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편
<-- 1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나요? -->
시위가 당겨진다. 그러나 이번엔 방향이 다르다. 화살이 손쉽게 잡힐 줄 알면서도 머슨을 향해 정면으로 화살이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아주 깔끔한 동작으로 머슨은 그것을 받아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중요한 건 머슨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폐가 따로 없네. 안 그래 계집?”
머슨이 움직이려 하자, 천신이 내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젖히곤 훤히 드러난 목 위에 단도를 바짝 붙였다.
“이깟 인간 하나 없애는데 신의 활을 다섯 발 전부 쏴 버리다니. 이거 엄청난 손해를 봐버렸어.”
“말 했을 텐데. 건들면 소멸이라고.”
“그래. 세 장짜리 날개를 가진 지금의 나로선 꼼짝 없이 소멸당할 테지. 난 내 목숨을 파는 행동 따윈 하지 않아.”
아프도록 부여잡고 있던 내 머리를 놓더니 이제는 손을 낚아 채 올린다. 방금 전 까지 목에 닿아있던 뭉툭한 단도를 억지로 쥐게 한 후 내가 빼내지 못하도록 자신의 손으로 덮어버렸다.
“뭐, 뭐하는 거야?”
천신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동시에 손 안에 쥐어져 있던 단검이 화로에 들어갔다 나온 듯 순식간에 달구어 졌다. 느껴지는 고온에 손바닥이 녹아 없어 질것만 같아 몸부림쳤지만, 천신은 날 놓아주질 않았다.
“놔! 이거 놔!”
고통에 악을 쓰며 울부짖자 내 손을 붙들고 있던 천신이 그제서야 떨어진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단도는 원래의 평범한 쇠붙이로 돌아와 있었고, 손바닥이 얼얼하여 단도를 떨어뜨릴 법도 한데 난 아직도 그것을 손 안 가득 쥐고 있었다. 머슨이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천신은 머슨의 발에 치여 어느새 벽 아래에 주저 앉아 배를 붙잡고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큽… 놓지 않는 게 좋아. 귀속시켜 놨거든.”
“뭐?”
“내 날개를 찢어 신성력을 쏟아 부은 무기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라 케일이 아니고서야 영혼까지 소멸돼 버리지. 그런데 살기 가득한 저놈에게 내가 그걸 꽂아 넣는 건 꽤 귀찮은 일이 될테니 너한테 맡긴다 계집.”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선택이지.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 둬. 당장에 누구의 것이든지 피를 묻혀주지 않으면 그것은 폭발해. 수도 전체가 날아갈 정도의 위력이지. 귀속된 주인의 몸에서 떨어져도 마찬가지고.”
꼴깍- 마른 침이 넘어간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머슨을 다치게 하라 이 말이야? 단도를 쥔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 걱정하지는 마.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서 케일이 소멸 되는건 아니니까. 아마 이 수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건 나와, 케일 그리고 벨라 뿐 일거야. 벨라는 물론 내가 지킬거고, 넌 방대한 신성력이 몸에 빨려들어 감당하지 못해 폭발이 일어나는 거니까 누가 손을 쓰기도 전에 가장 먼저 죽는다고 보면 돼.”
“미친, 악마같은 놈.”
“마왕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쓰나.”
머슨이 한 발자국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머슨으로부터 멀어졌다.
“오지마”
“난 괜찮아 에리나.”
그놈의 괜찮아. 괜찮아. 맨날 뭐가 그렇게 괜찮고, 뭐가 그렇게 여유로운 건데? 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한번 얘기했다.
“오지 말라고 했어.”
“에리나는 감당하지 못해.”
“네가 어떻게 알아? 나한테 귀속 된거야. 이건 내가 처리해!”
머슨은 너무 많이 다쳐있었다. 다리에도 손에도 피가 흐르고 불길한 검은 빛이 자꾸만 새어나오는 게, 아마 저것들이 재생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난 손목을 걷어 올리고 그 위에 단도를 가져다 대었다.
“만일 내가 잘 못 되면, 성녀님한테 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일들을 모조리 이야기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 기억을 찾게 되면… 내가 아무리 밉고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년이라도… 이런 말 엄청 염치없다는 거 알지만, 우리가 수도에 온 목적은 잊지 말아 줬으면 해.”
“미워 할 수 없어. 잊지도 않아”
“진즉에 널 보내 줬어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나쁜년이라 뒤늦게 벌을 받나 봐.”
알고 있다. ‘케일’의 인생에 있어서 나는 악녀라는 걸. 어쩔수 없는 척 붙잡아 두었던 기간이 너무도 길었다. 이젠 다들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온 것이다. 혹시 모르지, 만약 이쪽 세계에서 죽는다면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내 방으로 돌아가 있을지도.
눈물이 흐른다. 틀어진 톱니바퀴가 이제야 맞물려가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이물질인 나는 그것이 몹시 슬픈가보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는 마. 분명히 머슨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아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테니까. 그게 내 원래의 자리거든.”
“원래의 자리?”
“응. 속이고 또 속여서 미안해. 이제야 사과하네.”
막상 스스로 택해야 하는 죽음 앞에 서니 덤덤해진다. 그런데 이토록 눈물이 흐르는 것은 아마 내 앞의 남자를 더 이상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주마등이 스쳐지나가고, 이 소설책에서 ‘에리나 홀든’의 결말은 이토록 비극적이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쭉 인정하지 않았는데, 널 사랑했나봐. 머슨.”
미련이 생기기전에 빨리 끝내버리자 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망설임 없이 단도를 들어 올려 내 손목을 향해 내리 찍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가로막혀 단도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난 눈을 뜨기도 전에 단도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감은 눈 사이로 서서히 보이는 것은 칼날을 힘주어 잡고있는 머슨의 붉은 손이었다.
“머슨!!”
“그 자리가 어디든 보내지 않아.”
하얀 빛이 솟구치더니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차 있던 것이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머슨의 몸안에 맹렬하게 돌진했다. 빛이 사라질수록 머슨은 점점 무너져 내려갔고, 검붉은 핏덩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머슨, 정신 차려! 머슨!”
빛이 전부 머슨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땐 그 또한 의식을 잃고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에는 손이 떨려 머슨의 머리 하나 받쳐주지 못했다. 잠시 우왕좌왕하다 검은 빛과 함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사정없이 원피스를 부욱 찢어 머슨에게 감아주었다. 찢어진 옷자락은 금새 붉게 물들어 버렸다.
“도, 도와주세요. 누가 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떤 나은 상황으로도 이끌어가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방관하고 있는 성녀와 얼빠진 표정으로 피식 웃고있는 천신 뿐이다.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해 제발, 제발!
그의 거대한 몸을 업고 나가기에도 무리였고, 만에 하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머슨을 업었다 하더라도 천신이 곱게 보내줄리 만무했다. 혹시나 천신이 잠깐 정신이 나가 우리를 보내주더라도 머슨을 도와줄 만한 사람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우리 머슨을 아프게 두지 말아 달라고. 이름 모를 여러 신들에게도 빌었고 나 자신에게도 빌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는 곳으로, 머슨이 충분히 회복 될 수 있는곳으로 보내줘 제발.
“좀 보내 달라고!”
그 순간, 머리가 울리더니 익숙한 울렁거림이 찾아왔다. 늘 기분 나쁘다 라고만 생각했던 감각이 이토록 기다려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난 머슨과 함께 텔레포트 되고 있었다.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정신을 차렸을 땐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엉덩이 밑으로 가장 먼저 느껴졌다. 보이는건 고급스러운 버건디 계열의 가구들과 은은한 주황색 조명. 한 눈에 보기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어느 방의 내부였다. 그리고…
“마왕님?!”
일전에 보았던 두 마족 레이넌과 피에르가 나와 머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레이넌, 피에르 : (만세, 우리는 일회성 캐릭터가 아니어따!!)
*독자님 : 엇, 제가 첫코인가요? 머슨 에리나 넘 귀여운것!
작가 : 애정을 가지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삉삉 뿌큥!〉〈 (갖은 귀여운척으로 어필해본다)
*독자님 : 에리나에게 파워레인저 같은 힘이?! 눈치없음 스킬 말고 다른 스킬을 줄 때가 된 것같아요!!
작가 : (기겁)예리하신 코난 독자님. 맞습니다. 바로 그 때예요!!!
에리나 : 아, 쫄쫄이 입히진 맙시다.
*독자님 : 에리나 빨리 정신차리자 성녀보다 더 나빠!!!
작가 : (빵터지다)ㅋㅋㅋㅋ 에리나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서 머슨에게 세뇌를 당한듯 합니다.(어떻게든 실드쳐본다.) 하아...에리나 잘하자? 응?
에리나 : ?
*독자님 : 난 작가님 후기가 가장 좋더라 웃음 뽱뽱 터짐x2
작가 : 얼마나 제가 맘에 드셨으면 같은 코멘을 두 개 씩이나(수줍) 메이플 고성능확성기 저리가라네요 넘나 잘 전달되었습니다〉〈
독자님 : 응 김칫국
*독자님 : 아오 천신 개답답! 하는 짓이 너무 찌질해요!!
작가 :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성녀와 이어져야 하는 인물이죠
성녀 : 뭐임? 내가 찌질하다는 거야?
작가 : 아 들렸어? 미안.
*독자님 :ㅠㅠ세자인에서 머슨과 에리나가 알콩달콩할때가 좋았네요ㅠㅠ!
작가 : 집나가면 개고생입니다.
에리나, 머슨 : (그 누구도 세자인이 고향은 아니어따)
*독자님 : 천신 말고 상위의 신은 없나요?! 성녀를 보는 눈이 너무 편파적이예요! 성녀도 지가 무슨 아랍 오일왕도 아니고 하렘구축에만 여념없는게 딱 꼴뵈기 싫네요!! 작가님 반드시 정의의심판을 내려주리라 믿어 의쉼취않숩니다! 깁미어 사이다!!(코멘트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아서 간추리기가 힘들었다.)
작가 : 제가 설명이 좀 부족했던 것 같은데. 천신(엘)은 신들의 소속입니다. 상, 중, 하로 나뉘구요 여기서 엘은 고위천신 입니다. 그 위에 주신(대빵)이 있고 이 주신이 성녀에게 '문을 여는 자'의 능력을 부여하기로 선택한거죵! 마왕(케일)은 신들의 소속이 아니라 마족의 왕입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건 성녀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겁니다!
독자님 : 아놔! 그 날이 언젠데? 나 소화제 옆에 두고 소설 보는거 첨임!!
*독자님 : 으앙 ㅜ 작가님 다음편이 왜 없는거죵? 저 작가님 보고싶어서 30일 이용권 끊었어요 저랑 결혼해주세요!
작가 : 30일 이용권이 혼수였군요. 집은 제가 마련합니다. 뉴질랜드로 가서 식을 올리죠
독자님 : 글이나 좀 많이 팍팍! 쓰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드리지 말길.
작가 : 하... 진짜 사랑했는데...
*독자님 : 작가님 책에는 후기가 빠지겠쬬?ㅠㅠ 아쉽습니다.
작가 : 원하시는 독자님들이 많으니 제 편지라도 담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닼ㅋ 후기가 독자님 코멘트 덕에 이루어지는 거라 혼자 주절주절 쓰기엔 재미가 또 반감이죠 쳇(독자님 버프)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Blue벨벳님, HANRABOG님 감사합니다〉〈
*당분간 아침 일찍 업데이트 될 것 같아요 ㅠㅠ 작가의 생체리듬이 망가져서ㅠㅠㅠ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