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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24화 (24/170)

24편

<-- 4. 우리 그냥 행복하면 안될까요? -->

피에르가 만들어 낸 빛이 세자인 마을 입구에 위치한 산 아래에 뿜어졌다. 일정한 속도로 장작을 패내리던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한적한 땅위에 두 인영이 홀연히 나타났다. 가볍게 발을 딛고 서는 레이넌과 다르게 피에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춤거렸다.

“거리가 꽤 되네요.”

“이정도 텔레포트 가지고 어지러워 하긴”

“얻어 타고 온 주제에 말이 많으시네요.”

공간을 뛰어넘는 텔레포트는 마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마법이었다. 하위마족 같은 경우 고작 백 발자국 이동하는 거리에도 반나절은 마력충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물며 트렌시아에서 세자인까지 마차를 타고 닷 새가 꼬박 걸리는 장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하위마족들 에겐 자살행위다. 고위 마족들 사이에서도 마법에 뛰어나다고 이름난 피에르 이기에 동행자를 한명 붙이고도 텔레포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뭐, 마왕이 보기엔 우스울 정도였지만.

레이넌이 등을 돌려 산을 바라보았다. 처음 오는 장소이니 잠깐 둘러보기 위함이었으나, 강한 이질감을 느끼고 생각보다 오래 눈을 두었다. 피에르가 레이넌의 눈 앞에서 손을 휙휙 내저었다.

“나체로 나무위를 뛰어 넘어 다니고 싶고 그러세요?. 그렇담 당장 마왕성에서 짐 싸들고 나가시죠”

“...피에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레이넌님 이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이 산에, 영혼이 하나도 없어.”

“네?”

피에르가 힐끗 산을 보았다. 정말이었다. 수상할 정도로 영혼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 있지 않았다’라 함은 있었다가 사라짐을 뜻 한다. 곳곳에서 영혼이 깃들여져 있던 미약한 기운이 그 증거였다. 분명 최근에 사라진 것이다. 소멸 되었다면 기운마저 사라졌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천계로 인도 되었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그러기 위해선 천족이 영혼을 직접 데려가야 했는데 여기에선 피에르가 느끼기에 역겨운 천계의 기운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제로 이동됐네요.”

“맞아. 산 속에는 묘지들이 많아서, 아직 인도받지 못한 영혼들이 떠돌아다니기 일쑤지. 게다가 이런 시골이면 더더욱. 사람 송장 치루면 묻을 곳이 이 산밖에 더 있겠어?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영혼이 남아있지 않단 말이야. 그것도 전부 강제로 이동돼서”

“...누가 그런 미친 짓을”

‘영혼 이동’ 이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영혼이 하계 즉, 인간계에서 벗어나 새 안식처로 들어가기 위해선 천계 혹은 마계의 문이 열려야만 한다. 마계야 주로 타락한 영혼들이 끌려 들어오는 식이라 영혼을 직접 받지는 않지만, 혹 지옥행이 아닌 마계에서 살고자 하는 제정신 아닌 영혼들이 가끔 있어, 보편적으로 행하는 절차로 마왕의 결제가 떨어지면 마계의 문이 열린다. 천계 또한 마찬가지다. 문을 관리하는 최고위천족 세 명 이상의 허락이 떨어져야 문이 열리는 것이다.

천계의 경우 천신이 아닌 이상 세명 이상의 최고위 천족이 힘을 합쳐야 했기에 개인이 문을 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이었지만 마계의 경우는 살짝 달랐다.

문을 열어줘도 안가겠다고 떼를 쓰는 영혼이 태반이라 문을 여 닫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제제가 없었다. 일정 마력만 받쳐준다면 문을 열 수 있는 것이었다. 즉, 레이넌과 피에르 같은 마족은 충분히 열 수 있는 자격이 됐다. 그러나 말했듯이 마력 소모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굳이 문을 열고자 하는 마족은 없었다. 심지어 마력 부자로 소문난 피에르 마저 문을 여는 것은 꺼려했다.

레이넌이 미간을 좁혔다.

“...설마 마왕님?”

“도대체 왜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 해보이는 것으로 대신 답했다.

“어찌됐든, 이 시골에 뭐가 있긴 있나 보네요.”

“우선 마왕님의 흔적을 찾자.”

레이넌이 소매를 걷어 붙였다. 레이넌과 피에르가 도착한 곳은 산 아래 라고는 하나, 멀리 보이는 집들에 비해선 지형이 높은 곳이었다. 인간 보다 몇 배는 뛰어난 시력으로, 아래 쪽에 가장 보이는 집을 목표로 잡았다.

“우선, 저길 가보자.”

“...”

‘탁! 쩌억’

“가자, 피에르”

“...”

‘탁! 쩌억’

“가자니까?”

“...어딜요?”

“마왕님 찾으러!”

피에르가 가만히 두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부채처럼 팔랑거렸다. 그리곤 손을 뻗어 검지로 한 곳을 가리켰다.

“찾았는데요”

‘탁! 쩌억’

대륙을 떠나 세상에 존재 하는 것들 중 유일하게 흑빛을 지닌 아름다운 머리칼은 마왕의 상징이었다. 레이넌은 연약하기만 해 보이는 자신의 은발을 증오하면서 마왕의 흑발을 늘 동경해왔다. 한 번만, 저 고고하신 머리를 만져볼 수 있다면... 마왕의 뒤에서서 그의 머리를 올려다 보며 품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눈 앞에 꿈에 그리던 그 흑발의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었다. 인간의 시력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레이넌의 눈에는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맙소사”

그는 반쯤 기절 할 것처럼 휘청이더니, 어느새 등 뒤에서 검붉은 날개를 펼쳤다. 피에르가 채 뭐라고 하기전에 공중으로 붕 뜬 그는 순식간에 마왕의 머리 위에서 날았다.

“버, 벗고계시다니”

상의를 탈의 한 채, 인간의 도구를 들고 나무를 찍어 내리고있었다. 레이넌이 당장에 날개를 접고 마왕 앞에 섰다. 곧바로 피에르가 따라 왔다. 날개짓에 잡풀이 마구 흩날릴 정도로 강한 인기척이었으나 마왕은 장작에만 눈을 둔 채 피에르와 레이넌을 향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 마왕님!”

“피에르바피 유엘 테인드, 마왕님을 뵙습니다.”

피에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예를 갖추자, 우왕좌왕 하던 레이넌도 무릎을 꿇었다.

‘탁! 쩌억’

그러나 마왕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레이넌과 피에르가 슬쩍 옆을 보아 서로 마주봤다.

...뭐지?

한 동안 꿇고 있다가, 레이넌이 용기있게 무릎을 털고 쭈뼛쭈뼛 일어섰다. 마왕이 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허드렛일이다.

‘마, 마왕님이 이런 하찮은 일을 직접 하시다니'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무려 마왕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부하가 멀뚱 멀뚱 서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허락하지 않았으나, 마왕이 쥐고 있는 도끼를 ‘턱!’ 잡았다. 이때 붉은 눈이 마주쳐왔다.

“허억!”

돌이 라도 된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강한 살기에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머리는 당장에 잡고있는 도끼를 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살기를 받고 있는 것은 뒤의 피에르도 마찬가지 였다. 지금 이 상태로 라면 정면을 향해서 대놓고 공격한다 해도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마왕이 직접 살기를 풀기 전까지는 눈동자 하나 굴릴 수 없었다.

“크흑”

점점 몸이 버티기 어려워 피에르의 상체가 무너졌다. 피가 역류 할 것 같은 고통이 내부에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도둑놈들아-!”

“?”

그때였다. 어디선가 여자인간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흐엇! 하아... 하아...”

거짓말처럼 살기가 거두어졌다. 팽팽할 정도로 조여있던 것이 갑자기 느슨하게 풀어지자 숨이 터져 나왔다.

“저리, 안 꺼져?!”

‘붕’

레이넌의 눈 앞으로 무언가 휘둘러졌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내리 친 것이었겠지만, 레이넌이 보기엔 달팽이가 기는 것처럼 느려보였다. 가뿐히 뒤로 물러 인간여자 즉 에리나의 공격을 피했다.

에리나는 텃밭을 가꾸다 급하게 달려 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작은 모종삽을 무기랍시고 들고 있었다. 삽을 쥐지 않는 다른 손을 뻗어 마왕을 자기 뒤로 숨겼다.

“백주대낮부터 강탈이라니, 어디서 온 놈들이야?!”

“강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무엇을 강탈한다는 말인가? 탐낼만한 물건도 없을뿐더러 저 마왕한테서 ‘빼앗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되는 거라고 보는 건가?

“모르는 척이 수준급인데? 머슨 도끼 빼앗으려고 붙잡고 있는 거 내가 다 봤어”

“...머슨?”

마왕은 잠시 에리나를 내려다 보며 묘한 표정을 짓더니, 부정의 긍정의 말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건 레이넌과 피에르 둘이었다. 한 손에 목이 꺾일 것 같은 인간 여자가 마왕을 지켜주는 꼴이라니. 게다가...

“얘가 순진해서 제대로 대처를 못한 건데, 난 다르거든? 포기하지 않을거면... 그래! 덤벼라! 시골의 깡다구를 보여 주마”

“이봐, 인간. 지금 누가 순진하다는 거야?”

경악. 말 그대로 경악이었다. 한 술 더떠 마왕이 슬쩍 에리나 옆으로 붙었다. 급기야 레이넌이 자기 뺨을 철썩 철썩 내리치기 시작했다.

“거짓말”

“반성이 좀 화끈하시네.”

빨갛게 부어올랐음에도 자해를 멈추지 않자 에리나가 당황했다. 오합지졸. 난장판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상황파악이 빠른 것은 피에르였다.

“오해야, 인간. 레이넌님은 도와드리려고 했을 뿐. 도끼에는 관심 없어.”

“어떻게 믿지?”

“우리가 이런 도끼하나 얻자고 시골까지 오진 않았을꺼 아냐?”

“도끼를 뺏어서, 흉기로 사용 할 수도 있는거고!”

“말했듯이 이런 시골에서 인질극 벌여봤자 득 될건 없다고”

“살해가 취미인 싸이코패스라면?!”

저걸 진짜... 욱 한건 피에르가 아니였다. 레이넌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보호 받고 있는 ‘척’하면서 경계를 풀지 않는 마왕 때문에 에리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었다.

“살인을 하려면 지금도 할 수 있지. 도끼 같은건 거추장스러워”

“어?”

피에르가 주위를 살피더니 마땅한 걸 찾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칼이 일렁이고 빛이 모여들었다. 손짓으로 신호 하자 마왕이 잘라놓은 나무 장작 하나가 땅속에 박히더니 이내 뿌리를 내리고 다시 나무로 자라났다.

차, 창조경제?! 에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린, 마법을 쓰거든.”

========== 작품 후기 ==========

*독자님 : 더 독한년이라니..?!! 머슬머슴머슨과 에리나의 머리채 휘어잡는 기술을 믿을래요!

작가 : (머슬머슴머슨 이하 머머머와 에리나가 미래를 대비하여 사이다를 충전중입니다.)

미래의 독자님 : ...사이다라면서!!!(몽둥이)

*독자님 : 으앗! 마침 3일 결제의 마지막날이었는데... 부하와의 재회가 내일이라니ㅠ

작가 : 비축분이 없어서 더 올려드리지 못해 뎨둉합니다 8ㅅ8 ...크아앙(요즘 연참이 안되는 이유는 다 그것이었습니다. 낫 비축분...)

*독자님 : 마왕이 좋아 죽는데~ 부하들이 뭐 어쩌겠어요?

작가 : ㅇㅈ

*레피(레이넌, 피에르) : 어, 엄청난 살기! 크훗!

머머머 : 내 일감에 손 대지 마ㅡㅡ

에리나 : 장작을 이렇게 다 패놨네! 오구 잘했엉!

머머머 : (뿌듯)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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