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편
<-- 5. 우리 그냥 행복하면 안될까요? -2 -->
한 발자국. 머슨이 움직였다.
머슨의 말은 장난기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이 한없이 진지한 투였다. 내가 여기서 “그래”라고 한 마디만 하면, 아니 고개 한번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머슨은 당장에 이름 모를 신의 목을 가져올 것 만 같았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의 가슴을 밀었다. 그러나 우직한 그는 미동도 없고 오히려 물러나는 건 나였다. 머슨이 여전히 젖은 눈은 하고선 나에게 애원했다.
“나한테서 떠나지 말라는 거야.”
이 말이 웅웅 울리는가 싶더니 머릿속을 꽉 채웠다. 또… 또 이런다. 거부할수 없게끔 들려오는 이 목소리. 울 것 같은 눈빛을 하고선, 간절함이 뚝 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는 나에게 … 명령을 한다.
입이 다물렸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쉽게 말하던 거절의 말이 거짓말처럼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응, 에리나?”
머슨이 내 정신을 점점 옭아 메어 온다. 정말… 정말 소멸 되지 않는 걸까? 그 마족들이 유난스러웠던 걸까? 혹시 정말 괜찮다면…
혹시…
혹시…
혹시, 머슨의 말을 믿었다가 그가 소멸된다면?
“머슨”
“응?”
손을 뻗자 머슨이 고개를 살짝 숙여준다. 얼굴을 감싸고 엄지로 그의 눈가를 천천히 문질렀다.
“방 치워”
원하지 않는, 엉뚱한 대답이 나오자 머슨의 고개가 갸우뚱 넘어간다. 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네가 어지럽힌 거 다 치.우.라.고.”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혹시라는 가정 하에 남의 목숨 가지고 복불복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고, 두고 볼 만큼 심장이 단단하지도 않다. 게다가 마법에 라도 걸린 듯 ‘안 돼’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기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맥락에서 벗어난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머슨이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손을 내려 그의 볼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빨리”
재촉에도 그는 가만히 날 응시할 뿐이었다. 어라, 반항이 아직 안 끝났나? 머슨의 뺨을 부여 잡은 팔이 저릿하게 아파질 즈음 머슨이 움직였다.
-쪽
입술이 내려 앉았다. 키스라고 하기에는 잔잔하고 뽀뽀라 하기에 는 긴 시간동안 입을 맞추었다.
“뭐, 괜찮아”
뭐가? 그가 싱긋 웃는다.
“내가 에리나에게서 떠나지 않으면 돼”
고집불통이다.
“됐고, 방이나 어떻게 좀 해 봐”
휙 등을 돌려, 안전지대인 침대로 올라갔다.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더불어 잡다한 것들이 바닥에 빼곡히 깔려있었다. 머슨이 손가락을 튕기자 물건들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했다. 접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듯한 원형의 모습이었고 새것처럼 빛도 났다. 나무 문에 길게 나있던 포크 자국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청소의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난 머슨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또, 마법 쓰지?!”
머슨이 몸을 움찔 하더니 슬금 슬금 침대로 기어 올라 온다. 난 본능적으로 이불을 몸에 감쌌다. 어젯 밤에도 하고 아침에도 했잖아!
“마력이 빠져 나갔어”
그런 것 치곤 너무 웃는 얼굴 아니야?
“정기를 줘, 에리나.”
그윽한 눈 아래로 기다란 속눈썹이 나를 유혹했다. 그의 붉은 혀가 제 입술을 천천히 쓸어간다. 그냥 봐도 숨 넘어갈 정도로 잘생긴 얼굴로 온갖 교태를 부린다.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에리나”
열망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가 진득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가 간절히 날 원하고 있었다.
작정하고 끼를 부리는데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얼굴은 바, 반칙이야.”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어? 너 지금 살짝 윙크했지?! 미치겠네.
어느새 느슨해져 있었는지 머슨이 쉽게 이불을 걷어냈다. 그리곤 내 귓불을 만지작 거린다.
“널 원해”
“...”
머슨이 부러 그러는 듯 느릿하게 말했다. 큰일이다. 머슨이 점점 자기 외모를 이용 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어. 난 그의 입술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데도 피하지 않았다.
“에리…”
‘쾅! 쾅!’
“응?”
오늘 따라 문 두드리는 놈들이 많네. 분위기 야릇할 때만 말이야. 아, 욕할 뻔
머슨이 개의치 않고 입을 맞춰 오려는 것을 고개를 돌려 거부했다. 눈이 날카로워 지더니 쿵쿵 소리가 나는 근원인 문을 노려 본다.
“마족들이 왔나 봐”
문을 열자 역시나 그들이었다. 피에르와 레이넌이라고 했던가?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머슨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마왕님을 모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습니다!”
“마왕성 입구부터 악사들이랑 무용수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었을 까요?”
“닥쳐 피에르. 어서 가시죠, 마왕님.”
머슨의 눈매는 여전히 사나웠다. 억지로 분노를 눌러 참고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그의 옆구리룰 툭 찌르자. 그가 나를 보더니 힘겹게 웃는다.
우와, 억지웃음 엄청 무섭다!
여전히 밖에서 머슨을 기다리고 있는 피에르와 레이넌을 다시 보더니 이내 문을 쾅! 닫아 버린다.
“왜 닫아?!”
“하던 거 하자”
미쳤나봐...
‘쾅! 쾅!’
“가셔야 합니다! 마왕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문을 다시 연 것은 나였다. 은발의 레이넌은 울상을 하고 문 앞에 매달려있었다. 저 사람도 무섭다...
“돌아가라”
움찔, 머슨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강압적인 어투였다. 순간 마왕으로 되돌아 갔나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내 손을 힘주어 잡아오는 행동에 그가 아직 머슨임을 알고 안도했다.
“가셔야 합니다! 안 가시겠다면 억지로라도…”
“억지?”
그의 입술이 비틀렸다. 조소가 어린 말이었다. 조잘 거리던 레이넌이 숨을 급하게 먹으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마왕은 마왕이구나. 싸해진 공기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꼭 이럴 땐 내가 나서야지
“몇 분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타일러 볼게요”
말하자 섬칫 몸이 떨렸다. 전신을 휘감는 공포가 찰나 였지만 물들었다 사라졌다. 놀라 눈을 돌려 주위를 살피자 마족 피에르의 보라색 머리칼이 흔들렸다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 마족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쾅’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머슨이였다.
“안 가”
난 정신을 차리고 머슨의 두 손을 마주잡았다.
“머슨 잘들어. 나도 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건 내가 몇 번이고 말해서 너도 잘 알거야”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옳지.
“그리고 네가 소멸 당하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것도 믿고 싶어.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저 마족의 말 대로 그렇게나 강하다던 네가 2년동안 기억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의심이 가. 걱정이 된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검사만 맡고 온다고 생각하자. 마을 어르신들 검사 맡듯이.”
“...”
“다시 돌아오면 되는 거야. 저들이 막아도 충분히 뚫고 올 수 있잖아?”
물론,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겠지만. 난 숨겨 왔던 마음 속의 이기를 다시 들추었다.
“...우리 약속했잖아. 세 가지. 기억 나지?”
========== 작품 후기 ==========
*으앗 살짝 지각 ㅠㅠ 죄송합니다!!!!!!!
*독자님들의 공지에 달린 코멘트를 보고 감동MAXㅠ 울컥!! (독자님들은 내꼬양)
*독자님 : 신 "나는 무슨 죄..?"
작가 : (엄청 빵터지다)ㅋㅋㅋㅋㅋ 그렇네욬ㅋㅋ
*독자님 : 작가님 암 스토리는 앙대여 8ㅅ8!
작가 : 제가 무슨 내용을 쓰더라도 사랑해주실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취 않숩뉘다!(돌을 맞는다. 아얏)
*독자님 : 머슨이 안전장치 해 놓은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작가 : 정답입니다!(작가가 스포)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