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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58화 (158/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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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에 놀란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모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말에 긍정을 표하고 있어 나는 더 놀라고 말았다.

"헛소리."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은 단 1초도 제고되지 않았다.

"예를 지키십시오, 공작."

"예를 지킨다면 그건 백작 가(家)로서의 당신께 아닌 내 여자의 할아버지로써의 당신께 지키겠습니다."

일말의 고려도 없다는 듯 단호한 뮤의 내침에 할머니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낮지만 언짢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뮤를 공격해왔다.

"제 조카입니다. 제 누님의 딸이지요. 어째서 제 조카의 거취를 공작께서 정하려 드시는 겁니까?"

조카란다. 나보고 조카란다. 지금까지 그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에게 남동생이 있었나 보다.

엄마는 외동딸이 아니었구나.

엄마가 몸이 약해 당연히 할머니도 약할 줄 알았는데. 내 몸이 또 약하듯이. 그리고 엄마가 나를 하나만 낳았듯 당연히 엄마도 외동딸이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그러리란 법이 없음에도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대의 조카이기 전에."

뮤는 삼촌이 보내는 날카로운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 태도가 어찌나 태평해 보이던지 나조차도 얄미울 정도다.

"내 여자지."

……제발 저런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아달라니까!

왜 저렇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말들만 해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도 없다. 나를 가족이라 받아들이고 있는 이 네랜 가(家)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사랑을 위해 집안까지 버렸던 엄마의 딸인 내가 누군가의 정부로 살고 있단 이 사실이 못 견디게 아프다.

"허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지극히 낮았다. 그 속에 담긴 건 분명한 노기다.

"알브레히트 공작껜 아직 부인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혹,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깨우쳐 주시지요."

할아버지는 내가 정부라는 사실을 곱게 돌려서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 속에 베인 거대한 불쾌감은 나조차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틀린 말은 없습니다."

뮤가 가벼이 긍정하자 아까 리안이라 했던가? 그리 이름을 소개를 받았던 삼촌이 분개하며 뮤를 노려보았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알브레히트 공작 가(家)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의 정부인 나에 대한 소문이 외국에서도 꽤나 화제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는 단순히 공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명해 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유명세에는 이 남자의 인간 같지 않은 외모도 한몫했고 무엇보다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실력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댔던 탓이다. 마냥 외모만 잘난 애송이로만 여기기엔 그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그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처리해나갔다. 그 일의 무게가 마냥 가볍다 할 수 없는 일들조차도 모두. 또한 그 일처리는 그 누도 반발 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완벽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일화중 하나는 펠라폰의 사절단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외교전선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화제가 될 만큼 전설로 자리 잡았다지. 더 웃긴 건, 그때의 나는 이미 그의 정부였다는 거다. 사람들의 찬양을 한 몸에 받는 남자의 품에 안기는 기분이란 상당히 묘한 것이었다.

한편으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펠라폰까지 날 불러들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으니까. 그것도 루벤스 제국에 있던 나를 펠라폰까지 데리러 가기 위해 왔다는 젠 경을 보았을 때의 그 심정이란……. 하아.

"방금 공작께서 제 말에 틀린 것이 없음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 손녀딸은 네랜 가(家)에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핏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이젠 다른 어디에도 보낼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입을 뗐다. 허나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그 의지에도 뮤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백작."

뮤의 목소리는 잔잔하기도 했고 뭔가 어이없어 하는 듯도 했다. 뮤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곧게 맞받아쳤다.

"이미 내 여자라 말씀드렸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재고하셔야 할 겁니다. 전 더 이상 이 아이를 제 곁에서 떼어 놓을 생각이 없으니 말입니다."

"언어에 무게를 두십시오, 공작! 더 이상의 불쾌한 말은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님 제 손녀딸을 계속 모욕하실 작정이십니까?"

결국 먼저 고함을 친 건 할아버지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눈매를 감추지 못한 채 할아버지는 뮤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엄청난 분노가 심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옆에 앉은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와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모욕이라니? 어째서 그게 모욕이 됩니까?"

"그렇다면 결혼도 하지 않은 아이를 공작의 여인으로 칭하는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곧 식을 치룰 사입니다."

"그게 모욕……예?"

"손녀 따님에 대한 제 소유권은 이미 정당함에 놓여있습니다. 그것에 모욕이란 단어를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은 감히 이 세상에 존재치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그 자는 알브레히트 공작 가(家)를 직접 상대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에 대한 추궁은 일말의 재고도 두지 않고 처단할 작정입니다. 백작께선 그 문제에 대한 심려는 거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놀란 건 비단 할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할머니도 뒤에선 사람들도 그리고 누구보다 나도 놀랐다. 오로지 잠잠한 건 내 옆의 이 남자와 이 남자 뒤에선 젠 경 둘 뿐.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려댔다. 전에도 몇 번 그의 입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을 했을 때는 우리 둘밖에 없었을 때였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쩐지……가슴 속 깊은 곳에 살랑거리는 느낌에 곤혹스럽기도 했다.

"그대들의 알브레히트 공작성 방문은 환영합니다. 곧 공작성은 유나의 집이 됩니다. 그러니 아무 때나 편히 오셔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결혼식 초대장도 보내드리지요. 그 점 또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유나가 이곳에서 사는 일은 결코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공작께서는……."

하지만 많이 힘든 모양이다. 뮤에게 사적인 말을 한다는 건.

나는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아니, 귀족으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의 권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알브레히트 공작 가(家)가 대단하다는 것은 어렴풋 알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경외심을 다른 귀족들에게 불러일으키는지는 모른다는 소리다. 그저 뮤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크게 반발하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를 보아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라고 지레 짐작할 뿐. 무엇보다 말 한마디 쉬이 뮤에게 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그 사실을 더 뼈저리게 느꼈다.

"편히 말씀하세요."

보다 못한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곤 예쁘게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이 왠지 엄마를 닮았다. 아니 엄마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참 이상하다. 사실 따지자면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왜 할머니의 모습에서 엄마가 보이는 걸까?

음, 당연한 건가? 엄마의 엄마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와 엄마의 외모는 부모와 자식 간이라 하기엔 애매할 만큼 닮지 않았는걸. 아무래도 엄마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닮은 모양이다.

나는 팔꿈치로 뮤의 팔을 툭툭 쳐댔다. 상당히 건방진 태도였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뮤가 힐끔 내려다본다.

"인상 좀 펴요. 말 한마디 하기 힘들어 하시잖아요."

"……인상 쓴 적 없는데?"

"그럼 그 뭐야, 분위기? 어째든 그것 좀 풀어 봐요."

"……험악하게 군 기억도 없다."

"심술부리고 있잖아요."

"내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가 되물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머니가 정말로 그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을.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인상 좀 피라는 눈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뮤가 짜증스런 한숨을 내쉰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부인. 손녀사위가 될 테니 말을 낮추셔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뮤가 편히 말하라는 듯 입을 뗐지만 오히려 더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한층 더 낮아진 뮤의 기분 탓이리라.

"아이참."

급기야 내가 신경질을 부려댔다. 물론 둘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대놓고 성질을 부리지는 못했지만 낮게 뱉어낸 짜증 섞인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터.

"그럼 언제 떠나실 계획이십니까?"

한순간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떠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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