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편
<-- 12. 집들이가 원래 이런거였나요? -->
*
“흐으읏- 아, 엘!”
어느 곳 보다 고결하고, 거룩해야 할 성녀의 방은 짙은 열기로 가득 메워졌다. 극도의 오르가즘으로 비음 섞인 교성이 방 안을 쩌렁 쩌렁 울렸다. 몇 번째의 절정을 맞이 하는 건지 세는 것을 포기한 성녀는 체액으로 뒤덮인 침대 시트 위에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름다워 벨라”
설산처럼 하얗게 솟은 가슴은 제 색깔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얼룩덜룩한 키스마크 들로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전신이 파랗고 붉은 자국에 물들어 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힘을 너무 썼어 엘.”
“만져봐. 아직 죽지 않았어.”
거친 정사로 뜨거워진 성녀의 손이 더욱더 강한 열을 내는 엘의 기둥위에 닿았다. 몇 번이나 사정을 했음에도 그것은 사춘기 소년의 아침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성녀는 느긋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엘의 페니스를 어루만져 주었다. 어린 강아지를 칭찬 하듯이 아주 상냥하게.
“이게 더 감질 맛 나는거 알아?”
“난 진정시키려는 것뿐이야. 지칠 줄 모르고 달려대니 다음 날 내 몸은 어떻게 되겠어? 미사도 있는 날인데.”
“저런, 지금도 박고 싶어 미치겠다는데?”
“천신이 욕망에 이렇게 약해서 되겠어?”
페니스 끝에 맺힌 액을 엄지로 눌러 주변에 펴발랐다. 성녀의 손이 관능적으로 움직일 때 마다 엘의 표정이 감출 수 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엘의 모습을 보며 성녀는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영락없는 내 노예.
감히 하늘 높은 천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손길 하나에도 울고 웃는 엘을 보며 성녀는 의심 없는 자만이 몸 안 가득 들어찼다. 채 마르지 않아 아직도 다리 사이에 흐르고 있는 엘의 정액을 느끼면 풍족해지는 기분이다.
쾌락이 깃든 사랑으로 오롯이 성녀만을 눈 안에 담고 있는 엘과 다르게 성녀는 관계 내내 다른 생각으로 붙잡혀있었다. 당장에라도 물어보고 싶은 말을 참고 또 참으며 엘에게 집중한 척 연기했다. 모든 정사가 끝날 즈음이 되자 성녀는 지금에서야 서서히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엘 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무서워. 엘도 케일처럼 변해 버릴까봐. 내 오빠를 죽이고, 약속을 어긴 그처럼 될까봐.”
엘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서렸다. 이마에 힘줄이 솟고, 급기야 상체를 일으킨다.
“그렇지 않아. 난 벨라가 사랑하는 이들을 해치지 않고, 약속을 어기지도 않아. 이거 봐.”
엘의 몸 안에서 부터 빛이 튀어나오더니 그것들은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갔다. 성녀는 진심으로 놀라며 벌어진 입을 황급하게 두 손으로 가렸다.
“엘, 너 날개가…!”
“말 했잖아. 내 날개를 찢어서라도 복수해 주겠다고.”
천신의 힘. 즉 신성력은 날개로부터 나온다. 흔히 죽은 자 들을 인도 하는 천사들은 두 장. 하위 천신들은 세 장. 엘과 같이 고위 천신들은 네 장으로 개수에 따라 그 계급이 나뉜다. 한 번 찢겨진 날개는 다시 복원되기 까지 천년 이라는 가히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므로 웬만한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스스로 날개를 찢는 천족은 없을 것이다.
웅장하고 찬란하게 펼쳐져야 할 네 장의 날개 중 하나가 반쪽이 되어 피 칠갑을 한 채로 힘 없이 꺾여있었다. 성녀는 자신을 위해 날개를 찢는 희생을 보인 엘을 보며 박수라도 칠 뻔 한 손을 주먹 쥐었다. 오히려 뻔뻔 하게도 슬픈 눈을 하며 엘의 찢긴 날개를 감싸 안기 바빴다..
“정말 이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어. 미안해.”
“말 했잖아. 난 그녀석이랑 달라.”
“하지만, 난…. 연회에서의 그 말은 없던 걸로 하자고 이야기 하려 했어.”
엘의 눈이 크게 떠진다. 제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고, 방대한 양의 신성력이 한 순간에 증발 돼 버릴 것을 감수 하며 날개를 찢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니. 엘은 자신의 이 수고가 헛된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순간이 오자 분노가 끓었다. 그 방향은 케일에게 향했지만.
“내가 그땐 제 정신이 아니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야 엘. 케일에게 너무 화나고 그가 미워서 실언을 한 것 같아. 집에 와 보니 두고두고 후회했어. 그런데 엘이 정말 날개를 찢을 줄이야… 미안해 정말.”
“벨라. 넌 너무 심성이 여려. 케일은 벌을 받아야해 그 어떤 벌 보다 네가 겪은 고통 만큼은 미치지 못할 거야.”
“엘…”
성녀의 말은 거짓으로 뭉쳐있었다. 여린 척 인간의 약점을 꼬집어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 엘은 백이면 백 더욱더 완강하게 성녀의 의지를 다잡아 주기 위하여 노력했다. 성녀의 의도는 뻔했다.
‘악한 짓은 모두 너의 몫. 난 그저 상처받은 여자일 뿐.’
어리석게도 천신은 쉽게 걸려 넘어갔다. 분노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선 그는 침착하지 못한 목소리로 애쓰며 주문을 읊조렸다. 하얀 섬광이 방안을 들어차고 찬바람이 엘의 주위로 원을 그리며 휘몰아쳤다. 동시에 엘의 손바닥 위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백색의 단도가 고고하게 놓여 있었다. 칼날이 뭉툭하여 어디 사과라도 썰릴까 싶었으나 이 것은 천신이 제 날개를 찢어 만든 무기로 인간이 아닌 불멸의 존재인 마왕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걸로 그 녀석을 소멸시키기엔 부족하겠지만 분명한 복수는 할 수 있어.”
“난 케일의 소멸을 바라지 않아”
“...알아.”
케일은 성녀에게 단도를 내밀었다. 그러나 받아들지 못하고 그 앞에서 몸을 움추릴 뿐이다.
“난 못해. 내가 어떻게 케일에게 이걸 꽂을 수 있겠어.”
“스치기만 해도 돼. 찌르는 건 의미가 없어 날카로운 것에 썰린다고 해서 그 자식이 어디 눈 하나 깜짝 할까. 칼날에 그 녀석의 피가 파고들면 복수는 시작이야.”
“그래도…”
“좋아. 내가 하지. 벨라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 일거야.”
엘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자 성녀는 그의 몸을 두 팔 벌려 가득 끌어안았다.
“미안해 엘. 하지만 난 진심으로 바라진 않았어.”
“...그래 이건 나의 복수야.”
*
“체닌, 오늘도 안 왔지?”
“그래 아비츠가 마님은 안 오고, 이제 가을이 오려나 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지기 시작하네.”
연회가 끝난 지 벌써 4일이 지났다. 병사가 우리를 체포 하러 오지도 않았고, 체닌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하염없이 여관 방 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느라 지쳐 머슨을 데리고 시장 구경을 다녀왔다. 에반은 그 지독한 게으름 때문에 방 안 침대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다 하여 둘 만 다녀오게 된 것이다.
“뭐 샀어?”
“말 했잖아 구경만 하다 온다고.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텐데 괜히 이것저것 사봤자 짐이야.”
“네 든든한 남편이 있잖아.”
“얘가 드는 건 짐 아니게? 그래도 바깥 공기 좀 쐬니까 정신은 맑아진다.”
제 방도 따로 있으면서 굳이 우리방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에반을 밀어 버리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머슨이 내 옆으로 오며 아예 에반을 벽과 혼연일체 시키려는 듯 더 안쪽으로 굴려 버린다.
“아앗, 나 물건 아니거든?”
머슨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내 손을 깍지 껴 잡고는 손등에 입술을 깊게 내렸다.
“애인 없는 사람 배려좀 해주라”
깊은 스킨쉽 까진 아니지만, 머슨은 에반이 같이 있는 와중에도 나에게 자잘한 뽀뽀나 포옹을 스스럼없이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에반 눈치 때문에 나도 말려봤지만 도저히 말을 들어먹지 않고 오히려 더 진하게 애정행각을 시도 할 뿐이었다. 말 하는 것도 지쳐 나도 이제 포기해 버렸다. 뭐, 그렇게 싫지도 않고 말야.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잔뜩 인상을 쓰고 우리를 바라보던 에반이 결국 침대를 떠났다. 책상 의자를 끌고 와 대놓고 우리 앞에 턱하니 앉는다.
“뭐야, 할 말 있어?”
“봐도 봐도 놀라울 정도로 머슨은 잘 생겼단 말이야.”
“새삼스럽게 뭘.”
우리 머슨 잘생긴게 하루이틀 이니? 경이로운 빛으로 머슨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 보던 에반이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뭐!
“그런데 왜 너랑…으앗!”
“그 의자 다리 예전부터 좀 부실 하더라, 좀 조심히 앉지”
“네가 걷어찼잖아!”
“그렇다면 미안.”
에반은 아프게 부딪힌 엉덩이를 문지르며 다시 의자를 세워 앉았다.
“아니 널 놀리려는 게 아니라, 궁금하잖아. 어쩌다 둘이 만나게 된 거야? 할 일도 없는데 이야기나 좀 듣자. 러브스토리”
처음은 피 였다. 처참하게 살해 된 시체들과 그 가운데에 자비 없는 눈으로 인간들을 죽여나가던 모습. 나도 죽어나간 이들과 마찬가지로 끔찍하게 피가 뽑힐 위기에 처하자 안간힘을 다해서 각인의 증표를 깨트리고 위기에서 벗어났지. 덤으로 기억을 잃은 이 마왕도 얻게 되고- 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으니 재빨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아씨, 쓸데 없는 걸 물어 보고 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에리나가 내 눈 앞에 있었다.”
히익! 입단속을 시킬 틈도 없이 머슨이 먼저 말을 내뱉었다.
“내 인생은 전부 너였어. 라는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멘트는 빼고”
다행이도 에반은 머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난 머슨을 툭툭 치며 팔을 잡아 뒤로 뺐다. 넌 빠져있어!
“내가 말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아, 그래. 머슨이 많이 아팠거든. 내가 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줘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날 좋아 하는 티를 내더라고. 엄청 구애 해오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아니야. 난 에리나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내가 말할게 머슨”
“뭐야, 둘이 얘기가 다르잖아.”
머슨은 고개를 갸우뚱 해 보였고, 에반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화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건 나 뿐이었다.
“...그러니까 머슨이 나한테 청혼을 했고”
“안했는데.”
“머슨의 요양을 위해서 시골마을로 이사를 간 거고”
“아닌데”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포기 하지 않았지!”
“가난과 병마는 아니지만 사랑은 맞아.”
아오! 확 짜증이 솟구쳐 머슨을 홱 째려 보았다. 그런데 싱글벙글 웃고 있어? 안절부절한 내 속은 모른채 무엇이 재미있는지 웃음기가 잔뜩 얼굴위에 묻어있었다. 게다가 살짝 윙크까지 해 보인다. 그 의미는 뭐냐?
여기서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냐 너네?”
아니 황당쪽이 더 맞을 것 같다. 내 말에 신뢰를 잃은 에반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난 여기서 아름다움과 로망 이라는 두 단어를 제외시키고 말 하기로 결심했다.
“그냥 술 먹고 자버렸어.”
그제서야 에반의 눈빛이 바뀐다.
“그렇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남자 잘 물었네 에리나!”
“그렇지 뭐.”
하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말에 대해선 머슨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내 말 한마디에 에반은 모든 걸 이해 한 듯 다른 질문은 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추억에 빠져 과거의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 나도 지루했던 참이라 라디오사연을 듣는 것처럼 에반에게 집중했다. 이야기 솜씨가 이렇게 좋은 애인줄은 몰랐네.
“사랑은 신분의 차이도 잊게 만들었어. 그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야밤에 몰래 담을 넘었지. 그리고 아가씨의 창문을 두드렸어.”
‘똑 똑 똑-’
오, 효과음을 이렇게 리얼하게 내나? 속으로 감탄 하고 있는데 에반의 말이 멈췄다. 그리고 또 다시 들려왔다.
‘똑 똑 똑-’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오가더니 일제히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밖에서 난 노크소리 맞지? 우리 말고는 들어올 리 없는 이방에 우리 세 명 다 이 자리에 있고, 그렇지?!
체닌일까 싶어 몸이 번쩍 튀어 올랐다. 잠시 우왕좌왕 하다가 누구세요 라고 묻기도 전에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사람의 모습의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요. 에리나.”
“...”
눈을 잠시 벅벅 비볐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를...? 누추하고 칙칙한 여관방에는 어울리지 않을 새하얀 성의를 입고 문을 두드린 자는 다름 아닌 성녀였다.
========== 작품 후기 ==========
*에리나 :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왔!닝!
성녀 : 머슨 찾으로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머슨 : (찾으면 님이 뭐 어쩌시게요)?
*독자님 : 이번화에 머슨이 등장한다더니 대뇌피질 전문의원이라는 명칭만!
작가 : (2연참을 한 이유) (작무룩) 쓰다보면 항상 길어지네요 ㅠㅠㅠ
*독자님 : 에리나랑 황제 케미가 좋네요 헿
머슨 : (에리나에 대한 직찹이 +10 상승했습니다.)
*독자님 : 작가님 힘들고 지치실때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가 저희 지하실에 존재합니다!
작가 : 습기는 어떤가요? 통풍은요? 치킨은요?
*독자님 : 작가님 돌아오셔서 넘나 기뻐여〉〈!!
작가 : 저도 이렇게 반겨주시는 독자님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다시 활력이 쑥쑥!!!!!! 끄아아앙-(포효)
*독자님 : 작가님! 우리들이 힘내시라고 리플달아드리고 어깨도 빌려드릴테니 혼자 힘들어 하지 마세요 계속 기다릴수도 있어요!
작가 : (오열) 아 ㅠ진짜 너무 감동이예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히잉 ㅠ 이렇게 감동주기 있기 없기?ㅠ (눈물샘 폭발) (독자님들 물빨핥)
독자님 : 아 세수하고 와야겠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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