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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25화 (25/170)

25편

<-- 4. 우리 그냥 행복하면 안될까요? -->

*

분명 4인용 식탁이 맞았으나 에리나를 제외한 세 마족의 덩치에는 맞지 않았는지 무척이나 비좁게 느껴졌다. 살 부딪히고 사는 단란한 가족처럼 꽉 끼듯이 앉아 있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선 건 에리나 였다. 이때, 마왕이 레이넌의 의자다리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우당탕!’

다행이 부러지진 않았지만, 레이넌과 함께 의자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레이넌을 피에르가 발로 툭툭 밀어 치워버리자 공간이 확보 되었다. 마왕이 에리나의 손목을 끌어 자리에 다시 앉혔다.

“괜찮아요?!”

놀란 에리나가 묻자 레이넌이 흐트러진 은발을 정리하며 애써 웃었다.

“물론이지.”

“거짓말, 그렇다면서 왜 전 노려보세요?”

피에르가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마왕의 눈이 레이넌에게 향했다. 시선을 받아 움찔한 레이넌이 피에르의 등을 후려치며 과장되게 웃었다.

“내가 언제?! 하! 하하!”

“죄송해요. 마법사님들 이신 줄도 모르고, 날강도 취급했네요.”

에리나의 말투가 공손해 졌다. 에리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머슨을 헤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고 도적도 아니었으며, 따지고 보면 엄연한 세자인의 손님이자 외부인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에리나가 내 놓은 냉수로(마땅한 게 없었다) 입을 축이던 피에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마법사 아닌데?”

“네? 그럼…”

“마법사는 인간들의 직업이고. 우린 마족이야.”

‘우당탕!’

이번엔 에리나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다행이도 에리나는 그 자리에 두 발을 딛고 잘 서있었다. 피에르가 턱을 괴고 에리나를 바라보았다. 한 눈에 봐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니가, 에리나 홀든... 맞지?”

에리나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건지 문쪽을 힐끔 힐끔 보다가도 고개를 내려 마왕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쉰다. 마왕이 마음에 걸려 혼자 내빼지 못 하는 것이리라. 피에르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꾸욱 눌러 참았다. 인간 계집이 도망간다고 해도 못잡을 것도 아닐뿐더러, 누가 걱정 돼서 못 간다는 건가? 마왕을 우습게 알아도 정도가 있지. 마치, 애 취급이다.

“저를 어떻게 알아요?”

“헤일던의 유일한 생존자 에리나 홀든. 그리고 동시에 마왕님과 함께 사라진 인간계집. 어렸을 때부터 버려져서 혈육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모르고, 너를 데려다 키운 양초제작자 마저 베넌 대학살 때 죽어버렸다. 타지에 대한 로망이 있어 늘 여행을 꿈꿨고, 우연히 알게 된 아비츠 백작가의 장남 테론 아비츠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수도 트렌시아로 갈 수 있게 되었으나 그 편지가 도착한 날이 다행스럽게도 대학살이 있던 날이라 넌 트렌시아로 가지 않을 수 있었지... 라는 건 모두 레이넌님이 스토커 기질을 발휘해서 알아 낸 거고, 너가 여기에 있다는 건 그 테론 아비츠라는 녀석이 알아냈지”

피에르는 숨이 차지도 않는지 동일한 어조, 그리고 약간 빠른감이 있는 속도로 쉬지 않고 이야기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에리나가 저도 모르게 두 어번 박수를 쳤다.

“저에 대해 저보다 훨씬 많은걸 아시… 아니 아니, 그보다 그 테론 아비츠라는 사람은 절 어떻게…”

“우선, 에리나 홀든. 네 이야기를 먼저 해줘야겠는데?”

순간 마왕의 몸이 움직일듯 움찔 하였으나, 그 뿐이었다. 에리나는 마왕의 작은 변화를 감지 하지 못하고 아랫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다가 깨문 입술에 살짝 피가 베어 나올 때 즈음 에리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슨, 텃밭에 물좀 주고 올래?”

마왕이 평소와 다르게 알았다는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머슨이 잠시 자리를 비켜줬으면 했던 에리나는 다시 한번 그를 재촉했다.

“어서”

“...응”

에리나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머슨은 레이넌과 피에르를 강하게 쏘아봐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슨이 문 밖으로 나가자 무겁게 짓눌렀던 공기가 바뀌었다.

‘감히 마왕님한테 심부름을 시키다니?!’

레이넌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 질 줄을 몰랐다.

“우선,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당신들 왕이…”

에리나가 뜸을 들였다. 침묵이 좀 길어진다 싶을 때 겨우 말이 튀어나왔다.

“...기억상실 이예요”

“뭐?!”

“말이 돼?!”

‘우당탕!’

이번엔 피에르의 의자가 넘어갔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의자는 이제 마왕이 앉았던 것 뿐이었다. 에리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망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모습처럼 고개를 내저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이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에리나의 이야기에 두 마족은 아예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못 하고 멍하니 경청했다. 각인의 증표를 발로 밟아 부셔버렸다고 이야기 했을 땐 레이넌이 뒷목을 잡고 숨을 할딱거렸다. 그, 아까운 마력들을! 어찌 됐든 그 여파로 마력을 대거 소실한 마왕은 기억상실이 왔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상태며 어느정도 마력은 회복 한 것 같다는 이야기 까지 끝마쳤다.

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레이넌으로서는 에리나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각인의 증표가 깨어지면 우주와 같이 무한한 범위를 가진 마력이 해일처럼 휩쓸려 나가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리 마왕이라 할 지어도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마력이 90퍼센트 이상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면 그 후유증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마왕이었기에 후유증으로 끝나는 것이었지, 일반 마족들이었으면 소멸이다. 소멸.

그러다 마력이 다시 차오르면 몸도 다시 정상화 된다. 마왕의 경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달 이면 마력을 회복 할 터 였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상실이라니?

또 한 가지 의문. 그때 당시 각인의 증표가 깨어지면서 그것과 연결된 마왕의 마력이 폭발했다면 그 위력은 헤일던은 물론 대륙의 반 이상이 사라져야했다. 그런데, 단순히 강한 마력이 느껴진다... 정도로 그쳐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대한 마력은 도대체 어디로 향한 것인가?

“...머슨, 데려가려고 온 거 맞죠?”

침묵을 분노로 해석한 에리나가 풀이 죽어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아니, 머슨이 아니라... 이름이 뭐였더라? 여하튼 마왕이요.”

동시에 나무 문이 열리면서 텃밭에 물을 주고 온 마왕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에리나는 그의 흑발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시선은 레이넌을 향한 채였지만.

‘저건 또 무슨 짓이야?!’

“후...”

레이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낱 인간 계집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입을 나불거림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마왕을 보면 정말 기억을 잃은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마왕님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마왕성으로 모셔가겠다.”

“안 가”

“네, 알겠습… 네?”

“안 간다고”

레이넌이 당황하여 마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왕은 의자에 등을 기대어 멀찍이 떨어져서는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마왕님, 2년 동안 기억이 없으신 건, 아직 마력 회복이 안 되셨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마왕성으로 돌아가셔서 기력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이대론 위험합니다.”

“위험...해요?”

에리나가 대화에 끼여들었다. 레이넌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덧붙였다.

“2년동안 마력이 차지 않는 다는 것은 마왕님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마력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 상태로 마력이 차지 않는 다면, 마왕성을 통치 하실 힘이 부족하게 되어 머지 않아 신계 회의에서 마왕직 박탈을 결정할 거야. 안 그래도, 미운털 잔뜩 박히셔서 하루라도 빨리 말 잘 듣는 마왕으로 올려 놓자고 하는 분위기인데, 마왕님이 워낙 강하시니 감히 바꾸지는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놈들이니... 힘이 약해지신다면 바로 박탈당하실 게 뻔하지!”

“마왕직에서 물러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마왕이 바뀔 수 있는 건 단 하나야. 소멸. 힘이 약해진 마왕은 신들이 직접 소멸 시키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죽는 다구요?”

“인간의 논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

에리나가 가만히 마왕을 바라봤다. 마왕에게 무언가 말을 할 것처럼 입을 열다가도 꾹 다물고, 다시 열고 다물기를 반복했다. 쉽사리 결정이 서질 않는지 눈동자 속에 혼란이 가득하다. 자책 하는 것처럼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다가도 다시 마왕을 바라보고 이번엔 가슴을 쿵쿵 쳐댄다. 이내 정리가 된 듯 책상을 쾅! 하고 짚었다.

“마왕님, 제발 저희와 함께 가시죠…”

“안 간다고 했어”

마왕이 옆에 서있는 에리나의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았다. 에리나가 마왕의 팔을 치워 내고 양 뺨을 쥐어 잡아 눈을 마주치게 했다.

“...가”

“안 가.”

“가야 돼”

“싫어!”

에리나가 혼내듯이 좀 더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죽는 다잖아! 가! 가서 일단 좀 회복한 다음에 그때 다시…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시 아랫입술을 습관처럼 물었다. 살짝 눌렀을 뿐인데도 이제는 작은 핏방울이 고여 입안으로 흘러들어간다.

“...모든 걸 알게 되면 다시 날 만나러 올까?”

에리나의 회청색 눈동자가 떨렸다. 분명 마음속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렸음에도 아직은 좀 더 생각이 필요했다. 머슨에게서 손을 떼어 멀찍이 떨어진 상태로 등을 돌렸다.

“머슨... 아니 마왕, 내일 가도 돼요?”

“안 돼, 마왕님은…”

“오늘은 일단 가죠, 레이넌님”

“피에르?”

레이넌이 인상을 확 구겼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피에르가 손으로 레이넌을 막은 뒤 마왕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허락해 주시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왕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피에르는 레이넌의 멱살을 잡아 강제로 텔레포트했다. 빛이 튀기고 두 마족의 모습이 한 순간에 자취를 감쳤다.

========== 작품 후기 ==========

*독자님 : 잠깐만녕ㅋㅋ 영혼없는거 에리나가 무서워해서 머슨이 죄다 쫓아낸거로 밖에 안보이는데요?

작가 :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독자님 : 머슴의 부하니까 제2의 머슴으로 에리나가 부려먹나요? 창조경제로 마을을 지키는건요?

작가 : 에리나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부하들이 말을 잘 듣긴할겁니당ㅋ_ㅋ 창조경제로 마을을 지키는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독자님의 창의력에 치얼스

*독자님 : 'ㅋㅋㅋ'를 쓰면 작가가 소환되는 창조경제 얍!

작가 : (비축분이 없어 소환이 불가능 합니다.) 시무룩...

예고 : 곧 씬 나옵니다 ㅋ_ㅋ

이번 편 에리나 시점으로 쓸걸 엄청 후회중입니다 8ㅅ8 츄륵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 (돌을 맞는다. 아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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