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 1.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 곳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4계절이 뚜렷했으나 오로지 해 만이 겨울의 것인 듯 했다. 4계절이 뚜렷한 건 어떻게 알았냐고? 이곳에 떨어진지 2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어둑어둑한 하늘을 확인하고 커튼을 닫았다. 마왕... 아니 머슨이 무식하게 베어 놓은 장작을 정리하느라 몸이 쑤셨다. 샤워를 마치고 아직은 축축한 머리칼을 무시한 채 침대에 풀썩 대자로 뻗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미처 내 모습을 확인 하지 못했지만, 난 썩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애쉬가 깔린 옅은 분홍색의 머리칼이 가장 첫 번째로 마음에 들었으며, 영롱한 회청색의 눈동자는 두 번째였다. 뭐, 사기적으로 잘생긴 머슨에 비하면 한낱 농사꾼소녀 일 뿐이지만.
늘어지는 몸을 애써 깨우지 않고 그대로 침대의 폭신한 감각에 잔뜩 취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눈에 힘이 풀리며 스르르 잠이 쏟아졌다. 이때 노곤한 귓가에 끼익-하고 조심스럽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그냥 가... 너무 피곤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애써 무시 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 또 시무룩해져 입이 대빨 튀어나와 있을 것이다. 난 속눈썹위에 철근을 올려 눈 것처럼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역시나 머슨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더 이상 다가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난 하는 수 없이 엉덩이를 조금 벽 쪽으로 밀어 자리를 내어주었다. 머슨이 흐드러지게 웃으며 금방 내 옆으로 이불을 걷고 쏙 들어왔다.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잘생겼다.
머슨은 내 허리에 팔을 두르며 목 언저리에 자잘하게 입을 맞췄다. 고요한 방 안에 입술 부딪히는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벌써 자?”
“우응-”
피곤해 건들지마. 자꾸만 지분거리는 머슨을 피해 벽 쪽으로 등을 돌렸다. 그게 불만스러운지 머슨은 내 허리를 꽈악 붙잡고 자신의 단단한 가슴팍으로 나를 끌어 당겼다.
“에리나에겐 단내가 나”
뜨거운 숨결이 귓가로 파고 들었다. 이어 약간은 아플 정도로 자근자근 씹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귀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하..지마”
머슨은 내 말을 무시한 채 귓바퀴를 혀로 핥아 올렸다. 흐읏- 난 고개를 도리질 치며 그의 입술을 피하려 더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나 강한 팔힘에 다시 머슨에게로 끌어당겨질 뿐이었다.
“키스해 줘”
“...또?”
“아침에 하고 오늘 하루 종일 안 해줬어”
“그거야, 니가 한번 시작하면… 흡!”
머슨은 참기 힘들다는 듯 내 몸을 휙 돌리더니 어느새 자신의 무게로 날 짓눌렀다. 입술위에 익숙하고도 촉촉한 것이 닿자 놀란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머슨이 달래듯 혀로 입가를 살살 핥았다. 풀어진 틈을 타 내 치아사이를 뚫고 물컹한 것이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듯 아주 편안하게 들어왔다.
혀를 깊게 넣어 내 양볼 안쪽을 누르기도 하고, 입천장을 쓰다듬더니 이내 숨어있던 내 혀를 찾아 옭아맨다. 다급한 키스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아.. 짧게 해.. 힘들어”
내 말이 머슨의 입 안속으로 삼켜 들어갔다. 키스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몸안에 있는 어떤 힘이 훅-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른해진다. 그리고 머슨의 타액이 내 목안으로 넘어가면 미약이라도 되는 듯 참을 수 없게 된다. 형용할 수 없는 흥분감과 괴로운 감각이 동시에 파고 들기에 머슨과의 키스는 언제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온 우주를 덮을 만큼 가득 찼던 마력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옅은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깔려 있게 된 머슨은 그 허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에게 끊임없이 스킨쉽을 통한 정기를 요구했다. 처음은 기겁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무기력 해지고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비틀대는 머슨을 보다가 진짜 큰 결심으로 첫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놀랍게도 다음날 머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 졌다. 후로부터 이러한 입맞춤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나는 이상한 감각에 몸부림치게 되었지만.
“그만...!”
힘없는 손으로 그의 턱을 돌려 밀었다. 머슨은 잠시 떨어져 주다가도 1초도 되지 않아 다시 입을 맞춰왔다.
“하읏, 너 정기 주려다 내가 죽겠어”
머슨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배 밑이 간질 거리고 발이 베베 꼬인다. 흥분감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제발... 머슨!”
머슨이 드디어 입을 떼더니 내 쇄골을 약하게 베어 물었다. 난 가빠진 호흡으로 인해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나를 미치게 하는 냄새가 에리나의 온 몸에서 진동을해”
내 목에 코를 박고 소리가 나도록 킁킁거리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을 잃기 전 넌 내게 뭐였어?”
뜨끔- 눈이 번쩍 떠졌다. 머슨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지며 욕망으로 이글거린다. 잡아 먹을 듯 바라보는 머슨에게 묘한 공포를 느꼈다.
“...난 너를 지켜보는 사람이었어.”
소설책에서.
머슨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내 대답이 썩 괜찮았던 듯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었다. 붉은 눈동자와 어울려 색기가 흘러 넘쳤다. 잠시 그에게 홀려 있는데 머슨은 그것을 알고 방심한 틈을 타 또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모기에 물린 것처럼 입술이 퉁퉁 부울 때 까지 그는 날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