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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89화 (189/206)

< -- 189 회: # 11 -- >

하지만 그런 말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게다가 노르젠 후작 가(家)가 멸문당한 지금까지도 겐두라 백작 가(家)는 노르젠과 엮어 그 어떤 고초도 겪지 않은 채 얌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황실의 명으로 아직까지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비밀입니다."

내 놀람에 그가 짧게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황실의 명이라. 대체 무슨 명령을 어떻게 내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지 싶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 했으니 내가 몰랐던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일 테지.

"그런데 그가 돌아왔다고요? 갑자기 왜요?"

노르젠과 겐두라가 모종의 관계였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그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왜 지금 와서 이리 문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으압!"

갑작스런 비명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보이는 일련의 사태에 나는 동그랗게 눈을 치떠야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골목길 벽을 타고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쪽을 향해 살심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검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바로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적의였다.

챙챙!

그런 내 앞을 검은 복장의 공작성 그림자들이 막아섰다. 칼끝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아름답고도 시린 빛깔의 것들이 서로 사납게 맞부딪히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검은 여기가 한층 강하게 내게로 닥쳐왔다. 눈이 따끔거려 고개를 살짝 비틀며 피하자 그런 내 앞을 키 큰 그림자가 막아선다. 연기를 막아주려는 행동에 고마웠지만 지금 이 다급한 상황에 이따위 연기는 별것도 아니어서 나는 괜스레 머쓱해졌다.

"왜인지는 저 역시도 알 수 없으나……."

"?"

"허나 지금 모습들을 보아하니 지금 이들은 목표는 아가씨가 분명한 모양입니다. 모두의 손속이 아가씨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저 날씨가 좋구나, 라는 둥의 말을 할 법한 태평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지금의 사태를 정리한 그의 말에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사람이 뭐라고 한 거지? 누구를 노려? 나, 나를?

"나, 나를 노린다고요? 아니, 어째서……?"

"저도 그 이유까지는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일단 저희들이 막아내겠습니다."

정말로 별일 아니라는 듯, 이들을 막아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는 그리 담담히 말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출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공작성의 그림자들이 얼마나 강한 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고작 5명일뿐이다. 아니, 내 곁에 딱 붙어 서서 나를 지키며 돌아가는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는 이 남자를 제외한다면 지금 저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그림자들은 고작 4명밖에 되질 않는다. 그에 반해 나를 노리고 있다고 하는 저들, 그러니까 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아닥치고 있었다. 늦은 가을날 바람에 흔들리면 떨어지는 낙엽들처럼. 그건 어림잡아 계산해 보아도 족히 수십 명에 달할 만큼 많은 숫자였다.

대체 왜 나를 노리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대한 당황과 공포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다.

"곧 공작성에서도 연락을 받을 겁니다. 지원군이 올 테니 일단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챙!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그는 바로 위쪽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의 검을 한꺼번에 받아쳐 올렸다. 마치 나를 포함해 모두를 죽여 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듯이 공격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손속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그림자가 그들의 손속을 막고 있던 그때, 내게 아주 작은, 아주 작은 틈이 생겼나보다. 공포에 몸이 굳어 그저 얼어있기만 하던 나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당연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빛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에 대한 그 어떤 감정도. 하지만 목표는 단 하나, 내 목숨을 취하는 것이었는지 내게 정면으로 검을 쏟아 부으며 달려왔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나는 공포를 고스란히 안은 채 그 모든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아주 사소한 행동조차 불가능했다. 내게는 다행이도, 그리고 나를 죽이려는 이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검은 내 옆에 서 있던 그림자에게 막혀버렸고, 그 막힘과 동시에 그는 심장을 꿰뚫려야 했다.

펑! 펑!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칼부림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서로의 강력한 기운이 맞설 때마다 엄청난 압박으로 인해 공기가 요동쳐댔다. 검은 연기와 함께 일어난 바람이 골목길 벽 여기저기를 강타했다. 그 바람에 압력을 이기지 못한 벽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건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넓어진 골목길로 적들이 좀 더 확장된 범위로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붙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수록 그림자들이 나를 막아내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작았던 틈은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오래지 않아 나는 다시 한 번 공포에 부딪혀야 했다.

"꺄악!"

이번 공격은 위에서였다! 내 머리 바로 위로 칼날을 내리 꽂는 이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내지른 소리는 칼날 사이사이를 뚫고 널리 울려 퍼졌다. 최대한 걸리적거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바들바들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주저앉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대고 있다. 이대로 터져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아주 세게. 두 눈을 질끈 감고 한동안 그리 있어보았지만 그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나지 않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보았다.

"욱!"

속에서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런 추태까지 보이면 정말로 민폐만 끼치게 되는 것 같아 그것만은 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아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속이 뒤집히려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욱!"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나를 죽이려 했던 이의 시체는. 정확히 가슴이 갈려진 채, 그는 내 쪽으로 향한 얼굴 그대로 널브러져 죽어있었다.

대체, 대체 이들은 왜 나를 노리는 걸까? 대체 왜? 뮤를 협박하기 위한 용도라면 죽이려드는 것이 아닌 납치를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은 태평히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나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최대한 벽에 가까이 붙어서.

힐끔.

그런 내 행동을 곁눈으로 지켜보던 그림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잘하고 있다는 듯, 더 안쪽으로 피하라는 그 제스처에 나는 한껏 더 용기를 내어 무너져버린 벽을 넘어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파도처럼 몰려드는 적의 수에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당해버렸는지 결국 무릎을 꿇어버리는 그림자 중 한명의 목이 잘려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합!"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시금 토기가 치밀어 오른 까닭이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얼굴도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 죽었다. 순식간에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나 때문이야! 전부 내 탓이야! 나 때문이라는 그 생각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옆을 지키고 있던 그림자는 내가 조금이나마 안전한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제야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듯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그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우수수 몰려드는 적들의 인영이 보잘 것 없는 인형처럼 흔들려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의 목숨을 취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적들은 그가 뿜어낸 압력에 무차별로 쏟아져 들어오던 행동을 잠시 멈추었을 뿐, 오래지 않아 자세를 다시 정비하고 공격해 들어왔다.

챙~!

압도적인 수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림자들은 나름 잘 막아내어 주고 있었다. 처음 론에게서 나를 구해주었던 소년으로 여겨지는 그림자 역시도 아직까진 큰 부상 없이 적들 한 가운데에서 엄청난 무용을 자랑하며 그들을 베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긴 어린가 보구나.

그는 적들과 비교해 보아도 현저히 가는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키도 조금 작았고. 하지만 실력만은 발군이었나 보다. 무엇보다 그는 굉장히 빨랐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댔다. 또 유연했다.

챙챙챙!!

그가 적이 찔러오는 칼날을 비스듬히 흘리더니 그 반동을 이용해 심장을 베어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나는 더는 그들의 싸움이 보이지 않는 곳 안쪽까지 이동해 들어갔다. 여전히 매서운 칼날이 살심을 가득 실어 부딪히고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내 몸을 꽁꽁 숨기는 편이 그림자들이 맘 놓고 싸우는데 훨씬 수월하리라는 이성적인 판단에 그들을 미끼로 삼고 나는 도망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몸을 한껏 숙이고 무너진 벽을 넘고 또 넘었다. 최대한 멀리,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어느새 골목길 안쪽 깊은 곳까지 가득히 메운 검은 연기 덕분에 내 모습은 꽤나 잘 감춰질 수 있었다. 비록 그로 인해 숨은 막혔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다. 불이 난 것은 내게는 참 다행스런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 불이 왜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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