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 2. 굳이 그녀를 환영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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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분명히 여기야! 오래되긴 했지만 희미하게 마왕님의 마력이 느껴져.”
까악- 레이넌의 은발을 헤집으며 낮게 날던 까마귀가 푸드덕 거리곤 날아갔다. 피에르는 주머니에 단단히 꽂은 양손을 빼지 않은 채 “아, 그렇군요”만 기계적으로 반복 할 뿐이었다.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로 강한 마력을 그 당시에 사용하시고, 뿅 사라지셨지. 도대체 어디로! 왜! 피에르, 나한테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베넌에 굶주린 짐승이 아닌 타인의 발길이 닿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불과 2년전 에는 사람의 발길이 매일 같이 닿아 길을 내주었던 대지가 황량하게 변하여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것 참 놀랍군요. 그래서 뭘 어떻게 마왕님을 찾겠다는 거예요?”
“고작 마을 하나 없애는데 마왕님이 그 정도로 마력을 개방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그때 엄청 빡치셨으니까 가능 할 거라고 봅니다만?”
“대충 넘겨짚지 마 피에르!”
레이넌이 피에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이마 위로 붉어진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잔뜩 흥분해 있는 레이넌에 비해 피에르는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듯 한 무표정이 였다.
“마왕님이 제멋대로에 자비가 없고, 폭군이시긴 하지만 이렇게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할 정도로 감정을 주체 못하시진 않아!”
“우와- 방금 한 말 그대로 마왕님한테 얘기해도 되죠?”
“너 이자식 끝까지!”
레이넌이 거칠게 멱살을 풀었다. 피에르는 잠시 휘청 거렸으나 ‘어이구’ 라고 짧게 얘기할 뿐, 깃털 처럼 가볍게 몸을 틀더니 손쉽게 중심을 잡으며 흥미 없는 눈으로 레이넌을 바라보았다. 물론, 양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상한 게 있어. 이건 너도 우습게 보지 못할 거야.”
긴 대답 없이 눈썹을 올리는 것만으로 그의 말을 경청 하고 있다는 것을 티냈다. 레이넌이 허리를 숙여 바닥의 흙먼지를 쓸어 올렸다. 손가락에 잠시 고여 있던 것이, 가벼운 입바람 만으로 후우- 의지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가던 방향을 놓치고 마침 역풍이 불어 레이넌에 눈에 매섭게 내려 앉아버렸지만.
“앗 따거”
“그러게 폼은 왜 잡습니까?”
벅벅 비비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레이넌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미소 지었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 땅에 물든 인간의 피가 몇이라고 생각해?”
“베넌이 지도에서 사라졌으니 125명 이겠죠”
레이넌이 성큼 피에르 앞으로 걸어갔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125명. 베넌에는 총 125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어. 하지만 마왕님이 다녀 간 이후 이 곳에서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지. 그런데, 이 곳의 시체가 몇 구 인 줄 알아? 바로 124구 라는 거야.”
“그 한명이 공교롭게도 그 날 잠시 마을을 떠났다던가 하는 가능성은요?”
“마족의 신체를 섭취하고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였어. 인간 놈들 입장에서 그 역사적인 날에 마을을 비운다고? 게다가 도망간다고 쳐도, 과연 우리 마왕님이 가만히 놓치고만 계셨을까?”
“절대 아니죠. 괘씸죄로 마왕성 지하에 영혼이 묶인 채 로 하루에 몇 번은 뼈가 갈리는 고통을 맛 봤겠죠. 시간의 흐름도 모르고 평생.”
레이넌이 안 주머니에서 반듯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피에르 에게 내밀었다. 그의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가 누군가를 지목했다.
“에리나 홀든”
“누구죠?”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해당하지 않은 인간.”
피에르가 종이위에 쓰여져 있는 에리나의 이름을 꽤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보았다.
“흐음- 한낱 인간따위 에게 마왕님이 납치 될 거란 멍청한 생각은 안하지만,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군요. 마왕님과 함께 사라진 인간 이라니”
“아니면 약점이라도 잡히신건 아닐까?‘
푸흡! 보기드문 피에르의 감정표현이였다.
“그 분에게 약점이란게 존재 하기는 해요?”
“...세르데벨라 성녀 같은 예외도 있지”
“...”
여유로운 자세로 일관하던 피에르가 종이를 품 속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마왕 케일하르츠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인간여자. ‘세르데벨라 르네‘. 그 관심이 사랑인지는 피에르 저로써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왕은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모하게라도 관여한다는 점이었다. 피에르는 이 땅과 하늘을 넘어서 세상 저편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것 보다도 전능하고, 냉철하며, 감히 넘볼 생각 조차 하지 못하는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지닌, 존경받아 마땅할 마왕님이 그깟 인간여자 하나 때문에 움직인 다는 것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즉, 세르데벨라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그 인간 계집이 마왕님의 걸림돌이 될 줄 알았어.’
“그래서, 그 여자의 흔적은 좀 찾았습니까?”
“에리나 홀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알아봤는데, 천애고아더군. 베넌 마을에 버려져 있는 걸 늙은 양초제작자가 데려다 키웠어.”
“그 양초제작자는 죽었을 테고, 결국 실마리가 하나도 없다?”
“당연히 죽었지. 애초에 마족을 소환해서, 마지막으로 그의 목숨을 끊은 게 바로 그 양초제작자 였는데.”
“볼만한 죽음이었겠네. 어쨌든 죽어버린 건 죽어버린 거네요.”
탁한 하늘의 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했는데 어느새 머리 위로 무거운 먹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레이넌의 자신의 뺨에 떨어진 빗방울을 엄지로 닦았다.
“그래도 단서는 있어.”
“그럼, 빨리빨리좀 말해주실래요? 비 맞는거 저 굉장히 싫어합니다.”
“베넌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곳에 배달을 한 우체부가 있더군. 마침 에리나 홀든에게 온 편지도 있었고 말이지. ‘테론 아비츠’ 이라는 자가 에리나 홀든과 알고 있었어. 편지 내용은 대충 ‘내가 사는 곳 진짜 좋으니 놀러 와라‘ 정도?”
“거기가 어디죠?”
“수도 ‘트렌시아’”
인간의 손길이 거두어진 베넌에도 여름의 거센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제대로 헛다리 짚은 마왕성의 덤앤더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