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편
<-- 12. 집들이가 원래 이런거였나요? -->
“계속 밖에 서있게 할 건가요?”
“아뇨, 아뇨 들어오세요.”
문을 두드린 사람이 체닌이 아님에 실망할 틈도 없이 놀라움이 먼저였다. 성녀의 말 한마디에 얼떨결에 가로막고 있던 문에서 비켜나자 그녀가 아주 자연스럽게 머슨의 앞에 다가가 섰다. 지켜보고 있던 에반의 입은 벌레가 들어가 그 안에서 춤을 춘다 해도 다물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미안해, 일찍 찾아 왔어야…”
난 머슨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거기에 있어 나한테 오지 마!
성녀가 머슨에게 말을 거는 와중에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개무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시야에서는 성녀의 등밖에 보이질 않았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그녀가 충분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야 사람이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지. 얼른 다시 가!”
머슨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이야기 했다. 팔을 잡아 앞으로도 당겨보고, 등도 밀어 봤지만 머슨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우직하게 내 옆을 사수했다. 할 수 없이 내가 성녀 앞으로 걸어가자 그제서야 머슨도 날 따라 그녀 앞에 선다. 성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이 민망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성녀님 앞이라고 쑥스러워 하시기는! 하하하! 제가 옆에 있어 드릴 테니, 긴장 푸세요!”
성녀는 내가 마왕에게 은혜를 입어 따르고 있다 생각하기에 평소와 같은 말투(죽을래? 혼난다! 우리 순진한 머슨 등)는 쓸수 없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에반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무언가 말하고자 호흡을 크게 먹는다. 그러나 내 손이 더 빨랐다.
“으억!”
가만히 있던 베개가 왜 또 니 얼굴로 날아가지. 항의 하는 에반의 표정에 시치미를 뚝 떼고 살짝 윙크해 보였다. 그러자 오바이트라도 할 것처럼 창문 틀을 짚고 고개를 내민다. 야, 그건 너무 심하잖아.
“안 쑥스러운데”
이런 미친! 에반에 신경쓰느라 머슨의 입에서 나올 말에 대해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난 팔꿈치로 그의 허리를 강하게 밀어 쳤다. 성녀가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시선이 머슨의 얼굴에만 박혀 있으니 못 봤을 거라 믿어 본다.
“에리나, 왜 쳐?”
“또 또 또 삐뚤게 나오신다! 좋아하는 여자분 앞에서 너무 그러시면 미움 받아요.”
“내가 미워, 에리나?”
아니 나 말고!! 내 양 손을 꼬옥 붙잡고 초조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난 머슨의 발을 있는 힘껏 밟은 뒤 손을 떼어 냈다.
“성녀님 그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 글썽이던 여린 눈망울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하게 식은 냉담한 눈동자가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반듯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국의 변검처럼 금세 표정을 거둔다.
“내가 오빠 때문에 한 소리 했다고 해서 이러는 거면 그만 둬 케일. 나 지금도 너무 혼란스러우니까.”
여전히 머슨은 성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는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저기…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역시나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건 나의 몫이었다. 에반에겐 미안 하지만 성녀와 조금 더 편안 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선 그를 내보내야 했다. 여러 가지로 에반에겐 숨기는 게 많으니까 확실히 그럴 수밖에... 성녀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걸 정강이 두 방에 깔끔하게 해결하고, 드디어 우리 셋만 남은 본격적인 이야기의 장이 마련되었다.
성녀에게는 차라고 이야기 했지만, 막상 내올 수 있는 건 물 밖에 없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냥 식은 물. 목이라도 축일 겸 한잔 따라 놓고 건냈으나 성녀는 입도 대지 않는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모르는 게 어렵죠. 케일이 워낙 눈에 띄니까. 이 여관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손님중 폐하에 버금갈 정도로 굉장한 미남이 산다는 소문은 코흘리개 아이도 알아요. 에리나양은 둔해서 눈치 채지 못하셨을 수도 있지만, 새벽부터 케일의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여관 주위에서 노숙하는 이들도 있는 걸요.”
확실히 예전 보다 여관이 북적북적 해진 기분이 들긴 했었지. 것보다 나 지금 둔하다고 욕 한거야?
“혹시나 하고 찾아왔는데, 역시나 맞았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케일한테 꼭 전할 말이 있었는데”
성녀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멀쩡한 손톱을 매만지고,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깊은 한숨이 숨길 수 없이 새어나온다.
“뭔데요?”
“케일, 너무 화내지 말고 들어줘”
즉, 화날만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소리다. 머슨은 여전히 관심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주의깊게 듣는건 나였다. 나와 머슨 사이에 앉은 성녀는 아예 나에게선 등을 돌려 머슨만을 바라보았기에 순식간에 소외된 분위기 였으나 그럼에도 고개를 바짝 성녀 가까이에 가져갔다.
성녀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싶다가 마음을 다잡은 듯 드디어 성녀의 입이 열린다.
“엘이, 널 다치게 할 거야.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날개를 찢었어. 그러니까 케일, 조심해야 해. 난 네가 다치는 걸 바라지 않아.”
엘이라 하면… 천신 엘?! 남자 주인공 후보 중 한명인 그 엘?! 덤덤한 머슨과 달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건 오히려 나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친다뇨, 어째서!”
내가 물었으나 성녀는 여전히 머슨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슬쩍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모두 나 때문이야. 알잖아, 엘이 나를 끔찍이 생각 하는 거. 케일이 나의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엘은 굉장히 분노 했고, 그럼에도 내가 케일을 감싸니까 그는 또 질투했어. 그렇다고 해서 엘이 날개를 찢을 줄은 정말 몰랐어!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으면 한동안 너네 둘 다 만나지 않았을 거야. 나 혼자 슬픔에 잠겨 있었을 거야.”
천신에게 날개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소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것을 찢고 머슨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사랑싸움이겠거니 하겠지만, 막상 내 눈 앞에서 우리 머슨이 위험에 처하자 덜컥 불안감이 목구멍 너머로 삼켜지고 걱정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마왕님이 다치지 않으려면 도망이라도 가야 하나요?!”
“케일, 신전으로 와.”
여전히 성녀는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머슨에게만 하고 있었다. 충분히 기분 나쁠만한 상황이었으나 지금의 나에겐 이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 머슨이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듣는 게 먼저였다.
“마왕성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엘이라면 천족의 군대를 끌고 전쟁을 선포할지도 몰라. 차라리 내가 있는 곳이라면 엘도 함부로 하진 못하겠지.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 내가 보호해 줄게.”
난 여전히 일어 선 채로 머슨을 바라보았다. 머슨의 눈도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를 향해 입술로만 이야기 했다.
‘가겠다고 해’
순간 그의 표정이 비틀린다. 잠시 눈을 감아 내리더니 이내 눈꺼풀이 들어 올려 졌을 땐 상처받은 눈동자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에 발이 뒷걸음질 쳐졌다. 머슨은 어느새 성녀를 무시하고 우뚝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걸어 왔다. 나도 그 순간엔 성녀를 잊었다. 오로지 머슨에게만 사로잡혀 내 눈엔 그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봐. 에리나.”
“...뭘”
“방금 한 말.”
등에 딱딱한 벽면이 닿고 발뒤꿈치에도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그 감촉이 이어졌다. 머슨의 팔과 몸 사이에 꼼짝없이 갇힌 채로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적안과 마주해야 했다.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지난 번 억지로 머슨을 마왕성으로 보내려 했을 때가 오버랩 되어 온다.
“...”
“한 번 더 나를 떠나보내려 한다면 내가 화나고 슬플 거라고 에리나에게 이야기 했었어.”
기억한다. 분명 머슨은 그렇게 이야기 했고, 지금의 난 또 다시 머슨을 보내려 하고 있다.
“니가 다치는 게 싫어.”
“다치고 말고는 내가 알아서 해.”
낮게 내려 앉은 머슨의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두렵지도 않았다. 머슨이 내뱉은 말에 서운함이 먼저 찾아 들어 전에 없던 화가 욱 하고 튀어 올랐다. 내가 널 싫어서 보내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나는 상관 말라 이거야?”
“내가 받을 상처가 어떤게 더 클지 생각해 봐.”
“영영 헤어지자는 것도 아니잖아”
“에리나는 나를 너무 쉽게 밀어내. 쉽게 떠나버릴 사람처럼”
========== 작품 후기 ==========
*부부싸움 시작
성녀 : 지금 날 두고 뭣들 하는거야?
머슨, 에리나 : (이런 내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
*독자님 : 작가님 후기 넘나 좋당〉〈
작가 : 앗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요? 세세하게 아주 정밀하게 나노 단위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 독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중)
독자님 : 구질구질해
*독자님 : 특검이 성녀 조사해서 구속시켰으면 좋겠네요!
작가 : 성녀는 제가 조질테니 특검은 현재 일에 집중 하게 내버려두죠!
성녀 : 뭔데?!
*독자님 : 작가님 보고싶어서 약 한달만에 노블 끊었어요 보고싶었습니다!
작가 : 꺄앙 저도 보고싶었습니다 뉴뉴뉴... 이렇게 보러와 주시다니 아직 세상은 살만 하군요(코쓱)
*독자님 : 매번 정주행 해도 재밌네요〉〈 성녀가 발리고 에리나 꽃길 언제 걷죠?
작가 : 에리나 말고 독자님과 제가 함께 걷는 꽃길을 상상해 보시렵니까?
독자님 : ? 저승길이라면 아는데...
*독자님 : 에리나랑 황제랑 썸타는거 더 보고싶어요
황제 : 후훗- 드디어 나를 밀어주는 독자님이 생기셨군
머슨 : 안된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날 엄~~청 추워요 ㅠㅠ 키우는 강아지 산책도 못나갈 정도...ㅠㅠ 모두들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