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2 회: # 10 -- >
"정말 그 책들, 당장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군."
"……무슨 책이요?"
"별장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거."
"……제거 아니에요."
"안다. 레이니 롱아르의 것이란 걸."
"……."
아, 창피하다. 하지만 더 창피한 건 그것들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뮤가 짜증 낼만도 하지. 이런 식의 베갯머리송사는 오히려 역효과라는 것을 왜 나는 망각해버린 걸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어쩌면 내 기억력이란 것이 기대보다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걸 읽어보신 거예요?"
하지만 내 나쁜 기억력에 속으로 한숨 쉬는 것도 잠시. 순간 나는 궁금해졌다. 이 남자가 어찌 알고 이런 얘길 꺼내는 걸까? 내 베갯머리송사의 아이디어를 그 책 중 하나에서 따왔다는 걸 말이다.
혹시 뮤도 그 책들을 읽어본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입 꼬리가 절로 치솟았다. 이 도도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그 우스꽝스럽다 못해 야설적인 책들을 읽었다 생각하면 어쩐지 웃겨서. 물론 내가 그런 책들을 읽었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창피하기도 하지만. 장난기 덕지덕지 가득한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뮤가 짙은 눈썹을 꿈틀거려댔다.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 아, 사실은 알 것 같기도 하다.
- 뮤는 친절하게 자기의 불만에 대해 알려주기보단 하던 짓(?)을 계속하는 편을 택했다.
"앗!"
다시금 방 안으로 채우는 건 촉촉이 젖은 선율과도 같은 마찰이다. 살과 살이 맞부딪혔을 때 나올 법한 마찰. 질퍽질퍽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연인들의 소리가 방 안을 나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커튼을 치지 않아 선명히 올려다 보이는 창 너머의 저 밝은 달이 우리의 모습을 환희 비추고 있었다. 환한 보름달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빛만으로는 부족해. 내가 사물을 자세히 구별할 수 있을만한 밝기로는.
당신에게는 아닌 모양이지만.
마냥 어둡지 않은 방안에서 내가 구별해 낼 수 있는 정도는 고작해야 이 남자의 윤곽뿐.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아닌지 그는 대낮과 다름없다는 듯 나를 만지는 손길에 한 점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내 반응을 틈틈이 살피며 오만한 미소를 짓는 것도 밝았을 때와 다름없었다.
침대 옆으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만이 지금 우리가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고 있었다. 한데 뭉크러져 이어진 그림자였지만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의 골격에는 차이가 있는 탓인지 어설픈 흑백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야해보였다. 어린 소녀라면 충분히 얼굴을 붉힐 수 있을 만큼은.
아아, 이 남자에겐 끝이 없는 것 같다. 도무지.
"나 좀 힘들어요."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움직임에 투정을 부려 보자 뮤가 달래듯 손등으로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것만 하고 쉴 수 있게 해주지."
"이것만 하고 오늘은 더 안할 거예요?"
"……."
더 할 거란 소리군.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기운조차 없을 만치 노곤해지는 것이 실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진실. 그것이 이 남자로 인한 이유 때문이라면 오히려 뿌듯한 기분이 든다. 반대로 내 부족한 체력 때문에 그가 만족할 만큼 맘껏 풀어내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것이 더 슬플 것 같다. 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 따윈, 죽어도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였다. 오늘 저녁, 뮤의 방에 들어서기 전 새론이 건네던 포션을 군소리 없이 받아 마신 이유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세상에, 하늘이 맙소사!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다친 곳도 없고, 심지어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포션을 마실 경지에 다다른 걸까.
그 포션을, 그 비싼 포션을!
하아. 하지만 그 덕분인 건가? 확실히 그를 받아내는 것이 다른 때보다 훨씬 수월해진 것도 같다. 방금 전 힘들다고 투정부리긴 했지만 지금이 벌써 세 번째란 말을 하면 어느 정도 나를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두 번의 격렬했던 정사는 뮤에게는 만족을, 나에게는 피로를 주었다. 하지만 그 두 번 다, 나는 잘 받아냈다. 아주 적극적으로, 뮤가 내게 맘껏 자신을 묻을 수 있도록.
그러니까 지금 힘들다고 투정부린 건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집중해."
이크. 딴 생각하고 있는 걸 고새 눈치 챘나보다. 하여튼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니까.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단단한 살덩이가 내게 강하게 박히자 허벅지 사이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로 인해 눌려진 배가 평평해졌다. 예전 같았다면 숨이 막혀 허덕거려댔을 테지만 지금은 이정도 압력은 이제 수월히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숨도 요령껏 쉴 수 있게 되었고. 찌릿찌릿하게 비벼지는 살들의 입맞춤. 쾌락으로 가득한 그 마찰을 즐기며 나는 그의 허벅지 위로 걸쳤던 다리를 좀 더 높게 들어 올려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만큼 벌어지는 다리 사이 공간을 파고들며 뮤가 더 깊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매끌매끌해진 액으로 넘쳐나는 공간 속을 뮤가 자유자대로 드나들도록 허락하며 고개를 들자 기회를 노리듯 뮤가 내 입술 위를 덮쳐왔다.
"흠."
윗입술 아랫입술을 한 번씩 빨아들이며 핥아댄다. 몇 번이고 계속되는 입맞춤에 숨이 막혀 입술을 벌리자 그 사이로 뮤의 뜨거운 혀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혀와 혀가 얽히고설킨다. 뮤가 나를 탐하는 그 크기만큼 나 역시도 열렬히 뮤를 탐했다. 뮤의 혀를 마음껏 빨아들이고 숨을 갈취하고. 좀 더 깊게, 좀 더 나를 가질 수 있도록 입을 크게 벌려 그의 혀를 맞이하기도 하고.
"음."
달콤한 신음이 맞붙은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차마 삼키지 못한 액체 한줄기도 함께 흘러내렸다.
토닥토닥 거리듯이 물결치는 그의 허리움직임이 키스와 함께 박자를 타듯이 다정한 원을 그려댔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이런 식의 부드러움이라면 밤새도록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한껏 흥분한 몸이 더 크게 흥분하면서 젖어 들어갔다. 하체의 질퍽거리는 소리가 키스로 인한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지경이다. 아랫배가 아릿하게 아파오면서 동시에 홧홧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분명 숨이 벅찰 만큼 가득 들어찬 뮤의 몸이 분명할 진대도 불구하고 더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 들었던 탓일까? 뮤의 아랫도리를 크게 베어 먹듯 꽉 조이자 뮤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아."
짧은 신음 속에 새겨진 쾌락의 감정 선. 잘게 떨어대는 뮤의 잔 근육을 손바닥으로 쓸며 나는 몸의 쾌락과 여자의 자부심이 영혼을 채우듯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귀엽게 구는 군."
"좋았어요?"
내 질문에 뮤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웃으며 한손으로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좀 더 그의 몸 쪽으로 끌어올리는 폼이 몹시도 급한 것처럼 보여 더는 못 참고 이젠 풀어내려나 싶었는데 여전히 뮤는 부드러운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마치 처음 성행위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불안한 속내를 달래주듯이 그렇게.
"아아."
그렇게 천천히 움직여주며 더 깊어졌다 살며시 떨어졌다, 더 깊어짐을 반복해댄다. 이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감각이 무척이나 나는 마음에 들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이토록 고요할 수도 있구나, 새로이 배우며 배시시 웃었다.
"으음."
뮤의 뜨거운 혀가 목덜미를 핥아대는 그 느낌이 간지러워 나는 또 웃었다.
"하아. 많이 젖었군."
"……부끄러우니까 그런 직접적인 말은 하지 말아줘요."
"피식, 아직도 부끄러워할 것이 남았던가?"
"그럼 안 돼요?"
"……별로."
그 말을 끝으로 뮤가 다시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흣."
입술을 미끄러트리며 목덜미 곳곳을 빨아들인다. 쪽하고 입 맞추는 소리와 그곳에 가해지는 간지러운 힘에 살짝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뮤는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움직임을 계속 가했다.
"하앗!"
엉덩이에 머물렀던 손이 어느새 슬금슬금 올라와 가슴을 가득 움켜쥐었다. 말랑말랑한 살을 마음껏 주무르고 꼭지를 희롱해댄다. 입술은 점점 더 미끄러져 내려와 쇄골에 머물러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쇄골을 혓바닥으로 할짝할짝 핥아댔다.
"아아."
몸이 조금씩 높게 더 높게 달아오르자 부드러운 것도 좋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세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몰려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나는 가슴을 한껏 밀어 올렸다. 그러자 가슴을 주무르던 손아귀의 힘이 조금 더 세어졌다. 비틀어진 살결에 아릿하며 아프기도 했지만 그 아픔보다는 쾌락이 훨씬 더 크다. 아래쪽에서부터 밀어 올리듯 움켜쥔 뮤의 손 안에 갇힌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다. 뮤의 손가락 사이로 삐죽 삐져나온 꼭지가 붉은 열매를 연상시키듯 화려하게 피어올라 바람결에 흩날리는 연약한 꽃잎마냥 떨려대고 있었다. 그 꼭지를 향해 뮤의 입술을 내려앉는 것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뮤의 뜨거운 입술이 가슴을 덮쳐왔다.
"하악."
작은 돌기가 뮤의 의도대로 마구 굴려졌다. 세차게 핥고 빨고, 살짝 깨물기도 하고 그리고 아기가 어미의 젖을 빨듯 쪽쪽 빨아들이기도 한다. 미칠 것 같은 짜릿함! 그 짜릿함으로 등이 뻣뻣해질 지경이다. 얼마나 물고 빨고 맛보았는지 뮤가 가슴에서 입을 떼었을 때 가슴 위가 그의 액체로 인해 반들거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