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 2. 굳이 그녀를 환영해야 할까요...? -->
통밀빵을 먹는 것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부족한 잠을 채우고 있었다. 키스해달라고 조르는 머슨에게 빽 큰소리를 쳤더니 시무룩해져선 내내 툴툴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졸렸는지 내 어깨에 이마를 묻으며 금세 단잠에 빠져들었다. 새액-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며 꿈도 꾸지 않은 채 편안한 잠을 청했다.
‘똑 똑’
이 노크소리만 빼면. 포기 하지도 않고 끈질기게 울리는 노크소리에 먼저 눈을 뜬 건 나였다. 창 밖을 보니 해가 서쪽으로 좀 더 기울었다. 체감상 10분 잠든 것 같은데 두 시간 가량 누워있었나 보다. 그러나 도무지 일어날 힘이 나질 않아 팔꿈치로 머슨을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 봐, 누가 왔어”
“누구?”
머슨이 풀린 눈을 하며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낮게 잠긴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이야기 하자 으으 소름이 끼쳤다. 난 머슨의 질문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나도 몰라.
머슨이 아무렇게나 휘날려 있는 내 머리칼을 귀 뒤로 곱게 넘겨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슨이 사라지자 사용공간이 넓어진 침대로 몸을 굴렸다. 그의 온기가 따뜻했다.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올리며 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에 빠져 든 건 아니었다. 귀는 쫑긋 열려 바깥상황을 알고자 했다.
‘끼익’
머슨이 문을 열었나보다.
“어머! 정말 이런 곳에서 살고 계셨네요. 할아버지한테 여쭤봤는데...”
어딘가 재수없는 목소리... 그래 체닌이구나. 머슨의 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찰나의 정적이 스치더니 체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무셨나 봐요? 풀린 눈이 섹시... 가 아니라 매력 있으시네요!”
“...”
“옷, 입어 봤는데 어때요?”
“...”
“할아버지는 천사같다고 하시던데 정말 그렇게 예뻐 보이나요?”
“난 천사 별로 안 좋아해”
“아, 그럼 요정?”
이 무슨 아무 말 대잔치야. 결국 죽을 것 같은 피곤함을 겨우 물리치고 상체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껌뻑- 눈 하나 감는 것도 슬로우모션이 걸린 것 같았다. 아 개피곤해!
“좀 들어가도 돼요?, 이곳에서 비슷한 나잇대 분을 만난 게 아주 오랜만이여서요.”
아니야. 쟤 삼천 살 넘었어. 상상 이상으로 할아버지라고.
체닌이 안으로 들어왔는지 또각 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야 들어온다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떡하냐!
“으휴!”
결국 침대에서 일어섰다. 차 라도 먹이고 좀 이야기 해주다가 보내야지.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는데 체닌의 말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이런 시골 생활 지겹지 않으세요?”
두근
뻔한 질문이었음에도 나는 예상치 못했다. 생각해 보면 머슨의 의사는 일절 물어보지도 않고 내 뜻대로 세자인에 와서 내 뜻대로 집을 얻고 시골생활을 시작한 셈이었다. 머슨이야 기억을 잃어서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었던 지라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그래, 한번도... 단 한번도 머슨이 이곳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질린다고,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보내 줘야지. 그런데 어디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인데. 그리고 난... 세르데벨라와 머슨의 만남은? 그때 까지 난 무사하게 생명부지 하고 있어야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머슨이 싫다고 하면...
이기심.
그 단어가 심장을 찔렀다.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슨이 세르데벨라와 만나면 예전의 사랑했던 그 감정이 다시 떠오를지도 몰라 그럼 나도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이것이 바로 원작의 흐름이니까.
구차한 합리화와 알 수 없는 심장의 욱신거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함께 있으니까 좋아”
머슨이였다.
“네?”
“어디든, 옆에 있을 수 있으면 좋아”
메말랐던 입술에 수분이 도는 것 같았다. 지하 너머로 까지 떨어졌던 심장이 고개를 들고 나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야. 싫어하지 않아 줘서.
일단은 이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그리고 씁쓸한 생각이 뒤를 이었다. 세르데벨라를 만나게 해 줄게. 너의 자리를 되찾아 줄게.
그때가 되면 내가 떠나도 넌 아파하지 않을 수 있겠지.
“앗, 아니 저... 갑자기 그렇게 말씀 하시면...”
체닌의 말에 기쁨과 더불어 당황이 묻어 나왔다. 야, 너보고 한 말 아니거든? 김칫국 뱉지 그래?
“후,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 다면 어쩔 수 없죠. 전 유혹에 약한 여자랍니다.”
말투에 끈적한 색기가 어렸다. 드르륵-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났다. 어? 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열었다.
높은 구두를 신고 머슨의 목에 양 팔을 감은 채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체닌이 큰 소리에 행동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봤다.
“...대박”
불륜의 현장. 머슨 말고 저 체닌이... 쟤 유부녀니까.
“머슨?”
그를 불렀다. 왠지 오싹한 기운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머슨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닌 것 같았다. 저 눈동자... 세로로 길게 변해 피를 뿜고 있는 것 같았다. 놀라 눈을 꽉 감았다 뜨니 언제 그랬냐는 듯 순둥하고 몽실한 예의 그 멍뭉이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머슨은 체닌을 밀어 내고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더 자지”
“소란스러워서 잠시 나와봤어”
체닌이 날 위아래로 쳐다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웃음지었다.
“뭐야, 결혼 했어요?”
그러는 너는
내 시선을 알아 차린 체닌이 잠시 딴청을 하더니 부채를 촤악- 펼치고 반쯤 얼굴을 가렸다.
“ 늦어서 이만 돌아가 볼게요”
...여기 온 목적이 뭐야? 난 그녀를 애써 붙잡지 않았다. 체닌이 떠나고 문이 닫히자마자 머슨이 다급하게 입을 맞춰왔다.
“흐읍!”
입술 뺨 턱 목 가슴 까지 삼킬 듯 진한 입맞춤이었다. 평소 이렇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무작정 입을 맞출 때면 화를 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입술에 호응 하며 팔로 목을 감아 그를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그때까지 내 정기를 마음 껏.
========== 작품 후기 ==========
혼란스러운 에리나. 너 그거 사랑이야
우리의 체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선,추,코 보고 아침에 기절할 뻔 했네요ㅠㅠ 벅찬 마음에 짬내서 한편 더 올리고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