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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21화 (21/170)

21편

<-- 4. 우리 그냥 행복하면 안될까요? -->

*

불과 한 시간 전에 오색의 꽃을 바꿔 담았던 유리꽃병이 바닥을 구르며 산산조각 났다. 꽃 향을 맡으며 글쓰기를 좋아했던 주인은 꽃병이 깨어져 버렸음에도 그것에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잉크가 쏟아져 종이가 먹으로 물들고 책상 밑으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흥건히 쏟아진 잉크 위로 구둣발이 닿았다 떨어졌다.

“에이씨, 밟았네”

“여전히 칠칠치 못 하시군요 레이넌님”

레이너는 바닥에 구두를 벅벅 긁어댔다. 고풍스러운 융단 위에 보기 싫은 발자국이 남았다. 그러나 카펫의 주인은 레이넌의 무례한 행동에도 한 마디 말도 하지 못 했다. 피에르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이 집의 주인 즉 테론 아비츠의 턱을 들어 올렸다. 끈적하고 뜨거운 것이 피부에 닿자 테론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려왔다.

“다시 한 번 말할게. 에리나 홀든은 어디있지?”

테론은 숨을 헐떡거리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모, 몰라요 정말. 정말로 흐윽... 제발 살려 주세요”

피에르가 곤란한 듯 낮게 한숨 쉬었다. 그리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상관 레이넌에게 말했다.

“이 새끼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요?”

“여자를 밥 먹듯이 죽이니, 더불어 아직 죽지 않은 여자를 포함해서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인 시골 계집 따위의 이름은 기억 못 할 만하지”

겁에 질린 눈동자에서 죽음을 직감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비츠 백작가의 유력한 후계자인 테론 아비츠는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 해 본 것이 처음이었다. 또한 극도의 공포를 맛 보는 것 마저.

“흑! 사, 살려주세요. 제발…! 목숨만은…”

“니 손에 죽어 나간 다른 인간들도 방금 너처럼 빌었겠지?”

레이넌이 카펫에 구두를 비비며 이야기했다. 에리나 홀든에게 편지를 보냈던 테론 아비츠는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한 것과 고어한 것을 취급하는 변태성애자였다. 에리나 홀든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도 간단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처녀를 꼬드겨 수도구경을 시켜 준다고 한 후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그 문턱 사이에 놓였을 때 강간하기 위해서. 여자가 극한의 절망을 맛 보면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갈 때 테론의 성적 흥분감은 절정에 이른다.

테론은 자신이 죽인 수십 명의 여자들 중 누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 할뿐더러, 만난 적도 없는 에리나의 이름을 기억 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이렇게 비는 여자들의 얼굴을 발로 짓이기며 성고문을 하는 게 자신의 유일한 낙이었다.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크펜 아비츠에게 무시 받고 괄시 받는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누군가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 그러나 지금의 그는 자신의 아버지 보다 더한 강자를 만나 손 살갗이 벗겨지도록 빌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좋게 좋게 에리나 홀든만 찾고 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 집에서 피 냄새가 얼마나 진동을 하는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겠더라고”

“게다가 쓸모없게도, 에리나 홀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말이지”

“묶여 있는 영혼도 족히 스물은 될 것 같은데, 너 오늘 여기서 뒤지면 아마 지옥이라도 가고 싶을 거다”

“동의”

피에르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니가 어찌 되든 난 알바 아니고’ 라는 메시지가 더 강열했다. 테론은 이미 숨이 멎어 바닥에 피를 적시고 있는 자신의 호위기사들을 보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형편 놈들 같으니라고! 여기서 나가면 네 놈들 가족의 목은 온전하게 붙어 있지 못 할 거야!’

테론은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러나 시리도록 냉정한 말이 머리위로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는 저자세로 바뀌었다.

“조금 덜 아프게 죽고 싶으면 에리나 홀든을 찾아와”

“차, 찾아 오겠습니다. 당장!”

피에르가 붙잡은 턱을 놓았다. 테론이 이마를 땅에 박으며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빌고 또 빌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구걸이었다.

“피에르, 설마 살려두려는 건 아니지?”

“에리나 홀든 찾을 때 까지는요”

“미쳤어? 저 새끼 완전 악질 중에 악질이야. 영혼들 울음 소리 때문에 귀가 멀겠다 아주. 빨리 죽여서 던져 줘 버리자고”

“의도는 역겹지만, 여자 찾는 데는 전문 이예요. 뭐, 누가 잡아가도 신경 안 쓸 평민여자들 정보는 다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러니까 수도도 아닌 다른 곳에서 까지 여자를 납치할 수 있었고.”

“네, 네! 시간을 주시면 바로…크헉!”

“쉬, 벌레는 얌전히 머리나 박고 있어”

피에르의 발이 테론의 머리를 눌러 밟았다. 이마로 바닥이 뚫릴 듯 한 세기였다. 테론은 머리가 깨어질 것 같은 고통에도 두려움에 잇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초인적인 힘을 이용해 눌러 참았다.

“흐음... 좋아, 그럼”

레이넌이 팔을 쭉 뻗자 방 안의 모든 가구가 무너져 내렸다. 책장과 책상, 의자는 말 할 것도 없고 벽과 천장에 빼곡이 새겨져 있는 금박 장식들과 등이 켜져있는 샹들리에 까지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궁!’

자욱하게 먼지가 피어 올랐다. 피에르가 손등으로 코밑을 가리고 미간을 좁혔다.

“무슨 괴상한 짓입니까?”

“그냥, 대신 화풀이 정도”

“그 정도로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레이넌 님은 참 뇌가 청렴결백 하군요”

“너 내가 상관 인 걸 자꾸 잊는 듯하다?”

“에이, 설마요. 이렇게 존경해 마지 않는데요”

‘존경’ 부분을 이야기 할 때 피에르는 뻐끔 하품을 했다. 레이넌은 뒤에 있어서 미처 보지 못했지만. 레이넌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로 테론의 먼 발치에서 그에게 말을 건 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아니고, 협박 및 통보를 하기 위해서다.

“4일 준 다. 그 안에 에리나 홀든을 찾아. 반드시. 나는 그 이상을 기다려 줄 만큼 자비롭지 못 해서 말이야”

“이미 4일이나 준 시점에서 미련할 정도로 물렀다고 생각하는데요?”

“자꾸 토 달지 마 피에르”

“물론이죠. 야, 인간. 우리 상관님이 말이야. 공과 사 구분 못하고, 막무가내에 몰상식하긴 하지만 고문 하나는 내가 인정 해. 니 입에서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 나오기 전에 찾는 게 좋아”

“자꾸 욕하는 것 같다 너?”

“어휴 설마요”

피에르가 테론의 머리에서 발을 떼고는 레이넌을 향해 걸어갔다. 겨우 숨통이 트인 테론은 욱신 거리를 부여잡고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알 수 없는 이야기로 둘이 투닥거리다가 한 순간에 둘의 시선이 동시에 테른에게 향했다. 테른은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었다.

“4일이야. 에리나 홀든.”

“네! 무슨 일이 있어도…!”

반사적으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말을 끝 마치기도 전에 둘의 모습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홀로 남은 테론은 다 무너져 버린 자신의 비밀 공간과 무참히 살해당한 호위기사들 틈에서 멍하니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에리나...홀든”

그 계집이 누구 길래?

빠득

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

으윽! 죽겠다. 내 평생 이런 근육통은 처음이다! 내가 초등학교 첫 수련회에서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침대 위에서 산송장이라도 된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굉장히 오래 잠들었던 것 같았는데, 역시나 머슨은 내 옆에 없었다.

아 목말라

“머... 머스흔...”

젠장, 목소리도 안 나온다. 갈증이 심해져 오는데 몸은 뻐근해서 움직 일 수 없다. 이대로 죽는거 아니야? 강제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문이 삐걱 하고 열린다. 머슨이다!

“야...나... 물”

목소리가 쉬어 갈라져 나온다. 머슨은 일을 하고 왔는지 역시나 상의를 훌러덩 벗어 던지 채 였다. 그가 날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왔다.

“무울..”

물좀 다오... 물 좀.... 내 애타는 마음을 들었는지 머슨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드디어 눈치 챘구나.

“흡!”

젠장! 이게 아니라! 키스가 아니라!

머슨이 다짜고짜 입술을 부딪혀왔다. 어젯밤 날이 새도록 나눴던 행위 때문에 이미 입술이 퉁퉁 부어 아플 지경이었는데 그 위에 또 입술을 겹쳐왔다. 그러나 부은 건 나뿐이었는지 머슨의 입술은 여전히 매끈하기만 하다. 그의 타액이 닿으니 신기하게도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다.

“으음”

잠시 몽롱해져 그의 키스에 호응할 뻔 하다가 고개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그를 밀어냈다. 어후, 이대로 더 진도가 나갔다간 최소 복상사다. 머슨의 입술은 떨어졌으나 우리 둘의 이마는 딱 붙어 있었다.

“무울...”

내가 힘겹게 이야기 하자 머슨이 그제서야 알아차린 듯 서둘러 부엌으로 달려갔다. 겉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물컵을 들고 오자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빨리 줘! 디지겠으니까.

그러나 머슨이 날 약올리는건지 그것을 한 입에 삼켰다. 아니... 저자식이... !

화를 내기도 전에 입술이 또 다시 내려온다. 엄지로 내 턱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하곤 차가운 물을 밀어 넣었다. 삼키지 않으려 해도 자동적으로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황홀하다.

“...더”

내가 말하자 머슨은 또 다시 물을 입에 머금고 나에게 넣어주었다. 몇 차례 계속 하니 어느새 컵은 바닥을 들어냈다. 갈증이 사라졌다. 그러나 머슨의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 밀어 넣어 줄 것도 없는데 혀가 자꾸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함부로 침입한 머슨의 혀를 이로 살짝 아플정도로 깨물자 머슨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타고 흘러들어 왔다.

“...까불지 마”

나는 머슨의 혀를 밀어 내고 입을 모아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 뒤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은 하기 힘들어.

머슨이 아쉬운 듯 쳐다 보았지만,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는지 저도 그만 몸을 일으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보려 몸을 뒤척이는데 으윽... 아래가 찌릿 하고 아파왔다. 그리고 어제의 일이 생각나자 온 몸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열이 올랐다.

...그래 나 정말 쟤랑 잤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다시 어제의 일이 생각나니 부끄러워졌다. 몸이 좀 괜찮았더라면 이불을 백번은 찼을 것이다. 머슨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평소보다 더 진득해진 느낌이다.

“에리나, 아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산에서 무리하게 움직이고,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박아대는 누구 때문에 말도 못할 지경이지. 눈을 새초롬하게 뜨자 미안했는지 내 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뻐근함이 가신다.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 하는거 난 가만히 눈을 감고 머슨의 안마를 즐기기 시작했다.

“에리나”

“우응”

“이젠, 난 에리나가 없으면 정말 안 돼”

“웅”

“처음엔 호기심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호기심 같은 거.”

먼 소리야. 가끔 머슨은 이해 할 수 없는 소리를 혼자 내뱉곤 했다. 자기는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앞뒤 맥락 다 잘라 먹은 상태에서 듣는 나는 이해 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그럴 땐 그냥 알았다고 해 주는 게 답이지.

“웅”

“에리나”

그가 낮게 불렀다. 딱히 뜰 생각 이 없었는데 누가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듯 절로 눈이 떠진다. 눈 안에 오로지 머슨 만이 들어 왔다.

“에리나가 알던 내가 아니여도, 넌 내 옆에 있어야해.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명령이었다.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이쯤 되면 피에르가 공 (응????)

독자님 : 게이둥절???

*독자님 : 머슨, 머슬, 머슴! 진짜이름이 뭘까요? 키듀키듀

작가 : '케일하르츠 블란 페리어 로덴하리어' 입니다. (작가도 풀네임 까먹어서 찾아보고왔다)

*머슨 : 에리나, 항상 내 옆에 있어.

에리나 : 항상 아래에 깔려 있는 것 같은데?

작가 : 그럼 이번엔 에리나가 위로...(도망)

*선작,추천,코멘,후원쿠폰 감사합니다 〉〈

wild chick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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