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편
<-- 7. 수도에는 미인이 많나요? -->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슨의 얼굴을 향해 올라갔다. 머슨의 등 뒤에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지 여자가 안간힘을 쓰며 끙끙 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상했다. 이 소란스러움의 원인은 무엇인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 여자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면 도와줘야 하는게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선 머슨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봐야 했지만 억지로 붙들린 듯 머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검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붉은 눈동자가 어두운 빛을 냈다. 무겁게 내려앉은 암적색의 빛깔이었다.
“이거 놔요”
연약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였다. 한 마디 들었을 뿐인 데도 알 수 있었다. 고운 미성 사이로 단단한 뼈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이 황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준다면 술이 없어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슨은 뒤를 돌아보지도, 그렇다고 여관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가슴이 이상했다. 수천개의 바늘이 심장을 콕콕 찔러 오는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슨의 감정을 마주하고 있으니 사고가 멈춰 버린 듯 했다.
머슨의 두꺼운 팔뚝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내 손길에 그가 얼굴을 내린다. 반듯한 이마를 타고 흘러 내린 빗방울이 날카로운 코끝에 맺히더니 내 뺨에 떨어졌다. 머슨이 자신의 볼을 내 얼굴에 비비며 빗물을 뭉개뜨렸다.
“무슨 일일까?”
“...”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왜이래?
아주 찰나의 떨림이라 이마를 맞대고 눈을 마주 하고 있지 않았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글쎄.”
“확인만 해보자”
우직하게 박혀 있던 그의 몸이 열렸다. 나와 머슨을 제외한 모든 이가 이미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색 로브를 깊게 둘러쓴 여자의 주위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이야? 하나, 둘, 셋… 히익 총 일곱이다. 일곱. 로브를 걸치고도 숨겨지지 않는 가는 체격의 여자를 상대하기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우락부락한 길거리 용병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 위에 흰색의 긴 웃옷을 걸쳤는데 자칫 치렁 치렁 하여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 옷을 허리띠로 감아 묶어 오히려 단정하게 보이는 의복이었다. 그 위에 걸친 같은 흰색의 망토에는 붉은색 마크가 진하게 박혀있었다.
“문?”
풀럭이는 망토에 박혀 있는 마크는 원형의 문에 가시 넝쿨이 휘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이했던 것은, 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억지로 열고 있는 듯 넝쿨이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고 있는 듯 한 형상이었다.
“미사에 늦습니다. 더 이상 신전을 비우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언제라도 시간을 지키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요?”
“그건 아니지만…”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보자면 남자 일곱과 대치하고 있는 여자 하나는 수 적으로도 힘으로도 여자가 열세해 보였다. 누구든지 뛰어 들어 여자를 보호해 준다 나서더라도 이상 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일곱의 남자들 중 누구 하나도 그녀를 섣부르게 건드리거나, 경망하게 행동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쩔쩔매는 듯해 보였다.
“서, 성녀님 아니야?”
모여든 사람 중 누군가가 수군거렸다. 성녀라고?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였는지 하얀 로브를 둘러 쓴 여자가 후드를 깊게 내렸다.
“이 이상 소란스럽게 하지 마시죠.”
나는 보았다. 어둡게 드리워진 로브 사이로 여자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을. 갑자기 끌려가는 이 상황이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사슬갑옷을 입은 남자 중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몸을 돌렸다. 몸의 방향에 따라 고개가 빙글 돌아가던 그녀가 우뚝 행동을 멈추었다.
“어?”
반쯤 꺾인 얼굴에 몸이 중심을 찾고 다시 이동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나보다 좀 더 위.
“성녀님…”
재촉하는 투로 남자가 물으며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당겼다. 그 순간 얼굴을 감쌌던 후드가 벗겨지며 풍성한 금발이 넘실 흘러 넘쳤다. 정오의 태양을 짜아 내려 만든 듯 화사하고 아름다운 금발이었다.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하얀 피부 위에 그보다 밝은 녹색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비로인해 어둑 칙칙 했던 주변에 광채가 샘솟았다.
“아…”
여기 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내 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예쁜 여성은 살아 생전 처음 보았지만, 난 그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르데벨라 르네. 내가 빨려들어온 소설 속 주인공이자 문을 여는 힘을 가진 성녀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일대의 사람들이 저마다 허리를 숙이며 성녀에게 예를 표했다.
나, 나도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던 사이, 그녀가 구름 위를 걷듯이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다가 왔다.
“케일”
오래 된 연인을 부르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억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깨어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슬픔이 어려 있었다. 실로 절세 미녀, 미남인 두 사람의 그림은 내가 굳이 입 아프게 찬양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누구와도 견주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 이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둘 사이에는 바로 나라는 인물이 끼어들어 있었다. 나는 지금 세 가지의 혼란에 빠져 있다. 하나는 예상치도 못 하게 세르데벨라 성녀를 만난 것이고, 두 번째는 머슨과 그녀 사이의 애틋한 재회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어 버린 것이고, 셋은 머슨을 올려다 보는 그녀의 애절한 눈동자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머슨이 나를 안은 손에 힘을 준 채 성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젖어오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니, 얘 할 말이 없을 걸요? 기억이 없어서.
“아무 말이라도 좋아. 변명이라도 좀 하라고”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영화 스크린 속에서나 보던 여배우의 눈물을 코 앞에서 보는 듯 했다.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면서도 우는 모습은 또 엄청 예쁘다. 뒤에서 재촉하던 남자들 중 하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성녀에게 다가왔다.
“가시죠.”
성녀는 남자가 이끄는 대로 발을 돌리면서도 눈은 끝까지 머슨을 향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던지, 이것이 연극이었다면 난 눈물을 찍어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성녀가 사라지자 주변의 관심이 다시 우리에게 쏠렸다. 이런 젠장. 광장 근처에서 숙소를 잡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는 결국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골목 골목을 지나 외지고 허름한 여관 방 하나를 빌렸다.
쾌쾌한 곰팡이 묵은내가 감돌고 투둑- 비 떨어지는 소리가 천장을 울렸지만, 바람 피할 곳이 있고 폭신한 이불이 나를 반긴다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 가격도 60실버 밖에 들지 않았으니 여러 모로 큰 불만은 없었다.
머슨은 아까부터 어딘가 혼이 빠져 나간 것 같은 모습이다. 아무래도 성녀 때문이겠지. 나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본인은 오죽할까. 기억이 있었다면 둘이 얼싸안고 격정의 키스를 나누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머슨이라면 분명히 그랬다. 어쩌면 더 한 것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기억은 없고 감정만 요동치니 저 자신도 머리가 복잡한 것이다.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이 목구멍에 걸려 시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런 머슨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거짓말과 이기심. 이것이 두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었다. 애초에 목적은 세르데벨라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머슨과 성녀가 다시 불꽃튀는 사랑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이유도 없이, 서글퍼졌다.
“이리 앉아봐.”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떠날 몸. 지금은 갈기갈기 찢겨져 아프더라도 내가 헤집어놓은 선들은 어느 정도 풀어놔야 했다.
머슨이 긴다리로 몇 걸음만에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내 옆에”
바싹 붙어 앉더니, 내 고개를 감싸쥐고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한다. 나는 그 손을 떼어 내고 머슨을 마주 보았다.
“그, 성녀라는 여자. 기억나?”
“...”
“누가 봐도 널 아는 사람 같았지, 그치?”
“...”
머슨의 왼쪽 가슴을 쓸어 올려 그 위에 손바닥을 대었다. 쿵. 쿵. 심장 뛰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가, 어땠어?”
머슨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움찔 놀라 손을 떼려는데 그 위에 머슨의 커다란 손이 겹쳐올라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그냥 묻는 거야. 네 기억에 도움이 될까 하고.”
머슨이 가슴위에 얹어진 내 손을 힘주어 눌렀다.
“여긴, 너한테만 반응해. 널 위해서만 뛰어.”
머리카락 사이로 손이 들어오더니 고개가 당겨진다. 메말랐던 입술위로 머슨의 타액이 젖어들고 그의 체취가 스며든다.
“어때?”
호흡이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낮게 속삭였다. 손 아래로 쿵 쿵 쿵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더 뛰게 할 수도 있어.”
기어코 내 몸을 누르며 그가 체중을 실었다. 뜨거운 혀로 귓바퀴를 핥아 올리자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쿵. 쿵.
그의 심장이 더욱더 빨라진다. 머슨이 내 두 다리를 잡고 넓게 벌리더니 옷 위로 튀어나온 페니스를 다리 사이에 비벼댔다.
“흐읏…”
“너만 보면 이렇게 서. 에리나 한테만 이래.”
“머, 머슨…”
“넣지는 않을게. 조금만… 조금만…”
삽입은 하지 않았지만, 머슨은 마치 내 몸 속에 자신의 것을 박아 넣은 것처럼 허리를 거칠게 움직였다.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고 음핵이 문질러진다. 가슴을 한 입에 물어오자 날이선 통증에 그의 어깨를 밀었다. 이를 세워 가슴을 베어 문 것이다.
“아파…!”
내 몸이 바스라질 정도로 힘을 주어 껴안으며 허리를 튕기던 그가 나를 빙글 돌려 자신의 위로 옮겨 놓았다. 침대와 머슨 사이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로워 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의 억센 힘에 의해 마치 내 몸이 아닌 듯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머슨이 내 손을 잡아 끌어 솟아있는 페니스위에 올려 놓았다. 옷 위로 만져지는 감각이 답답한지 서둘러 바지를 밀어내고는 밖으로 끄집어 냈다. 튕겨져 나온 페니스를 감싸쥐게 하고 자위 하듯 내손으로 거칠게 움직였다.
“큿!”
살갗이 따가울 것도 같은데, 머슨은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댔다. 기분이 묘했다. 머슨이 나를 끌어 안고, 내 손을 이용해 자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위험할 정도로 야했다. 머리를 끌어 당겨 키스를 하면서도 손은 바삐 움직였다.
“흐읏…앙”
목 옆을 혀로 꾹꾹 누르자 신음이 터졌다. 머슨의 손짓이 더욱 빨라졌다. 그의 입에서 뜨거운 열기와 욕정이 가득찬 신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소리. 소리를 더 내 에리나. 나랑 한다고 생각해.”
그가 원하는 데로, 실제로 삽입하는 것처럼 신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쳐올리는 박자에 맞춰 나도 다리 사이를 머슨의 허벅지에 깊게 비볐다.
“하앗! 아! 아! 응… 머슨 하아…!”
옷 하나 벗지 않고, 질구에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았지만, 머리끝까지 오르가즘이 치솟았다. 머지 않아 손 위로 뜨거운 액체가 퍼부어 지더니 비릿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머슨은 사정후에도 내 손을 놓지 않고 느긋하게 페니스를 쓸었다. 난 마치 격렬하게 섹스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의 몸 위에서 널브려졌다.
“에리나, 내가 말했었지. 마왕성에 다녀온 후에도 날 밀어낸다면 내가 화나고 슬플 거라는거.”
“응”
“기억 하면 됐어.”
========== 작품 후기 ==========
*머슨 이 자식 어장관리하니?
*독자님 : 남주시점 씬 보고시퍼용!!
작가 : 나오긴 합니당! 듀근듀근 빡쳐서 폭발하는 머슨의 격정적인 씬이... 아주 나아아중에
*독자님 : 다음에 나오는 인물이 성녀인가여?!
작가 : 정확하셨습니다!
*독자님 : 머슨이 각인때문에 에리나를 애정하는 건 아니겠져?
작가 : 처음, 그 영향이 있긴 했습니다만 머슨은 트루러브입니다.
*세상에 두근두근!! 곧 선작이 5천을 찍을 것같...!!(기절) 선작5천 기념하여 외전이나 Q&A를 파볼까 하는데 궁금하신거나 보고싶은 외전 있으면 코멘트에 남겨주세영
독자님 : 없어영...ㅎㅎ 본편이나 진행하시져?
그렇다면 자축하는 의미로 제가 써보고 시픈 외전을 휘갈기겠습니닼 켈켈켈(막무가내)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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