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편
<-- 11.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인가요?-2 -->
좋기는. 헤실 웃는 머슨이 귀여워 그의 뒷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내일은 체닌을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루를 마무리하는 침대 위에서의 대화는 어두컴컴한 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정신이 몽롱해지고 내 호흡소리가 자장가처럼 아늑하게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푹신한 베개를 찾아 머리를 움직이니 ‘탓’ 소리와 함께 방이 어두워지고 짓궂은 전등 빛에서부터 벗어난 눈은 편안해졌다.
지난날들의 피로를 해소하기엔 짧은 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달콤했다. 꿈도 꾸지 않은 채로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는 것이 배는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으으, 더 자고 싶어.”
라고 했지만, 어느새 아비츠가 저택 앞이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검게 드리우고 있을 것이라는 건 굳이 보지않아도 아주 잘 알겠다. 반면에 머슨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쌩쌩해 보였다. 컴퓨터 그래픽을 입혀 놓은 듯 광이 나는 흰 피부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해 보였고, 붉은 입술 사이로 하품 한 번 나오지 않는다.
“마왕이라 그런가…”
하긴, 정기가 부족 할 때를 빼고는 한 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던 앤데,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뭐.
비단, 얼굴에 누리 튀튀한 피로감이 잔뜩 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머슨을 제외한 고용인 들 전부의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인데 체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에반이 안 보인다?”
“아까부터 살펴봤는데 없어.”
평소 같으면 방정맞게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을 에반이었지만, 오늘은 웬일로 잠잠하다.
“설마, 이 놈 안 온 거 아냐?”
경력자 운운하던 위용은 어디가고 고작 하루 했다고 일을 쉬어? 생초짜인 우리도 이렇게 허리 짚어 가면서 나왔는데!
어제 일이 고되어 늦잠 잔 거라 생각하려 했지만, 저택 본관의 문이 열리고 고용인들이 일제히 들어가는 그 순간 까지도 에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양파창고로 가니 한가득 쌓여있는 양파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어이, 안녕? 지난 밤 사이에 내가 보고 싶진 않았니? 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꿈에서 까지 이 지긋지긋한 양파를 볼까 몸서리 쳤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더 끔찍하다.
“에리나 오늘도 기운 내서 시작해 보자고!”
“네.”
그릭 아저씨는 남 몰래 보양식이라도 먹는지 팔팔한 모습이었다. 양파를 거의 다 옮길 즈음에 연회가 시작되었고, 난 다시 창고에 틀어박혀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드문 드문 시간이 남을 때 마다 저택을 쏘다니며 체닌을 찾았으나 역시나 보이질 않는다. 마음 같아선 세자인 사람들이 한 사람씩 전부 차지해도 남을 정도인 방의 문을 덜컥 열어 안을 살피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한 것이 찜찜하다.
홀 주변을 서성이다가 다시 양파창고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익숙한 뒷 모습이 보였다.
“에반!”
어라? 못 들었는지, 한 번 쳐다 보지도 않는다. 꽤 크게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증거로 에반 보다 앞에 있는 한 레이디가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 내리잖아.
난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뛰어가 그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뭐야, 왜 부르는데 대답을 안해?”
“아,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어서.”
말하는 에반의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하루 사이에 볼이 움푹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나처럼 피로가 쌓인 건지 두 눈이 붉게 충열되어 있었다. 몰래 꿀자리에 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나 보네.
“오늘 지각 한 거 아냐? 안 혼났어?”
“...응.”
“힘들긴 엄청 힘들었나보다. 하루 사이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됐네.”
문득 측은해 보여 이마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겨주려 손을 들어 올리는 사이, 누군가 에반의 이름을 불러왔다.
“에반 프리차일드!”
고함은 아니었으나, 날카롭게 실린 말은 귀안에 따끔하도록 파고들었다.
“게, 게르니아 시종장님.”
에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히 변해갔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몸이 잔뜩 경직 되고 겁먹은 모습이었다.
난 황급히 손을 거두고 게르니아를 향해 인사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녀의 눈이 정수리위로 뜨겁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 뭐 잘못했나?
“이름이 뭐지?”
주어가 생략 되어 누구에게 말 하는 것인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에반의 이름을 안 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 서둘러 이름을 말했다.
“에리나 홀든입니다.”
“아, 기억 나. 잘생긴 남편을 둔… 맞지?”
“...네 그렇죠 뭐.”
나로써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잘생긴 남자의 부인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성녀님이 친히 얼굴을 보러 간 아이 로군”
“네?‘
“성녀님을 어제 뵈지 못했나? 양파창고에서 네가 일하는 것을 알려드렸는데 말이지.”
“아, 아뇨 뵀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어제 성녀가 길을 잃어서 양파창고에 들린게 아니라 일부러 날 보기 위함이었다고? 그런데 왜 말 한마디도 없이 머슨만 쏙 빼서 돌아가 버리는 건데?
“그런데 성녀님은 왜 저를 찾으셨을까요?”
“신도의 안색이 안 좋으니 걱정이 되신 게 당연하잖아?. 워낙 자애로우신 분이니.”
...전 신도 아닌데요? 무교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무슨 몰매를 맞을까 싶어 그냥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그런데, 에리나 홀든. 네 담당은 양파창고 일텐데 왜 홀 근처에 있는 거지?”
히익! 망했다. 어... 그 그게! 화장실을 찾았다고 할까? 아니야! 창고 바로 옆이 화장실인데 뭘!, 그렇다면 배가 고파서 뭐 좀 먹을 수 있는게 있나 하고… 아니, 이건 오히려 배로 혼날 거야!.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 나지 않아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이에 내 앞으로 에반이 쑤욱 끼어들었다.
“제가 잠시 불렀어요.”
“네가?”
“허리...가 아파서 약을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약초에 관심이 많은 에리나가 여러 약들을 항상 들고 다녔는데 마침 오늘은 안 가져 왔다네요.”
우오- 에반. 누가 봐도 거짓말인거 티 나는데? 그냥 고개 숙이고 연회 구경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잠깐 훔쳐봤습니다. 라고 하는게 나을 뻔 했다.
“그랬던 거군. 하지만 앞으로 그런 약이 필요할 땐 나를 찾도록.”
“네”
거짓말! 지금 이 말을 믿은거야? 진짜로?! 게르니아의 눈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에반을 철썩같이 믿는 낯이었다. 그런데 뭔가 좀 묘하다. 에반의 말이 진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다른 곳에 핀트가 맞춰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암만 생각해 봐도 에반과 게르니아는 무언가를 공유 할 만한 안면식이 있던 사이라곤 할 수 없는데 말이지.
어쨌거나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참, 미안하다 친구. 오늘은 연회 준비에 힘쓰느라 잠시 깜빡하고 나의 스물 네가지 약초 주머니를 들고 오지 않았구나.”
역효과 였는지 에반이 팔꿈치로 내 허리를 쿡 찌른다. 다행이도 게르니아의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인 듯 그녀의 두 눈이 에반을 향해서만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것이 아니라 음험한 뱀의 눈이었다.
“에리나 홀든은 다시 양파창고로 돌아가고, 에반 프리차일드는 내 방으로 오도록. 그런 약이라면 나에게 아주 많으니 말이야.”
“네”
게르니아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에반이 잠시 그녀가 멀리 사라질 때 까지 살피더니 내 옷자락을 바짝 끌어 당겼다.
“뭐, 뭐야?”
“에리나, 머슨과 저 여자를 가까이 두지 마. 알겠지?”
“무슨 일인데?”
“자세한 건 나중에. 나중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말야.”
말하는 에반의 눈빛이 검다. 뒤 따라 가는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닿는건 차가운 공기 뿐이었다.
방금 그 말 완전히 사망 플래그 잖아?
내가 모르는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에반에 대한 걱정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그러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몇 방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에반 괜찮을까?
아무래도 따라가 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 머리를 퍽퍽 쳐대는데 누군가 손목을 강하게 잡더니 그 위에 자잘한 입맞춤을 남긴다.
“머슨, 놔. 나 지금 기분이 이상해.”
“어째서?”
손목을 비틀자 그가 순순히 놓아준다. 그러나 이번엔 허리가 잡혀 들어갔다. 그에게 안긴 상태가 되자 시선들이 빠르게 나와 머슨을 향해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부둥켜 안고 춤추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왜 나한테만 이런 관심이야? 라고 생각했다가 머슨의 얼굴을 한 번 올려다 보니 음- 음- 수긍이 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나에겐 썩 반갑지 않은 관심들이었으므로 난 그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밀어내었다.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팔을 뻗어 오는 머슨을 향해 난 검지손가락을 들고 스읍-!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머슨이 우뚝 멈추고 이내 입꼬리가 내려간다.
“안 돼. 사람들 많잖아.”
“에리나가 기분이 이상하다니까 위로해 주고 싶어.”
“마음만 받을게, 고마워.”
대충 타이른 뒤 난 그를 데리고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어느새 양파창고 앞이다. 확실히 이곳은 양파냄새가 지독해 사람들의 왕래가 적으니 또 이만한 곳도 없지 뭐.
“에반이 이상해. 게르니아 시종장이랑 단단히 잘 못 엮인 느낌이랄까?”
“...”
머슨이 어떠한 반응도 없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 본다.
“뭐야, 반응이 왜이래? 놀랍지 않아? 그 여자 뭔가 있는 것 같아.”
“알아.”
“안다고?”
“그 여자. 피 냄새가 나. 아주 진하게.”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왔쬬? 독자님들 보고싶어서 죽는줄 알았습니다8ㅅ8 봤던 코멘트 또 보고 또 보고 8ㅅ8!
*독자님 : 성녀가 아니라 완전 샹녀언...이네요!
작가 : (입에 담지 못할 말) (심한 말) (나쁜 말) 이기도 하죠!
*독자님 : 작가님!! 저 성녀 언제 쯤 망하나요?! 울화통 터질 것 같아요!!
작가 : 해피엔딩을 좋아하고 권선징악을 애정하는 제가 작가이니, 성녀의 끝은 어둠의다크, 블러드빛 피입니다 쿠쿠쿡
*독자님 : 키잡이 아니라 프린세스메이커네요! 매력 치트키 쓰다가 도덕심 다 날아간!
작가 : (빵터지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을 잃은 작가) 끄덕. 다른 점이 있다면 신전에 봉사했지만 도덕심이 오르진 않았네욬
*독자님 : 오타있어요 작가님! 황제가 제일 불쌍해요 ㅠ 머슨이 망봐주는 동안 그 어장에서 어서 탈출하길!!
작가 : 제가 생각해도 세명의 남주 중에 황제가 제일 불쌍합니다...
*독자님 : 엘이랑 성녀 둘이 예쁜사랑하시고 머슨은 건들지 말라 이거예요~
작가 : (예쁜 사랑하게 두지 않는다.) 흠칫!
*독자님 :저기요 엘... 그렇게 잘생긴 얼굴 휘둘리기만 할 거면 저한테 오시죠? 어화둥둥 어여삐 여겨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성녀 때문에 에리나가 한바탕 크게 다쳐서 머슨이 빡돌았으면!!!
작가 : 이미 한번 빡돌았지만 꾸욱 참은 머슨. (+살짝 스포 하자면 에리나가 다치는게 아니라....)
*독자님 : 작가님 언제와요?(기웃기웃!!!!!!!)우리 작가님 손이 가지만 매일 독촉하는 수밖에!!
작가 : (독촉에 약하다) (독자님들 한정 관종이다) 와, 왔습니다! 이제 이렇게 긴 잠수는 당분간(?) 없을거예요〉〈 다음주 월요일 까지만 바쁘고 그 다음부턴 완전 널널합니다!〉〈(과연 널널한게 진정으로 좋은것인지 고민되는 작가ㅋ)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기다려주시고,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드려요 〉〈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독자님♥ 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