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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96화 (196/206)

< -- 196 회: # 11 -- >

"엄마?"

"사랑해, 유나야."

"나도, 나도 사랑해. 나도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

"……그래."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엄마가 환하게 웃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엄마는 내 예상대로 환하게 웃어주었지만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불안해졌다.

"유나야, 내 아가."

"엄마……."

"원래는 널 이렇게 붙들고 있어선 안 되었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이렇게 잠시라도 널 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엄마가 욕심을 부렸단다."

"엄마……?"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지금 왜 울고 있는 걸까? 뭐가 저렇게 슬픈 걸까?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어 나는 그저 멍하니 엄마의 얼굴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이제 그만 가보렴."

"어? 어딜?"

"저 꽃에게로."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환하게 빛을 뿜고 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듯 빛을 뿜어내고 있는 꽃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엄마만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대로 엄마한테서 시선을 떼면 엄마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나는 엄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안 갈래."

"유나야."

"나 안가."

"아가."

"그냥 엄마랑 있을래."

"유나야."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울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시야가 흐려지고 엄마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나는 세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눈물에 나는 겨우겨우 팔을 들어 올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싫어. 안가. 나는 엄마랑 아빠랑 있을 거야."

가기 싫었다. 엄마 아빠가 내가 갈 수 없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싫었다. 혼자 남겨지는 건 죽어도 싫었다.

"손을 이리 내어 보렴."

엄마는 눈물을 닦고 있는 내 손을 가져가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엄마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아무 무늬도 없는 반지를 빼내고는 내 엄지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우리 유나에게는 엄지손가락에도 크구나."

"……나 주는 거야?"

"엄마가 우리 유나에게 뭐든 주고 싶은데 줄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다른 사람이 억지로 빼앗으려 한다 해서 뺏을 수 있는게 아니니 더 안심이야. 이건 이제부터 유나, 네 거란다. 알았지? 오로지 네 거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네 것. 어차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테지만."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반지가 왜 자기 눈에만 보이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맺은 엄마가 등을 슬그머니 꽃이 있는 곳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그 손짓에 나는 온 몸을 떨 만큼 불안해졌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엄마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기 싫다는 듯 다리를 있는 힘껏 버텨보았다.

"엄마!"

"이제는 가야 돼, 유나야. 더는 위험해."

"싫어, 싫어. 나는 싫어. 가기 싫다고!"

커다랗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 속에서부터 울컥 샘솟는 울음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내 뜻을 엄마한테 간절하게 전달해 보기도 했다. 이제 저 꽃의 이름이 뭔지 따위는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저 꽃에게 이름을 줘야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짜증스럽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저 꽃은 나를 엄마 아빠한테서 떨어트리려는 아주 나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유나야, 사랑해."

하지만 내 몸은 점점 꽃에게로 가까워졌다. 누군가 나를 그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처럼 엄마에게서 멀어져갔다.

"엄마!"

있는 힘껏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엄마는 그저 희미하게 웃고만 있을 뿐이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느새 다가온 아빠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나를 한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이번에는 아빠를 불렀다. 아빠라면 당장에라도 나를 데리러 와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처럼 그저 날 바라보며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엄마 아빠한테서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꿈에서조차 의심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알고 보니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랑한단다, 유나야."

그때 아빠가 내게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점점 거리는 멀어지고 엄마 아빠의 모습은 꽃이 뿜어내는 빛 때문에 흐릿해져갔지만 그 말만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거짓말!"

나는 울었다. 그리고 외쳤다. 거짓말이라고.

"거짓말, 거짓말!"

날 사랑한다면 왜 나를 버리려 하는 건데?

"사랑해, 유나야."

"사랑한단다, 유나야."

"거짓말, 거짓마알!"

하지만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 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그 말을 듣지 않으려했다. 갑자기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미워졌다. 야속했다. 내게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두 귀를 막은 손 안으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어느새 나는 꽃에 가까이 왔고 내가 꽃에 가까이 감에 따라 강해지는 빛 때문에 엄마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

하지만 빛 너머에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건 분명했기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엄마 아빠를 불렀다. 아무리 방금 전의 행동이 야속했어도 이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엄마 아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내 다리를 내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엄마 아빠를 불렀다. 제발 내게 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참을 불러보았지만 엄마 아빠는 끝내 내게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진정으로 두려워졌다. 이제 정말 나는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를 휘감는 건 무서움, 두려움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뿐이다.

털썩.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두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계속해서 엄마 아빠를 불러보았다.

……엄마 아빠는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혼자가 된 것이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꽃이 빛을 환하게 뿜어 온 세상에 빛 천지인 이 곳이 마치 내게는 깜깜한 밤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였다. 빛으로 만들어진 암흑.

유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혼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나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대로 고개를 숙인채로 나는 마냥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찾아오기를, 나를 다시 데려가 주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유나.

그런데 갑자기 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확실히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내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빛만이 가득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내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세상은 나와 빛으로만 가득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같은 기도를 했다. 엄마 아빠가 나를 데려가 주기만을.

그리고 얼마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유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엔 제법 또렷이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내가 착각이라 여기지 못할 정도로 선명하게.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았는데 아까처럼 아무 것도 없다면 실망이 너무 커 마음이 힘들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다시금 혼자라는 것만을 확인하는 꼴이 될까봐서. 그래서 한참을 머뭇거려댔다. 고개를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유나!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내 귀로 다시 한 번 내 이름이 들려왔을 때,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양 옆을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없었다. 실망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여전히 나는 혼자였던 것이다. 내 곁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온 몸을 잠식하자 이제는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왜 엄마 아빠가 나를 버린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조금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서글프고 또 서글펐다.

그래도 엄마 아빠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마구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아빠. 돌아와 줘, 응? 제발 다시 내게 돌아와 줘. 제발, 응? 앞으로 말 잘들을 게요. 투정부리지 않을 게요.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빌 테니까 날 버리지 말아요.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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