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9 회: # 10 -- >
"그럼 언제 떠나실 계획이십니까?"
한순간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떠날 계획입니다."
"예?"
뮤의 대답에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 얼굴 가득 나를 보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묻어나 있었다.
"며칠만, 아니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만 이곳에서 머물게 해주실 순 없으신가요?"
그 간절함을 담고 할머니가 간청해 본다. 심장이 살랑살랑 거려댔다. 그 간절함이 내게도 충분히 느껴질 정도여서.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따뜻한 애정과 관심. 절로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달래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나도 아직 받을 수 있구나. 이런 따스함을. 이런 따스함을 내게 줄 사람이 남아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이 현실이 맞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같이 살아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그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하지만 뮤는 여전히 단호했다.
"네랜 부인께서 공작성으로 오신다면 환영하겠습니다."
결국 여기 남는 건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이렷다.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내 거취를 이 사람의 뜻대로만 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려온다.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고 뮤에게 말했다.
"저랑 얘기 좀 해요."
"해."
"둘이서요."
단호한 내 말에 그가 한숨을 내쉰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다 꿰뚫어본 모양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렵하게. 사소한 동작 하나도 그가 하면 대단한 무언 가처럼 보인다.
우리는 응접실을 나섰다.
백작 가(家) 구조를 잘 모르는 관계로 나는 내 방으로 그를 끌고 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부러 화가 났다는 듯 팔짱을 거칠게 끼고는 방을 어지러이 왔다 갔다 해댔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뮤가 그런 나를 본채 만 채하며 나를 스쳐지나 그대로 소파에 가 앉는다. 뮤의 무심한 태도에 당황했지만 내 의지를 더 강하게 피력하기 위해 한층 더 거칠게 왔다갔다 걸음을 옮겨보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두껍게 깔린 카페트 때문에 그런 내 노력은 그다지 쓸모없어 보였다.
"뮤."
"안 돼."
내 말은 채 듣지도 않고 그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상상했든 그 대답은 내가 묻고자 하는 질문의 답에서 한없이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꼿꼿이 내가 다시 물었다.
"절 사랑하세요?"
"……."
소파에 앉아 뮤가 나를 올려다본다. 내심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각도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생뚱맞은 생각이지.
"전에 제가 했던 말 잊으셨어요? 설마요."
잊을 리가 없지. 그가 어떤 남자인데.
그 어느 날, 나는 분명 그리 말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나는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고 뮤에게 말했었다.
"절 사랑하세요?"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최대한 담담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려대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창피하게도.
그런 나를 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저 눈빛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정부 주제에 끝까지 사랑타령을 해대는 내가 이해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것이 가식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이 이미 그에게 기울어져 그가 나를 사랑하든 아니든 그가 하자는 건 뭐든 따르고 싶어진 내 심장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나는 물어야 했다.
마지막 오기는 부려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언젠가 사랑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노라 그가 내게 말한다면, 그 때 난 당당하게 이리 말해주리라. 나는 아니었다고. 내겐 사랑이 전부였다고. 잊어버린 거냐고. 나는 몇 번이나 당신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던 바로 그 여자라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물어야 했다.
"……모르겠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뮤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답이기에 실망하진 않았지만…….
"뮤?"
그렇게 대답하는 뮤의 얼굴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뮤……? 아!"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남자가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다. 네가 말하는 그 사랑이 뭔지는……."
"……."
"하지만 사랑 타령을 해대는 네가 다른 여자들의 것과는 달리 짜증나진 않아. 이건 사실이야."
"내가 말하는 사랑은……, 짜증이 나지 않는다고요?"
침이 고인다. 아주 힘겹게 나는 그 침을 삼켜냈다. 목이 바스라 질 듯 말라있었던지 따끔따끔 거려댔다. 심장이 세차게 뛴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 남자 입에서 처음으로 거론된 사랑이라는 단어가 비록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단어 자체만으로 황홀해 죽어버릴 것 같다.
"그래."
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려앉았다. 온 몸에 힘이 풀려버린 모양이다. 울컥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건 어찌어찌 잘 참아냈다. 아니 참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뮤가 조용히 다가왔다.
"유나."
뮤가 내 이름을 부른다.
아아, 아름다운 사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은 사랑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뮤."
그러니까 안아줘. 내가 느끼는 이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원한다면 나를 안아줘. 아주 세게 안아줘.
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뮤의 얼굴이 눈에 맺힌 방울방울로 인해 흐릿해 보였다. 그래도 당신의 아름다움은 여전하구나. 가까이 다가온 뮤가 주저앉은 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를 그 품에 꼭 안았다.
"여기서 지내고 싶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난 이미 오래 참았어."
"……."
"그리고 곧 있을 롱아르 영애의 결혼식 때문에 여기서 지내지도 못할 거다. 설마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그리고 그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바로 우리 결혼식을 준비해야 할 거야. 더는 미루지 않을 테니까."
"……우리 진짜로 결혼하는 거예요?"
"대체 내 말은 매번 어디로 듣는 건지 모르겠군."
그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댔다.
"내 말을 이렇게도 안 듣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
하지만 당신은 모른다. 불안해서 그런다는 것을. 이런 내 불안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테지. 어쩌면 영원히.
그래서 말해주려 한다. 내가 왜 불안한지. 다른 때 같았으면 절대 말하지 않았을 이 불안을, 지금은 당신에게 말해주려 한다. 지금은 말할 수 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당신 눈에 나는 길거리에 굴러다는 널리고 널린 돌멩이들과 다를 바 없었을 거예요. 맞죠?"
"뭐?"
"아니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분명 처음엔 그리 시작되었으니까요. 당신에게 저는 마냥 우습고 별 볼일 없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어요. 저만 그리 보였던 건 아니었겠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었을 테니까요."
"……."
"그렇지만요, 뮤. 그렇지만, 당신 눈에는 제가 마냥 우습고 별 볼일 없어 보였겠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 아빠한테 저는, 저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목숨까지 받쳐가며 지켜낼 만큼이나 그 분들에게만큼은 난, 난 그 누구보다 찬란하고 소중한 보물이었다고요. 난 사랑받았어요. 사랑받으며 자랐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고 살 자격이 있다고,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그 지옥 같은 배롤린 가(家)에서조차도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찮게 여겨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나는, 나는……."
난 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울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뱉어낸 내 말은 평소 외치고 싶었던 발악과도 같은 내 소망, 하지만 너무 힘든 현실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내 눈물들이다.
나는 사랑받는 아이였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나다.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찮게……여긴 적 없다."
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진심이다. 단 한 번도 너를 하찮게 여긴 적 없어."
나는 웃었다. 이 남자 입에서 나온 말 중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의 품 안으로 안겨들었다.
"고마워요."
따뜻했다.
"고마워요."
어차피 나는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내 심장이 이 남자한테 뛰어버린 이상 나는 패배자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최상의 패를 얻어냈다. 후에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당당하게 이리 말할 수 있으리라. 최선을 다했노라고, 나도 노력했노라고,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렸노라고. 그래, 당당하게 이리 말할 수 있을 정도면 되었다. 엄마 아빠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어줄 것이다.
그의 단단한 팔이 내 등을 둘렀다. 그 묵직함이 미치도록 좋았다.
두근두근.
문득 저 창 너머로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나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ㅋㅋ주말 잘 보내셨나요? ㅎㅎㅎ칭찬해주세요~ 일요일인데도 열심히 글써서 올립니다~ ㅎㅎ 금요일은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보냈답니다~ 요즘 글 쓰느라 너무 모범적으로 생활했더니 눈초리가 사납더라구요 ㅎㅎㅎ
다들 월요일~, 힘내시구요!!
안녕히주무세요~^^ ㅎㅎ
선추코 해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 크로이츠필님ㅎㅎㅎㅎㅎ자각을 했지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이놈은 아직 정신을 덜 차렸습니다. 쯧쯧쯧쯧쯧. 헉! 이건 비밀이었는데^^;;;;;;;; ㅎㅎㅎㅎㅎㅎㅎ
* M.
K님ㅎㅎㅎ유나가 쿤네 집에서 한달 가량 머물렀다는 글귀가 있답니다 ㅎㅎ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지요~
* pisceso님ㅎㅎㅎㅎ뮤가 님의 사랑인가요? 그럼 가지세요!! 맘껏 드립지요 ㅎㅎㅎㅎ
* 穹河님ㅠㅜ 그러니 쓰는 저는 얼마나 오글거렸겠습니까아아아아 ㅠㅜ
* 쿠니쿠마님ㅎㅎㅎ넵! 처음부터 이리 짜놓은 거라 불쌍해도 그냥 써버렸답니다 ㅠㅜ ㅎㅎㅎ 뮤는 감정을 표현하기 참 어려운 캐릭터예요 ㅠㅜ
* 나사tk님ㅎㅎㅎ아잉~ 감사히 받겠습니다^^
* 배고파5님 ㅎㅎㅎㅎ뮤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랍니다. 음, 아직은요^^ 정신을 덜 차린게죠;;;
* 월하한유님ㅎㅎㅎㅎ아직은 뮤의 행동이 크게 변하지 않을 거랍니다... ㅎㅎㅎㅎ 윗 분께도 말씀드렸지만 정신을 덜 차렸답니다. 뮤가........ ;;;;
* 루이영원님ㅎㅎㅎ뮤도 상당히 불안해 했지요 ㅎㅎㅎ 미쳐있었던가요? ㅎㅎㅎ 육체적으로 충분한가요? 정말로요? ㅎㅎㅎㅎ
* jadoo님 ㅎㅎㅎ어엉~~ 저는 쓰는데 오래 걸리는데 막상 읽어보면 5분도 안 걸리더라구요 ㅠㅜ 어엉~~~ ㅠㅜ
* 퍼플버블님ㅎㅎㅎ다들 그 남자편을 좋아하셔 ㅎㅎㅎㅎ
* 유진유민쓰마미님ㅠㅜ 감기;; 훌쩍;;;; 유진이랑 유민이는 좋았겠어요. 엄마가 토닥토닥 거려줬을 테니까. 저는 제 등을 혼자 토닥토닥해줬답니다 ㅠㅜ 훌쩍;;
* 크샤나크님ㅎㅎㅎㅎ아~ 그러게요~ 언제 이 부분까지 오나 했더니 쓰다보니 이 장면까지 오긴오는 군요 ㅎㅎㅎㅎ 레츠 고~ 술파뤼~~ ㅎㅎㅎ
* 사랑솜님ㅎㅎㅎ뮤가 제 마음을 깨달았으니 쿤을 더욱더 싫어하겠죠. 안그래도 싫어하는데 ㅎㅎㅎㅎㅎ 헉! 그 선도부셨군요.......... 공포의 선도부........ 절대 친해지고 싶지 않았떤 선도부;;;;;;;
* 티오레나님ㅎㅎㅎㅎ그 남자 뮤가 그렇답니다 ㅎㅎㅎ말랑말랑 하셨나요? ㅎㅎㅎ
* 게으른냥님ㅎㅎㅎ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ㅎㅎㅎ
* 안젤로니아님ㅎㅎㅎㅎ조금씩 읽으면 감질맛만 나서 저도 어지간하면 좀 길게 올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랍니다 ㅎㅎㅎㅎ 읽는 사람의 마음을, 저도 다른 글을 읽다보면 절실히 느끼거든요 ㅎㅎㅎㅎ
* 세이님 ㅎㅎㅎㅎ대망의 두달 ㅠㅜ 그러게요~ 빨리 맞춰야 하는데;;;; 하아;;;;
* momorica님 ㅎㅎㅎ그런데 아직 뮤가 정신을 덜 차렸다는 것이 함정;;;;-.
-;;;
* 카프린님 ㅎㅎㅎㅎㅎ저두요~ ㅎㅎㅎ 조아욤~ ㅎㅎ
* 까만둥하얀콩님 ㅎㅎㅎㅎㅎ고백~ 아잉~ 제일 쓰기 힘든 장면이 바로 이런 거라죠 ㅠㅜ
* zm아하하님ㅎㅎㅎ 감사합니다^^
* 님하님ㅎㅎㅎㅎ매 회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무슨 답부터 해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하나만 골라서 답해드리자면.... 결론은 저도 모른답니다^^;;;; 하하하하;;;
* 불타는에이스님 ㅎㅎㅎㅎ 짜식~ 순간 확 터졌습니다~ 푸하하하하하
* 미스노랑님ㅎㅎㅎ한 번 올릴 때 최대한 길게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 검은마녀♥님ㅎㅎㅎ인정은 하긴 하죠~ 다만 정신은 아직 덜 차렸다는 게 함정;;;이랄까^^;; ㅎㅎㅎㅎ
* *아시야님ㅎㅎㅎ감사합니다~~^^ 칭찬은 저를 춤추게 한답니다 ㅎㅎㅎㅎ
* 샤이니스타님 ㅎㅎㅎㅎㅎㅎ예전에 다른 분께도 말씀드렸는데 ^^;;;; 이 소설선물의 주인공인 제 친구는.... 참으로 독특한 아이랍니다...... 정말로, 정말로 독특한 아이랍니다...... 소설 결말은 다트 던져서 해피인지 새드인지 결정해 준다는데.... 이번 설날에 동영상으로 라이브로 찍어서 보내준다고 합니다........ 빨간색은 해피, 파란색은 새드랍니다....... 그러니 저도 아직 결말은 모르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 된다님ㅎㅎㅎ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 별빛같은마음님ㅎㅎㅎ인정하긴 했지만 아직 정신은 덜 차렸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