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편
<-- 1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나요? -->
“너네 뭐냐?”
한 번 스푼을 쥐면 색이 바랠 때 까지 놓지 않던 에반이 그 엄청난 식욕을 잠시 뒤로 밀어 두고 음식이 차려져 있는 식탁 앞에서 나와 머슨에게 관심을 두었다.
“뭐가”
세수도 하지 않고 팅팅 부운 얼굴로 머슨을 따라 나온 나는 에반이 무엇을 묻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5초만 세면 곧 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암- 맞은 편에 앉은 에반의 얼굴이 흐려지고 시야가 점점 어두워져 간다. 맥 없이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찰나
‘탁!’
에반이 스푼을 테이블 위로 세게 내리쳤다. 아, 놀래라. 얼굴위에 덕지덕지 묻어 달아나지 않는 잠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밤새 머슨이랑 수다 떨지 않는 건데, 괜히 무리했다. 싸우고 난 직후라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결국 떠오르는 해의 밝은 기운을 느끼고서야 뒤늦게 잠에 빠져들었었다.
“개한테 물렸냐?”
무슨 소리야?
이어 에반이 내 목을 가리켰다. 목이 뭐, 무의식적으로 에반이 가리키는 오른쪽 목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앗, 따가”
손가락이 닿자마자 따끔한 고통이 찌르르 몸을 울렸다. 어제 머슨이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빨더니 역시 상처가 생길 줄 알았다. 머슨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돌리자 그도 붉은 자국이 이질적으로 남아있었다.
나도 저렇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에반의 말을 듣고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머슨은 그렇다 치고 에리나 넌 아주 제대로 물어 뜯겼는데?”
에반이 쥐고 있던 스푼을 뒤집어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꺾어 목 쪽을 향해 비치게 한 후 스푼을 거울삼아 들여다보는데…
“으억!”
이게 뭐야?!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이건 완전히 학대를 당한 것만 같은 처참한 멍이 들어있었다. 아오 잠이 확 깨네! 보기에도 아파 보일 만큼 짙은 멍이 그 범위도 목의 한쪽 면을 다 뒤덮일 만큼 넓었다.
스푼을 던지듯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머슨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거칠게 흔들었다.
“야 이 자식아, 니가 가정폭력의 주범이었구나.”
에반이 덩달아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거 머슨이 그런거야?! 야, 에리나 너 당장 이혼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쓰레기자식이었잖아!”
“히익! 에반, 머슨이 쓰레기 까지는 아니…”
“에리나! 정신차려”
“나 지금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 대사 한 거지? 맙소사”
“머슨, 이 쓰레기!”
“그래도 쓰레기는 좀… 아니 아니, 너 어떻게 날 이 꼴로 만들 수 있어?!”
주변이 소란스러워 졌다. 난 머슨을 쥐고 흔들기에 바빴고, 에반은 머슨에게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여 욕을 쏟아 부었다. 자연스레 우리에게 시선이 향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에리나, 넌 이렇게 당할 때 까지 안 도망치고 뭐 한 거야? 안 아팠어?!”
잔뜩 흥분해 소리치던 에반이 안쓰럽다는 듯 나에게 물어왔다.
“응 안 아팠는데?!”
“뭐?”
“따끔 거리긴 했지만, 아프진 않았어!”
에반의 눈이 글썽거리며 콧망울이 빨갛게 변해간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 지경이 되는데도 느끼지 못했을까...크흡”
응? 그건 아닌데. 난 에반의 말을 재빠르게 정정해주었다.
“처음이야, 이런 적”
“그런데 왜 아픈 줄도 몰라?”
“그건…”
머슨을 잡고 흔들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반듯한 이마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높은 콧대 그리고 밤새 나를 괴롭혔던 지독하게 야한 입술. 내가 목의 아픔을 느끼지 못 했던 이유가 두 가지 떠올랐다. 진짜로 참을만한 따끔함 정도였기 때문 하나. 내 아래를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던 자극이 더 컸기 때문 둘.
“에리나 얼굴은 왜 빨개져?”
...아픔이고 나발이고 쾌락에 허우적 대니라 느낄 새도 없었다! 라곤 이야기 못 하겠다. 잠시 얼어 있는 나를 향해 머슨의 손이 다가온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가락이 내 목 언저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많이 아파?”
저음의 미성이 달달하게 귀를 적셨다. 동시에 여관 내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 연극 연습중인 배운가봐”
“잘생김이 도가 지나친 거 아니야?”
“저 남자 진짜 스윗하다...”
이목의 관점이 사건에서 인물로 바뀌는 순간 이었다. 난 머슨의 손을 치워내고 그의 목을 다시 유심히 관찰했다. 살짝 빨갛게 달아올랐을 뿐 나와 같은 멍 자국은 없다. 왜 나만 이렇게 된 거야? 머슨이 집요하게 긁어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 내가 한 것처럼 꽉 깨문 건 아니었는데...
설마, 마왕이라 끄떡없는거 아니야? 난 마왕에게 공격(?) 당한 입장이라 이렇게 된 거고. 게다가 멍이 잘 드는 편이기도 하지 내가.
“괜찮아?”
에반이 내 등을 쿡쿡 찌른다. 놀랐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지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폭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머쓱해진다. 난 구겨진 머슨의 옷자락을 손으로 툭툭 펴 주었다. 그러자 에반이 놀라 내 손목을 붙잡는다.
“뭐해?”
난 에반을 무시하고 머슨에게 따끔하게 경고했다.
“이렇게 심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잖아. 다음 번에 또 이러면 죽어 진짜"
“응, 미안해. 내가 다 책임져”
사실 이 말은 어젯밤 내내 했던 소리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책임 진다.’ 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괜히 내 상처에 놀라 머슨에게 지겨운 잔소리를 또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한 편으로는 목을 이정도로 아작을 내놨으면 몇날 며칠이고 더 들어도 되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이걸로 끝이야?”
“응”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에반이 황당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더 높였다.
“야, 너 그렇게 안일하게 넘기면 안 돼, 이거 완전 주먹으로 목을 사정없이 내리 친 수준인데!”
그러게, 마왕이 살짝 깨무는 정도가 이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올 줄은 나도 몰랐지. 하지만 에반에게 이 이야기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자 나는 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했다.
“사실 머슨이 직접적으로 그런게 아니라, 머슨이 내 목에 벌레가 붙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내가…”
“자해했다고?”
“...비슷해”
걱정으로 일관하던 에반의 눈빛이 돌연 바뀌었다. ‘웬 또라이가 다 있나’ 하는 속마음이 확성기를 통해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건
“머슨 미안하다. 아까 쓰레기라고 했던 말은 사과할게. 사회악이라고 욕했던 것도”
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에반이 너무도 쉽게 믿었다는 것이다. 너 내가 사는 세계였으면 옥장판 좀 샀겠다 야.
내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비롯된 헤프닝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에반은 다시 늦은 아침을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면 나는 에반처럼 음식 먹는 데에만 집중 할 수 없었다. 멍의 크기를 알고 나니 괜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정말 어디서 맞고다니는 애처럼 보이기에 충분했으니까. 식사가 끝나고 방에 올라가면 두를 것이라도 찾아야지 원.
‘쾅-!’
그러나 내 작은 계획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무참히 실패로 돌아가야 했다. 여관의 문이 꽤 큰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열렸다. 어휴 무슨 길거리 용병들이 단체 회식하러 왔나? 나는 입으로 가져 가려던 빵을 내려놓고 입구를 살폈다. 거칠게 문을 연 자들은 용병이 아니라 순백의 옷을 차려입은 사제님과 신전 기사단이었다. 맨 앞줄에 서 있는 저 나이 지긋하신 사제님은 본 적이 있는 사제님 였다. 저번에 신전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사제님.
“아이고, 사제님 무슨 일로 이런 곳 까지 발 걸음 하셨습니까?”
여관 주인이 등을 굽히며 재빨리 달려 나갔다. 사제님은 주인에게 말을 전하면서 내부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아…”
눈이 마주쳤다. 사제님이 나를 발견하더니 하던 말을 끊고 나에게 직진해온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도님”
“네, 사제님 그러네요. 무슨 일로…?”
“성녀님께서 신전에 초대하길 원하셔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지난 번 드리지 못한 말씀을 전해드린다 하면 아실거라 전달받았습니다.”
“나요? 얘가 아니라 나?”
옆자리에 앉은 머슨을 가리켰지만 사제님은 고개를 저었다.
“분홍 머리에 어여쁘신 신도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가시죠.”
사제님 손짓하자 신전 기사들이 다가온다. 마치 연행돼가는 기분이었으나 나쁜생각은 잠시 떨쳐 버리기로 했다. 내가 일어서자 머슨이 따라 나섰고 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옆에 있는게 안심이 되었으니까, 다행이도 사제님 또한 머슨을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머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 날에 들어서 인지 신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에반 : 날 두고 어딜 간거야?! 머슨! 에리나! 너네 안 오면 이거 내가 다먹는다?!
(개이득)
*독자님 : 집착하는 머슨 넘나 좋네요 처음 코멘트 달아보는데 작가님 소설 잘 보고 있습니다〉〈
작가 : 와! 감사합니다!! 집착하는 머슨이 좋으시면, 집착하는 작가는 어떠신가요?(기록. 코멘트 달린 날짜 시간 17.01.25 00:10시) (집착)
독자님 : 뭐야 재수없어
*독자님 : 이용권 1분 남았을때 급하게 봤네용 근데 마지막으로 본게 워후!
작가 :( 헉 다행이다!!!!! ) 1분만 늦게 올렸으면 클나뻔했네요...후덜덜
*독자님 : 원래 세계로 돌아가긴 가야겠고, 머슨은 좋고... 이해는 가는데 답답은 하고, 머슨은 섹시하고
작가 : 거 참 에리나 힘없는 평범 엑스트라인 척하지만 알고보면 세상제일 욕심쟁이
체닌, 성녀 : 맞아! 걔가 그래!
작가 : 에리나 미안.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확인 못 하고 급하게 올립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