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4화 (4/170)

4편

<-- 1.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 노을이 졌다. 헉- 헉- 안타깝게도 이 몸 주인의 체력도 원래의 내 몸과 별 다를게 없을 정도로 허약했다. 몇 시간 내리 걷자니 숨이 턱턱 막혀와 죽을 지경이었다. 무릎에 손을 올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마왕이 내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워- 끈질기게 안 떨어진다. 맙소사.

“그러기에 내가 아까 업어 준다고 할 때…”

난 체력고갈로 인해 신경질 적으로 변해있었다. 마왕을 쳐다 보지도 않고 손을 쑥 내밀었다. 그럼 업어줘. 디질 것 같으니까.

마왕이 내 앞에서 등을 돌린 상태로 낮게 앉았다. 난 쓰러지듯 그의 등에 업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불과 몇 시간 전만에도 무섭다고 광광 소리 쳐댄 나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내 몸을 마왕에게 기대어 가누고 있었다. 널따란 등이 편안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업혀 올걸. 나는 등에 얼굴을 부비었다.

보아하니 마왕은 급작스러운 마력의 증발로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듯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기억상실 땡큐! 오지 말라고 악을 쓰며 소리쳐도 어느새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쫒아왔다. 실랑이가 몇 시간이나 계속되자 나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정신 차려보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못하는 마왕의 처지가 마치 나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도 조금은 들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택시 역할도 해주지 않는가? 좋은게 좋은거지 라며 속편한 생각을 했다. 마력도 없는데 지가 뭘 어쩔거야? 편안한 등판에 뺨을 기대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빛이 내리쬐었다. 목이 말라 텁텁한 입술을 혀로 축였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자세에서 빛을 피하려 모로 돌리려는 데에 물리적인 어떤 것에 꽉 막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흐읏”

어라? 뭐지 이 불건전한 신음소리. 아이러니 하게도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귀 언저리에서 지분거리는 축축한 느낌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기억상실 마왕과 뻥 뚫린 들판에서 avi.

이게 아니잖아! 난 눈이 번쩍 뜨이며 그를 밀어 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다.

“지, 지금 뭐하는…”

“세자인에 도착했어. 일 초도 쉬지 않았어.”

칭찬해 달라는 듯 마왕은 응석을 부리며 귀를 핥아 올렸다. 으읏. 그러고 보니 분명 해가 중천을 지나 언덕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어느새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밤새 걸어 온 거예요? 계속?”

“응”

사람이... 아니 마왕이 왜 이렇게 미련해? 붉은 눈동자가 태양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담았다.

‘빨리 칭찬 스티커 붙여줘’ 으윽...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싶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고생했어요. 잘했어요.”

그제야 마왕이 웃는다. 눈이 멀 뻔 했다. 나는 화끈해지는 뺨을 느끼며 다시 그를 밀었다. 마왕은 만족스러웠는지 이번엔 쉽게 몸을 치워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몸은 풀 투성이었다. 마왕이 그것을 발견하고 큰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떼어내 주었다. 세월아, 네월아.

나는 마왕의 손길을 거부하고 옷 자락을 퍽! 퍽! 치며 옅은 바람 사이로 풀들을 날려 보내 버렸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한 담?

주변은 말 그대로 논과 밭 초록의 것들 뿐이었다. 방금 전 우리가(마왕이) 넘어온 산을 제외하곤 광활한 평지사이에 강줄기만 쪼르륵 나있었다.

일단, 민가를 찾아 도움을 좀 받아야 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걸었다. 끝없이 펼쳐질 줄 알았던 논과 밭이 끝나고 드문 드문 집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발견한 집으로 뛰어가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뉘슈?”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가 눈이 침침한지 눈가에 더욱더 주름을 만들며 문을 열었다. 오랜만의 외부인에 퍽 놀라워 하는 눈치였다.

“이 곳이 익숙치 않아서 뭣 좀 여쭤보려고 하는…”

“하이고, 이 얼마만의 바깥 사람 들이야. 언능 안으로 들어오슈. 아 후딱!”

갑작 스러운 호통에 몸이 점프 하듯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니 마왕도 무덤덤하게 따라왔다.

할아버지는 축 처친 목의 살을 몇 번 매만지더니 이내 문 밖으로 나갔다. 뭐 하시지?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바라보자 할아버지가 크게 호흡을 들이 마시는 것이 보였다.

아침운동?

아니었다.

“바깥사람이 왔슈! 다들 소 키우는 집으로 후딱 모이슈-!”

찌릿 – 귀가 아려왔다. 답지 않는 큰 목소리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목을 매만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홍홍 소리를 내며 부리나케 이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집은 시끌벅적 해졌고 나와 마왕은 마을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꼼짝없이 가치는 신세가 되었다.

“저, 저기”

“하고, 청년이 참 실하게 생깄네. 이런 시골까진 왜 왔는가?”

“둘이 이거여? 그려?”

아주머니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리자 옆의 다른 아주머니가 망측스럽다는 듯 손을 잡아 내렸다.

“주책이여~!”

웅성웅성. 아아 대단히 잘못 됐다. 너무도 산만한 분위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예의 그 할아버지가 다시금 소리쳤다. “조용히!”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한 번에 정리 되었다. 나는 그제 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저희가... 이곳에서 당분간 좀 지내야 할 것 같은데…”

“하이고메!”

기쁘다는 듯 한 아주머니가 튀어 오르며 박수쳤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보시다시피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여기서 돈이라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요.”

좀 뻔뻔할지도 모를 질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또 웅성거린다. 대충 요약하자면 젊은 부부(?)가 잠 잘 곳이 없대 큰일났네. 먹을 것이 없네 큰일 났네. 등의 이야기였다. 난 힐끗 마왕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던한 얼굴이다. 그러다 그의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과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두껍게 풀럭이는 검은 망토와 그와 어울리는 형형색색의 보석들. 난 마왕에게 손을 뻗어 보석 하나를 떼었다.

앗, 기분 나쁜거 아니야?

조바심에 눈치를 보니 걱정한게 우스울 정도로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망토깃을 잡고 있는 내손이 좋은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올렸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그것을 뿌리쳤다.

“이런 거 팔 수 있을까요?”

“뭐시여? 돌멩이아녀? 돌멩이를 누구산댜!”

아아 돌멩이구나. 포기. 그런데 분명 소설에서는 마왕이 흔하게 몸에 지니고 있는 마석들은 그 존재가 매우 귀하여 은단 만큼이나 작은 크기에도 집 한 채는 살 수 있다고 묘사 되었었는데... 소설 내용이 다 들어맞지는 않나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왕의 손에 그것을 다시 쥐어주었다.

아앗, 손을 잡자는게 아니라... 좀 놔줄래?

한참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던 할아버지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해보였다.

“산 아래에 집이 하나 있는디, 거서 좀 지내는게 어떻겠슈?”

“아! 맞어 그 집이 있었구먼”

“역시 촌장님은 달러”

아, 촌장님이셨구나. 역시. 얼렁뚱땅 보금자리가 마련되어졌다. 그 산 아래라 하면 우리 방금 넘어왔던 그 산을 말했다. 촌장님은 안내해 주겠다며 집을 나섰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옹기종기 따라나섰다.

“...집이 있긴 있군요?”

집이라고 해도 되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괴하고 다 쓰러져 가는 곳이었지만. 녹의 이끼들과 정체모를 넝쿨들이 외벽을 둘러싸고 지붕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구멍이 뻥뻥 뚤려 있었다. 내부는 온갖 벌레들을 모아다 놓은 듯 그야 말로 벌레천국이었다.

“사람 안산지가 10년이 넘어서 좀 더럽긴 한디, 잘 청소하믄 살 수 있을거여”

하하... 남일 이라고 쉽게 말씀하시네.

일단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집이 이 모양 이꼴이긴 해도, 없는 것 보단 나았으며 친히 관심가져 주는 것이 시골 인심이기에 가능했으니까. 마왕이 멀뚱멀뚱 고개를 빳빳히 들고 있자 내가 팔을 높게 들어 그의 어깨를 부여 잡고 앞으로 숙였다.

“또 먼일 있음 찾아 오드라고”

“네 감사합니다.”

바닷물 빠지듯이 마을 사람들이 돌아갔다. 집을 다시 보니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도 날 밝을 때 일을 처리하는게 나았으므로 소매를 걷어 부쳤다.

“여길 청소 할거예요. 전 내부를 맡을 테니 마왕씨는 저 천장이랑 벽좀 어떻게 좀 해줘요”

마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더니 이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 믿음직 스럽지 못했지만, 내가 내부를 청소하고 있을 동안은 귀찮게 하지 않을테니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도와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크나 큰 오산이었다.

========== 작품 후기 ==========

와 코멘트라니 세상 만세다 만세! 한 편 더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닷 쿠쿸

갑자기 장르변화... 본격 농촌생활.. 삼시세끼? 아닙니다 다시 돌아옵니다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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