손을 흔들어 봐도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였다. 난 머슨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어 호흡을 느꼈다. 다행히 아까에 비해 확실히 안정적인 호흡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식은 땀은 왜이렇게 나는 거야.”
옆에 있는 물수건으로 이마를 꼼꼼하게 닦아주고, 미약하게나마 손부채질을 해주었다.
“얼굴은 왜 이렇게 창백해.”
“마왕님은 원래 피부가 하얀 편이시다.”
레이넌이었다. 피에르와의 언쟁을 끝마쳤는지 어느새 내 옆으로 걸어와 나와 함께 머슨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에리나 홀든.”
“이름 기억 하시네요.”
“잊을 수 있을 리가.”
레이넌이 나를 향해 피식 웃어보인다. 비웃음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유쾌해보이지도 않았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그런 웃음이었다.
“드디어 마력이 개방 된 모양이군.”
“네?”
“목에 자국. 마왕님이 그러신 거지?”
“앗”
민망함에 황급히 목을 가렸다. 오늘 목 이야기만 벌써 세 번째네. 레이넌이 입고 있던 검은 롱코트를 벗어 나에게 말도 없이 던져 주었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들긴 했는데… 뭘 어쩌라는거야? 덮으라는 건가 싶어 내 옷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맙소사. 지혈을 한다고 마구 잡이로 옷을 뜯어놔서 엉덩이를 훤히 내놓고 있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완전 개망신이다. 쪽팔림에 사양 않고 코트를 걸쳤다.
“각인의 증표를 깨트리자 마왕님이 기억을 잃으셨다고?”
“네”
“그럼 그 증표는 어디로 갔을 것 같나?”
“음… 생각 안 해봤는데, 아마 공중으로 흩어졌겠죠.”
그때 당시야 살기 바빴고, 그 이후로는 적응하기 바빴으니까 각인의 증표가 어디로 갔는지 따위의 한가로운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레이넌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가슴 바로 윗 부분에 검지를 툭 하고 대보인다. 뭐야, 이 난데없는 성희롱은. 난 기분나쁜 티를 팍팍 내며 레이넌의 손바닥을 쳐내었다.
“뭐예요”
“각인의 증표 안에 담겨있는 마력의 양은 하위 마족 백 명을 순식간에 고위 마족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방대하지. 그런데 그게 깨져 버렸어. 과연 테렌투스가 온전하게 지도상에 기록될 수 있을까?”
“...”
“아마 절반 이상은 날아갔겠지. 그런데 아무일도 없이 단순히 마왕님만 기억을 잃는 것으로 끝났단 말야. 그렇다면 그 방대한 마력 즉 각인의 증표는 어디로 사라졌냐 이말이야.”
“저야 모르죠.”
“왜 몰라. 이곳 까지 텔레포트 해 온게 누군데. 너 같은 인간이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마왕성의 위치를 턱하니 찾아내서 동행인과 함께 텔레포트 할 수 있을거라고 봐?”
레이넌은 무심한 듯 이야기했지만 듣는 내 입장에선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가 텔레포트를 했다고 말하는 거야?!
“아뇨! 전 그냥 상상만 했을 뿐인데요.”
“바로 그거야. 이미지, 시전자의 바람 그리고 마법은 실현 되는 거지. 각인의 증표는 너한테로 흘러들어갔어. 네가 마왕님의 반려가 된 셈이지. 마왕님 또한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고 말이야.”
자, 자자잠깐 뭐라고?! 잘못 들었나 싶어 양 귀를 마구 문질렀다. 친절하게도 레이넌은 ‘반려라고’ 한번 더 이야기해준다. 아이고 고마워라. 아씨 근데 내가 반려가 되면 안되는데? 나 집에 가야 돼!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레이넌은 설명을 마저 했다. 묻고 싶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일단 침착하고 레이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왕님의 반려가 되면, 태생적으로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떠한 생물체여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돼. 각인의 증표를 몸 속에 품은 반려는 마왕님의 마력을 공유하게 되거든.”
“그 말은…”
“마왕님의 마력이 곧 반려의 마력이 되는 거다. 하지만 누구도 알려 준 적 없고,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너로선 아무리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지 못하는게 당연하지. 그래서 마왕님이 직접 개방해 주신거다. 반려의 혈액에 영혼의 조각을 불어 넣어 몸에 기억을 새기는 거지.”
“영혼의 조각이요? 그럼 머슨 죽는거 아닌가요?!”
“조각은 말 그대로 조각일 뿐 마왕님에게 큰 피해는 없으시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사용법에 관한 기억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말이야…”
레이넌이 고개를 숙여 멍이 들어있는 내 처참한 목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민망하니까 저리 좀 비켜 줬으면…
“넣어도 너무 많이 넣었어. 마치 내꺼라고 미친 듯이 낙인을 찍어 놓은 것처럼. 이봐 인간, 너 몸 관리 단단히 해라.”
“왜요?”
“마왕님의 아이를 갖게 될 테니까.”
뭐라고?! 내 배를 쥐어잡고 거칠게 도리질 쳤다. 그러자 레이넌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그 태도는 뭐냐? 하는 의미가 틀림 없었다. 하지만 아이라니, 난 아직 젊고!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자신도 없고!!
“레이넌님 마왕비님께 언사가 지나치시네요. 부디 무례를 용서하지 마시고 목을 치시죠. 어서요.”
저 마족은 여전히 좀 무섭다. 저번에 내 목을 조르려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했기에 말 하나 하나가 공포로 다가온다. 게다가 저 말 또한 백 퍼센트 진심일 것이라 생각 되었다. 나는 그저 멋쩍게 허허 웃어 보였다.
피에르의 말에 레이넌이 또 꼬투리를 잡고 물어지기 시작했고 다시 말다툼이 번졌다. 꽁트를 보는 것 같아 재밌다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을 품었던 자들이니 살얼음판이 따로없다. 빨리 머슨이 정신을 차려서 분위기를 좀 환기시켜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예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 줬으면...
“언제 일어 날까요?”
“걱정마. 곧 눈을 뜨실테니까.”
“정말요?!”
레이넌은 씩씩 거리면서도 내 말에 충실히 답변해주었다. 목 바로 아래까지 답답하게 메어져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열이 받았는지 단추도 두 개나 열었다.
“신성력이 과다하게 들이닥쳐서 육체가 놀란 것 뿐. 마왕님은 금방 일어나실거야. 그래서 말인데 인간, 네가 해줄게 있다.”
“무엇이든지 할게요!”
머슨이 일어 날 수만 있다면! 순간 내 어깨에 손이 얹어진다. 피에르 였다. 레이넌의 말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피에르가 옆에 와있는 줄도 몰랐다. 피에르는 막대한 임무를 맡기는 전장의 장군처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도 의지가 결연해진다. 잠깐 뜸을 드린 그가 드디어 입을 연다.
“마왕님을 덮쳐주시면 됩니다.”
잘못 들었을까? 그런 것 같은데 내 뺨을 한 대 후려치고 다시금 무릎에 손을 얹고는 귀를 기울였다.
“반항하시거든 온 몸을 묶고서라도 끝까지 덮쳐주세요. 아마 아주 뜨거운 밤이 되실 겁니다.”
========== 작품 후기 ==========
*에리나 : 아, 알았다!! 당신들 이거 머슨한테 사주 받은거죠?! 제가 덮치게 하라고!!
레이넌, 피에르 : (마왕님...얼마나 밝히셨으면...)좋을 때다
*독자님 : 작가님의 생체리듬이 깨진덕에 출근후 첫 임무를 조아라와 함께! 만세! 생체리듬이여 돌아오지 마라!!!
작가 : 어렸을적 아버지 한테 "작가야 넌 글로벌하지 못해"(일본갔다가 음식 안맞아서 피부 뒤집어지고 속뒤집어짐)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때 이렇게 이야기 해줄 걸 그랬네요 "시차는 글로벌합니다"
독자님 : (일본은 시차가 없는데 먼 개소리야)
*독자님 : 천신~발로마! 눈깔이 동태눈깔이냐?! 아, 물론 전 교양이 풍부하고 품위있는 신려성이기 때문에 연휴 후 첫 출근이라 기분이 안좋다는 사소한 이유로 화를내는건 아닙니다. 아오 천신~발!!!
작가 : (바들바들) 네, 네, 독자님...! 너 빨리 사과 드려!!
천신 : 아냐, 연휴 첫 출근 때문에 화난거 백펀데? 맞지? 맞지?
작가 : 제가 대신 때려드리겠습니다.
*독자님 : 에리나가 먼저 고백했네요! 전 마밍아웃 하고 나서 고백할줄 알았어여!
작가 : 역시 사람은 궁지 까지 몰려 봐야 자신의 속마음을 깨닫게 되는...
에리나 : 고백을 위한 수작이였냐?
작가 : 겸사겸사 좋은게 좋은거잖아...^^
*독자님 : 천신때매 우리 머슨 상처입었어여 나쁜놈 ㅠㅠ 그리고 성녀! 주신이 너 하렘꾸미라고 준 능력이 아닐텡데?!
성녀 : 능력은 사용하기 나름이죠^^
다른 독자님 : 성녀 김치싸대기 각
*독자님 : 주신이 성녀 혼내길 원하지만 안그럴것같네여 ㅠㅠ 케일때의 모습과 머슨의 모습이 달라서 에리나가 눈치 못 채는 것도 이해가여 결론. 머슨은 프로연기러
작가 : 에리나가 멍청한건 아닐까요?
에리나 : 아놔ㅡㅡ 독자님이 실드쳐주시는데 가만히 있자?
*독자님 : 이 작품 보려고 노블 끊었어요 〉〈 에리나 사랑고백도 하구 오구오구 이제 사이다 마실 날만 남은거져?!
작가 : (소화제를 내민다) 그, 그럼요!!(코가 길어진다) (넘나 해피해피한 기운을 뿜어내는 독자님에게 고구마 목구멍으로 직행하는 소리를 할 수 없는 작가)
*독자님 : 작가님 영향으로 제 낮과 밤이 바뀌었어요!!
작가 :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독자님들은 지금 글로벌한 작가와 독자의 탄생을 보고계십니다.)
*독자님 : 왜 안오시나요?! 오류난줄?! 레드카펫 깔았음 버리러 가도 됨? 시차해결함? 왜 안와 왜!!!!
작가 : 죄송합니다(쮸굴) 핵불닭볶음면 먹고 장트러블타 나서 기운이 쭉 빠져버렸었네여ㅠㅠㅠㅠ 매운거 잘 못드시는 분들 조심하세여...전 쥭는줄 알았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