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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8화 (18/170)

18편

<-- 3.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을까요? -->

작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약초는 모습을 꽁꽁 숨긴 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파티 당일 날 까지 약초는 구할 수 없었다. 내가 했었더라고, 헛수고를. 불편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파티 준비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뜨거운 볕 아래서 생생하게 보이기 하기 위해 물기를 머금은 꽃들이 저마다의 향을 내며 화사한 길을 만들었다. 꽃 길을 따라 주욱 걸어오면 둥근 테이블들이 감각적으로 놓여있었다. 아직 음식들이 나오진 않았지만 곧 얼마지나지 않아 세자인에서 보기 드문 고열량의 단백질 음식들이 내어질 것이다.

촌장님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기에 밖이 소란스러움에도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였다. 아니, 애초에 알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난 조심스럽게 촌장님 집 문을 열었다. '끼익-' 나무문이 부딪히는 소리마저 숨을 죽였다.

숨만 쉬어도 땀이 날 지경인 여름날인데도 촌장님의 집은 조금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식사도 안하셨네"

아침에 만들어 놓은 음식이 그대로다. 스프 다 식었겠다. 발을 옮겨 촌장님의 방문 앞에 섰다. 슬쩍 열린 틈 사이로 촌장님이 힘없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보청기를 빼놓으셨는지 걸음소리가 바닥을 울렸음에도 촌장님은 미동이없었다. 그저 돌아 누운 허리가 느리게 들어올랐다 내려가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체닌이 온다고 상의탈의 까지 하는 열의를 보이며 요가까지 하셨던 분이...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리고 지난 3일 동안 열심히 산에 올랐던 내 모습이 겹쳐왔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 보자. 아직 파티 시작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불꽃이 이 파티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그것이 쏘아올려져 제 빛을 내려면 해는 잠시 비켜주어야 했다. 즉, 저녁이나 되어야 파티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

치마를 걷어부치고 촌장님 집에서 나와 파티장을 성큼성큼 지났다.

"에리나"

"어, 머슨"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사이에서 어떤 불꽃을 쏘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과 구상을 듣고 있던 머슨이 내가 오자 자리를 이탈했다. 뒤이어 머슨을 부르는 소리가 득달같이 따라 붙었다. 불꽃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머슨은 순식간에 마을의 복덩이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 중엔 생전 불꽃을 처음 보는 분들도 있었고, 년 마다 열리는 황제의 탄신일에 수도에서 운이 좋게 구경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됐든 불꽃이 세자인에서 아주 보기 힘들다는 것은 일맥상통했다. 촌장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인들도 불꽃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가 조금씩은 있는 듯 했다.

“그 새를 못 참고 와이프한테 가는 거여?”

“젊은 새댁 오늘은 좀 봐줘. 불꽃 쏘아 올릴 라믄 정해야 할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여”

“그려! 나는 요로코롬 예쁜 꽃 모양이 좋은디”

“아지매 볼라고 쏘아 올린다요?”

“어메? 나는 말도 못하는가?”

“꽃 보다는 그냥 팡! 팡! 정신없이 쏘대지는게 낫제”

“젊은 신랑, 뭐가 낫는가? 꽃이 아무래도 더 낫제?”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머슨의 등을 살짝 밀어 보냈다. 머슨이 내가 미는 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러나 고개를 자꾸 돌려 미련이 가득 남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빨리 가 봐.’

나는 코를 찡긋해 보이며 어서 가라고 손짓 했다. 머슨은 끝까지 나를 바라보다가 레테 할머니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꽃모양 불꽃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하는 수 없이 시선을 떼었다.

오늘은 혼자 산에 올라야겠네.

산 쪽으로 향하자 마을의 북적거림이 잠잠하게 귓가에서 멀어졌다. 땅에 시선을 꽂은 채 약초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기필코 찾는다. 반드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듯 했다. 자잘한 나뭇가지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난 날렵하고 거친 손동작으로 나뭇가지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 무림고수 같아.

얼마나 오랫동안 돌아다녔냐면, 처음에는 다 똑같아 보이던 풀들이 이제는 구분이 되어 보일 정도다. 얘 아까 저기도 있던 애인데? 엇, 넌 처음 본다. 안녕?

촌장님이 약초를 먹고 기운을 차리실지 어떨지는 확실한 게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냐고? 음... 그건 내 양심과 촌장님에 대한 미안함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 입장에서 체닌은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족속이지만. 촌장님에게 있어선 단 하나뿐인 혈육이며 애지중지 키워 놓은 보물 같은 손녀이다. 그런 애의 머리를 쥐 뜯고 험악한 말을 쏟아부었으니... 촌장님은 억장이 무너지셨을 거다. 물론, 내 행동에 후회를 하진 않지만. 촌장님만 두고 생각해 보자면 무척이나... 죄송하다...

그래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미련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방법일진 모르겠지만, 예전에도 말했듯이 난 생각보다는 행동이 먼저다. 말하자면 난 햄릿보다는 돈키호테다.

“으으윽”

허리가 아파왔다. 맹렬히 수색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잡아 반대로 꺾었다. 하늘을 정면으로 바라 봤음에도 눈이 아프지 않은 걸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나보다.

뻐근하지만 시원한 복합적인 감각에 몸을 맡기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작은 바람이 불었다. 오, 시원해.

그때 코 위로 가볍고 복실한 무언가가 닿았다. 끄악! 벌레?! 반사적으로 경기를 일으키며 코를 퍽퍽 쳐댔다. 음... 얼얼하군

분명 빨개져 있을 코를 붙잡으며 얼굴 밑으로 하늘 하늘 한 것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날, 놀라게 하다니 솜씨가 제법인데? 정체나 보... 응?

“약초다!”

타원형에 푸른 솜털을 뭉쳐놓은 듯한 그것은 바로 아쟈아주머니가 말씀한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게 왜 날아다녀?! 솜털 밑으로 척 보기에도 가늘고 비실해 보이는 뿌리가 맥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건 뭐 뿌리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잔털 수준이다.

어찌됐든 난 약초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손을 뻗었다. 넌 내꺼야!

휘잉-

그러나 약초가 나에게 윙크를 하듯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 잡아 봐 어서.

“기다려!”

홀린 듯 약초를 따라 달렸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손아래 에서 쥐새끼처럼 빠져나갔다. 혹 세게 붙잡았다가 쓸 수 없게 될까봐 하는 내 걱정도 약초를 쉽게 잡을 수 없는 데에 기여했다.

“헉! 헉!”

으으 저질체력! 숨이 차 목이 아픈 지경까지 다다랐다. 몸은 지치는데 약초는 잡히지 않자 짜증이 솟구쳤다.

“씨발, 좀 멈춰 헉... 헉...”

그러자 약초가 욕을 먹어 분이라도 난 듯 더 세차게 움직였다. 미안! 미안! 약초님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구질구질 하게 빌자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뻗은 내 손위로 약초가 얌전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잔잔한 여름바람은 멈추지 않았으므로 다시 잔털 같은 뿌리가 움찔했다. 나는 놀라 황급히 그것을 두 손으로 둥글게 감싸며 쥐었다.

“잡았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드려라 열릴것이다! 음하하하! 서울에서 김서방을,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은 것이다. 바로 내가. 뿌듯한 마음을 이길 수 없어 어깨가 한껏 위로 올라갔다. 챙겨온 주머니에 약초를 담고 단단히 줄을 당겨 입구를 동여 메었다.

“그럼 이제 촌장님한데 가져다 드려 볼…”

까?... 했는데, 날이 어두웠다. 눈에 뭐라도 낀 건가 싶어서 벅벅 비벼봤지만 사위가 캄캄하다.

“어...?”

여긴 또 어디지?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방향감각도 상실했다.

바삭-

움찔. 한 발자국 떼자 나뭇잎 밟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올라갔던 어깨는 움츠려 들고 식은땀이 흘렀다.

군데 군데 달빛이 흘러 들어와 완연한 어둠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치 저 빛 사이로 무언가 튀어 나올 법한.

푸드덕-

“으아악!”

씨발! 깜짝아, 뭐야?! 총알이 튕겨 나가듯 한참을 달려나갔다. 숨이 찰 때쯤 다리가 멈췄다. 가만 생각해보니 새의 날개짓 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안봤겠지? 어휴 밤새 이불 찰 뻔...

애써 웃긴 생각, 별것도 아니다. 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1분을 가지 못했다. 의지 할 곳 없는 산 속을 홀로 걷고 있자니 발이 욱신 거리며 아파왔다. 잠시 달 빛 아래에 멈춰 서서 신발을 벗으니 온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하아...”

이 상태로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릴까? 그런데, 그 사이에 귀신이라도 나오면... 바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귀신은 없다. 없어.”

마왕은 있는데...?

“으아아아! 헙!”

소리 지르자 주위에서 스스스! 소리와 함께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심장이 빨라졌다. 벗어나고 싶을 정도의 두려움이었지만, 막다른 길이라 뚫고 갈 수 도 없어 절망감으로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이 원하고 제가 원하고 머슨이 원하는 그 장면 곧 나옵니다!

*독자님 : 머슨이 자꾸 머슴으로 읽혀요!

작가 : 훗, 계획대로

*노블과 일반편으로 동시에 연재해보는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너무 감사드려요! 소설의 원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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