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71화 (71/170)

71편

<-- 11.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인가요?-2 -->

체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쥐뿔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남자의 말에 욕 한마디 내뱉을 수 없었다.

‘아니야. 난 그런 대접을 받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오히려 창녀보다 못한 취급에 매일 밤 몸서리 치면서 아등바등 이 백작가 가문에 이름 한번 새겨 넣고자 발악하는 중이라고’

입 밖으로 소리치지 못한 채 가슴으로 울부짖었다. 마냥 좋게만 생각하는 저 남자에게 사실을 이야기 했다간 체닌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웬일인지. 정말 꿈 속에서라도 한 번 나오지 않았던 세자인의 마을 사람들이 일순 머릿속을 스쳤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것, 예쁜 것, 맛있는 것은 오로지 체닌의 몫으로 남겨 두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허나 보석이나 드레스도 아니고 고풍스러운 장식품들 또한 아닌 그저그런 감자, 탐스러운 과일, 값싼 원단의 원피스가 전부였지만.

세자인에서도 백작가에서도 체닌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는 것은 일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노에 찬 눈물은 오로지 백작가에서만 그녀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이 더 인간다운 삶인가? 불현 듯 떠오르는 의문에 체닌은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아냐.’

시골 촌뜨기로 일생을 보내는 건, 의미 없이 밭을 가는 소와 다름 없는 인생이고, 지금의 자신은 불안정한 상태인 관절이 틀어진 인형 같은 모습이다. 체닌이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백작 부인으로서 인정받고 수많은 사람들을 발아래에 두는 것. 부러움 그리고 존경의 시선을 받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품위로 뭇 사람들의 기를 누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체닌이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이었다.

체닌은 남자의 뺨을 내려치려던 손을 다시 들어 이번엔 온기있는 손길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남자가 곁눈 질로 뺨에 얹어진 손을 바라볼 때 체닌의 말 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 서민은 안 돼. 우매하거든. 저딴 년한테 몸을 대주는 것부터가 그래.”

갑작스레 들려온 욕에 남자가 한동안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무엇이? 체닌은 이 상황이 우스웠다. 알지도 못하고 반사적으로 무조건 사과하는 꼴이라니. 이런 모습을 보고도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축이 따로 없다.

“네 놈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딱 거기까지 이지.”

“그냥 그렇게 말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남자의 손이 다가온다. 체닌이 놀라 손등을 쳐내는데 겁먹지 않고 다시금 얼굴께로 닿았다. 거칠거칠 한 감촉의 엄지가 광대를 훑고 지나갔다.

“아까부터 계속, 울고 계시잖아요.”

아-. 그 말이 자극제라도 된 듯 체닌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인상하나 찌푸리지 않고 얼떨떨한 모습이었으나, 가랑비가 내리듯 얼굴을 젖게 만드는 데엔 충분했다. 오히려 당황한 건 체닌이었다. 남자를 밀어내곤 작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부비자 눈 밑이 금방 빨갛게 달아오른다.

남자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연회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게 많이 힘드셨군요.”

‘아니야.’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모두가 부인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아니야.’

“드레스를 입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체닌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질끈 감고 힘주어 말했다.

“너, 도망쳐.”

“네?”

“아까도 얘기 했잖아. 저 년한테서 도망치라고. 당장 이 저택을 나가!”

‘그래서 마지막 날에도 내가 연회에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는 걸 영원히 모르는 채 살아. 지금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체닌이 소리치자 남자가 주위를 둘러본다. 시간의 흐름을 잊어 밖의 상황을 알고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창문이 모두 막혀있어 알 수 있는 도리가 없다. 남자는 가볍게 목례 한 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역시 열리지 않는다. 이때 쇼파에서부터 불긴한 뒤척임 소리가 들리더니 마력에 의해 남자의 몸이 쇼파로 끌어당겨 졌다.

“하음-. 어딜 가? 내 도움 없인 한 발자국도 못나가. 게다가 우리의 밤은 길다고.”

게르니아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체닌은 혀를 끌 차며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끊임 없는 신음 소리를 밤새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남자는 또 끌려왔고 어제와 같이 게르니아의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이 지금 상태이다.

한 참의 정사 후에 게르니아는 평소처럼 지쳐 잠이 들었고, 남자는 실신 직전인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내가 어제 도망가랬잖아. 에반.”

눈이 체닌을 향한다. 어떻게 이름을 안 것이냐는 뜻이었다.

“게르니아가 헐떡 대면서 그렇게 불러대는데, 모를 리가.”

“...”

남자는 대꾸 할 힘도 없어보였다.

“너, 오늘은 죽으려고 온 거지? 내일 다른 남자가 오기로 했으니까 말이야. 뭐, 나야 상관 없는 일이지만.”

‘내일 연회에 참석만 하지 마. 그게 죽어서든 살아서든.’

에반이 고개를 저어 보인다.

“그런데 여긴 왜 또 기어들어 와? 도망가라고 했잖아.”

“...정신을...차려보니... 저도 모르게…”

“그럴 수도. 알다시피 쟤 마법을 쓰거든. 그나저나 안타깝네. 넌 피가 빨려 죽을 거야. 내 눈앞에서 남자를 죽이진 않았지만, 네 놈이 오늘 죽을 거라는 건 확실하지.”

“...”

“연회의 마지막 날을 보지 못한 채 말이야.”

*

〈아비츠 백작가 주최 연회 3일째〉

“키스 해도 돼?”

“몇 대 맞을래?”

마지막 날 이라 그런지 아비츠 백작가의 그 넓은 중앙 홀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첫 날 보았던 성녀와 황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로라하는 귀족들은 전부 얼굴을 비춘 듯 싶었다. 다른 고용인들이 “히익! 저 분도 오셨다니?!” 하는 대화 내용을 심심치 않게 들었기 때문에 대충 예상 할 수 있었다.

난 양파 작업을 어느정도 마무리 한 후 본격적으로 체닌 그리고 에반 찾기에 돌입했다. 게르니아의 모습은 보였으나 에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머슨은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찾으라는 체닌과 에반은 안 찾고 아까부터 헛소리만 삑삑 해대고 있었다.

“오늘 한 번도 키스 안 해줬어.”

“앞으로 일주일 간 없어.”

“뭐?! 에리나,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으아악- 왜이렇게 소리를 질러대?! 나는 놀라 머슨의 입을 막으려 손을 뻗었지만 휙- 피한 그가 내 어깨를 붙잡는다.

“날 죽이려는 거야?”

“스읍- 누구 마음대로 어깨에 손 얹으래? 안 때? 그리고, 지금 너 때문에 이목 집중 됐잖아!”

그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홀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머슨의 발소리가 들리자 일부러 걷는 것을 멈추고 그의 발등을 콰악- 밟아버렸다.

“머슨, 자꾸 말 안 듣지, 너, 응?”

“잘 들을게. 그러니까 키스…”

“체닌을 찾기 전 까진 꿈도 꾸지 마.”

단호하게 이야기 하자 그의 얼굴에 먹구름이 낀다. 동시에 열의가 피어오른다. 야, 너 너무 단순한거 아니냐?

“머슨, 오늘이 마지막이야. 빨리 체닌을 찾아서 세자인으로 돌려보내자고.”

“보내? 우리는 같이 안가?”

어라, 나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은연중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바로 본래의 내 세계로 돌아가는 일. 때문에 세자인이 다시 옛날의 안정을 되찾으면 난 성녀에게 가 본격적으로 내 일에 대해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고자 했다. 더불어 내가 떠난 머슨 곁의 빈자리를 지켜줄 것도. 하지만 이것들은 오로지 나 혼자만 생각하고 있던 플랜이었기에 내 말에 머슨이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아, 당연히 우리도 가지.”

모르겠다. 대충 얼버무리자. 머슨의 한 쪽 눈썹이 움찔 거렸지만 애써 못 본 척 하였다.

“이봐, 거기 고용인 둘! 지금 일 바쁜거 안보여?! 놀고 있을 틈이 어딨어?!”

나이스, 이름 모를 아저씨! 화제전환이 필요했던 지라 나는 냉큼 그 아저씨 앞으로 달려 갔다.

“시키실 일이라도?”

“지금 방명록 적는 곳에 펜 하고 종이가 떨어진 것 같으니 보충해 놔.”

“넵”

다행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힘들지도 않는 일인데 머슨까지 데리고 가기엔 눈치가 보여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역시나 머슨이 떼를 쓰고 달라 붙는다.

“같이 가.”

“두 사람 다 가면, 농땡이 피운다고 수상하게 지켜보는 눈이 많을 거야.”

“종이를 엄청 많이 들고 오자 그럼.”

“일 못한다고 감시당할 걸?”

“...에리나 옆에 있고 싶어.”

으으, 또 시작 된다. 마음을 녹이는 저 애처로운 눈빛! 아주 조금만 바라보고 있어도 금세 마음이 말랑말랑 해져 머슨이 원하는데로 말을 하게 된다. 아 위험해. 난 머슨의 뺨을 밀어 시선을 떼어내는 것으로 머슨의 눈에서 탈출했다.

“금방 다녀 올게, 홀에 있어. 종이랑 펜 만 가져오면 되는 거니까.”

“...”

“기다릴 수 있지?”

끄덕-

“좋아.”

머슨의 옷깃을 잡아 끌어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가 허리를 숙인 상태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내 입꼬리가 올라가있다.

“빨리 다녀 와.”

“응”

먼 길 가는 것도 아닌데, 어찌보면 참 유난이다. 난 피식 웃으며 서둘러 종이와 펜이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우습게도 모나미 볼펜 정도를 생각했건만 고급스러운 펜 깃과 잉크 그리고 금박에 휘황찬란한 문장이 박힌 종이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와, 이런거 관리도 안하고 막 집어넣어 놓는거야?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은 집안이야. 참.

품 안에 가득 그것을 집어 들고 홀로 돌아왔다. 그러나 난 이 종이와 펜들을 입구에 배치해 놓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 그것들을 떨어뜨릴 뻔 한 것을 겨우 팔에 힘을 주어 붙잡았다.

“머슨...”

게르니아가 머슨을 데리고 홀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식인- 식인- 식인- 이 두 글자가 맴돌았다.

“맙소사.”

이번엔 놓칠 수 없어! 난 몸을 숨겨가며 머슨과 게르니아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특명, 에리나! 머슨을 구하라!

*독자님 : 체닌 ㅆㄴ일텐데 어쩐지 짠내나는 기분ㅠ

작가 : 어찌보면 불쌍한 인생이죠8ㅅ8... 그러나 ㅆㄴ은 ㅆㄴ이죠 ㅋ_ㅋ

*독자님 : 우리 성난 머슨의 폭풍질투떽스는 언제 나올까요?

작가 : 크... (작가도 무척이나 쓰고싶다.)아직 좀 멀었습니다 ㅠㅠㅠ! 거의 막바지...

*독자님 : 게르니아 뭐하는 인간이죠? 아 설마 하급악마는 아니죠?

작가 : 악마라면 마왕을 단번에 알아보고 알아서 기었을겁니당. 게르니아는... 피, 마법...

*독자님 : 체닌 집에 돌아가면 사랑받고 살텐데 ㅠㅠㅠ 욕심을 버렸으면

작가 : 제 말이 그겁니다 (열불이난다) (작가가 쓰고 있찌만 작가가 답답한 상황)

*독자님 : 성녀가 여기저기 몸 섞고 다녔을 삘이?!

작가 : 성녀가 나름 가리는거 많고 까다로운 지라, 남주급 세명 외엔 스킨쉽 하는 걸 싫어합니다.

*독자님 : 제 사랑을 받으세요!!

작가 : (넘치는 사랑에 허우적) 아, 저 수영못하는데 이렇게 코, 입이 잠길때 까지 주시면...꼬르륵.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루엔베스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