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61화 (61/170)

61편

<-- 10.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인가요? -->

“그럼, 안녕히.”

기분이 묘했다. 성녀가 부탁한 것은 무조건 들어주라는 말을 머슨에게 했던 기억이 분명하지만, 성녀가 말 하자마자 금세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달리진 않았다.)는 머슨이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묘한 승리감에 도취된 성녀의 미소가 내 마음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아냐아냐. 무슨 애 같은 질투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야.

불편한 마음을 숨긴 채 억지로 답 인사를 하려는 찰나 창고 문이 거칠게 닫혔다.

‘쿠웅‘

“...급하기도 해라.”

문은 왜 그렇게 또 세게 닫아?

애꿎은 양파껍질을 무자비하게 칼로 난도질했다. 앞으론 내가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머슨은 성녀의 말이 곧 법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 텐데, 머슨에게서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 정도야 이제는 받아드리고 적응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 머슨을 옆에 두고 미소짓는 성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주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성녀는 주인공이고 나는 엑스트라.”

감히 비중을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세상의 초점이 성녀에게 맞춰져있는 이야기 속의 나는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자신감에 들어 찬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그 차이를 온전히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은 퍽 잘 어울렸으며 오히려 이 상황에 완벽한 외부인인 내가 끼어있다는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아주 느리고 미미하지만 책 속의 톱니바퀴가 틀어진 이를 맞추려 삐그덕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다시 문 뒤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기대 한 건지 난 칼도 떨어뜨리고 달려가 문을 열었다.

‘철컥’

“...”

그러나 난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로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예상 외의 인물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는데, 출구가 어디지?”

바로 은색 가면의 남자였다. 아비츠 백작이 헐레벌떡 뛰어가 만날 정도로 대단한 귀족

인 것 같은데 괜히 엮였다간 숨만 쉬었을 뿐인데도 감옥에 끌려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십 수년 단련된 나의 소설책 읽기와 영화보기의 취미가 수도 없이 그와 비슷한 장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인 것 같은데, 난 그의 의도에 맞게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저-쪽 으로 쭈욱 걸어 나가면 돼요. 가다가 모르겠으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 봐요”

나 또한 타고난 길치였기에 모르는 언어를 듣는것도 아닌데 길을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대충 손을 뻗어 복도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발이 닫는 곳이 곧 내가 가야할 길’의 마음으로 설명했다. 훠이 훠이- 대충 알아듣고 사라져라.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므로 그의 표정을 정확하게 읽을 순 없었지만 잠시 이게 무슨 이야기 인가? 하고 생각하더니 내가 가리킨 길을 둘러보았다. 난 그 틈을타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자, 잠깐… 그니까 어디로 가라고?”

“그 있잖아요. 저-쪽, 그 막 출구쪽이요”

“출구쪽이란걸 어떻게 알지?”

“낸들 아나요. 길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무책임한 말이었다. 남자는 큰 키로 허리에 팔을 척 올리더니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본다. 괜히 성녀 때문에 복잡해진 마음을 길잃은 가면의 남자에게 풀어내려고 하는 듯 내 말투가 신경질적 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니까 잘 봐 봐요. 이 앞으로 쭈욱 걸으시다가 갈레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가시고 사자조각상을 끼고 돌면 연회장이 나와요, 그럼 그쪽에서 친절해 보이는 시종을 하나 붙잡아 길을 물으시면 된답니다.”

“연회장 쪽으로는 갈 수 없다.”

“왜요?”

“내가 이 곳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거든.”

“가면 때문에 알아볼 수 있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 아니, 어쨌든. 전 연회장을 통해서 나가는 길 밖엔 몰라요.”

“아비츠 백작가는 문이 여러개라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단기로 고용된 시종의 처지라 자세한건 저도 알 수 없네요.”

가면의 남자가 답답함에 한숨을 내리 쉬었다. 아니 여기가 길 잃은 사람들의 종착지도 아니고 말이야. 왜 다들 길만 잃으면 하등 쓸모없는 양파창고로 오는 거야?

난 남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저택을 더 자세히 아는 사람을 찾아보길 권했다. 이제 여기서 건져 먹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 냉큼 사라지시죠. 그러나 아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난처한 듯 발을 탁 탁 거리며 생각에 빠져있던 남자의 눈이 내 얼굴에 닿더니 갑자기 턱을 잡곤 들어 올렸다.

“뭐하세요?”

“가만 보니 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군.”

“글쎄요? 전 초면인데요.”

턱을 잡은 남자의 손을 끌어내리자 이번엔 하나로 묶어버린 내 머리 끝이 그 손아귀에 쥐어졌다.

“이 분홍머리도 본 적이 있지.”

“좀 흔해서요. 것보다 놔주실래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남자의 눈이 예쁘게 휘어있었다. 이 가면 안엔 분명히 선이 곧고 수려한 미남자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눈에 대한 감상도 잠시. 말 해도 여전히 머리칼을 놔주지 않은 남자와 잠시 잠깐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감촉을 느끼려는 변태처럼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살 비벼 대는 통에 열심히 묶어 올린 머리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요. 연회장을 안 지나치고 빠져나가는 방법 알려드리면 되는거죠?”

“알고 있었나?”

“그러니까 이 머리카락은 놓고 안으로 들어와요.”

남자가 순순히 내 말에 따른다. 난 양파 창고 구석에 달려있는 창문 아래로 남자를 안내했다.

“모양은 좀 빠지겠지만 창문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답니다.”

독한 양파냄새를 환기 시켜줄 창문으로 성인남자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창이었다. 게다가 1층이라 위험하지도 않았고, 이 창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건물의 외벽이니 조금만 돌아 걸어가다 보면 정문이 보일 것이었다.

“...나 보고 지금 여기로 지나가라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가야 한다면서 재고 따지는 게 많으시네요”

배가 불렀구만, 배가 불렀어. 남자는 창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갈등하였다. 난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괜히 불안한 느낌이 퍼져 애써 무시했다. 그러나 시선을 거두는게 너무 늦어서 일까? 불안한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었다.

“분홍머리, 너가 먼저 빠져나가 봐라.”

“제가왜요?! 전 여기 일하는 사람인데요”

“혹시 내가 밖으로 나갔는데 그 앞에 누가 있을 줄 어떻게 아나”

“그럼 재수 없는 거죠.”

“여기에 고용된 이들은 귀빈들을 대접할 의무가 있다. 어서.”

남자가 단호하게 명령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라고 얌전히 양파를 잘만 까던 내가 창문 넘어 도망친 고용인을 찍게 될 줄이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요! 저 여기 비우면 안 되거든요?!”

그릭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적은 없으셨지만 위급 할 땐 그의 말을 약간 바꿔서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보기에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 껀 양파밖에 없는 것 같군, 양파를 훔치러 귀족들이 바글바글한 이 저택까지 들어오는 미친 도둑이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의 열배를 보상해 주지.”

“아니, 도둑의 문제가 아니라 뭐랄까... 고용 규칙?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 같은 거라서요!”

“고용인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우리를 대접하는 거야. 후에 이 일을 아비츠 백작에게 전해도 되나?”

보상에 협박까지. 날 창문 너머의 미끼로 내보내기 위한 수단이 다양하다. 난 이곳에서도 서민출신이라 서러움을 느꼈다.

“신분제의 희생양 같으니라고.”

“뭐?”

“아뇨, 대단하신 귀족나리. 미천한 제가 이 창을 넘으면 된다는거죠?”

“그렇지.”

1층이라 하긴 하였어도 키가 작은 내가 손을 쭉 뻗어야 간신히 턱이 잡힐 정도의 위치였기에 키가 작은 내 입장에선 꽤나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난 발꿈치를 들고 창 턱을 붙잡은 손목에 힘을 주었다.

“으으아악!”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매끈한 벽면에 발 디딜 곳이 없어 갈 곳을 잃은 내 두 발이 벽을 타고 허우적 대다가 풀썩 떨어졌다.

“푸하하! 지금 재롱을 부리는 건가?”

나는 개고생하고 있는데 한 다는 말이 겨우 재롱이라니? 가면의 남자를 확 쏘아 봐준 후 손을 털고 일어섰다.

꽈당! 또 꽈당! 또 또 꽈당!

번번히 실패였다. 근력쓰레기인 내 힘으론 몸뚱아리를 창 턱에 걸쳐놓을 수 없었다. 가면의 남자는 꺽꺽 거리며 내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좀 도와요!”

지금에선 오기가 생겼다. 난 힘이 빠져버린 팔을 주물거리며 남자에게 말했다.

“제가 창 턱에 몸을 띄우면 그쪽이 밑에서 절 받쳐 올려줘요”

“누가 누굴 받쳐?”

“그 쪽이 저를요! 저 혼자선 절대 못 올라 가니까. 그것도 싫다면 다른 사람을 알아봐요. 아니면 그냥 혼자 올라가던가!”

땀이 삐질 삐질 흐르고 가쁜 호흡으로 열을 내며 줄줄이 이야기 하자 남자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양 눈동자엔 장난끼가 가득하다.

“자, 제가 신호하면 받치는 거예요.”

“그래.”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창턱에 손을 올렸다. 흐아압! 미약 하지만 두 다리가 공중에 대롱대롱 뜬다.

“지금!”

허벅지를 붙잡고 어깨로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힘에 내 상체가 바깥으로 쑤욱 빠져 나갔다. 프, 프리덤! 연회장의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오고 드문 드문 켜져있는 건물 내부의 빛으로 인해 완연한 어둠이 깔린 장소는 아니었다. 다행이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됐나? 고용인이라곤 하나 오늘 고작 몇마디 해 본 숙녀의 엉덩이를 계속 이고 있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저도 처음 본 남자한테 엉덩이 맡기는 취미는 없네요. 이만 떨어 져도 돼요.”

난 안정적으로 창에 걸터 앉으며 폴짝 뛰어 내렸다. 땅에 닿는 충격으로 발목이 살짝 아렸지만 지속되는 아픔은 아니었다.

“넘어와요! 아무도 없어요”

말하기가 무섭게 남자가 아주 능숙하고 여유로운 자세로 사뿐히 뛰어내린다.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신분차이에 이어 체격차이의 쓴맛을 느끼는 중이었다.

“왜, 잘생긴 사람 처음 보나?”

“댁 같은 사람을 아주 처음 보네요. 저 한번만 다시 올려주세요. 그쪽은 나가야 하겠지만, 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라서요.”

“무슨 소리 정문까지 날 무사히 안내 하는 것 까지가 임무인데.”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먼저 정문 쪽으로 간 후에 사람이 없을 때 나를 몰래 부르면 된다.”

난 그러겠다 대답하지 않았건만 남자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뭐해? 어서 가지 않고.”

========== 작품 후기 ==========

〈59회 휴재 공지에 달린 독자님들 코멘트〉

*독자님 : 가면남은 황제일거라 사료됩니다만!

작가 : 딱히 스포가 아니닝 헤헷 정확하십니다!!

*독자님 : 넘 잼써여 ㅠ작가님 매일 자정이 되길 이렇게 기다려본적이 있나 싶을정도예요 ㅠ

작가 : 하,, 토끼 같은 독자님을 두고 이렇게 며칠동안 연재하지 못하다니..츄륵

*독자님 : 성녀 개 비호감! 제가 에리나였으면 벌써 죽빵각!

작가 : 에리나는 이 독자님한테 죽빵술을 전수받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독자님 : 작가님!! 어디계세요 왜 안오세요!!

작가 : 여, 여기있습니다. 짜잔...(쫄보작가)

*독자님 : 혹시 단행본이나 이북 나오나여??ㅠㅠ

작가 : 아직 제가 결정을 못한지라 ㅠㅠㅠ 일이 너무 바쁘다보니 천천히 고민할 새도 없네요 ㅠㅠㅠㅠ 성사되면 바로 알리겠습니다!

*독자님 : 작가님 소설 페북 조아라가 홍보한거 아시나요? 완전 뿌듯 〉〈

작가 : 헐!! 몰랐어요! 이따가 들어가서 염탐 한번 해보겠습니다 헤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뽀뽀쮸(아, 때리지 마세여8ㅅ8)

*독자님 : 용량 빵빵하게 돌아오시겠지?

작가 : (용량을 본다.) (무릎을 꿇는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오늘도 집에 못들어가서 다른 사람 노트북 뺏어가지고 부랴부랴 적었네요 8ㅅ8 (집에 반틈 정도 적어두었던 것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못올리면 정말 실망시켜드릴것같아서 ㅠㅠ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쿠폰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아키헤윰님 나무멍게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