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편
<-- 12. 집들이가 원래 이런거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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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이야?”
에반의 손에서 드디어 스푼이 떨어졌다. 배를 채우러 1층 식당에 내려가 음식이 나온 직후부터 머슨과 내가 접시를 비운지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에반의 옆에는 마치 개가 핥아 먹은 것처럼 탁한 빛을 내며 말끔하게 정리된 접시가 그의 어깨만큼이나 쌓여 있었다.
“다 먹은거야?”
에반의 물음 보다 그가 스푼을 놓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오랜 시간동안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반은 내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스푼을 쥔다.
“...백작 부인을 다시 데려가기 위해 잠입한 거라니”
머슨이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한 것을 보고, 체닌과 나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에반은 역시나 그 일에 대해 물어왔다. 머슨이 마왕이라는 사실은 제외하고, 모든걸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비츠 백작이 체닌의 목숨을 담보로 세자인 마을의 영주를 협박하고 있다는 것과, 세자인 마을 사람들과 체닌을 구하기 위해 몰래 다시 데려가기로 했다는 것 등을 말이다.
“일이 좀 복잡하게 됐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멀쩡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징조라고 봐도 되겠지.”
“머슨은 원래 마법을 좀 쓸 줄 알았던 거야?”
“응, 그렇지 뭐.”
거짓말은 아니다. 정말 원래부터 마법을 쓸 수 있었던 인물이니까. 좀... 많이,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잘 쓰는...
“마법사라면 귀족이 아니래도 작위 하나 정도 얻을 만큼 출세할 수 있을 텐데, 왜 그 시골마을로 다시 가려는 거야?”
“우린 거기가 좋아. 그렇지 머슨?”
“난 에리나가 있는 곳이…”
꽈아악- 그의 발등을 세게 눌러 밟았다. 세자인이 좋다고 해, 그렇다고 해!
“...좋아”
“봐, 머슨도 거기가 좋다 잖아.”
에반은 잠시 자신의 턱을 쓸더니, 음식물이 덕지덕지 묻은 스푼을 나를 향해 휘둘렀다. 뭐야? 내 인상이 찌푸려 지자 에반이 비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게 깐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나한테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내가 누설하고 다녀버리면 어쩌려고!”
“진짜로 말하고 다닐 사람 같으면 우리한테 이런 말도 안 하지. 게다가, 게르니아한테 붙잡혔을 때도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끝까지 말 안했잖아. 머슨 한테 조심하라는 경고만 끊임없이 하고. 참 미련한 짓이 었지만.”
“아, 그땐…”
“그런데, 왜 그런 거야? 비밀로 붙여야 할 이유가 있었나?”
에반이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가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이 무언가 이유를 담고있는 모습 같았다.
“...백작부인, 그러니까 ‘체닌’이라는 분에 대해서 약간 오해한 게 있어서 말이지.”
“오해?”
“아비츠 백작가에서 작정하고 개최한 연회인데 백작 부인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게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아, 연회의 마지막날 짜잔- 하고 등장하겠구나.”
헐- 잠긴 방에서 미친사람 처럼 발가 벗고 있고, 손 아래 사람이 떡하니 다른 남자를 데려와 성관계를하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런 추론이 가능한건지, 에반의 뇌 선로가 어딘가 어긋난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누군가한테 이 사실을 알려버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잖아. 그 백작부인은 자신이 등장할 연회 마지막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텐데.”
“오지랖도 병이다.”
에반이 메마르게 하하- 웃는다.
“하지만 나도 도움을 받았어.”
또 하나 의외의 이야기다. 귀를 쫑긋 세운채로 에반의 말에 집중했다.
“백작부인이 계속 말해줬어. 여기에 있으면 죽으니까 빨리 도망가라고. 그런데 무슨 일인지, 게르니아가 부르면 저절로 몸이 움직이고 아무생각도 할 수 없이 그녀의 말에 따르게 돼.”
“호오, 그거 신기한데?”
“정신마법이야. 마력이 낮은 상대의 몸에 자신의 마력을 배로 침투시켜 정신을 장악 하는 거지. 소비되는 마력이 심해서 아마, 그 여자라 하더라도 오래 유지하진 못했을 거야.”
이야- 머슨 이자식. 역시 마법공부 했어. 너무 대견해서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맞아. 딱 그 방안에 들어가는 순간 눈이 트이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어!”
“체닌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게 고작 그거야? 너 죽으니까 도망가라는 말 한마디.”
“아니야. 이틀 째 되던 날. 게르니아가 내 몸을 취한 후 죽일 것이라는 걸 직감했어. 백작부인도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라고 누누이 이야기 했었고. 그리고 정말 그 순간이 다가 왔을 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너무 지쳤었거든. 끈적한 액체들이 몸을 뒤덮고, 원치 않은 열기로 방안이 데워졌을 땐 내 머릿속마저 수증기로 가득 차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어. 단 하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던 건, 게르니아의 날카로운 치아. 난 저기에 물려 뜯기 겠구나 싶었지.”
에반은 아직도 오싹한지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자꾸만 쓸어 올렸다.
“그런데, 백작부인이 살려줬어.”
“어떻게?”
“... 지금 생각해보면 좀 민망한데. 백작부인은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어.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은데 벌써 죽여버리기 아쉽지 않아? 어차피 죽일 놈이라면, 내일 그 잘생긴 놈 거랑 같이 맛 보는건 어때?’ 라고.”
“그 나머지 하나가 우리 머슨이었다는 거네.”
머슨이 그런 위험에 쳐할 뻔 했다니.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죽도록 고생한 건 나거든?”
“어쨌든. 게르니아가 그 말을 들어줬어?”
“그러니까, 내가 살아남았겠지. 백작부인한테는 여러 가지로 빚을 졌네.”
“너무 씁쓸해 하지는 마. 나한테 진 빚도 꽤 돼니까 퉁 치는 걸로 해”
“...속 편해서 좋겠다.”
“와,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진짜 기분 별로다.”
에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다시 먹을 것에 집중한다. 시계의 긴 바늘이 벌써 두 바퀴를 돌았다. 가장 일찍 식당에 들어와서 가장 늦게 까지 나가고 있지 않으니 뻘쭘하기도 했다. 뭐, 주인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음식을 시켜주는 에반이 썩 싫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 음식값은 누가 다 지불하려고?”
“당연히 에리나지”
아, 내가 소리내어 말했구나. 그런데 뭐라고?
“너네들 때문에 아비츠 백작가에서 돈도 못 받았는데, 이정도는 사야 되지 않겠어?”
“그게 왜 우리 때문…”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소란을 일으키고 에반을 강제로 이동시킨건 우리니까. 하지만 완벽히 우리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애매 하다. 우린 오히려 에반을 살려주기 위해 텔레포트 시킨거니까!
“잘 먹을게 머슨”
“넌 뭘 고개를 끄덕여!"
라고 외쳤지만, 결국 음식값을 지불한 건 우리였다. 머슨의 무지막지하게 비싼 보석이 있기에 돈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숙소에 올라오자마자 에반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부른 배를 퉁퉁 두드리는며 늘어져 있는게 마치 꿀같은 방학을 맞이한 나의 모습과 흡사하다. 전혀 낯설지 않아.
“에반 좀 쉬고 있어.”
“어디 가게?”
보석도 하나 더 팔고, 머슨의 염색약도 새로 사기위해 시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시장에”
“짐꾼 필요 하면 같이 가줄까?”
“아니 괜찮아. 혹시나 체닌이 올 수 도 있으니까. 여기서 체닌을 기다려 줘.”
“알았어. 잘 다녀와”
에반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써버린다. 그리곤 손만 밖으로 빼내어 ‘안녕~’ 이라는 성의 없는 말과 함께 흔들어 보였다. 단잠에 취할 테니 어서 가라는 의미였다.
“문 열고 갈 테니까, 사람 기척 나면 바로바로 일어나야 돼 알겠지?”
“걱정 마”
그리고 들려오는 코골이. 야, 너무 빨리 잠든거 아니냐? 에반의 설렁설렁한 태도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문 앞에 서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머슨의 손을 잡고 다시 방안으로 데려왔다.
“안 가게?”
“아니, 나 혼자 갈게.”
“안 돼.”
뜨끔- 저번에 신전 쪽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머슨이 ‘안 돼’ 라고 이야기 하자 몸이 움찔거린다.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의 가슴팍에 손가락으로 괜히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면서 중얼 거렸다.
“에반을 봐. 체닌이 왔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지금 깨울게”
무섭게 소매를 걷어 올리는 머슨의 팔뚝을 겨우 잡아 세웠다. 힘이 얼마나 센지, 머슨이 멈춰 주지 않았더라면 몸이 질질 끌려갈 뻔 했다.
========== 작품 후기 ==========
*에리나는 혼자 다니면 사건을 만듭니다. 왜냐면 주인공이니까요
머슨 : 그래서 혼자 못보내
에리나 : 너랑 있는다고 해서 딱히 사건이 안 생기진...
*독자님 : 에이, 백작이랑 성녀 사이 아직 좋네요. 틀어졌으면 했는뎃!
작가 : 작은 의심의 불씨가 활활-
*독자님 : 에리나가 문을 여는 성녀 아니에요?ㅠ 이 소설 해피엔딩이져?!
작가 : 아쉽게도 에리나는 스탯0의 기본캐고 성녀는 현질 왕창한 고렙이였답니다.
작가는 해피엔딩을 못 보면 죽는 병이있어여
*독자님 : 일어났더니 두편이라니 클스마스인줄〉〈
작가 : 사실 오늘도 두 편 올리려 했는데, 분량이 너무 애매 해서 두 편 올리긴 그렇더라구엿 ㅠㅠ 쁍 ㅠㅠ
*독자님 : 악역들 자기가 한 짓 고대로 돌려받길~
작가 : 악역들 다 죗값 치르는 것 같은데 독작님 생각하시기에 한 명만 좀 덜 치르는 기분이 들 수도 있으실것 같아여
*독자님 : 아오 체닌 고집
작가 : (짧고 간결하지만, 이 안에 내포되어 있는 극도의 답답함을 작가는 몸소 느낄 수 있었따.) 체닌 머리채 잡으러 같이 가시져
*확인 못하고 올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