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화 (1/170)

1편

<-- 1.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니까... 시험도 끝났고 과제도 없는 황금 같은 주말에 여느 때 와 마찬가지로 내 방 침대에서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인의 참된 자세로서 므흣한 19금 로맨스 소설을 읽었고 아, 그래 소설을 읽으면서 만두를 먹었는데 이게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배가 부르니까 8시간 이상은 잤음에도 불구하고 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뭐? 바로 시험도 과제도 없는 황금 같은 주말! 난 편안한 마음으로 몸이 시키는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이 든 순간...

‘솨아아아-’

초면인 아저씨가 피를 쏟으며 아주 기괴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죽어갔다. 너무 놀라면 비명도 나오질 않는다 했던가? 그 말이 진짜임을 몸소 체험했다. 숨이 턱 멈추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서있었다. 그 순간 또 다른 피의 향연이 시작됐다.

꿈인가 싶었지만 몸을 꿰뚫는 공포가 실제임을 소리치고 있었다. 전신이 발발 떨리고 치아가 부딪혔다. 휙휙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이 풍겨온다. 그런데 동시에 어딘가..... 익숙하다? 정말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익숙한 거야!

피를 뿜으며 무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시체산을 쌓아 올린 저 사람... 아니 저 마왕... 방금 까지 읽었던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불현 듯 떠올랐다.

‘마왕 케일하르츠 블란 페리어 로덴하리어는 자신의 수하를 잃은 슬픔과 그와 동시에 찾아온 몸을 휘감는 분노로 수하의 신체를 섭취했던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그들의 시체로 길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온 몸에서 피가 터지며 차례 차례 죽어 나갔다. 그야 말로 대학살 이었다.’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간단한 지문이었다. 지금 이 상황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 나 책 속으로 끌려 들어 온 건가? 그것도 지문 한 번에 죽게 되는 마을 사람1로? 경악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다음-”

자신의 눈동자 색 만큼이나 진한 남자의 붉은 혀가 입가에 튄 피를 핥아 올렸다. 고고한 발 아래에는 방금 생명의 빛을 잃은 인간의 텅 빈 껍데기 들이 질서도 없이 쌓여 있었다. 아릿한 피 향이 대지를 물들였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인간’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인간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인간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세도 없이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음-”

밤공기가 서늘하게 몸을 훑었지만 식은 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마치 샤워라도 하고 나온 듯 물에 푹 젖은 모습으로 남자 앞에 섰다.

난 살고 싶었다.

“마지막이군.”

남자는 예의 그 감정이 없는 밀랍인형 같은 모습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난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이듬과 동시에 등 뒤로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다.

“커헉!”

“어디에 손을 대나, 벌레 주제에”

괴로움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발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보통 소설 속에선 이정도 튕겨져 나간 것 가지고 넉다운 안 되잖아!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소름끼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죽음을 몰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마족의 눈을 뽑고 가죽을 벗겨낸 죄다. 환생한다면 그때도 죽여주지 반드시.”

씨발, 난 아니라고!

억울함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른 빙의 소설들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자면 다들 여주인공, 하다 못해 그 주변인이라도 되던데 왜 나는 지문 한방으로 끝나는 역할이냐고! 두려움과 공포 무엇보다 사무치는 억울함에 속이 터지다 못해 미어질 지경이었다.

남자의 팔이 들린다. 그래 나 저 손가락질 한번에...... 잠깐? 온통 붉은 것 투성인 주변에 대비해 이질적으로 짙푸른 것이 눈에 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남자의 팔목 에 장신구처럼 달려 있는 푸른 것이 동아줄처럼 보였다.

유레카!

대 마왕 케일하르츠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방대한 마력과 그의 억겹의 세월 만큼이나 강한 힘을 가졌다. 그의 손짓 한 번에 강산이 변하고 입김 한 숨에 대지가 얼어붙기도 했다. 라고 소설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 얇은 실 하나도 들어갈 틈 없이 완벽한 그에게도 약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를 위해 매일 같이 몸에 지니고 다녔던 ’각인의 증표‘.

평생 단 한명의 반려 오직 그녀만을 위해 케일하르츠가 스스로 만든 증표였다. 자신에 비해 하루살이와 같이 짧은 삶을 사는 그녀에게 불사의 몸을 주기위해 온 마력을 응축시켜 담은 증표로 이것이 갑자기 깨어지거나 발동된다면 방대한 양의 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가 케일하르츠 에게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 저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 한마디만...”

“감히 자비를 바라나?”

마왕의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졌다. 오싹- 인간이 아닌 섬뜩한 눈동자에 덜컥 겁이 났다. 실패하면 1센치 단위로 피부가 조각내어져 바닥을 뒹굴 것이다.

“저는 진짜 이 일과 무관하거든요...”

“저들 중 수십이 똑같은 말을 하더군”

마왕이 턱짓 만으로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들을 가리켰다.

“아닌게 아니라 진짠데. 전 진짜 아무것도 안했어요. 저 사람들... 이 누군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한마디로 완벽한 외부인이에요. 저 진짜 아니에요”

울컥. 말하면서 진짜 억울했다. 어떻게 하면 저 증표를 떼어낼까 고민 하는 동안 시간을 좀 벌어보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불거렸지만 백퍼센트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혹 진짜로 믿어주어 살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러나 마왕은 무심하면서도 완강한 태도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내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나는 죽음의 칼날이 목 앞까지 들이밀어 지자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애초에 책략가나 지략가다운 면모는 나에게 없었으며 난 언제나 행동파였다. 잔꾀를 부리는 건 둘째고 무식하게 몸만 앞서서 나가는 스타일.

“이 씨발 나도 모르겠다!”

여성이 남성을 싸움의 상대로 상대한다면 모두들 열이면 열 그 생각부터 할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낭심 차기!

-퍼억!

꽤 아픈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발이 얼얼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내 앞의 마왕은 아직까지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뭐야, 급소도 무쇠인가?

하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왕이 심히 당황해 하며 몹시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찾았다, 방심!

나는 한 번 더 낭심차기를 시전하려고 발을 들었다. 그때 마왕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국부를 가리려 몸을 움츠렸다.

“미안해요”

악감정은 없어요. 낭심차기는 훼이크고 마왕의 손이 몸 아래에 내려가자 난 황급히 허리를 숙여 손목에 있는 증표를 잡아 뜯었다.

-미끌

손 안에서 빠져나간 증표가 바닥으로 굴렀다. 난 놓치지 않고 인생 최고의 반응속도로 본능적으로 발을 들어 구슬을 으깨버렸다. 촤악- 소리와 함께 황금빛이 주변을 물들었다. 얼마나 빛이 강했냐면 새벽의 짙은 어둠이 걷혀지고 하늘마저 금빛으로 물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정도로 사위가 환했다.

“뭐하는...... 크흑!”

마왕이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마왕이 비틀거릴 때에 전력을 다해 도망치려던 나또한 무릎이 땅에 닿았다. 폭발하는 마력을 몸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죄듯 아프고 폐를 누르는 듯한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닥을 짚은 손 위로 피가 우수수 떨어진다.

...이건 생각 못했는데.

시야가 점점 옅어져갔다. 빛 때문인지 절로 눈이 감겨서 인지도 분간 할 수 없다. 점점 정신이 몽롱 해지더니 마왕의 바로 앞에 머리가 닿았다. 그리고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

대학 4학년 막 학기의 중간고사가 끝이 났다. 마지막 권만을 남겨둔 로맨스 소설 책을 드디어 읽을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인간인 성녀 '세르데벨라 르네'와 그녀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들의 치명적이고 야릇한 사랑쟁탈전! 진부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소재였다. 세르데벨라는 마왕, 천신, 인간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과 열심히 몸으로 사랑을 나눈다. 마지막에 세르데벨라와 이어질 남자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마지막 권을 앞둔 순간까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남주 후보들 간의 팬덤이 만들어져 서로 다투는 모습도 심심치않게 보였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마왕파였다. 가장 먼저 세르데벨라에게 사랑을 느끼고, 가장 완벽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가 미련할 정도로 세르데벨라에게 헌신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엄청나게 취향이었다. 한번은 너무 부러워서 내가 책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R=VD라고 했던가? 난 우습게도 책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지만, 어딘가 대단히도 잘 못 들어와 버렸다. 난 세르데벨라가 되어 헌신적인 사랑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었던 거지 초반 지문에 끔살 당하는 역할을 바란 건 아니었다. 절대로!

그리고 난 살기 위해 마왕을 쓰러트렸다. 대사 한마디 없는 지문 속에 마을사람 들 중 하나인 내가 유력한 남주 후보이자 세계관 최강자인 마왕을.

허...

어이가 없지? 나도 그렇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건......

“에리나! 장작 패는거 이정도면 돼?”

맙소사- 이 일대의 나무를 다 말려버릴 작정인가?

“머슨! 이 장작대로 불 피웠다가 우리 화형당해! 당장 그만둬!”

집의 높이만큼이나 우뚝 쌓여있는 장작을 보고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미안해 에리나. 그래도 나 열심히 했어 칭찬해주라”

그의 새벽보다도 어두운 머리칼이 내 가슴께로 다가왔다. 난 익숙하게 손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훑어주었다. 그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고생했어, 머슨.”

짐작했듯이 더 어이가 없는 건, 그 마왕이 내 머슴이 되었다는 거다. 이정도면 원작파괴의 끝판왕이다.

========== 작품 후기 ==========

두근두근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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