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편
<-- 8. 이건 잠입인가요? 취업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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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민은 아주 심각했다. 머슨을 의자에 앉혀 놓고 그 주위를 계속해서 빙빙 돌아도, 마땅한 해결책이 생각나진 않았다.
“검은 머리를 어떻게 한담…”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낮추어 머슨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머리가 검든 희든 별 생각 없이 태연하기만 하다. 이 시대에는 신분이 낮은 인간들을 잡아다가 짐승 취급하며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던데…
“이 검은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가 이상한 변태 귀족한테 잡히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럴리는 없다고 봐.”
“어허,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야.”
물론 넌 마왕이지만... 어쨌든 말이 그렇다고.
머슨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이 시대에서 염색약 비슷한 것이 있나 싶어 시장을 돌아다녀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있었다. 그 염색약 비슷한 것이. 마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머리색깔을 바뀌게 해주는 마도구 인데 그 효능은 반나절 밖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 만이라도 살 수 있었으면 이렇게 하루 종일 머슨을 앉혀두고 고민을 하진 않았을거다. 염색약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무려 15골드. 난 조용히 머슨을 손을 잡고 집으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새삼 여름 방학때 마다 실컷 머리색을 바꿨을 때의 내가 떠올랐다. 아주, 복에 겨웠었구나. 지금은 머리에 물감을 칠해야 하나 이 생각까지 하고 있다. 뭐 칠한다고 묻혀지지도 않을 거지만. 하다 하다 내 머리카락을 잘라서 머슨의 머리위에 덧붙여 볼까? 도 아주 진지하게 머슨과 의논했었다. 결론은 티가 엄청날 것이고, 머슨은 내 머리카락이 자신 때문에 잘리는게 너무 아깝다며 한사코 반대했다.
“돈이 부족해서 염색약을 못 사는거지?”
“응. 우리가 가진 걸로는 택도 없어.”
“그렇다면 저걸 팔자.”
“우리가 팔게 어디 있어, 그런게 있었으면 진즉에 내다 팔았지.”
머슨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배낭을 뒤진다. 곧이어 머슨의 손에 영롱하게 빛을 내는 자주빛의 돌멩이가 들려졌다.
“그거 돌멩이야. 가짜.”
맥이 빠졌다. 이미 세자인에서 한 차례 검사를 맡고 온 그 망토의 가짜 보석을 말하는 것이었다.
“싸구려 돌값 이라도 받을 지도 모르지.”
“돌멩이를 누가 돈주고 사냐?”
“예쁜 돌이면 살지 누가 알아?”
하긴. 세상 별의별 사람 다 있는데 그저 돌일 뿐이더라도 저렇게 예쁘게 발광하는 돌을 보면 괜히 장식용으로 하나 사볼까? 하는 사람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얼마 못 받을 거야. 10실버라도 받으면 감지덕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슨을 따라 시장으로 나섰다. 툭- 툭- 내 손 위에서 돌멩이가 하늘을 날았다가 다시 떨어지고, 또 날았다가 떨어지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돌멩이가 다시 하늘을 날았을 때 머슨이 공중에서 그것을 채갔다.
“저기 가보자.”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된 보석상이었다. 건물 안에 비치는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값진 케이스에 몸을 뉘인 채로 고고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예쁜 보석이 달린 악세사리가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꼭 가져야 해! 라고 열망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앞에 진열되어 있는 보석들은 언젠가 꼭 한번 가지고 싶었다. 내가 돈 많이 벌면 가격표 안보고 너네를 골라 줄게. 보석 밑에 적힌 수많은 ‘0’의 향연은 애써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잠시 보석 구경에 넋이 나가있는 사이 머슨이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야 같이가, 치사한 놈.
“어서 오십시오! 아…”
아? 우리의 행색을 확인한 보석상 주인의 얼굴이 너무도 확연하게 실망으로 가득찼다. 꾀죄죄한 옷 차림의 젊은 두 남녀는 누가 봐도 구걸을 하기 위해 이 보석상에 들어 온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머슨이 전혀 기죽지 않고 그의 앞에 서자 잠시 주인이 멈칫 하더니 이내 영업용 미소로 얼굴을 바꾼다.
“무슨 일이 시죠?”
머슨은 긴 말하지 않고 주인 앞에 돌멩이를 척! 하니 내어 놓았다. 머슨의 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판다.’ 나도 머슨의 옆에 위풍당당하게 서서 주인을 바라보았다. 5실버만 더 얹어 줍쇼!
깐깐하게 보석을 살펴보던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 해 지더니 보석과 머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곤 어버버 하며 가게 깊숙한 곳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음- 이거 좋지 못한 예감이 든다.
“저 사람 이제 빗자루 들고 뛰어 나올 거야.”
“왜?”
“왜긴 왜야. 우리 쫓아내려 지. 머슨, 준비해.”
“아닐걸?”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곧이어 주인이 나왔다. 내 예감대로 두 손에 무언가를 쥔 채로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모습이었다. 거 봐, 빗자루잖아.
“600골드입니다. 저한테 파시죠.”
촤르르르-! 등 뒤에서 금화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가지고 온 것은 빗자루가 아니라 커다란 주머니에 담긴 ‘금화떼‘ 였다. 금화떼! 머, 머슨! 나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머슨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입꼬리는 왜 또 씰룩 올라가있냐? 아니 뭐 어때!
머슨이 주머니를 받아 들고 우린 군말없이 가게를 빠져나왔다. 보석 가격이 적게 치러진건지 제값인지 알게 뭐야? 지금 염색약을 10개도 넘게 살 수 있는데!
시장을 활보하는 발걸음이 불과 30분 전 보다 당당해졌다.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다. 이봐요! 돈이 이렇게 무서운겁니다 여러분!
“머슨”
“응, 에리나.”
“마법 상점으로 가자.”
“응, 에리나.”
어제 돈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여기를 오냐며 우리를 그렇게 홀대하던 마법상점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쭈뼛 쭈뼛 고개를 내밀면서 가격표나 훔쳐보던 그날의 홀든 부부가 아니란 말씀!
“얼씨구? 또 왔네. 15골드는 준비 하셨소?”
난 당당히 금화 한 뭉치를 꺼내며 말했다.
“염색 되는 마도구 10개 주세요.”
우리를 마음껏 조롱하던 상점주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크으- 카타르시스! 머슨은 금화주머니를 나는 염색약을 들고 풍족한 마음으로 여관에 다시 돌아왔다.
“무슨 색이 나오려나?”
“보통은 갈색이야. 가장 흔한.”
“어째서?”
“마법은 마력과 복잡한 수식이 성립되어야지 발현되는 것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시전자의 상상, 이미지도 아주 크게 작용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또렷하면 또렷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지지. 이런 마도구를 만들때에도 그래.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갈색으로 마법을 불어 넣었겠지. 안 그래도 마력을 담는 마구가 비싼데 실패해서 날릴 순 없잖아.”
뭐야? 머슨이 똑똑해 보이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은 꼭 다른 사람 같았다. 너 원래 그렇게 말을 잘했었어?
“...너 이자식...”
내가 놀라 하자 머슨의 눈도 덩달아 크게 떠진다.
“...몰래 마법 공부를 좀 했어. 계속 마력을 안 쓰니까 혹시나 잊어 버릴까봐.”
“머슨! 이정도 어휘력이면 앞으로 혼자 다녀도 문제 없겠다.”
내심 걱정이었다. 매일 내 옆에만 달라 붙어 있을 줄만 알지, 누구와 길게 이야기 하는 꼴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러다 사회성 결여되는거 아닌가 하는 남모를 걱정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방금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걱정 하나 안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유창하고, 멋있어 보였다.
“잘했어, 머슨”
내가 손을 뻗자 그가 머리를 기대어 온다. 머슨의 흑발을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응. 기분 좋아 에리나.”
파티, 아니 게르니아가 연회라 했으니 나도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겠지 음음. 연회 까지 5일전. 우리는 다시 아비츠 백작가로 향했다. 전과 다른게 있다면 머슨의 머리가 정말 갈색으로 변하고, 얼굴을 칭칭 감았던 천을 풀어 헤쳤다는 것이다. 머슨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주변이 술렁거린다. 저런 사람이 있었어? 귀족인가? 옷을 보면 아닌데… 하는 말 들.
“안녕?”
“으앗, 깜짝아.”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인사에 오버스러울 정도로 몸을 떨며 놀라야 했다. 심장 떨어질뻔 했네.
“푸하하!”
남은 놀라죽겠는데, 들려오는건 사과가 아니라 웃음이다. 내눈이 가로로 가늘게 찢어졌다. 머슨과 비슷한 갈색머리의 남자였는데, 뺨과 코를 지나 주근깨가 올라와 있어 개구진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소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고 그렇다고 또 성숙미가 보이진 않는다.
“아, 미안 미안 표정 풀어.”
남자가 양 손을 파닥 거리며 진정시켰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머슨이다? 머슨이 어느새 내어깨를 꽈악 감싸 안고 붉은 눈을 매섭게 뜨며 남자를 쏘아 보고 있었다.
“놀래킬 의도는 전혀 아니었어. 그냥 가볍게 인사라도 하려고 한 건데, 그렇게 놀랄줄은 정말 몰랐어.”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100까지 치솟아 있던 경계를 느슨하게 풀고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불쌍하여 머슨을 툭툭 쳤다. 야 그만 쏘아 봐 얼굴 뚫리겠다. 그제서야 머슨도 시선을 거둔다.
“고마워.”
“별말씀을.”
내가 머슨을 말린 것을 용캐도 캐치해 내다니.
“난 에반 프리차일드야.”
“에리나 홀든. 아 이쪽은 머슨 홀든. 내 남편이야.”
에반이라 소개한 남자가 흠칫 놀란다. 이 시대에 내 나이때 여성이 결혼 하는 것은 흔한일이었으니 내가 유부녀라는 사실에서 놀란 건 아닌 것 같고… 그래. 백이면 백.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이 완벽하고, 감히 하대 할 수 없는 위압감과 신비스러운 아우라까지 풍기는 머슨이 왜 나같이 평범한 애랑 결혼했냐 이게 놀라웠던 거겠지. 편의상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지만 묘하게 기분이 언짢다.
“초면인데 여러 가지로 무례하네, 에반.”
“아, 금세 또 사과할 일을 만들어 버리네. 미안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이라 좀 놀랐어. 너네도 연회에 도우미로 온 거지?”
“보시다 시피.”
“사과의 뜻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이래봬도 이런 연회자리에서 일한 경력이 꽤 되니까. 뭐, 이런걸로 기분 나빴던게 용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작품 후기 ==========
*이제 호구머슨은 갔습니다. 호구에리나가 왔습니다.
*작가 : 염색 그냥 머슨마법으로 하면 되잖아...
에리나: 안돼 -_-우리 머슨 마력 없어.
머슨 : (아닌데)
에리나 : 그치?
머슨 : 응
작가 : 저것들을...
*보고싶었어요 독자님들8ㅅ8(하루 쉬어놓고 난리부르스)
(외전3~4, 본편 45, 46, 공지에 달린 독자님들의 코멘트)
*재미있는 코멘트들이 너무 많아서 다 답변드리고 싶은걸 참고 참아 꾹 꾹 눌렀습니다.(힘들었다.)
독자님 : 머슨, 성녀랑 벌써 잤구나
작가 : (당황) 자, 잔건 아닌 읍읍!!(또 스포한다 또)
*독자님 : 성녀님 인간적으로 한명만 가지십니다.
성녀 : 안대! 그러케는 몬해!
작가&독자님 : 절레절레
*독자님 : 성녀님이 머슨에게 집착하는 강도를 보아하니, 에리나 저쪽 세계로 넘어가던 안 넘어가던 좋은 쪽은 아니겠네요.
작가 : 그건 말이죠, 성녀가 문을 열기 전ㅇ...읍!읍! 에리나가..읍! 발ㄱ..읍! (결말스포 하려는걸 겨우 참는 작가. 다 이야기해드리고 공유하고싶다 8ㅅ8 왕따작가)
*독자님 : 에리나가 원하는 씬도 보고싶어요
작가 : 곧 나와요 머지않아요 (므흣)
*독자님 : 본편과 다르게 외전에 에리나가 섹스관계에서 쎄보여용!
작가 : 저도 그 부분을 쓰면서 우려했으나... 외전인데 모 좋은게 좋은거지^^ 라면서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네여 8ㅅ8 본의아니게 캐붕을 안겨드린점 죄송합니다(츄륵)
*독자님 : 머슨이 2년동안 에리나를 덮치지 않을 수 있던 비결은?
작가 : ...작가의 계략..... 독자님들에게 첫경험을 보여주고싶다&세자인에적응은 해야겠다 = 머슨, 고난의 2년.
*독자님 : 작가님! 기계처럼 글만 쓰시져?!
작가 : 삐..삐리..삐....(방전)
*독자님 : 감기조심하세여 작가님 8ㅅ8!! 기다릴게요! 감사해요!
작가 : 폭. 풍. 감. 동. 쓰. 나. 미. 웁니다. 저 울어요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합니다ㅠㅠㅠㅠ(포효)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쿠폰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