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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74화 (17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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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응?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이 나쁜 년아! 응? 내가 왜! 내가 왜 네 결혼소식을 다른 사람한테 들어야 하는 건데, 이 망할 기집애야!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 것도 괘씸해 죽겠는데, 그래도 그건 용서해주려고 했는데! 어떻게 결혼이라는 그런 중요한 말을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을 수가 있어, 이 나쁜 년아아아아!"

"……뭐?"

"뭐? 뭐어어? 지금 모른 척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게 더 괘씸해!"

"뭐?"

모른 척이고 뭐고 나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다. 그런 당황스런 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기어코 레니의 두 눈이 시뻘겋게 불타올랐다.

"안되겠다. 내가 꼭 너 한 대 때리고 만다! 한 대만 맞아라! 한 대만 맞아!"

그러면서 레니가 발악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레니를 달래느라 아무 죄 없는 라니만 진땀을 빼야했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도 난 웃을 수가 없었다. 레니의 입으로 전해들은 그 소식은 정말이지 나도 모르는 것이어서, 나도 모르는 이야기여서 그래서 바보처럼 입만 벌린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 당황스러운 건 레니의 말에 놀란 건 나뿐이었다는 것. 그 예로 라니는 제법 담담한 얼굴로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어제 남편한테 들었어. 축하해, 유나야."

그렇게 말하며 웃는 라니의 얼굴은 정말로 기뻐보여서 나는 한층 더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야 했다.

"새, 새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레니가 저렇게까지 서운해 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언지 이제야 알겠다싶다. 하지만 레니의 서운함을 알았다 해도 여전히 나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물론 결혼이라는 말이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말은 네랜 영지에서부터 나온 것이었으니까. 내가 당황스러운 건,

"대체 언제 발표한 거예요?"

그래, 내가 당황스러운 건 이미 결혼 발표를 했다는 것.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그 발표를 나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가 진행했다는 거다.

물론 나는 라니와 레니에게 미리 말할 참이었다. 그것도 오늘, 만나면 그동안의 사정을 다 말하고 결혼 얘기도 하려 했었다.

"저것도 친구라고 내가! 어엉~, 서러워 죽겠어. 너 대체 일주일동안 뭐하느라 찾아와도 얼굴 코빼기 한번 안 비춘 건대? 응?"

"……."

아, 글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레니와의 만남은 내가 공작성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말하자면 순전히 그 남자 탓이다. 틈만 나면 물고 빨고 몸으로 날 눌러대는 그 남자 탓. 고작 그 일주일 동안 얼마나 날 괴롭혀댔는지 지금도 유두가 빳빳하게 서있고 허벅지 사이가 아릿아릿 저려온다. 이런 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물론 대놓고 말하면 레니야 과하게 눈을 반짝이며 좋아할 테지만 내가 미쳤다고 맨입으로 그런 얘기를 레니에게 해주겠는가. 하여튼 참으로 민망한 통증이 아닐 수 없다.

몸은 아프지, 레니는 계속 울지. 슬슬 머리에 두통이 이는 기분에 새론을 쳐다보자 새론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발표하셨어요."

"어제요?"

"네."

"대체 언제요?"

"어제요."

"아니 그러니까……."

그 남자, 어제도 내내 나랑 함께 있었는데요. 그것도 침대에서요. 그런데 대체, 어제 언제, 어떻게 그런 발표가 있을 수 있었나요, 네?

소리 없이 묵묵히 묻자 새론이 다시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어쨌든 어제 발표가 되었답니다."

"아, 그래요?"

"네."

그랬단다. 발표가 되었단다. 그 확실해진 상황에 그제야 나는 레니의 구두에 그냥 한 대 정도는 맞아줄걸 잠시 후회해 보았다. 그러다 저 멀리 떨어진 구두의 굽이 상당한 높이를 가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금 고개를 휘휘 저어댔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오늘 아침의 일.

"아까 레니한테 얼마나 욕먹었는지 알아요? 발표한다면 발표한다고 저한테 미리 말해주셨어야죠."

아침의 일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자 뮤가 손가락으로 내 미간 사이를 꾹꾹 눌러 펴준다.

"어차피 알고는 있었지 않나."

"그래도 친구들한테 먼저 말할 기회는 주셨어야죠."

"아아. 그건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나도 몰랐다."

"네?"

볼을 타고 내려온 뮤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내 머리칼을 꼬아대며 장난쳐 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타고 올라가듯 시선을 들자 매끈한 가슴이 한눈에 들어온다.

꿀꺽. 베개에 기댄 듯 누워있는 모습이 상당히 야릇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드러낸 상체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끄러운 것이었다. 조각 같아. 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입술을 놓았다 생각하자 얼굴이 절로 달아올랐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키스마크가 눈에 들어오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댄다.

"발표가 되고 나서야 나도 알게 되었지."

"그, 크흠, 그게 가능해요?"

상상도 되지 않는다. 뮤의 허락 없이 감히 그 누가 뮤의 사생활을 공표할 수 있는지. 하지만 그 해답은 곧 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아. 언제가 됐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발표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무슨 준비요?"

"이것저것 여러 가지."

"그 이것저것 여러 가지가 뭔데요?"

"……별거 아니야. 그냥 귀찮게 굴어대는 놈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그 귀찮게 구는 사람이 누군데요? 저한테 말해줄 수 없는 거예요?"

꼬치꼬치 캐묻듯 물어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뮤가 재미있다는 듯 매력적인 입 꼬리를 만들어내었다. 마치 이런 내 모습은 처음 본다는 듯이.

"황태자."

"아, 그렇군요. 그냥 그렇게 말해주면 되지 뭘 그렇게 뜸을 들……. 누구요?"

"황태자."

"……."

황태자? 그 귀찮게 굴어대는 놈이 황태자라고?

황태자를 '놈'이라고 불러도 되나?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뮤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할 뿐이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물어봤구나 싶어서.

"아무튼 곤란했다고요. 레니 잔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 아세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나중에는 진이 빠질 지경이라고요. 내 잘못이 아니어도 그냥 사과하고 싶을 정도예요."

"흐음."

"적어도 하루만 늦게 발표되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그럼 오늘 말해주고, 내일 발표 나가고. 아, 하지 말아요. 전 아직 힘들다고요. 아, 음……."

어느새 슬금슬금 위로 기어 올라와 가슴 한쪽을 한입에 베어 문 뮤에게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보였지만 예전과 다르게 요즈음의 이 남자에게는 그 어떤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아, 애원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욕구를 채워달라는 쪽의 애원이요 다른 하나는 그만 멈추어 달라는 애원이다. 이 남자에게 통하지 않는 애원은 바로 두 번째 애원이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는 등등의 애원은 기가 막히게 잘 들어준다. 물론 들어주는 애원이란 것도 모두 잠자리에서 행해지는 동작과 관련된 것들뿐이지만.

침대에서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잘 들어주면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아!"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 이때 나는 잊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방금 전 그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어렵게 언급해 보았던 부탁을. 그리고 그에 대해 들어주겠노라는 확답을 아직 뮤에게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도.

바보, 유니시이나! 계속 타이밍만 노리다 겨우 겨우 꺼낸 말이었는데, 어떻게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니, 응?

목적을 다시 상기한 김에 다시 그것을 까먹기 전에 당장 뮤의 확답을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으로 뛸 준비를 충만히 마친 심장을 가라앉히고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기를 차가운 이성으로 내리 눌렀다. 그리고 단호하게 뮤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 가슴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강한 입심에 딸려 올라갔던 가슴이 입에서 떨궈지면서 파도치듯 찰랑거려대는 것이 보인다. 붉은색 앵두꼭지가 만개하듯 피어올라 반짝거려댔다. 그 반짝임의 흔적이 무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 나는 또 얼굴을 붉혔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엔 짙은 만족스러움과 내 손에 의해 욕구가 막혀버렸다는 불만이 공존하고 있었다.

"왜?"

퉁명스럽게 뮤가 묻는다. 그 말에 나는 다시금 마음을 잡고 입을 열었다.

"아직 확답을 못 받아서요."

"무슨 확답?"

"아까 말했던 거요."

"무슨?"

"……다 알면서 그렇게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앙큼해 보여요."

뮤의 능청스러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일단은 그의 장단에 맞춰주겠다는 듯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어 보았다. 가능한 한 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뮤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들어주기 싫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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