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편
<-- 11.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인가요?-2 -->
“뭘 저렇게 속닥 거리는 거야?”
연인처럼 머슨에게 딱 달라붙어 팔짱을 끼는 것도 썩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닌데, 한 술 더 떠 게르니아는 머슨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얘기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 소리를 듣고 알아 내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입모양으로 유추해 내기도 어려웠다. 머슨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게르니아가 이끄는 대로 걷고 있을 뿐이다.
“머슨 한테 손만 대봐. 아주 아작을 내줄테니까.”
게르니아가 도착한 곳은 맨 꼭대기층에서도 가장 구석진 방이었다. 여기 까지 올라오니 그 많던 사람들의 그림자 하나 보이질 않는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 속에 숨기라고, 몸을 감추기가 더 어려워졌다. 게르니아가 방 문 앞에 서서 또 무언가를 중얼 거린다.
문고리 잡아서 돌리면 되지, 무슨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조금 더 대담하게 행동했다. 아주 조금. 복도 끝에 몸을 걸쳐 고개만 빼꼼 내밀던 것에서 이제는 완전히 몸이 드러나게 말이다. 그때 ‘철컥’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앗, 깜짝이야! 놀라 다시 몸을 감추려는데 그때 머슨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주 태연하게.
그리곤 게르니아가 보이지 않도록 싱긋 웃어보이더니 문을 향해 턱짓을 해 보인다.
“들어오라고?”
입을 크게 벌려 얘기했으나 머슨은 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게르니아가 그의 손목을 잡고 방 안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다시금 ‘쿵-’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냉큼 문 앞으로 달려갔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
바짝 귀를 대고 엿들어 봤으나, 오래된 빈 집처럼 싸늘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여기 방음시설 최곤데?
넋 빠진 짧은 감상 후에 찾아 온 것은 불길한 상상이었다. 사람 고기들이 정육점에 진열된 돼지나 소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쾌쾌한 기름 냄새와 차가운 피향으로 어우러진 곳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머슨. 그리고 붉은 조명 아래에 잔혹하게 토막 내어져 있을 에반까지...
“안 돼!”
고민 할 것도 없이 발로 문을 뻥! 걷어 차버렸다. 게르니아와 다르게 아주 빠르고 손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돌진했다.
“머슨!”
머슨을 찾기도 전에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인육도, 붉은 조명도 아니었다. 바로 게르니아의 아주 큰 가슴이었다. 게르니아가 큰 소리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가슴이 출렁거린다. 단번에 내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언니 진짜 핫바디. 아니, 아니야. 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머슨을 찾았다. 웬걸 머슨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헐벗은 게르니아의 앞에 앉아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우리 머슨 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들고 있던 종이 뭉치와 펜을 게르니아에게 내던졌다. 꺄악- 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고, 종이 속에서 허우적 대는 틈을 타 머슨의 손을 마주 잡았다.
“괜찮아?”
“에리나가 와서 괜찮아 진 것 같아.”
“다행이야.”
“그런데 에리나.”
“응?”
머슨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에 내 옆으로 날카로운 펜 하나가 아슬아슬 하게 스쳐 지나갔다.
“여긴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어떻게 들어오긴 문 열고 들어왔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결계 마법을 쳐뒀는데, 어떻게 문을 연 거냐고!”
아 그런거였어? 나는 원래가 버프 하나 받지 못한 끔살 마을주민1 역할이었기 때문에 마력같은 건 죽쒀 먹을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는가? 머슨을 힐끗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자식, 잘했다.
그러나 머슨을 칭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 게르니아의 주위로 주변의 잡다한 것들이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던진 종이부터 깨어진 유리조각, 정체불명의 천조각 등등. 누가 쓰는 방인지 정리정돈을 다시 배우는걸 추천하고 싶다.
“에리나 홀든. 네 년한테 볼 일은 없어. 여자의 피는 취미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그냥 넌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어.”
아, 잠깐만!
말이 끝나자 마자 게르니아가 나를 향해 검지를 쭉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잡다한 물건들이 일제히 내 앞으로 날아 들어 왔다. 놀라, 내옆에 착 붙어 앉아 있는 머슨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등을 돌렸지만, 내 행동이 뻘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자극도 없다. 꽉 껴안고 있던 머슨을 풀어주고 그를 내려다 보니 그의 적안에 광채가 서렸다.
세로로 가늘어진 동공과 피를 응축시켜 놓은 듯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분명 마왕의 것이었다.
“어, 어떻게?!”
당황을 그대로 드러내며 게르니아가 잠시 주춤했다. 이유인 즉슨 나를 향해 날아오던 것들이 내 앞에서 두둥실 떠있을 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방향을 틀더니 역으로 게르니아를 향해 엄청난 기세로 날아 들어갔다.
“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맹렬히 돌진하여 게르니아의 온 몸에 정확히 부딪혔다. 하늘 거리는 천이라 할지라도 생채기를 남기며 피를 흘리게 하였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아프도록 살에 파고들어 끔찍한 비명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에, 에리나...”
머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덜 성숙한…. 내가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자 머슨이 내 등을 쿡쿡 찌른다.
“여기야.”
“에반?!”
쇼파 바로 앞에 시체처럼 뻗어있었다! 내 발에 밟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에, 난 황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마터면 뺨에 구두자국 남길 뻔 했다.
“에리나, 그리고 저기”
에반을 부축해 주고 있는데 다시금 머슨이 불러온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머슨이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보니…
“체닌?!”
만남의 광장이야 뭐야?! 침대 끄트머리에 이불을 꽁꽁 싸매고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체닌이 보였다. 겁에 질린 건지, 분노에 찬 건지 문득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치아가 썩 유쾌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머슨, 에반을 좀.”
“응”
체닌에게 다가가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붙들고 있는 이불을 걷어냈다.
“꺅, 뭐하는 거야?!”
“아, 미안.”
알몸일 줄은 몰랐다, 진짜. 난 다시 체닌의 등에 이불을 덮어주고 그녀의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돌아가자, 세자인으로.”
“미친년. 너 어떻게 살아있어?”
이건 또 무슨 봉창 뚜드리는 소리야? 내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자 체닌이 이를 바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나 암 말기라고 소문 내디?”
“널, 죽일거라고. 반드시 죽인다고 했는데!”
“누가?”
체닌이 눈알이 펑- 하고 터질 듯 잔뜩 힘을 주어 이야기 했다. 적의가 가득했다.
“테론 아비츠! 그 빌어먹을 새끼가 거짓말을 했어?! 분명히 고위 마법사들이 널 죽이려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는데!”
테론 아비츠?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닌데...
아, 그래 맞아. 저번에 레이넌, 피에르라 했던 마족들이 내 정보를 알려 줬다던 수상쩍은 인물. 그 정보의 제공자가 바로 너였구나? 예쁘게 봐 주려 해도 절대 그럴 수 없게 만드네 거 참.
그때 겪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떠올라 체닌의 머리채를 한번 휘어잡을까 생각하다가 초인적인 인내로 겨우 충동을 눌러내렸다. 그렇게 애타게 체닌을 찾았는데 괜히 예상 밖의 트러블로 계획이 무산되면 안 된다. 절대로.
“그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고 우선 내 말 먼저 들어봐 체닌.”
“내 이름을 감히 함부로 불러?”
“지금 쓸데없는 말장난 할 시간 없어.”
“말장난 아냐!”
체닌과 옥신 각신하고 있는 사이에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게르니아가 피를 흘려가며 문 밖으로 달아난 것이다. 머슨이 재빨리 제지했지만 그녀의 터져나오는 고함은 미처 막을 수 없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있다!”
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귀가 아려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크게 외친 게르니아는 더 이상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와장창-!’
머슨으로 인해 복도에 나있는 수많은 창 중 하나를 뚫고 밖으로 내던져 졌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우...머슨. 뜻을 알겠지만 좋지 않은 방법이었어.”
“죽을까봐?”
“아니,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더 임펙트 있거든.”
========== 작품 후기 ==========
*게르니아한테 이끌려(?) 방으로 들어온 머슨.
체닌 : 허어억?! 저 잘생긴 남의새끼가 여기에 어떻게??(덜덜덜덜덜)
에반 : 허어억?! 너마저 여기에 끌려오다니 불쌍한 쓰애퀴ㅠㅠㅠㅠ
머슨 : (에리나 보고싶다.)
*독자님 : 에리나가 미행하는걸 머슨이 눈치챌 것 같아욧!
작가 : 역시 코난 독자님(소름)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독자님 : 머슨이 게르니아한테 끌려가도 걱정이 1도 안됩니다.
작가 : ㅇㄱㄹㅇ ㅂㅂㅂㄱ
*독자님 : 에반 괜찮을까여??ㅠㅠ 죽었을까여??ㅠㅠ
작가 : 피로해보이지만 사지멀쩡히 살아있습니다 헤헷
*독자님 : 작가님 ㅠㅠ 넘나리 보고싶어서 꿈에서 선호작 연재란에 다음회차 뜨는 것 까지 봤어여ㅠㅠ
작가 : 크흡. 독자님 코멘트 물빨핥
*독자님 : 게르니아 ㅂ2ㅂ2 너 ㅈ됨
작가 : (그녀는 넘나 쫄몹이여따.)
게르니아 : (크헬헬!!! 머슨, 니 귓가에 속삭여 주겠어. 매혹의 마법을)
머슨 : (에리나 보고싶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세상에!! 벌써 2016년의 마지막 날이네요! 저에게 있어 2016년은 너무 힘든 해였어요 ㅠㅠ 아마 독자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더라면 최악의 해로 평생 기억했을 겁니다. 코멘트 보면서 항상 기운내고있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읽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