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는 아름답다-188화 (188/206)

< -- 188 회: # 11 -- >

"내가 널 먼저 안았어야 했어! 넌 내 것이었으니까."

"헛소리 좀 그만 하라니까!"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론의 망발은 멈추지 않았다.

"난 애초에 널 다른 놈한테 주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어! 내가 네 처음을 가지고 싶었다고! 빌어먹을 배롤린!"

이젠 기어코 지 아비의 욕을 해대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알브레히트! 남의 것을 멋대로 가로챈 도둑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실컷 가지로 놀았으면 이젠 돌려줄 줄도 알아야지 하! 뭐라고? 애써 꾹 참고 기다렸더니 이젠 너와 결혼을 하겠다고? 그게 말이 돼? 그게 말이 돼?? 네가, 공작부인이 된다는 것이! 그게 말이 돼? 너는 내 거야! 내가 먼저 널 가질 거라고 다짐했어! 내가 먼저였다고, 내가!"

기어코 론이 폭발했다. 흥분한 론은 솔직히, 무서웠다. 흥분으로 눈이 뒤집힌 모양인지 흰자위가 가득 보인다. 그 끔찍한 모습에 나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론은 항상 내겐 무서운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직설적인 것이어서 차마 모른척하려야 모른 척 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벅더벅 큰 걸음으로 내게 다가서는 론을 피하기 위해 덜덜 떨려오는 다리로 뒷걸음질을 쳐댔지만 안타깝게도 나보다는 론이 훨씬 더 빨랐다. 점점 얼굴에 핏기가 사그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슴이 불안함으로 인해 심하게 요동쳐댔고 손발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싫어, 죽어도 싫어! 이놈에게 유린당하기 싫어!

이제, 이제 겨우 행복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내게도 다시 가족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엄마 아빠를 떠올려도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겨우, 이제야 겨우 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뮤, 뮤!

눈앞 가까이에 까지 다가온 론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뮤를 떠올렸다. 내 사람, 내 남자, 내 가족이 되어주겠다 말했던 그 사람을.

"넌 내 거야!"

마치 주문처럼 그 말을 외치며 론이 내게로 손을 뻗쳐왔다.

"헉!"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추었다. 아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뜬금없게도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들려왔다. 갑자기 이 모든 것이 꿈같았다. 현실감이 없어져버린 탓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 꿈이라면 분명 이 꿈은 악몽이리라.

눈을 깜박였다. 그리하면 꿈이 깨어질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비릿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는 론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으니.

제발 꿈이었으면!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그래도 여전히 론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굳어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꺼풀뿐이라는 듯 나는 다시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론은 더는 내 앞에 없었다. 대신 내 앞은 깜깜한 무언가로 가득 막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떠보았다. 방금 전과 같이 여전히 론은 사라져 있었고 내 시야는 깜깜한 것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 역시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라고.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괜찮으십니까?"

아직 변성기조차 지나지 않았을 만큼 가늘었지만 남자의 것이 분명한 그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찬물이 몸에 끼얹어진 듯 갑작스런 충격에 놀란 것도 잠시. 난 눈앞의 남자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검은색 투성이다. 온 몸을 검은색 복장으로 갖춰 입은 것도 모자라 검은 두건까지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건을 머리는 물론이고 눈만을 제외한 얼굴 전체에 두르고 있다.

"직접적인 접촉이 있으려 하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내 시선을 어떻게 판단한 건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온 거냐며 내가 화를 낼 것으로 여긴 걸지도 모른다.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변명에 나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목소리가 어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랬다. 그는 남자라는 단어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론 나보다야 키는 훨씬 컸지만 체격이 다른 기사들이 비해 다소 호리호리한 까닭에 더 어리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멍하니 눈앞에 새로 나타난 사람을 살펴보고 있는 내 귀에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

그 소리에 목을 살짝 옆으로 빼내어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보자 다소 거리가 떨어진 먼 곳에 처박혀 있는 론이 보였다. 벽에 피가 묻어난 것을 보니 벽에 부딪힐 때 어딘가 까졌다거나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기에 나는 금세 론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눈앞의 사람을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그림자입니다."

"누구의 그림자요?"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있다. 그리고 내 짐작이 거의 맞을 거라 확신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물었다. 제대로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더는 답할 것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한동안 나를 그를, 그는 멍하니 벽을 쳐다보는 이상한 시간이 이어졌다.

"뮤가, 그가 내게 붙인 그림자인 건가요?"

결국 그 이상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나였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이 소년의 입에서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멍했던 눈동자가 살짝 내게로 초점을 맞춰오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여 긍정을 표하고는 다시 멍한 사람의 그것으로 돌아갔다.

"……."

참 독특한 분위기의 소년이다.

조금 이상했지만 뮤의 사람이니 내게 해로운 짓을 하지 않겠지 싶다. 그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몰래 그림자를 붙여둔 건 괘씸했지만 어쨌든 그 덕에 몹쓸 짓 당할 뻔 한 것을 피할 수 있지 않았나. 그러니 그림자에 대한 것은 불평의 기색조차 꺼내지 못하리라. 그것보다 오히려 난 뮤가 화를 낼 것이 무서웠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된다면, 나는 더는 호위기사 한 명으로 외출하는 것은 더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 자명하다.

하긴, 지금까지도 아닌 것 같았으니 별다른 건 없는 건가.

"어쨌든 고마워요."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다시 한 번 나를 힐끔 바라 본 소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본 거라 여길 수도 있을 만큼 아주 작은 동작이었다. 그는 내 앞을 가로막았던 거리에서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 섰다. 그 모양새가 마치 이곳에서 나가자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아!"

아니 떼려했다.

쓔웅!

하지만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살이 위협적으로 내게 쏟아져 내려 그 시도는 불발에 그쳐야 했다. 오히려 화살을 피하기 위해 어느새 내 몸은 골목길 더 안쪽으로 이동되었다. 물론 내가 그리 이동한 것이 아니다. 그림자라 정체를 밝힌 소년이 날 안쪽으로 이동시켜 준 것이다.

"무, 무슨!"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내 몸은 소년에게 감싸져 안겨있었고 그런 우리 앞으로 4명의 검은 복장을 한 사내들이 서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땐, 이미 골목길 안쪽으로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골목 입구 쪽에서부터 불길이 인 모양이다.

"쳇!"

나를 감싸고 있던 소년에게서 욕설에 가까운 소리가 뱉어졌다. 멍하니 풀려있던 눈동자가 눈빛으로도 사람을 베어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칼처럼 번뜩거리고 있었다. 이 매서운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방금 전까지 멍하게 보였던 그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여기에 계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나를 제대로 일으켜주었다. 무슨 일이 터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협조적인 태도에 소년은 조금은 안심했는지 바로 눈앞에 서 있던 4명의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모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이 모두 나에게 몰래 붙여진 그림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목소…낮…라. ……온……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매우 낮고 빨라 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심각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한껏 긴장한 채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더니 그 중 가장 키가 큰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아가씨."

방금 전 소년과는 확연히 다른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잠시 이곳에 계셔야겠습니다. 저희가 안전히 공작성으로 모실 테니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강한 힘이 느껴지는 든든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대체 무슨 일인가요?"

내가 물었다. 사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내게 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내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었다.

"노르젠 후작 가(家)를 쳤을 때, 후작 가(家)의 일원은 모두 잡아들였습니다만 후작 가(家) 외의 다른 가문들까지 모두 잡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중 미리 낌새를 눈치 채고 도망간 자가 있었는데 그 자가 개인 사병들을 이끌고 돌아온 모양입니다."

"그게 누군데요?"

"겐두라 백작입니다."

"겐……두라 백작이요?"

그의 말에 나는 놀라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겐두라 백작이라니! 겐두라 백작 가(家)라니! 지금 이 말은 겐두라 백작 가(家)가 노르젠 후작 가(家)와 한 패였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말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게다가 노르젠 후작 가(家)가 멸문당한 지금까지도 겐두라 백작 가(家)는 노르젠과 엮어 그 어떤 고초도 겪지 않은 채 얌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황실의 명으로 아직까지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비밀입니다."

============================ 작품 후기 ============================

헐;;;; 이럴 수가!!! 내가 끄적거려놓은 종이쪼가리가 사라졌습니다!!!

헐;;; 그러지마 제발 ㅠㅜ 돌아와줘 제발 ㅠㅜ

한 10장정도 썼는데 너네 대체 어디있니? 응? ㅠㅜ

울고싶은 밤입니다 ㅠㅜ

그래도 선추코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ㅠ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