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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71화 (171/206)

< -- 171 회: # 10 -- >

"네가 날 경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이번에야 말로."

미미하게 이어가던 마나줄기의 끈을 놓친 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때문. 가수면 상태에 놓였던 것과 같았던 신경은, 그 목소리에 파르르 놀라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난 후의 맑음처럼 또렷해졌다. 목소리가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어느새 잠에서 깬 라니가 아까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 날 보며 앉아 있었다.

"어째서? 왜? 네가 한 일이 아닌데."

어쩐지 목이 잠겨있다.

"하지만 난 무서웠거든. 정말로, 많이. 네 부모님께 저지른 사건은……단순히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무겁고 큰일이었으니까."

"……."

"나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은 아니야. 그건 믿어줘."

"응, 믿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리해주겠다 답하자 라니가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가 남작 가(家)에 오고 난 후 3년 뒤야, 그 일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아주 우연히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네게 그에 관한 말을 할 수가 있었겠니? 몇 번이나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결국 난 차마 너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어. 내 하나뿐인……,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내 하나뿐이었던 희망인 네가 날 증오할 수도 있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

"난 무서웠어. 정말 많이, 아주 많이 무서웠어……."

무서웠다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으며 라니는 두 다리를 소파 위에 올려 가지런히 끌어안았다. 그런 라니의 모습은 너무나도 작고 외소해보여 나는 무척이나 서글퍼졌다.

"말 하지 않았어도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테니까."

"……."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응?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가 라니 너였는데, 그런 너를 내가 미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니? 바보같이."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다. 그 사실을 몇 년 전, 그 베롤린의 저택에서 알게 되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는. 어쩌면 정말로 난 라니의 우려대로 그녀를 미워했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노라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며 소리쳤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라니를 외면하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똑바로 바라봐 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라니를 포함한 세상 모두를 미워하고 증오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실제로 라니를 미워했을지 아니면 지금처럼 용서했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라니의 잘못이 아니란 건 알지만 감정이란 건, 쉬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 것이니까.

반대로 어쩌면 지금의 내 장담대로 너를 미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어떤 결론을 냈을지 지금은 알 수 없는 법. 이미 지난 일이 아닌가. 그때 내 감정이, 마음이 어떠했을 지는 지나고 난 뒤 시점인 지금의 난,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난 절대로 널 미워하지 않았을 거야. 그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하지만 지난 것에 대해선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지금은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라니에게 가장 좋은 대답을, 라니가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그로 인해 라니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면서 나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건, 어쩌면 이라는 가설이 아닌 눈앞의 라니였으니까.

"바보는 너야, 유니시이나."

눈에 빤히 보이는 내 위로에 위안을 받은 걸까? 창백하기만 하던 라니의 얼굴 위로 희미하지만 따뜻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웃음은 슬픔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꾸 나한테 바보, 바보 하는데. 진짜 바보는 너야, 이 바보야. 너는 배롤린이 한 짓을 모두 내 탓으로 여기지 말라고 내게 얘기했지만, 사실 난 그 모든 것들을 내 탓으로 여긴 적이 없어. 어느 순간 포기해버렸으니까. 내가 아파하는 건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배롤린의 짓이야.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들까지 내가 아파해주기엔 내가 너무 힘이 들거든."

"……."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이기적이야. 못됐고, 못됐지."

라니가 속내를 토로했다.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목소리로. 그런 라니의 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라니의 사고방식은 때론 내가 따라잡기에는 너무나도 고귀한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저런 식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이 아이는. 수도 없이 의심스럽고 또 의심스러운 사실. 어떻게 그 배롤린으로부터 이런 아이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네가 이기적이라고? 정말?"

"……."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 목소리에 베인 어이없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탓일까? 푹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라니가 힐끔 시선을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체념했다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배롤린 남작이 행한 짓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더는 같이 아파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그런걸 보고 이기적이라고 하는 거니? 라니야, 이제 보니까 넌 그냥 바보도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가 틀림없는 것 같다. 빨리 그런 사고방식을 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넌 제명에 못 살 거야. 이 바보야, 그런 건 이기적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지쳤다고 해야 옳은 거지. 넌 지친 거야. 체념한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해빠져서 어쩔 수 없이 아파한 거라고.

알겠니? 지금까지 넌 묵묵히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받아왔어. 네가 그런 조롱을 받아야 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는데도 넌 그랬어. 배롤린에게 마땅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자들에게뿐 아니라 피해 받은 적도 없는 사람들에 의한 손가락질까지, 너는 그 모든 것을 그저 묵묵히 받아왔다고! 그것도 불과 얼마 전까지. 대체 왜 그랬니? 응? 대체 왜 그랬어? 왜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어? 그런 짓을 한 건 네가 아니라고 눈물로 호소할 수도 있었고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네 무죄를 알릴 수도 있었는데 왜 넌 가만히 서있기만 했어? 응? 네가 만약 그리 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조롱했을 지라도 그래도 조금씩 네 안타까움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거야. 왜냐면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진실을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바로 너라는 사실을. 하지만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변명도, 조롱에 대한 반박도 그리고 심지어 그들 앞에서 울지도 않았어."

"……."

"아아, 그래, 그랬던 거야. 그랬던 거야. 너는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너는 배롤린의 짓을 모두 네 탓으로 여긴 적 없다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배롤린들의 죄를 네가 다 뒤집어씌움을 받으면서도 그저 묵묵히 견뎌냈던 거지. 정말 바보처럼! 그런 너를 누가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겠니? 응? 오히려 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아니 그 이상을 견뎌냈는데. 배롤린에게 당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그런 네 희생이 부족하다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 생각해. 상처받은 건 그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너에겐 그들이 가해자였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야."

"……궤변이야."

"궤변이면 어때. 네가 그 짐을 벗어버리게 만들 수만 있다면 난 이보다 더 한 말도 해줄 수 있는 걸. 그리고 궤변이라도 너한테 도움이 된다면 그냥 받아들여. 어차피 방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너 이기적이라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여기 있지."

"하하하."

기운이 한줌도 들어가 있지 않은 낮고 쓸쓸한 웃음이 라니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여전히 풀릴 줄 모르는 라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 보다 고개를 돌려 창 저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 곳곳에 밤으로 흘러들어가는 붉은 안개가 조금씩 새겨지고 있는 이 시각-. 이제 곧 어둠이 온 세상을 잠식해올 것이라고 알려주듯 아련한 바람의 소리에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아. 그러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그리운 향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듯 내게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향기, 사랑하는 텔의 향기가.

향기는 때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오르게 만들곤 한다. 그리웠던 지난 찰나의 순간들과 그 속의 시간들과 사람들을.

"……용서하는 거야?"

아아, 저기 창 너머로 이어진 화단에 텔을 가득 심어주었다고 당신이 그랬었지. 실제로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무척이나 놀랬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텔의 향연에, 넓게 펼쳐져 있던 텔의 파도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뮤, 뮤, 뮤.

그랬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은 늘 넘치도록 내게 뭔가를 주었던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요구한 것을 넘어서 내게 주곤 했었다.

"정말 용서하는 거야?"

"……."

"정말로, 정말로 날 용서해주는 거야?"

"……바보."

내 주위의 바보는 라니뿐만이 아니었나보다. 뮤, 당신도 바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이 더 바보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날 버릇 나쁜 여자로 만들 작정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과한 것들을 내게 주어선 안 되었다. 당신이 정말로 날 버릴 생각이 있었더라면, 날 놓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끔 이렇게 꽁꽁 옴짝달싹 날 묶어놓으려 해선 안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뮤, 당신은 바보다. 당신은 날 사랑하고 있다. 당신조차도 아직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고 있을 뿐, 당신은 날 사랑하고 있다. 아아, 어쩌면, 아마 어쩌면 당신은 꽤 오래 전부터 그런 마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바보, 라니."

바보, 뮤.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난 널 사랑해."

바보, 뮤, 당신은 내게 말했었지. 날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다고. 사랑이란 것이 무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용서해 줄게요. 당신이 바보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넌 내 가족이니까."

이제 텔을 보면 뮤, 당신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까. 그리움보다는 행복이 먼저 느껴지니까.

그러니까 바보 같은 당신을 나는 용서한다.

============================ 작품 후기 ============================

너무 늦었습니다 ㅠㅜ

저는 책상에 앉고자 하는데 저를 놔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 번 해봅니다.

게다가....... 이 분량이라니..........

내일 다시 올게요 ㅠ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만, 내일도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ㅠㅜ

그래도 일단,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이것만이라도 올립니다~

나중에 쌓이면 몰아서 보세요~^^

* abcde123님......... 아직은 쉿!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트는 던져졌죠!!! ;;;;

* 검은라벤더님ㅎㅎㅎ안녕히가세요~^^

* 은으1레드님 ㅎㅎㅎ중간에 글 끊기는 건 저도 싫어해서 가급적 몰아서 올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부디 용서하소서 ㅠㅜ

* 루이영원님ㅎㅎㅎㅎㅎ생각 같아선 매듭이고 뭐고 그냥 확!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ㅎㅎㅎㅎ 맘만 급하네요 ㅎㅎ

* M.

K님 ㅎㅎㅎ신개념!!! ㅎㅎㅎㅎ 그렇죠 ㅠㅜ 프롤로그 장면이 이제 멀지 않았죠 ㅠㅜ

* momorica님ㅎㅎㅎㅎ하하하~ 꽃밭 정자씬...... 그거 써보려고 일부러 그 장면 넣은 건데........ 엉엉~ ㅠㅜ 쓸 수 있겠죠? 쓸 수 있어야 할텐데요 ㅠㅜ

* 사랑솜님 ㅎㅎㅎㅎㅎ저도 해피엔딩을 좋아라 한답니다~ ㅎㅎㅎ 하지만 이 소설은 제 맘대로 결정 못한다는 거 ㅠㅜ 애초에 제 취향대로 글을 썼다면 이런 답답한 캐릭터는 안나왔을 것 같습니다-.

-;;;;;; ㅎㅎㅎㅎ 아, 다음 챕터가 마지막이라서 놀라셨군요. 마지막일 것 같지만 쓰다가 길어지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티오레나님 ㅎㅎㅎㅎㅎ해피엔딩~ ㅎㅎㅎ 저도 원합니다!! ㅎㅎㅎ 하지만 다트는 던져졌다능!!!

* whomi님 ㅎㅎㅎㅎㅎㅎ 날짜에 맞춰 쓰다보니 사실 생각보다 급한 것도 없지 않아 맞답니다 ㅠㅜ ㅎㅎㅎ 그래도 더 필요하다면 챕터를 하나 더 늘릴 수는 있겠지만 아마 그게 최대일 거예요~^^

* 크로이츠필님 ㅎㅎㅎㅎ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맞는데...... 제가 늑장을 부리고 있군요;;;;;;; 이론 ㅠㅜ

* 월하한유님ㅎㅎㅎㅎㅎ 마지막 챕터라는 말에 다들 놀라셨다능!!! ㅎㅎㅎㅎ 너무 뜬금없었나봐요 ^^;;

* 딸기홍차님 ㅎㅎㅎㅎㅎㅎㅎ세계여행..... 아~ 제가 가고 싶네요~ 말만 들어도 완전 행복한 단어, 세계여행~ ㅠㅜ

* 크샤나크님 ㅎㅎㅎㅎㅎ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 일단 정해진 날짜에 맞추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군요 ㅠㅜ

* 불타는에이스님오오오오오오오오~~~~~ 불금에 알바를 하셨군요!!!!! ㅠㅜ 불금인데, 흑! 불금인데!!! 저도 화이팅입니다!!!

* 별빛같은마음님ㅎㅎㅎㅎ열린마음으로 일단 결말을 기다리고 계시는 군요 ㅎㅎㅎㅎ 다음챕터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쓰다가 필(?) 받으면 한 챕터 더 늘 수도 있답니다^^;;;

* 잠온다a님ㅠㅜ아아아아아아ㅠㅜ 이를 어쩝니까아아아아~ ㅠㅜ 제가 늦게 왔네요~ 죄송합니다 ㅠㅜ

* 캐리브래드쇼님ㅎㅎㅎㅎㅎ담편 드리긴 드렸습니다만...... 아 쥐꼬리 같은 용량이라니...... 죄송합니다 ㅠㅜ

* 땍땍여우님ㅎㅎㅎ그남자편은 아마 조금 더 뒤에 나올 거랍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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