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편
<-- 11.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인가요?-2 -->
체닌은 치욕스러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동정심 따위 욕심에 눈이 먼 아비츠 백작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았지만, 소리 내어 한 번 짖어 볼만한 힘 같은 건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체닌 스스로가 그렇게 경멸해 마지 않던 시골 소녀가 되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 뿐이었다.
“백작님, 백작님 저한테 이러시지 마세요. 백작부인으로써 사교계에 데뷔 시켜 주겠다 약속하셨잖아요. 제가 백작님을 얼마나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지 가장 잘 아시잖아요. 이런 저를 연회 내내 위스키 한잔 마셔볼 기회도 없이 방 안에 가둬 놓겠다구요? 부탁 이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될지도 모르는 연회에 제외시키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무수히 많은 말을 질서 없이 쏟아내고, 시야는 눈물로 뿌옇게 변하여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에 성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게 됐다. 그 순간 머리가 띵- 하게 울리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말들이 입안으로 다시 말려들어갔다. 고개가 돌아가고 뺨이 화끈- 아파온다.
“아비츠 백작님, 제 앞에서 폭력은 안 돼요.”
“죄송합니다. 성녀님 앞에서 분수도 모르고 떠들길래 잠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판단해서…”
체닌은 달아오른 자신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아프다. 그 어떤 쇠붙이 보다 날카로운 것으로 할퀴어진 것처럼 마음속에서 차가운 피가 넘쳐나고 있었다. 이때, 따뜻한 손길이 체닌의 뺨 위에 얹어진 손을 덮었다. 눈물 사이로 여신처럼 금빛 가루를 뿜어내는 형상의 성녀가 체닌을 위로 했다.
“...성녀님, 제발.”
“저런, 괜찮아요.”
“연회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체닌 보다 약간 키가 큰 성녀가 체닌과 눈을 마주 치며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저, 정말 참석하게 해 주시는 건가요?! 먹고 싶은 사탕을 쥔 순진한 소녀처럼 입이 벌어졌다. 설렘으로 가슴이 뛰고 빠져 나갔던 수분이 이 고갯짓 한 번에 풍성해진 기분이다.
“걱정마요. 위스키는 부족하지 않도록 방 안에 넣어줄 테니까.”
“...”
자애로운 미소를 하고서 얘기했지만, 체닌의 눈에는 그것이 어떠한 악마보다 사악하게 보였다. 희망인줄 알고 잠시 들떠있던 기분이 순식간에 지옥 너머의 깊숙한 심연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비틀-
“어머, 저런.”
그 누구도 체닌을 붙잡아 주지 않아, 그대로 복도에 주저 앉아버렸다.
“아비츠 백작님, 연회 내용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네요.”
“어느 부분을 말입니까?”
“아비츠가 저택을 전부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백작 부부의 방을 제외한 모든 방들을 개방한다구요. 그리고 그 두 방중 하나에 체닌양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세요. 아무도 들어 올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구요. 물론 안에서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감시는 게르니아 시종장을 붙여 놓겠습니다.”
“그녀라면 안심이네요.”
체닌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성녀의 명만으로 방 안에 꼼짝 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나름의 배려 인건지 아니면 입막음을 하기 위해 개한테 맛 좋은 사료를 먹이는 건지, 방 안에는 산해진미가 시녀들을 통해서 끊임 없이 들어 왔고 위스키 또한 체닌이 마시다 지쳐 토를 쏟을 때 까지 가져다 주었다. 음식이 배달 되는 사이 잠시 열리는 문에 미친 듯이 달려 들었지만 그것 또한 게르니아로 인해 가볍게 저지되었다.
“이거 놔!”
“마님, 품위를 지키세요.”
게르니아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체닌의 사지를 침대 위에 억압했다.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자였다.
“마님? 웃기는 소리 하네. 니가 날 윗사람 취급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이 저택의 모든 사람이 알아!”
“그렇다고 제가 ‘얌전히 있어, 이 촌년아’ 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체닌의 욕설과 함께 악소리가 뒤따랐지만 게르니아는 시녀들을 시켜 묵묵히 음식을 나를 뿐이었다.
연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 날부터 시작하여 이튿날인 오늘 까지 총 삼일 동안 이 방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체닌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그녀는 히스테릭 하게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파손하며 모두가 연회로 즐거워 할 때 절망에 차 울음을 터뜨렸다.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도구로써 체닌의 시녀는 갖은 수모를 겪고 있었다.
“네 년이 아비츠 백작한테 속살거렸지? 날 여기에 가두라고! 왜냐면 나 따위가 백작 부인이랍시고 지랄맞게 구니까!”
시녀의 배위에 올라타 있던 체닌이 바닥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유리조각을 하나 들어 높이 들어올렸다. 그 날카로운 끝을 확인한 시녀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꼭 감았다. 그때 체닌의 몸이 고꾸라지며 침대 위로 엎어졌다.
“마님, 꼴사납네요.”
게르니아가 온 것이다.
“음식이라면 빌어먹게도 차고 넘쳐, 왜 온거야?!”
쿵-
문이 닫히자 체닌의 몸이 자유로워졌다. 쥐고 있던 유리조각을 던져 버리고 침대에 걸터 앉아 게르니아를 노려봤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하, 저 녀석, 또 데리고 왔네?”
갈색머리에 주근깨가 드리운 남자. 아니 소년? 뭐 아무래도 좋다. 불쌍하게도 게르니아의 마수에 걸려들어 곧 죽을 녀석이니.
“별 일이야. 이틀 내내 같은 남자라니. 늙은 시종장 한테 몸 대줄 남자가 이제 떨어졌나봐?”
“하고 싶으면 얘기하세요. 남자는 많으니까. 하지만 이 아인 안돼요. 마음에 들거든요.”
“네 년이 전에 말했던, 보고 만 있어도 오르가즘을 느낄 것 같다는 남자는?”
“내일 보게 될 거예요. 가장 맛있는 건 원래 마지막에 먹는 법이죠.”
게르니아가 남자를 쇼파로 이끌었다. 머지 않아 질척한 소리와 함께 게르니아의 듣기싫은 신음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체닌은 감흥 없는 눈으로 게르니아의 밑에 깔려 페니스를 기부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넌 피가 빨려 죽게 될 거야.”
“핫, 앙, 앙! 흐으, 좋아!. 이상한 읏, 소리 하지 말고, 하악, 가시죠?”
게르니아의 남성편력은 저택 내에서는 아주 유명했다. 그녀의 방에는 밤마다 새로운 남자들이 드나들었으며 많게는 다섯명을 한 번에 상대하기도 했다. 아비츠 백작도 게르니아의 은밀한 취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별 다른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게르니아와 몸을 섞은 남자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하나 같이 온 몸에 피가 빨려 송장으로 발견 된 다는 것이다. 발견 되는 장소는 일정하지 않았다. 하천에 떠밀려 오거나 누구네 집 굴뚝 이거나, 밭의 한 가운데 거나… 어느 곳도 연관 지어 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체닌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전부 게르니아와 몸을 섞은 자들이라는 것을.
체닌에게는 숨길 가치도 없는지 대놓고 남자를 데리고 들어와 문단속을 부탁한 다며 뻔뻔한 요구 까지 해오기도 했다.
연회가 시작된 오늘 같은 날은 마땅히 섹스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으니 체닌이 감금된 방으로 남자를 데려 오는 것이었다. 잘생긴 고용인들을 몇 명 추린 다음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데리고 들어 왔다. 첫 날엔 무려 네 명의 고용인이 그녀와 몸을 섞더니 저 남자 아이는 첫날에 이어서 오늘 까지도 게르니아의 밑에 깔려 있다.
"흐음"
첫 날 연회가 끝나고 새벽 늦은 시각 까지 이어진 섹스로 게르니아는 지쳐 잠이 들고 그 사이에 남자 아이가 옷을 주워 입고 있었다. 체닌이 은근하게 다가가 게르니아에 대해 귀띔해 주었다.
“너, 도망쳐. 저 마녀는 네 몸의 피를 한 방울도 남겨 두지 않을 테니까.”
“...”
남자를 돕고자 알려준 것이 아니었다. 단지, 게르니아를 한 번 엿 먹이기 위해서 그런 것일 뿐. 그녀가 무슨 손을 쓰기 전에 달아나 버리면 아마 머리 끝까지 화가 솟구치겠지. 주름 살이나 팍팍 늘어라.
남자는 잔뜩 피로해 보이는 모습으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듯 싶었다.
“병신.”
체닌이 얘기하자 남자의 생기없고 몽롱한 눈이 다가왔다.
“...처음 뵙는데?”
초면에 욕하는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는게 아니었다. 아비츠 가의 사람인 것 같은데 연회 내내 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었다. 체닌이 바로 알아 듣고 다시금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길이 일렀다.
“네 놈 따위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난 백작 부인이야. 알아 들어?!”
빽 소리친 체닌과 다르게 이미 반쯤 혼이 나가 있는 에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왜 연회에 참석 하지 않으세요?”
“그 입 닥쳐”
“귀찮으신가요?”
“함부로 지껄이지 말란 말이야!”
결국 체닌은 남자의 뺨을 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머지않아 짝- 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체닌의 손바닥은 남자의 뺨에 닿지도 않았다.
맥 없이 박수를 쳐 보인 남자가 알겠다는 듯 멋대로 또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네요. 원래 가장 멋진 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거잖아요.”
“...뭐?”
“사람들이 기다리겠어요. 백작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
“그렇담 백작 부인께서 등장 하시는 연회의 마지막 날이 하이라이트 겠네요.”
========== 작품 후기 ==========
*불쌍한 샤앙년 체닌
*독자님 : 머슨이 에리나 놀리려고 저러는 거져?(복도씬!)
작가 : 정확히 보셨습니다ㅋ_ㅋ 알고 보면 머슨은 피곤한 스타일
에리나 : 아 현기증나
*독자님 : 머슨 올해의 남우주연상 드립니다.
머슨 : 영광.
에리나 : 나는?!
작가 : 올해의 호구상 ㅇㅈ
*독자님 : 어우 머슨 이 상남자
작가 : (독자님 취향이 상남자라면 제가 상작가가 되보겠습니다.)
에리나 : ? 웬개솔?
작가 : 외않되?
독자님 : (심기불편)ㅡㅡ
*독자님 : 불쌍한 머슴머슨... 마님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줄지 궁금합니다ㅜㅜ!ㅋ
머슨 : 음... (외모가 다했다. 외모가 다 할 것이다.)
작가 : 너 되게 속 편해 보인다?
*독자님 : 마법의 힘인가요? 스프 냄새가 아닐텐데영?ㅋㅋㅋ
작가 : 뭐 그 귀퉁이 커플 남자도 한번 싸고 왔으니 ㅎㅎ 자기 냄새인줄 착각했다고 하는 후문이 ㅎㅎ
귀퉁이 여자 : 조루는 딱 질색이야.
*독자님 : 이번 업뎃 적응이 잘 되지 않네여 ㅠ 아, 작가님 업뎃 말고요!
작가 : 엇?... 지금 제가 오해 하실까봐 친절히도 다시 댓을 남겨주신건가요? (금사빠) 지금 청혼하신거 맞죠?
*독자님 : 에리나 다음 번엔 머슨의 계략을 견뎌봐!
작가 : 곧 에리나에겐 엄청난 시련이...
에리나 : (흠칫?!)
*독자님 : 작가님~ 원고료 쿠폰 투척이요!
작가 : 제 사랑 투척합니다! 집에 있는 모든 주머니 다 벌리세요! 양말도요! (와다다다다다다다)
*독자님 : 시녀 눈물 8ㅅ8...부쨔해 ㅠㅠ 미끼는 뭐죠?!
작가 : 시, 시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님이 등장하셔따!
시녀 : (감동 ㅠ) 월급 올려줘 개객기드라 ㅠ
작가 : 미끼는 체닌이 세자인 땅을 얻기위한 볼모가 된 것입네닷!
*아... 글이 또 길어집니다. 완결 90~100화 예상했는데 조금 넘을 것 같네용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Rachel04님 감사합니다〉〈
*체닌, 이제 좀 욕심을 버려라.
체닌 : 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