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편
<-- 12. 집들이가 원래 이런거였나요? -->
“환자 잖아. 그리고 잠이라는 게, 억지로 깨운다고 쉽게 달아나진 않아.”
“그럼 깬 걸 기다렸다 가자.”
“문이라도 닫히면....”
머슨의 미간이 좁아진다. 찌푸려지는 얼굴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그렇게 떵떵 소리를 쳐놓고 위험한 일이 생기니, 머슨에게 괜찮다고 호언장담도 못하겠다. 그러나 어떠한 합리적인 수를 찾아도 한명은 집을 지키고 한명이 시장에 다녀오는 게 나았다.
게다가 머슨은 밖에 나가기만 하면 눈에 띄는 외모로 이목을 사로잡으니, 차라리 내가 빨리 다녀오는 편이 좋을 텐데.
내가 계속 우물쭈물해 하자 거칠게 어깨를 감싸 자기 품 안으로 끌어 당긴다.
“에리나가 또 다친다면 그땐 정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미안해”
“사과하라고 한 말 아니야. 에리나를 혼자 밖으로 보내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줘.”
“그런데 머슨. 언제까지고 니 곁에서만 있을 순…”
으윽-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그가 강하게 껴안았다. 머슨의 등을 두드려 봤지만 내 몸과 자신의 몸 사이에 쌀 한톨 들어갈 공간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 날 단단히 품에 안고 풀어 줄 생각 조차 없어 보였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어야 돼. 그게 몇 천 몇 억년이든. 시간을 뛰어 넘는 세월이든.”
“...그 정도면 나 죽을 걸?”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확신에 찬 머슨의 말에 갑자기 목구멍에 돌덩어리가 박힌 기분이 들었다. 곧 이 세계를 떠나 차원을 넘어가야 할 나로선 이토록 불편한 대화도 없었다. 난 화제를 넘기기 위해 곧바로 다른 말을 꺼내었다.
“그래. 내가 죽지 않도록 잘 지켜줄 거잖아. 그러니까 시장엔 나 혼자 다녀올게.”
“처음 부터 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돼.”
“갇혀 있는 건 딱 질색이야.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감금이자, 고문이야.”
움찔 머슨의 몸이 떨리더니 단단하던 팔이 스르륵 떨어지며 드디어 날 풀어준다. 바라보는 머슨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안쓰럽기 까지 하다.
“왜그래?”
“...나, 방금 에리나를 감금, 고문 한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잠깐, 이거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만. 방금 비슷한 기분을 느꼈어! 난 시장에 나가고 싶어 머슨. 보내줘!”
“하지만…”
“날 지켜줄 거잖아. 맞지?”
“당연해.”
“그럼 널 믿고 나갔다 올게.”
머슨이 눈꺼풀을 내리깔고 무언가 고뇌하는 듯 싶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더니 콧잔등 위에 입을 맞춘다.
“텔레포트로 시장에 이동시켜 줄게.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야. 볼 일이 끝났을 때, 처음 텔레포트 이동시켜준 장소로 돌아 와.”
“마력 소모가 심하잖아.”
“에리나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
으윽- 이거 완전 맛 들렸구만. 나름 머슨 스스로가 합의점을 본 거니, 나도 여기에는 발 맞춰 줄 필요가 있다.
“좋아.”
내 대답과 함께 동시에 머슨의 입에서 한 숨이 튀어나오고, 이내 힘없이 씨익- 웃는다.
“빨리 와야 해.”
“응”
푸른 빛이 몸을 감싸더니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나 속이 울렁거렸다. 우에엑-
“죽겠네. 빨리 적응해야 할 텐데.”
활기가 도는 시장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전에 한번 찾아갔던 보석상에게 금화를 바꿔 들고 염색을 위한 마도구도 한 움큼 구매했다. 목표가 있으니 머슨의 바람대로 내 쇼핑은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머슨이 “아 내가 괜한 유난을 떨었구나.” 라고 생각 될 정도로 빠르고, 안전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보여줄테다.
품 안 가득 투박한 종이 봉투에 위태롭게 쌓인 일종의 염색약을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걸었다. 가득 담긴 염색약을 들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거리를 지나간 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나 라도 떨어져 버린다면, 그 하나를 줍기 위해 염색약을 모조리 땅에 다 내려놓고 다시 집어 들어야 했다.
“욕심이 너무 과했나”
짐 담당은 언제나 머슨이었기에 염색약 양이 내가 들고 가기에 많은지 어떤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돌아가 반품 하는 것이 더 번거로운 일이었으므로 난 염색약이 떨어지지 않도록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아주 초 집중의 상태로!
‘와르르르-’
“아...”
지금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원형의 마도구들이 몇 초 전만해도 내 품안에 있던 것들이 맞나?
머리 위에서 당황한 기색이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과하겠소. 내가 미처 아래를 확인하지 못해서…”
코끝이 얼얼 한 거 보니, 내 눈앞의 남자와 부딪힌게 틀림없었다. 더운 여름 날인데도 흰 천을 빙빙 둘러 쓴 지극히 수상한 남자와.
덥고, 사람도 많은데 마도구까지 쏟아지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다. 게다가 남자는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어느 순간부터 뒷말을 댕강 잘라먹고 가만히 나만 내려다 본다.
“그만 쳐다보고, 줍는거나 도와 줘요.”
허리를 숙여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데, 이미 몇 개는 사람들 발에 치여 내 손과 눈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굴러가버렸다. 오늘 그거 줍는 사람 완전 횡재한 거야.
아씨, 손 밟힐 뻔 했네! 사람들의 우직한 신발 밑창을 피해 요리조리 손을 움직여 가며 마치 거미줄을 내뿜 듯이 염색약을 쓸어 담았다. 종이 봉투가 다시금 무게를 찾을 즈음 낯선 손 하나가 염색약을 그 안으로 골인시켜 넣는다.
“...지금 꼴랑 하나 주운거예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 정면에 마주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바라보나?”
“본 건 그쪽이 먼저, 아니 그보다”
말투가 변했다. 남자가 눈 바로 아래까지 두른 흰천에 손가락을 끼워 슬쩍 내린다. 그 모습이 마치 꽃의 개화 과정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 듯 아주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본 적 있는, 절대 잊지 못할 짙푸른 눈동자.
“...폐하?”
“그래,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첫사랑이지.”
수도에 오고 난 직후부터 하루도 편안하게 보낸 날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냥 시장에 간단하게 장 보러 가서는 감히 폐하와 나란히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황제는 품 안에서 내 염색약을 뺏어 들더니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뒤쫒다가 결국 숨이 차 그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저, 집에 가야 하는데요.”
“알았다.”
그럼 보내 줘! 말 만 “알았다.”지 그는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염색약만 아니어도 그냥 튀는건데!
딱히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닌지, 시장 이곳 저곳을 눈으로 담고 소란이 있는가 싶으면 잠시 멈춰서서 상황을 지켜 보다가, 자신이 개입할 정도가 아니라 판단되면 다시 발길을 옮겼다.
“시찰중이세요?”
“아니, 놀러왔다.”
“...전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데요.”
“그래, 이 정도 둘러봤으면 된 것 같군. 얼굴 가리고 있는 것도 답답 하고 말이야.”
“그럼 이제 돌아가셔야겠네요. 염색약 아니, 마도구는 이리로 주세요.”
내놔, 머슨이 나 기다린단 말이야. 황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염색약은 쉽게 내 품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팔이 저려온다. 이때 황제가 “아, 그렇군!” 이라며 크게 외쳤다. 왠지 모를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저번 연회때 아비츠 백작 저택의 안내를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황궁 구경을 시켜주마.”
미친, 이건 또 무슨 논리야? 난 격렬하게 손을 흔들며 가고싶지 않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튕기는 거라고 생각 할 수 도 없게 표정을 싹 굳히고 정색을 하면서.
“아니, 괜찮습니다! 전 집에 가고 싶어요.”
“사양할 것 없다. 자, 멀지 않으니 따라 오거라.”
“저 안 간다고요, 안가요!”
“그래, 기대되는 마음은 잘 알 겠다.”
누가? 누가 기대를해! 안 간다고! 나 빨리 집에 가야 된다고!
이 진실된 외침은 반드시 들어야 할 황제는 듣지 못했다. 일부러 못 들은척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 작품 후기 ==========
*(경)에리나 황궁진출!(사)
에리나 : 아오 집가야 된다고!!
머슨 : (안절부절)
크리헬(황제) : 놀리는거 개꿀잼!
*독자님 : 황제의 활약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뭐, 성녀의 노예수준이라 큰 기대는 안합니다!
작가 : 황제 등장입니다! 나름.....서브캐 (머슨이 너무 강하다)
*독자님 : 아닛 읽고 온 사이에 표지가 바뀌었네용!
작가 : (업데이트 하고 뒤늦게 표지를 확인한 작가! 감격하며 급하게 바꾸다)
*독자님 : 여주 걱정 안되는 소설ㅋ_ㅋ 그리고 작가님 사랑합니다!
작가 : 맞습니다. 머슨이 투명드래곤 급으로 짱짱맨이죠! (사랑을 고백한 독자님의 코멘테 두 볼이 달아오른 작가)
독자님 : 뭐야, 기분나뻐
*독자님 : 머슨의 마밍아웃!! 어제인가요!!
작가 : 얼마 안남았습니다!!!!!!!!! 두둥!!!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