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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27화 (127/206)

< -- 127 회: # 8-8 그 남자 -- >

"계책은 무슨. 어지스 자작을 죽여야겠군. 굳이 사고사로 처리할 필요 없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차피 상인과 귀족들을 잇고 있던 연결고린 그 자다. 그 자가 죽는다면 갑자기 연계매체가 사라진 귀족들은 당황하겠지. 물론 지금까지 황후에게 자금을 댔던 상인들한테도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터. 그들은 곧 새로운 매개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때를 대비해 강한 미끼를 미리미리 던져 놓든가. 그래, 황태자가 미끼가 되어주면 되겠군. 혹은 암살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서 그들은 끌어낸 다음 접점을 만들려 할 때 현장을 덮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나서주실까요?"

"나설 거야. 황제의 우유부단한 일처리 방식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 상황을 전달 받고는 나보다 더 짜증내더군.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야. 한바탕 날뛰어달라고 하면 두 말 않고 수락할 거다."

"그렇군요."

황태자 레브레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뮤였다. 딱히 그에 대한 애정 따윈 없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참, 루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모레 쯤 도착할 거라 하더군요."

"흐음. 유나가 신나하겠군. 라니 토킨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니."

"정말 그 술……파티라는 것을 또 허락하실 생각이십니까?"

길어야 하루 혹은 이틀로 끝날 줄 알았던 일명 술판이라는 그 파티가 장장 13일 동안 치러졌을 때, 그때 호세가 느낀 감정은 경악 그 이상이었다.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는 건 할 수 없다. 아니 할 생각도 안한다. 어떻게 13일 내내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중간 중간에 쉬고, 잠도 자고, 끼니도 때우고 한다지만 결국 하나의 접점은 술이었다. 비단 호세뿐 아니라 누구라도 경악스러워할만한 그 파티를 환영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그 술판 멤버인 그녀들 외엔 아무도 없으리라.

아, 새론이 있었군. 새론은 오히려 끼고 싶어서 안달 거려댔으니.

루이는 술판의 술자만 들어도 은근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호세는 자신의 주군역시 그 파티를 그리 좋아하지 않다는 것을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싸늘하게 웃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허락하려는 것 같은 주군의 뜻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호세의 기분을 알아챈 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허락해주는 게 편해."

"예?"

"물론 저번처럼 길게는 어림도 없지만."

"아."

"나중에 자네에게도 여자가 생기면 알게 되겠지. 그만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뮤의 축객령에 호세는 마무리한 서류만 일단 넘기고 나머지는 끌어 모았다. 탁탁. 제법 두껍다. 이 서류를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 무거운 피로가 몰려들었다. 한숨을 삼키며 가볍게 주군께 고개를 숙여 보이고 집무실을 나섰다.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던 중 문득 호세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방금 전부터 계속 걸리던 주군의 말을 떠올렸다.

"아가씨를, 주군의 것으로 인정하신 건가?"

그건 거의 확신이었다. 하지만 그리 놀랍진 않다. 그런 말을 직접 하셨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행동으로 충분히 그 사실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주군의 후계자를 허락하시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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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또 화원에서 잠들었다는 새론의 말을 전해들은 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바깥에서 잠들고 난 뒤에는 꼭 가벼운 미열을 앓으면서도 왜 자꾸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건지. 쯧쯧.

너무 약해.

뮤의 미간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그랬다. 그의 여자는 너무나도 연약한 여자였다. 나약한 것이 아닌 연약한 여자.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잠깐 달리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하며,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바로 까무러쳐버린다. 그런 주제에 정원을 꾸미겠다며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일하기도 했었지. 그 일의 여파로 손톱이 너덜너덜해 진 것을 보았을 때 뮤는 이 여자에게 진정 화를 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깨웠다. 곤히 자고 있는 여자를. 하지만 하얗게 질려있는 얼굴이 너무 아파 보여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화를 애써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거친 손길로 포션을 뿌려댄 것으로 분노를 표하긴 했으나 그 정도면 아주 너그럽게 뮤가 넘어가준 셈이다.

아아, 섹스도 연달아 2번이 최대한도지.

그녀가 쉴 수 있도록 괜히 시간을 주는 게 아니다. 더 안기 위해서다. 채 풀어내지 못한 욕정이 너무 커서, 그녀의 몸이 너무 달콤해 그깟 두 번으로는 뮤의 남겨진 욕망이 너무 짙어서, 그녀의 속으로 더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서 그리해 주는 것이다. 그건 좀 더 뮤를 받아내라는 뜻이다. 아직 더 남았다고 그렇게.

"두 달간 생리가 없었다는데, 어디 몸이 안 좋은 건가?"

"아닙니다. 아가씨의 건강은 오히려 전보다 좋아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아져?"

며칠 전 기가 막히게 만족스러웠던 그녀와의 관계 후 그 다음날, 뮤는 유나를 진찰했던 라일을 불러내었다.

"네, 공작님. 그 때 진찰했던 바로는 그렇습니다. 오히려 건강해지셨습니다."

"그럼 생리가 없었던 이유는?"

"그게 아무래도……. 아직은 추측에 가까운 것이긴 합니다만, 포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포션?"

"예."

아직은 추측에 가깝다 했지만 라일의 표정은 거의 확신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아가씨께서 술……파티, 아니 술……자리? 아니, 술……."

"그냥 술판이라 하게."

"아, 예."

저 놈의 술판은 어디서나 언급되는 군.

그렇게 중얼거린 뮤의 얼굴은 꽤나 심드렁했다.

"어쨌든 그것 때문에 중간 중간 포션을 자주 마셨다는 의료실의 기록을 보았습니다."

"아아. 그랬지. 그래서?"

"좋지 않았던 신체 속의 무언가가 포션의 영향으로 고쳐졌거나 그게 아니면 신체리듬이 바뀌고 있는 현상으로 잠시간의 생리불순이 일어난 듯합니다."

"신체리듬?"

"예. 본래 사람의 몸은 리듬에 기초를 두어 움직입니다. 신체의 여러 감각과 기능 그리고 심(心)까지 그 속에 포함되지요. 극한 스트레스나, 과도한 일과 훈련 등은 이러한 신체리듬을 깨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질병에 못지않은 위험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그러한 신체리듬은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서 이뤄지는 것으로 쉬이 밝혀지지 않고 심각해질 경우 한꺼번에 닥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미숙한 제가 판단하건데, 아가씨의 경우 그러한 리듬이 포션의 영향으로 좋은 쪽으로 개선이 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제 탐지해 보았던 아가씨의 건강은 분명 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였습니다."

"흐음."

뮤는 눈에 띄게 호기심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유나에겐 좋은 일 아닌가.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건강해진 것이라면 그건 뮤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다. 더불어 체력도 쑥쑥 올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혹, 주기적으로 포션을 마시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원래 포션이란 것이 그 사람이 지닌 선천적인 것이 아닌 새로이 생겨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선천적인 건 포션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다만 꾸준히 마신다하면 새로 생겨나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의 보호는 가능합니다. 즉 예방차원일 뿐이지요. 이미 포션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문제를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더 마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렇군."

"게다가 단순히 그렇게 사용하기엔 포션 가격이 어마어마하니까요."

만약 포션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고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죽는 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귀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포션을 구하겠지. 신관들은 이 세상 제일가는 갑부가 될 테고.

"유나 아가씨 같은 경우는 아가씨조차 몰랐던 몸의 문제가 생겼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것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다른 것들과 연계되어 더 좋은 효과를 불러온 것으로 지금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무언인지 알지 못하기에, 질병인지 혹은 다른 것으로 인한 것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그것까지는 답변을 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흐음."

어쨌든, 좋아졌다면 다행인 거지. 크게 아플 수도 있었다는 가정은 불쾌한 것이었으나 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라일을 집무실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새론에게 일러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날짜에 맞춰 유나에게 포션을 먹이라는 지시를 내린 건 그날 오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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