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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28화 (128/206)

< -- 128 회: # 8-8 그 남자 -- >

"주군?"

생각에 잠겨있던 뮤를 새론이 일깨운다. 그 부름에 라일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던 뮤는 유나가 어디 있냐는 그의 질문에 새론이 화원에 있다 대답한 것을 다시 상기하였다.

쯧쯧. 이번에 또 열이 오르면 혼 좀 내야겠다. 혀를 차며 유나의 행동에 불만을 표한 뮤는 새론에게 덮을 것을 가져오라 명하고 화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화원에 정자라도 만들어놔야 하나? 그녀가 사랑한다며 애지중지해대는 그 꽃들을 마음껏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그럼 그때는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려나? 며칠 전과 같은 혹은 어제와 같은 잠자리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인사가 될 것이다.

음, 나쁘지 않겠군.

화원에서 자주 잠드는 그 바보 같은 행동의 결과로 미열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파침대를 곁들어놓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그럼 그때는 밖이라고 자기의 손길을 거부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

화원에 도착한 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나무 그늘 밑에 잠든 그녀의 모습이었다. 다리를 쭉 뻗은 채 한껏 얌전한 자세로 잠든 그녀의 모습을, 뮤는 이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와 수없이 많은 밤을 보냈지만 사실 뮤는 자기의 여자가 이리 얌전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와 함께 자고 있을 땐 늘 그의 품에 가둬둔 상태였기 때문에 볼 수 없었고, 격렬한 정사 끝에 잠든 그녀는 잠든 와중에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기 때문에 잔뜩 흐트러진 상태였다.

물론 뮤는 자기의 흔적이 가장 많이 새겨진 그 때의 그녀를 보는 것이 가장 흡족하긴 했으나 지금의 이런 얌전한 모습도 나쁘진 않다. 그랬다. 나쁘지 않다. 아니, 꽤 맘에 든다. 자는 모양새가 제법 예뻐서, 한 송이 꽃과도 같아서. 얌전빼듯 배 위에 얹은 두 손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었다.

뮤는 금세 담요를 가져온 새론에게 담요만 건네받고는 바로 가보라는 손짓을 보였다. 새론의 기척이 가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을 더 자기의 여자를 내려다보던 뮤는 바람결에 그녀의 어깨가 살며시 떨리는 모습에 조용히 다가가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 따스함에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또 그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뮤는 이제껏 그의 여자가 순수하게 잠만 자는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의 손바닥보다 더 작을 것 같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다 들어가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 코 입이 다 있는 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뮤는 그 사실에 새삼스런 기분이 되어버렸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저 작은 것들이 제각기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건가? 정말? 정상적으로? 그 것이 퍽이나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여자는 모든 게 다 작았다. 얼굴도 작고, 몸도 작고, 키도 다른 영애들에 비해 작고.

"손도 작지."

한 손으로 가볍게 그러쥘 수 있었던 그녀의 양 손목을 떠올리며 그가 신기한 듯 그녀의 손을 담요 위로 쥐어보았다.

"으음."

그런데 너무 세게 쥐었던 탓일까?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히 잠들었던 그녀가 작게 몸을 뒤척거리더니 눈을 깜빡거려댄다. 영롱한 하늘빛이 그의 시야에 들이찼다. 그 단순함에 그의 감각이 온 몸을 깨울 듯 그를 몰아쳐댔다. 혈관이 달아오른다.

아.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아름답다. 뮤는 하늘색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란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를 흡족하게 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지금은 세상 그 무엇보다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이 여자는 내 것이다. 이미 내가 취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취할 내 여자. 머릿속으로 그리 정의를 내리자 불현 듯 뮤의 심장에서 집념과도 같은 소유욕이 들끓어 올랐다.

"와, 왔어요?"

잠의 기운을 채 몰아내지 못한 여린 목소리가 한없이 뜨거워져만 가는 뮤의 심장을 토닥토닥 달래주었다. 가만히 머리맡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붉은 꽃잎과도 같은 입술을 쓸어내린다. 키스하고 싶다는 그 무언의 행동에 그녀가 살포시 웃는다. 그 웃음에 우습게도 심장이 또 내려앉았다. 그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 들뜬 마음을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몸 어딘가에서 이런 향기가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선 항상 기분 좋은 향기가 배어 나왔다. 꽃향기라고 하기엔 체취가 많이 묻어났고 그렇다고 단순한 체취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달콤하고 향긋한. 아아, 이 꽃과도 같은 여자가 내 것이구나.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상기하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이 온 몸에 새겨진다.

"왜 자꾸 여기서 잠자는 거지?"

겨우 입술을 뗀 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보다 더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음, 여기서 마나를 운용하면 좀 더 잘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데 하고 나면 굉장히 피곤해져서 잠들어 버려요."

"그렇군."

그녀의 말에 뮤가 가볍게 수긍해 보였다. 사실 그녀의 말은 옳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마나를 운용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것이니.

"내일 모레 루이가 돌아온다는군."

루이가 돌아온다는 말은 그의 아내도 돌아온다는 소리. 함께 신혼여행을 갔으니 같이 돌아오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 말을 즉시 알아들은 유나의 얼굴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으로 땅을 짚으며 뮤에게 달려들 듯 그녀가 소릴 내질렀다.

"정말요? 정말이죠? 아, 그리고 분명 제 생일선물로 술 파티 허락해주신다고 했어요. 맞죠? 분명하죠? 이제와 그런 약속한 적 없다 발뺌하시면 곤란해요."

"하여간 꼬박꼬박 약속을 거듭 받아대는 군."

뮤가 일부러 얼굴을 굳혀가며 비꽜지만 유나는 그저 싱글거려대기만 했다.

"매번 허락을 해줘도 불안하게 해주시니까 그러잖아요. 그냥 화끈하게 시원하게

'맘껏 마셔라!'

하고 말씀해 주시면 제가 이러겠어요?"

"결국은 내 탓이란 소린가?"

"맞아요."

그녀의 어이없는 긍정의 고갯짓에 뮤는 그 뻔뻔스런 낯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뮤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몰라도, 아니 제대로 해석한 모양이다. 유나의 얼굴에 민망한 기운이 가득가득 새겨지는 것을 보아하니.

하지만 그런 얼굴조차 나쁘지 않다.

내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저 좀 도와주세요, 네? 롱아르 백작께서 레니가 이번 술판에 끼는 것을 막고 있대요. 레니가 저한테 도와달라고 얼마나 징징거려대던지. 하지만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그러니까 뮤님께서 좀 도와주시면 안돼요?"

그렇게 사정하며 유나는 자신의 얼굴을 뮤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대답을 재촉하듯이 '네? 네? 거려댔다. 뮤는 손가락으로 유나의 미간부분을 집고 뒤로 휙 밀어냈다. 아주 살짝 민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세차가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백작이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우우, 알아요. 우리가 좀 심하게 마신다는 것쯤은."

"하지만 고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군."

뮤의 냉정한 말에 유나가 눈을 떼구루루 굴려댔다.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하는 이때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내비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나름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무엇보다 귀여워보였다.

"도와주지 않으실 거면 됐어요. 그냥 놀리지나 말아요. 저 혼자서도 레니를 빼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뮤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더 웃긴 건 그녀 또한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뮤가 물끄러미 그런 그녀를 쳐다보자 유나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음, 빼올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잘하면? 그래도 만약 도와주신다면 감사히 받을 게요."

역시나. 그녀는 스스로를 믿고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말을 뒤집은 그녀의 모양새에 기가 찼지만 그보다 뮤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닌 절로 터져버린 웃음이었다.

"도와주지. 내 조건을 수락한다면."

"……그냥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요? 왜 맨날 조건을 달아요?"

"싫으면 말고."

뮤의 제안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거려댔지만 곧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혼자서 롱아르 백작을 설득할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간단해."

"맨날 간단하대."

그리 투덜대며 입술을 삐죽거려댄다.

"뮤."

"네?"

"뮤라고 부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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