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32화 (32/170)

32편

<-- 5. 우리 그냥 행복하면 안될까요? -2 -->

“소멸 되지 않을 것, 반드시 에리나를 만나러 갈 것, 에리나를 미워하지 않을 것”

“훌륭해.”

상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 당겨 뺨에 키스했다.

“머슨, 우리는 오래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잠시 아주 잠시일 뿐이야.”

“난 하루라도 에리나가 없으면 안 돼”

“알아. 그러니까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선 그냥 ‘다녀올게’이 한마디만 하면 돼”

“...”

“네가 없는 이 곳은 상상도 하기 싫어. 소멸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나에게 남겨두지 말아줘 머슨, 제발…”

코 끝이 시려온다. 가슴이 먹먹하고 고르게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호흡이 불안정했다. 머슨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숨이 가쁘고 위태위태 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게 키스했다. 머슨이 내 허리를 감아오고 난 발꿈치를 들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눈을 감고 그의 입술과 향,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뜨거운 혀까지 놓치지 않고 느꼈다.

“흐읍… 하”

격렬한 키스가 계속되자 숨쉬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돌리면 그의 입술이 끈질기게 따라 붙어 다시 혀가 밀려들어 온다. 내 눈에서 눈물이 고일 때 즈음 머슨이 가볍게 입술을 맞부딪힌 상태로 얘기했다.

“에리나”

달아오른 입술 위로 소리가 퍼지고, 달싹거리는 머슨의 입술이 자극적이다.

“난 에리나가 불안해 하는 게 싫어”

그가 고개를 내려 목 선을 따라 입을 맞추어 갔다.

“내가 그 곳에 다녀 오는 것만으로 에리나의 불안이 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게. 그런데…”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머슨의 뒷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아읏!”

머슨이 목을 아프게 깨물었다. 놀라 그의 팔뚝을 세게 붙잡았다.

“에리나가 말 한 대로 잠시일 뿐이야. 더 이상 날 떼어내려 하지 마. 수도에도 물론 같이 갈 거니까”

그의 경고였다. 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래”

거짓말이다. 아니 적어도 내 마음은 진심이었으나, 머슨이 말 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나는 ‘그래’라고 이야기해선 안됐다. 그가 기억을 찾게 되면 나에게 품었던 마음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이고 다시 마왕의 본업으로 돌아가겠지. 내가 수도에 가건 말건 마왕으로선 상관할 바가 아니란 말이다. 또 난 당장에 수도로 떠날 계획인데 하루 아침에 머슨이 마왕성에서 나올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머슨이 눈을 마주쳐왔다. 붉은 적안 안에 나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 보인다. 너무도 선명하게.

“만약 에리나가 그때도 날 밀어낸다면. 난 화가 날 거고, 또 슬플 거야.”

난 대답 대신 그의 흑발을 쓰다듬었다. 자주 그래왔던 것처럼.

“금방 다녀 올게. 널 위해서”

“...응”

다시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인지 티격 태격 다투고 있던 두 마족이 화들짝 놀란다. 이어 머슨이 성큼 문 밖으로 나가자 레이넌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드디어 가시는 건가요?”

“그래”

말하면서 내 얼굴을 돌아 본다. 난 어서 다녀오라고 손짓했다.

레이넌은 머슨의 마음이 바뀔 새라 서둘러 입안에서 무언가를 중얼 거렸다. 나로선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였으나 소설책을 본 바로 이해하자면 언령이라 하여 마법을 외는 주문과도 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딛고 선 바닥에 검은 빛을 뿜어내는 원이 생겼다. 가루처럼 자잘한 빛들이 모이더니 하늘에 커다란 수를 놓는다. 이때 레이넌이 팔을 들어 위로 쭉 뻗으니 폭포수처럼 빛들이 땅에서부터 하늘로 몰아쳤다. 머슨의 모습이 빛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고 어느새 응축된 빛들이 소리도 없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갔네.”

정말 갔어.

멍 해진 상태로 하염없이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턱 밑에 고이더니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내가 전남친 군대 보낼 때도 안 울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서러워져 손등으로 눈을 벅벅 비볐다. 가라고 부추긴 건 난데 내가 울고있다니… 언행불일치가 따로 없다.

집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머슨의 온기가 잠시 사이에 차게 식었다. 우스웠다. 하루사이에 사건이 휘몰아치더니 모든 것이 바뀌어 갔다.

그치지 않는 눈물을 손으로 털어내며 침대위에 대자로 뻗었다.

지금 부터는 나 혼자야.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마을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이야기 하지?”

하아, 모르겠다. 감정이 제멋대로라 이성적인 생각을 자꾸 방해 한다. 우울하고 기운이없다. 그래 2년 동안 함께 지냈는데 이러는 게 당연하지.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시간이 지나면.

‘끼익’

문이 열린다. 조심스러운 소리는 아니었다. 문을 안 잠궜었나? 의문도 잠시, 난 무엇을 기대했는지 벌떡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

“안녕?”

보랏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마족이 서있었다. 찰나의 실망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덮을 만 큼 큰 생각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왜… 아, 뭐 두고가신거 있나요?”

이상하다 집 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어오질 않았는데.

“있지, 두고 갔다기 보다는 잠시 미루어 뒀다고 하는게 맞나?”

그가 긴 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을 데지 않았는데 등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힌다. 무겁게 내려 앉은 공기 때문이었을까? 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제가요?”

“이제 물러설 곳도 없잖아”

자각 하기도 전에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나도 모르게 그를 피해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질질 끄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한 번에 끝내 줄게”

“뭘요?”

분위기는 읽었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저 마족은 지금 나에게 해를 입히려는게 분명했다. 살의에 찬 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짐승이었다면 꼬리를 내리고 내뺐겠지. 난 서둘러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허나 침대 위라 빌어 먹게도 폭신폭신한 이불이나 베개 따위 밖에 보이질 않는다.

“눈알 굴리지마. 어떤 물건도 나한테 위협이 되진 못해”

“너 뭐야”

나한테 적개심을 들어내는 이에게 존대를 해 줄 만큼 성격이 친절하지 못했다.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질문에 답했다.

“보시다시피 마족”

“말 장난해? 나 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글쎄, 실험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되겠냐? 내가 표정을 구기자 그가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니가 아주 중요한 걸 먹어버린 것 같거든. 그게 니 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하는 실험”

내가 평소에 많이 먹긴 하지만, 네 놈이 탐낼 만한 것을 먹은 기억은 없거든?! 뮐 초도 촌장님 가져다 드렸고!

“그 딴건 없어!”

“그렇다면 넌 죽는거지 뭐.”

“뭐? 으헉…!”

마족은 내 몸에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았으나, 발이 들리더니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거인이 목을 졸라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끔찍한 고통에 두 발이 멋대로 발버둥 쳤다. 고통을 떼어내려 목을 꼬집었으나 내 손톱이 살에 박힐 뿐이다.

“컥…”

마족은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분비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귀가 멍해지고 얼굴 위로 모든 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곧 끝나. 조금만 버텨”

“씹…억 개…리 흑!”

“뭐?”

씨발 개소리 말라고! 갑자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시골일만 하다가 의문사 하는 역할이라니! 겨우겨우 첫 회 등장 죽음에서 벗어 났더니 이런 허무한 결말이라니!

화가 났다. 난 아직 할 일이 많아!

촌장님과 마을을 위해서 체닌을 데려와야 했고, 만에 하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를 만나러 올 머슨도 기다려야 했으며, 성녀 세르데벨라를 만나 문을 열어 집에도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다르게 점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 져갔다. 격하게 몸부림 치던 팔 과 다리에는 힘이 빠져 오고 고통으로 크게 뜨였던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 오고 있었다. 검은 물감이 퍼진 듯 세상이 점점 어둡게 변해가고 있었다.

억울하게도, 이젠 끝인가? 라고 생각 할 즈음…

“크학! 하아… 하아…”

머릿속에 산소가 들이 차고 짓눌려졌던 목의 감각이 사라졌다. 기댈 곳 없이 공중에 떠있던 몸이 포근하게 안겨 있었다.

숨을 들이 쉬느니라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공포로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누군가 머리를 넘겨주며 진정시켰다.

신기하게도 그 손길에 점차 안정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그 주인을 바라 보려는 찰나 이마에 그 손이 닿았다. 머릿속이 화한 청량감으로 퍼지며 몸이 나른해져 온다. 힘없이 고개가 꺾이는걸 누군가 받쳐주었다. 이 느낌, 전에도 한번 겪었었는데…

죽음의 어둠이 아닌 수마가 뻗쳐온다. 감기는 눈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머슨?”

그가 뭐라 이야기 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비디오가 끊긴 듯 내 세상은 온통 검게 변했다.

========== 작품 후기 ==========

*급전개... 머슨 잠시라더니 너무 잠시 아니냐..?

*독자님 : 에리나가 느낄 정도의 살기면 머슨이 눈치 채지 못할리 없겠쬬?

작가 : 이미 예상하시고 계시지만 ㅎㅎ 다음 편에 나옵니댱!

*독자님 : 몰래 보다가 상사님한테 들켰어영 8ㅅ8

작가 : 거참! 일 하다보면 소설도 좀 볼 수 있고 그런거 아니겠슴미깡?!(상사님의 눈초리를 대신 받는다. 아얏)

*독자님 : 에리나가 머슨한테 휘둘리는것 같아용!

작가 : 머슨은 마법을 쓸 줄 알죠!(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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