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편
<-- 12. 집들이가 원래 이런거였나요? -->
‘똑- 똑-’
구원처럼 노크소리가 들렸다.
“백작님, 성녀님께서 오셨습니다.”
다시금 우악스러운 손이 얼굴위로 내려앉으려 했을 때였다. 체닌은 얼굴을 감싸 쥐지 않아도 되었다.
“금방 간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네년은 얌전히 여기서 날 기다려야 할 거야. 내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짜악-
기어코 마지막 까지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야 백작은 방을 나섰다. 남겨진 체닌은 아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구원 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시종 하나가 체닌을 부축하려는데 체닌이 매몰차게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백작님이나 따라가. 나 혼자 일어 설 수 있어.”
시종은 동정을 거두고 체닌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눈물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 마저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끅-끅 목 안으로 집어 삼켰다. 몸도 아프고, 마음은 피가 터져 나오고, 정신은 잔뜩 망가졌다.
“...빌어먹을 돼지 새끼가…”
눈물을 닦아 내리는데 피가 섞여 나온다.
“입가가 아리다 했더니, 퉤.”
휘청- 몸을 일으켜 쇼파로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멈췄다. 아비츠 백작이 애지중지 하던 금고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 백작의 방에서 관계를 하는 날이면 관계 전, 백작이 집무를 마치고 금고 안에 서류들을 집어 넣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었다. 그때야, 백작의 마음만 얻으면 된다 생각 했으니 돈이 들어 있지도 않은 금고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은 왠지 그 어느 보석보다도 이 금고가 탐이 나고, 궁금하다.
열쇠로 굳게 잠긴 금고를 흔들어 보았지만, 열릴리 없었다. 그러나, 체닌은 확신이 들었다. 자신은 이 금고를 열 수 있을거라고. 가축보다 단순한 백작의 뇌로는 열쇠를 어려운 장소에 숨기지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일상처럼 물건을 쉽게 잊어버리는 그가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병신 새끼”
체닌은 단번에 열쇠를 찾아 들었다. 집무실 책장에 유독 혼자 툭 튀어나와있는 책을 빼들어 안을 살피니 열쇠 모양으로 종이가 깎여 그 안에 열쇠가 숨겨있었다.
달칵-
문이 열리자, 백작이 얼마나 자주 드려다 봤는지, 손때가 많이 탄 서류들이 즐비해있었다. 그중 가장 위에 있는 것 몇 개를 꺼내었다.
하나는 가계부 같았다. ‘같았다’ 라고 하는 건 가계부라고 치기엔 쓰여져 있는 품목이 단 한 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비싼 마구를 얼마나 사들인거야?”
몇 월 며칠 몇 개를 샀는지가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지럼증을 느끼고 체닌은 다음 종이를 펼쳐들었다.
-베넌 마을 사망자 수 124명. 필요 마구 42개. 수거 담당자 게르니아 폴헨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류는 체닌이 알 수 없는 말 투성이었다. 그러다, 눈이 휘둥그레 해질 만큼 아주 익숙한 지명이 보였다.
-세자인, 거주자 31명. 넓고 고른 평야와 수도와의 거리가 멀고, 외부인의 출입이 적어 마법사 양성소로 활용하기에 아주 적합
“...이게 무슨 소리야?”
금고 안을 더 뒤지자, 흑사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전부 죽어버렸던 곳이나, 내전으로 많은 희생양을 낳아야 했던 곳, 천재지변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곳 등등의 자료가 수없이 쌓여 있었다.
-테렌투스 재건 계획. 부패한 이념에 사로잡힌 현 황제 크리헬 베히단 테렌투스를 몰아내고 올바른 통치자가…
체닌은 터져나오는 비명에 자신의 입을 서둘러 막았다. 뭐, 뭘 본 거지? 끓어 넘치는 위험한 호기심으로 다시금 서류를 확인하려는데 이따금 멀리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펄쩍 뛰어 오를정도로 깜짝 놀란 체닌은 서둘러 금고 안에 서류를 쌓아 놓고 열쇠도 제 자리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아무일 없던 것처럼 쇼파에 앉아 창 밖의 먼 곳을 응시하는 척 했다. 머지 않아 방 문이 열렸다.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간다.
“아직도 있었나? 방으로 돌아가라”
기다리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체닌은 표정을 숨긴 채 고개를 숙였다. 문 밖으로 나서려는 찰나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 성녀였다.
“손님이 계셨네요”
손님이 아니라, 아비츠 백작가 사람이다. 체닌이 나가자 마자 문이 닫혔다. 체닌은 바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잠시 그 앞에 서서 문 앞에 귀를 바짝 세웠다. 카랑카랑한 성녀의 음성이 들린다.
“역시나 이야기가 잘 통하네요 아비츠 백작. 하지만, 말했듯이 절대 그가 다쳐선 안돼요. 작은 생채기 하나도 용납못해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소란은…”
점점 작아져 가는 소리에 문과 혼연일체가 될 듯 체닌은 문에 자신의 뺨을 짓눌렀다.
“마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꺄악!”
뒤에서 들리는 사병의 목소리에 체닌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백작님 께서 앞을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아, 알았어”
그리고 성녀의 목소리가 이어 들린다.
“쥐새끼가 있었군요.”
섬뜩- 그 어떤 위협적인 말보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체닌은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써야 했다.
*
햇살이 얼굴위로 따스하게 내리쬘 정도로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익숙한 머슨의 향기와, 푹신한 베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숨소리. 이를테면 최상의 잠자리 여건이었다. 머슨의 몸을 안으며 행복감에 젖어 베실 웃었다.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아 으음- 소리도 튀어 나온다.
“일어나라! 이 염장 커플아! 해가 중천이다 이것들아! 환자 좀 돌봐라!”
빠직- 간만의 포근한 휴일에 금이 가더니 와장창 깨어졌다. 머슨의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로 눈뜨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간만에 짜증을 부르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환자를 바닥에 재워 놓고, 잠이 와?”
“...시끄러워.”
결국 몸을 일으켜야 했다. 에반은 어느새 의자에 앉아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푸흡! 푸하하하! 에리나, 너 눈이 왜그래?”
“눈이 뭐”
에반이 주는 탁상 위의 손거울을 받아 들고 얼굴을 확인 했다. 아, 이거 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키웠던 붕어랑 완전 판박이다.
“이거 나 아닌 것 같은데”
“크하하! 앞은 보여?”
“음, 평소보다 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얼굴이 물에 불린 미역처럼 부어있었다. 아주 띵띵. 머슨이 몸을 이르켜 내 턱을 잡아 돌리더니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저 녀석에게 ‘붓기’라는 건 찾아 볼 수 없는 단어 같다. 오늘도 여전히 잘생겼네 친구.
“예뻐”
“뭐라고? 머슨, 아무리 콩깍지가 씌어도 그렇지 저 얼굴을 보라고.”
“예뻐, 에리나.”
“아니 미의 기준이 어떻게 된 거야. 잘 봐 보라니까”
“이것들아 그만해”
난 얼굴처럼 부어오른 주먹으로 에반의 등짝을 후렸다. 그러자 그가 맥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어? 나 그렇게 세게 때린 거 아닌데. 에반이 엎드린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으윽- 나 아직 환자거든?”
아 맞다.
“아침부터 나불 거리 길래 다 나은 줄 알았어.”
“뿐만 아니라 지금 아침도 아니거든?”
꼬르륵- 에반의 뱃속에서 공복의 허덕임이 들렸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ㅠ 인터넷은 이번주 금요일날 기사님 오시기로 했고, 컴퓨터는 아마 설 끝나고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네여 ㅠㅠ 친구 노트북으로 부랴부랴 작성중입니다. (+핫스팟)
너무 느려서 속터져 죽을 뻔 했네요. 주소창에 'w' 한 자 치는데 엄청난 인내를 발휘했습니다.
*독자님 : 새해 첫 작품 감상이 이거예용〉〈
작가 : 앗, 제 새해 첫 코멘트 확인이 독자님입니다! 〉〈헷 (통했다, 이거 운명맞져?)
*독자님 : 어후 연회장만 벗어났을 뿐인데 속이 후련!
작가 : 맞습니다. 연회장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구성단계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떤....
(크흡)
*독자님 : 헛 곧 완결이라니 ㅠㅠ 넘 섭섭해져여 작가님 한테 기들여졌어요!
작가 : (드, 드디어 효과가 보인다. 독자님을 나.으.것. 으로 만들기!) 찡긋
독자님 : (냉정) 내가 뭘 본거지?
*독자님 : 하루죙일 정주행 했어요〉〈!
작가 : 끄헝 감사합니다!!!
*독자님 : 오늘 오시죠? 그렇죠? (몽둥이)
작가 : 아, 잠시.. 진정 해주세요... 쨔잔.
*독자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작가 : 감사합니다!! 독자님들도 정유년 대박나시길〉〈!!!!
*에리나 - 의료인으로서의 자격 없음
에반 - 환자인데 환자 인것 같지 않음
머슨 - 별생각없음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청루화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