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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5화 (5/170)

5편

<-- 1.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해가 저물기 직전이었다. 촌장님한테 청소 도구를 빌려와 곧 바로 시작했으니 거의 4시간은 청소에만 매달렸다. 그럼에도 전부 치우지는 못하고 대충 오늘 잠자리에서 먼지를 퍼먹지 않을 정도로는 되었다.

후... 내가 내 방 청소도 이렇게 안했는데.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청소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왕이 놀랍도록 잠잠한 것이 살짝 의아했기 때문이다. 몰래 훔쳐 보고 있을 줄 알았더니...

문을 열고 나가자 찬 공기가 시원하게 땀을 식혀 주었다. 후. 기분 좋게 그것을 맞고 있는데 마왕이 바로 그 앞에 서있었다. 허리에 양 팔을 척 올리고 망토는 어디에다 팔아 먹었는지 검은 와이셔츠를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묘하게 섹시하네. 아니아니 감상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좀 치웠어요?”

기대는 안하지만. 그러나 마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 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응? 뭐 좀 했나 본… 아니 잠깐!!

외벽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난 고개를 도리질 치며 어버버 소리만 내었다.

“이, 이봐요 마왕씨 지금 뭘...”

먼지투성이가 된 내 얼굴을 벅벅 비볐다.

“열심히 했다 칭찬해줘”

“칭찬은 얼어 죽을!”

아늑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그야 말로 그로테스크 그 자체. 아주 기괴한 마왕의 성으로 둔갑해 있었다.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흡사 도깨비의 형상을 한 맹수의 머리가 정문에 박혀 있고 어딘가 어긋난 구체관절 인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칠을 했는지 검붉게 변한 벽면에선 알싸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욱- 미적 감각을 의심하게 만드는 저 눈알 장식 들은 또 뭐야?

“마음에 안 들어?”

“당장 다 치워 전부!”

버럭 화를 내고 집 밖을 나섰다. 어제의 그 장면들이 순간 떠올랐다. 피를 뿜으며 생명이 꺼져가던 무수한 사람들. 토악질이 올라왔다. 더 이상 그것들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재빨리 등을 돌리고 언덕 아래로 달려 나갔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목구멍 안으로 찬공기가 들어차자 아주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저것들이 다 치워질 때 까진 도저히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음으로 빌렸던 물건들을 다시 돌려주고 이불도 좀 얻어 올 겸 촌장님의 댁으로 향했다. 일부러 발걸음을 천천히 하였다. 촌장님은 남는 이불이 많다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이 쌓아 주셨다.

“헉, 엄청 힘드네”

팔 힘이 풀려 이불을 놓칠 즈음 이불의 무게가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다 치웠어.”

“...벌써?”

“응, 칭찬해줘”

답하지 않았다. 해가 넘어 갔다. 은은한 달빛의 도움을 받아 집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치웠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외벽이 깔끔해 졌다. 덤으로 이끼와 넝쿨들도 사라진 채였다. 뭐, 괜찮네.

언제 또 그것들을 다 치웠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집으로 들어가 이불을 깔았다. 허름하긴 했어도 방이 3개나 달려 있는 널찍한 집이였으므로 마왕방 하나 내 방 하나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불을 깔고 눕자 마자 마왕은 내 방으로 쪼르르 달려 들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마왕의 옆구리를 슬쩍 밀었다. 그러자 칭얼대며 나에게 더 가까이 붙어 왔다. 왜이래?

“어허”

입술이 뾰루퉁 하게 튀어나온다. 짜식 귀엽긴. 어제의 그 마왕이 맞나 의심이 들 지경이다. 슬쩍 웃자 다시금 달려든다. 이번엔 아예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싼 채였다.

“불편해!”

확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마왕은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인가 마왕을 너무 편하게 대한거 아닌가? 명색이 마왕인데...

하며 얼굴을 돌려 바라보자 마왕이 내 머리칼을 한 움쿰 쥐고 코를 들이 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딜봐서...?

영락없는 대형견이다.

마왕을 내버려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괴한일의 연속이라 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미루어지고 미루어지다 드디어 지금에서야 오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일단, 내가 떨어진 소설의 시간대는 극 초반부다. 베넌 대학살이 바로 어제 벌어졌으니까. 마족의 신체를 인간이 섭취하면 마력이 생겨남과 동시에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그의 몇 십배 까지도. 마력이든, 수명이든 간에 욕심에 눈이 먼 인간들이 마족을 소환한 뒤 떼로 달려들어 하급마족 하나를 잡아 잡수셨다. 그러나 운 없게도 그 마족은 케일하르츠가 어여뻐 하던 마족이었다.

꼭지가 돌아버린 케일하르츠는 그 마을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 따윈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버렸다. 그러나 그 마을에선 성녀 세르데벨라의 친오빠도 마족의 신체를 먹고 케일하르츠에게 목숨을 잃었다.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세르데벨라가 케일하르츠를 증오하고 밀어 내기 시작했다. 뭐, 물론 그의 치명적 매력에 빠진 세르데벨라와 케일하르츠가 수차례 몸을 섞는 일도 자주 등장하지만. 하여튼 그게 앞으로 3년 후의 일. 즉, 지금은 아직 여자주인공과 재회하지도 않은 극 초반이라는 것이다. 난 그 성녀 세르데벨라에게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녀는 차원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이 세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도 훌쩍 훌쩍 떠날 수 있는 힘. 때문에 성녀 세르데벨라는 현자라고 불릴 정도로 박식했다. 세르데벨라 라면 분명히 뭔가 알 고 있을 거야.

뭐, 지금 잠들었다가 눈 떴는데 내 방이면 완전 만만세고.

그런데 지금 내 허리를 타고 스믈스믈 기어 올라오는 이 나쁜손은 뭐지? 난 마왕의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칭찬 안 해줬어”

“오구 잘했어”

귀찮아. 건성으로 대답하자 크릉- 거리는 소리가 났다. 진짜 개 아니야?

“윽 무거워!”

마왕이 내 몸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턱을 한손으로 단단히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칭찬”

적안이 형형한 빛을 띄었다. 잠시 그 눈에 홀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 거리고 있을 때 목 위로 뜨거운 숨결이 퍼부어 졌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목의 옆선을 따라 올라갔다.

“읏”

조르는 것이었다. 뭉근하게 피어올라오는 감각에 목을 도리질 쳤다. 아프진 않았지만 단단하게 잡힌 턱으로 인해 야릇한 느낌을 그대로 받아 낼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는 최고야 짜릿해!!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이따가 야식먹고 한편 더 올릴게영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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