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는 아름답다-137화 (137/206)

< -- 137 회: # 9 -- >

"다들 잘……있겠지?"

생각 안할래.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들. 그립지만 아직은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의 얼굴을 고개를 휘휘 저어대며 간신히 떨궈냈다. 아직은, 아직은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데 힘쓰고 싶다. 내게는, 그래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 무언 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가만히 누워있는 것에 싫증이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보았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몸임을 확인했음에도 아직 단 한 번도 침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바보 같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다리에 힘이 없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다. 덜덜 떨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아마 계속 기절해 있던 탓인지 기운이 달리는 현상 같았다.

문손잡이에 손을 얹고 잠시 망설였다. 이 문을 열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아직 여기가 어딘지 몰라 더 조심스러웠나 보다.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문을 열고 나가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끼이익. 문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해 날카롭게 공기를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웃기게도 문에 기름칠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쿤?"

평범한 평민들의 집이라 하기엔 다소 넓은 거실이 바로 문 밖에 펼쳐져 있었다. 아, 어렸을 때 살았던 우리 집과 구조가 비슷하네.

"쿤?"

크기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쿤의 이름을 불러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휘휘 고개를 둘러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엔 사람이 살고 있는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한층 더 용기가 생겼다.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며 집 안 전체를 쭉 훑어보았다.

음, 역시 그렇구나. 이 집은 평범한 평민들의 집 보단 좀 잘 사는 평민들의 집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드는 낯선 느낌에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영악하기는. 그새 그 으리으리한 저택에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지.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쿤?"

다시금 이어지려는 그곳에 대한 생각에 머리를 휘 젓고 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내 목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며 메아리쳐대고 있었다. 그 울림에 나는 그제야 조금 이상한 기분이 되어 다시 꼼꼼히 거실을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벽난로가 위치해 있고 가구라고는 간단한 수납장 몇 개와 소파가 전부. 그런데 소파가 옆에는 소파를 두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메아리? 아, 그래 메아리.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거실 안쪽에 부엌으로 연결된 곳이 나왔다. 찬장에 접시 몇 개가 보였지만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낡은 싱크대도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사용안한지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많아 당황스럽다. 그리고 보니 사람이 살고 있을 법한 기운도 없었지. 그랬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어느 가족이 머물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난 뒤의 '비워진' 기운이 강했다.

비워졌다……라.

그제야 명확해진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지금 이 집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니구나. 아까부터 느껴졌던 묘한 이질감은 사람의 기운이 전혀 오지 않은 위화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무서울 법도 했지만 오히려 무서움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롯이 혼자였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달까.

늘 누군가와 있었다. 어쩔 때는 감시를 받았고 어쩔 때는 호위를 받았다. 그게 좋을 때도 있었지만 내 분수에 맞지 않다 여겨질 때면 숨 막히게 답답하기도 했다.

끼이이.

다른 방인가 싶어 새로운 문을 열어보았다. 방이 맞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 곳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었다. 낡은 침대와 책상과 테이블이 전부였다. 또 다른 곳을 열어봐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나마 내가 눈을 떴던 방은 지금 본 이 방들보다 더 사람의 손길이 묻어있어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는데 그건 아마 쿤이 청소를 해주었기 때문일 거다. 쿤은 그런 사람이니까.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딜까? 아무래도 수도는 아닌 것 같고. 쿤이 말했던 그……강 이름을 난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강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딱히 생각나는 다른 강 이름도 없다. 결론은 내가 무식하다는 거겠지.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슬그머니 밀어 올려보았다. 밖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만 아주 살짝. 그러자 작지만 예뻤을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원 역시 사람의 손길을 오랫동안 타지 못해 풀들이 마구잡이로 자라있었지만 그래도 가지런히 피어있는 꽃들은 전 주인이 이것들을 얼마나 정성껏 보살폈는지를 보여주었다.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 이 집 안주인은 분명 상냥한 여자였을 거다. 그러니 너희들도 듬뿍 사랑받았던 거겠지.

다시 내가 머물던 방으로 돌아왔다. 방 창문의 커튼도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집 주위를 둘러싼 울타리 넘어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는 길이 보인다. 이지러지게 핀 꽃들 때문에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저 울타리 너머가 거리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낯설다. 내겐 당연했던 사실이었는데. 작은 정원, 울타리, 그 너머의 길가. 내겐 무척이나도 당연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든 것이 왜 이렇게도 낯선 걸까.

그 만큼 그 남자의 저택이 컸던 탓이겠지.

그랬다. 집 울타리 바로 너머가 거리라는 건 평민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민들은 귀족들처럼 그렇게 큰 정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마나 이런 정원을 가지고 있고 울타리를 두르고 있을 정도라면 평민들 사이에서도 제법 괜찮은 부류에 속한 것이었다. 적어도 돈에 힘겨운 삶을 살지 않은 그런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평민들 말이다.

"우리 집도 그랬잖아, 유나야. 그런데 넌 지금 뭐가 그렇게도 낯선 거니……. 응? 그 집이, 그 행복했던 곳이 생각나지 않는 거니?"

그럴 리가. 우리 집, 아기자기했던 하얀 색 울타리를 떠올리자 그제야 나는 웃음 한 조각을 입에 걸 수 있었다. 울타리 안쪽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던 엄마의 '텔'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서 있는 게 조금 힘들어져 다시 침대로 갔다. 쓰러지듯 걸터앉아 잠시 그 자세를 유지하다 그대로 몸을 뒤로 뉘였다. 털썩. 공작성의 침대만큼 푹신푹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편안하다. 잠시 그대로 누워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밋밋한 하얀 벽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어린 시절 내 방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기지개를 쭉 켜본다. 우두둑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꽤 시원하다. 그래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몇 번이고 쭉쭉 몸을 펴댔다. 레니는 기지개를 펴댈 때마다 우렁찬 뼈 소리가 났었는데. 듣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그 소리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던 말든 레니는 그저 시원하다고 크게 웃었었다.

"……."

그만, 유나야.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했잖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차단시키고 이번에는 목운동을 해주듯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그곳을 쳐다보니 베개 옆에 종이가 한 장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만 뻗으면 쉬이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넌 우는 것도 어렸을 때랑 똑같구나. 여전히 체력도 약하고. 후후. 잠깐 나갔다 올게. 혹시 내가 나가있을 때 네가 깨어 날까봐 메모 남겨.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거니까. 먹을 걸 사가지고 올게. 쿤

한 글자 한 글자에 그의 성격이 묻어났다.

그런데 나보고 그대로라고? 아니야, 쿤. 나는 많이 변했어. 어렸을 적 네가 알고 지냈던, 네가 유나라고 부르며 내게 웃어주었던 그 시절의 소녀는 이제 없단다. 변하지 않은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너야 말로 그대로야.

나는 종이를 얼굴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틀 동안 기절상태였던 덕분에 뜻하지 않았던 수면을 실컷 맛보았고, 쿤을 보자마자 울어버린 탓에 기진맥진해 또 잠들고. 대체 얼마나 많이 잔건지, 분명 내 인생에서 최고로 오래 잠잤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피로는 조금도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굉장히 피곤했다. 아무래도 편두통 탓인 것 같다. 펑펑 울고 나면 항상 나를 괴롭혀 댔던 빌어먹을 편두통. 아주 어렸을 때도 아기였던 내가 펑펑 울고 나면 항상 그 뒤에 고열이 올라 엄마 아빠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들었었는데.

정말 맘에 드는 게 하나 없네. 툭하면 골골 거리는 쓸모없는 몸뚱이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비하할 건 또 뭐니."

한심하게.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오히려 잡생각이 많이 지나 보다. 그래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이 빈 집을 배회하는 것이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자. 차라리 움직이자. 그렇게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는데 때마침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쿤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에는 조금밖에 못썼네요~ 내일 더쓰고 올릴까 하다가 일단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이거라도 올려봅니다;;; 내일 꼭 올게요~ 한편이라도 들고 올게요!!

감기 조심하세요 ㅠㅜ 걸리면 아파요, 많이 아포요.... ㅠㅜ

이번 챕터는 유나를 위한 챕터랍니다. 유나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ㅎㅎ 뮤를 기다리시는 분들, 이번 챕터는 그 남자편까지 기다리셔야;;;쿨럭;;;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 pisceso님 ㅠㅜ 아아;;;; 이번 챕터에서 뮤는 아마 그 남자 편이 아닌 한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ㅠㅜ가능한한 빨랑빨랑 써서 올릴 테니까 그 남자 편까지 기다려 주세요;;;; 아, 감기 ㅠㅜ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ㅜ 근데 아포요........... ㅠㅜ

* 퍼플버블님 ㅎㅎㅎㅎ더 일찍 오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당;;;;

* sks138님????? 아, 그렇군요~ 3개월 노블도 있었네요.... 이제야 안 저도 참;;;

* momorica님ㅎㅎㅎㅎ넵!!! 아직 프롤로그 사건은 아니라는게 함정;;;;이지요 ㅎㅎㅎㅎ 이 순간에도 술판을 걱정하는 님은 짜아앙!!!! ㅎㅎㅎㅎㅎ

* M.

K님ㅎㅎㅎㅎㅎ유나 엄마도 이 소설 말고 다른 소설의 여주랍니다. ㅎㅎ 사실 유나 엄마 소설을 먼저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유나 이야기를 먼저 쓰네요 ㅎㅎㅎ 저는 여주한테 그런 끔찍한 일은 겪게하고 싶지 않아요 ~ 걱정마세요~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ㅎㅎ

* whomi님 ㅎㅎㅎ아직 프롤로그와 연결되는 사건은 아니랍니다 ㅎㅎㅎㅎ 그렇죠! 우리 유나는 몸은 약하지만 그래도 정신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건강하답니다 ㅎㅎㅎ 아, 저도 그런 멘탈을 가지고 싶네요~ 외유내강!!! 그치만 저는 외강내유라는 슬프고도 슬픈 현실 ㅠㅜ

* 검은마녀♥님 ㅎㅎㅎ절단이 아니랍니다^^;;;;; 그런거 전 몰라요;;; 전 쓰는대로 그냥 올립니다;;;;; 대체 비축분 뭔가요? ㅎㅎ

* 유진유민쓰마미님ㅎㅎ돈지랄~~~ㅋㅋㅋㅋ푸하하하하하. 그렇네요~ 사실 이 소설에서 뮤는 포션을 마구 쓰는 돈지랄을 많이 보이긴 했네요 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유나 살리려면 돈지랄 정도는 뮤가 해주지 않을까요? ㅎㅎㅎ

* 땍땍여우님 ㅎㅎㅎㅎ달달;;;;아마 이번회까지 보셨다면 달달은 대체 어디로?? 하고 놀라실지도? ㅎㅎㅎ 아잉~ 추천을 누르셨나요? 복 받으세요~ 덤으로 제 사랑도요 ㅎㅎㅎ

* 루이영원님ㅎㅎㅎㅎ늘 오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ㅎㅎㅎㅎ 내용이 어두워서 죄송해요;;; 그나마 너무 어두워서 삭제하고 빼고 고친게 이 정도네요. 너무 어두우면 땅파고 들어갈까봐;;;;;;;;; 아, 호위기사.... 죄없는 사람 곤란하게 만든 제가 잘못한 거겠죠? 사실 그 호위기사가 무슨 잘못입니까아아아아??

* 앙살이님 ㅎㅎㅎㅎ님도 불쌍한 호위기사 걱정을 해주고 계시는 군요;;;정말 그가 무슨 잘못이길래!!! 다 제가 그리 쓴 것을요 ㅠㅜ

* 게으른냥님ㅎㅎㅎ아직 소설 끝은 아니랍니다~~ 그래도 절반 이상은 쓴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

* 나사tk님 ㅎㅎㅎㅎ 후작영애가 괜한 사람 붙들기는 했죠 ㅎㅎㅎ 유나가 뮤 애태울 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유는 뒤에?? ㅎㅎ

* 사랑솜님 ㅎㅎ최대한 써서 올렸답니다!!! ㅎㅎㅎ 근데 어두웠죠? 훌쩍훌쩍.

* 페르디엔님ㅎㅎㅎ헉!!!!! 예상을 하셨군요~ 님을 킹왕짱으로 임명합니다!!! ㅎㅎㅎㅎ

* 세이님ㅎㅎㅎ우리 유나는 몸은 약하지만 멘탈은 건강하니 걱정마세요~ 잘 이겨낼 거예요 ㅎㅎㅎ

* 별빛같은마음님ㅎㅎㅎ 라니는 죄가 없지요 ㅠㅜ 라니에게는 원래도 죄가 없었지요 ㅠㅜ 그저 죄가 있다면 그런 아비 밑에서 태어난거? 하지만 것도 라니의 선택이 아니었답니다 ㅠㅜ

* 불타는에이스님ㅎㅎㅎ후작영애ㅠㅜ 이 영애도 사실 불쌍한 여인네인데 ㅠㅜ

* 크샤나크님???? 음?? 처음에는 뮤한테 뭘 얘기해? 했다가 130편 코멘트인거 알고 웃었답니다~ ㅎㅎㅎ 뮤 가지세요!!! 유나는 쿤한테 가라고 하죠 뭐 ㅎㅎㅎ

* 월하한유님ㅎㅎㅎ그래, 유나가 위험하다. 근데 넌 뭘하고 있니? ㅎㅎㅎㅎ

* 에스힐드님ㅎㅎ다음편 드렸답니다. ㅎㅎㅎ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