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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48화 (148/206)

< -- 148 회: # 9 -- >

"무슨 꽃인데?"

"부겐베리아."

"부겐베리아?"

"응. 루벤스 제국에서는 그렇게 불러. 여기는 음……."

힐끔 시선을 내려 부겐베리아 밑에 쓰인 꽃 이름을 살펴보았다.

"여기는 부겐베리아를 종이꽃이라 부르는 모양이야."

뒤에 서 있던 쿤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몸을 숙이며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쁘네."

"그지?"

"응……. 예뻐."

그 말에 나는 쿤을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사실 부겐베리아는 루벤스 제국에서도 피는 꽃이다. 하지만 루노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피었고 그것도 매우 소량으로만 피었다. 때문에 루벤스 제국에서는 부겐베리아를 보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 때문일까? 루벤스 제국 내에서는 이 부겐베리아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꽃이었다.

"이 꽃은 더운 곳에서 피는 꽃이야. 이곳 네랜 영지가 부겐베리아가 꽃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덥긴 한가보다. 이렇게 활짝 핀 부겐베리아는 처음 보거든. 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 정말 예쁘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우와. 붉은색 부겐베리아도 있어!"

그랬다. 바로 옆에 붉은색의 부겐베리아도 있었다. 그나마 루벤스 제국 내에서 소량으로 피는 부겐베리아는 모두 보라색뿐인데. 하지만 이곳에는 붉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다. 심지어 파란색도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요리조리 살펴보자 어느새 다가온 쿤이 내 기쁨에 장단을 맞춰주듯 물어온다. 하지만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루벤스 제국에는 무슨 색깔이 있는데?"

"보라색."

"다른 색은?"

"다른 색은 못 봤어. 그나마 그 보라색 부겐베리아도 루벤스 제국에선 보기 힘들어. 그래서 나 지금 너무 신나. 무지 신기해. 세상에! 이 핑크색이라니, 핑크색 부겐베리아라니!"

나는 극도로 흥분했더랬다. 더위와 그 흥분으로 인한 혈압으로 이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감격을 쉬이 가라앉힐 수도 없었다.

"흠, 그럼 이 빨간색 꽃도, 노란색 꽃도, 저기 파란색 그리고 핑크색 꽃도 전부 다 부겐베리아야?"

"아니야, 쿤."

"아니라고?"

방금 전에 네가 부겐베리아라며? 쿤이 내 부정에 의아한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히히. 부겐베리아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말한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핑크색은 꽃이 아니라 모두 잎사귀란 소리야, 잎사귀."

"잎사귀? 꽃이 아니라고?"

"응. 꽃은 그 안쪽에 삐죽이며 서있는 이 아이들이 꽃이야. 걔네들이 활짝 피면 하얀색 수술이 나와."

"그렇군."

역시나. 쿤은 별로 신기해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줄 뿐. 딱히 관심은 없지만 내가 워낙 좋아하니까 맞춰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남자 중에 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여태껏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저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이 어딘가 싶다.

아빠도 그랬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다보니 엄마한테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아빠 자체가 꽃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꽃이기에 함께 즐겨주었던 뿐이다.

"어머! 이 라밀은 절대 더운 지역에서 필 수 없는 꽃인데 여기 있네! 역시 네랜이야. 맙소사. 믿을 수 없어. 이것 봐봐. 이 쉐어는 굉장히 추운 지역에서만 사는 거란 말이야. 아니 어떻게 개량했기에 이런 땡볕인 곳에서도 피어있을 수 있는 거지?"

멋져, 대단해, 너무 신기해, 끝내줘. 내 입에서는 연신 최고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난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랬다. 이곳은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더위가 내게 끔찍함을 선물해주었노라면 그 뜨거움 속에서 피어난 이 수많은 꽃들은 마치 그 끔찍한 더위를 보상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행복을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을 매일매일 볼 수만 있다면 네랜 영지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 더위가 1년 내내 이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

"유나, 유나! 이제 그만! 일단 너 좀 쉬어야겠어."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녔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는 한참을 돌아다녔다. 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보고 쉬라고 난리쳐댔고.

벌써 몇 군데를 돌아다닌 건지 셀 수도 없었다. 이미 내 운동량은 초과되어도 예전에 초과되었고. 오늘 저녁엔 근육통으로 끙끙 앓을 것이 분명하다.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꽤 오래 걸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화원 길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설렘을 느꼈다. 아, 전부 다 돌아보고 싶다. 저 끝까지 둘러보고 싶다. 그제야 나는 한 달 동안 집안에서만 시간을 낭비한 했던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너 너무 무리했어."

"하지만 정말 신나 죽겠는 걸."

"대체 뭐가 그리도 좋은 거야? 어딜 가도, 어느 샵에 가도, 그 꽃이 그 꽃일 뿐이잖아. 이곳에 있던 꽃이 저곳에도 있고, 저곳에 있던 꽃들이 다른 곳에서도 있는데. 굳이 하나하나 전부 다 둘러봐야 할 필요 있을까?"

나는 이해가 안 돼.

쿤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척! 들어 올려 쿤 얼굴 바로 앞에서 흔들어 주었다.

"너는 몰라."

쿤은 모른다. 아니 웬만한 남자들은 모른다. 아니, 비단 남자들한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려나? 그럼 말을 바꾸지 뭐.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 외에는 모를 거다.

"나는 단순히 꽃만을 보고 다니는 게 아니라고."

"그럼?"

"네가 말한 대로 이 꽃이 저기에도 있고, 저쪽 꽃이 여기에도 있는 건 맞지만 각 화원마다 꽃을 꽂아놓은 방식이라든가, 꽃을 포장해 놓은 방법이라든가 혹은 꽃을 이용한 갖가지 인테리어 감각이라든가, 각 집마다 다른 꽃꽂이의 섬세한 차이라든가 등등이 모두 다르단 말이야! 이게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일인지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아이 참! 왜 몰라? 응? 내가 돌아본 화원들 중 같은 디자인으로 꽃을 꽂아둔 집은 지금까지 단 한곳도 없었다고. 그 말은 즉, 저 끝까지 펼쳐진 화원들 역시 죄다 다른 디자인으로 꽃을 장식했을 거란 소리잖아!"

"그게 뭐?"

쿤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순간 나는 온 몸에서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안 그래도 종아리가 너무 아프고 허벅지도 너무 아프고 다리도 너무 저리고 몸도 너무 피곤한데 쿤마저 내 기운을 앗아가는데 일조하고 있다니.

"쿤, 어떻게 그걸 모르겠다고 그리 태연히 말할 수 있니, 응? 내가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말이야. 적어도 내가 이 정도로 열변을 토했으면 꽃에 대한 창의력과 다양한 꾸밈방식에 대한 한 자락의 존경 정도는 표해줄 수 있지 않아? 안 그래?"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르르 떨어가면서까지 소리치자 쿤은 다소 곤란한 표정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이런 격한 반응에 난처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곧 길고 긴 한숨을 내쉬며 패배를 선언한 쿤이 흥분으로 꽉 쥔 주먹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손등을 토닥거려주는 손길이 참으로 다정하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사과할게. 네 말이 맞아. 네 말대로 온전한 공감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열정에 대해서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해선 안됐어. 미안."

어린 아이를 달래듯 나를 살살 달래는 쿤의 말에 나는 괜히 죄 없는 쿤에게 화를 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민망해졌다. 너무 흥분한 모양이다.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는데,

"!"

아, 이런! 그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 줄이야.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껌껌해진 시야에 몸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유나!"

맥없이 휘청거리는 나를 쿤이 재빨리 잡아주었다. 놀람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댄다. 쿤이 잡아준 덕에 살았다. 아마 그대로 쓰러졌다면 분명 크게 다쳤을 테지. 시야는 금방 회복되었지만 어지럼증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뒤에서 몸을 지탱해주는 쿤의 가슴에 뒷머리를 콩! 박은 채로 한참을 숨을 골라야 했다.

"안 그래도 불안불안 하더니만. 괜찮아?"

"이런, 이렇게 심하게 현기증까지 일 줄은 몰랐어……. 오늘 내가 제대로 무리한 모양이야. 이따가 밤에 큰일 났다."

"휴~. 널 진작 말렸어야 했어. 내 잘못이야."

"킥킥. 아마 말리지 못했을 거야."

그 후로도 얼마동안 나는 혼자서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내 몸을 다시 지탱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쿤은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어딘가로 이끌었다. 나는 얌전히 쿤의 뒤를 따랐다. 쿤이 들어선 곳은 카페였다. 그 카페는 처음 이곳 화원의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넓게 펼쳐진 꽃의 바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제법 높게 지어져 있었다.

"아, 비쌀 텐데."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들어와."

사실 카페는 그 가격대가 제법 세다. 평민들이 아예 이용하지 못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고 맘 편히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낮지도 않다. 다시 카페로 들어가려는 쿤을 말리고 싶었지만 막상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멋진 꽃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쉬이 나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구경만 하고 나가는 건 안 되려나?

"그냥 처음부터 여기 올걸. 아까 그 카페엔 괜히 갔나봐."

미안한 기분에 그리 말하자 쿤이 괜찮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나는 이번엔 뜨거운 꽃차를 주문했다. 내부는 냉각마법으로 충분히 시원했기에 오래 머무르기엔 차가운 음료보단 뜨거운 편이 나을 것이다. 쿤도 내가 추천해준 꽃차를 주문했다. 대신 쿤은 뜨거운 것이 아닌 차가운 것을 주문했지만.

"여기 너무 멋지다. 한눈에 모든 정경이 다 보여."

"들어오길 잘했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데려온 보람이 있잖아. 그냥 애초에 이곳으로 데려올걸."

그렇게 말하며 쿤은 나를 보며 콧등을 찡그렸는데 왠지 그 모양새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왜?"

"아무래도 너 오늘 저녁에 고생 좀 할 것 같지?"

"헤헤. 음, 그럴 것 같아. 이미 내 운동량을 한참이나 초과했는걸 뭐."

"미련해. 내일 또 오면 되는데 뭘 그렇게 무리한 거야?"

"그치만 너무 좋았는걸."

"휴우. 약이라도 사가야 하나?"

"그런 거 싫어."

"그럼?"

"아, 포션이나 마셨으면 좋겠다."

"포션을 마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에 쿤이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제야 나는 내가 한 말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또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떠올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정말 습관이란 무서운 거다. 특히나 편한 것에, 고급에 길들어진 습관은 더더욱 무섭다. 고급술로 입맛을 다셔 놓은 덕분에 다른 웬만한 술은 입에 맞지 않는 내 빌어먹을 입이 그것을 증명했고, 몇 번 마셔본 포션의 효과에 반해 어느새 포션을 마시고 싶다 망발을 지껄여댄 내 입이 또 그것을 증명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 그냥 그러고 싶다는 희망사항인 거지 뭐. 그거 만병통치약이라잖아."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분한분때 리리플을 못달아드릴 것 같네요ㅠㅜ 죄송합니당 ㅠㅜ

너무 졸려서..... 사실 지금도 눈을 감고 글을 쓰고 있어요... ㅎㅎ

감기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여러분들도 감기 부디! 제발! 조심하시고!

마스크!!! 요즘은 그냥 필수로 가지고 다니시는거, 알죠??

특히 기관지 약하신 분들! 꼭 챙기세요.

그 남자 편은 다다음에 올릴 것 같네요~

그래도 한번 올릴때 3편이나 4편씩 올린다고 계산해 봤을 때

다음에 올릴 때 뮤가 나올 것 같아요^^

뮤가 얼마나 열받아 했는지....

지금 쓰고 있는데... 도무지 졸려서 못쓰겠사옵니다~

우리는 다음에 만나요~ 안녕히주무세요~^^

선추코해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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