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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117화 (117/206)

< -- 117 회: # 8 -- >

"공자, 할 일 없으세요?"

"많습니다."

"그럼 가서 다른 일 보세요."

"새론을 저 대신 여기로 부르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어댔다.

새론을 부르라고?

새론은 타고난 인테리어 감각으로 내일 모레 있을 결혼식 피로연 테이블을 세팅하는 작업을 맡고 있었다. 그건 아주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손님들의 시선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알브레히트 공작인 그 남자는 공작위에 오르고 난 뒤 단 한 번도 공작성에서 파티를 주체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이 바빴던 탓도 있다지만 그것보다는 시끄럽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하긴, 참석하는 것도 짜증내는 남잔데 파티를 열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

때문에 새론은 오랫동안 그 찬란한 실력을 발취할 기회가 없었더랬다. 지금 그녀는 신나게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꾸미고 시녀들을 지휘하며 저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즐겁게 일하는 그녀를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바라봐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고작 나 감시하는 일에 써 먹으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절대 절대 절대! 새론은 부르지 마세요. 지금 신나게 일하고 있는데 말예요. 공자, 새론이 저기서 빠지면 차질이 얼마나 큰 줄 아세요? 만약 그러면 내일 모레 결혼식은 어림도 없다고요. 정말 약속할게요. 제가 직접 나서서 일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고 가셔서 공자님 일 보세요."

"……."

그래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답답함에 나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 보세요. 보시면 아시다시피 정원은 거의 다 정리되어가고 있어요. 이제 텔 뿌리만 심으면 끝난다고요. 저기, 저기서 일하고 있는 아문 보이시죠? 아문이 텔을 잘 심어줄 거예요. 아문이 있는 이상 제가 직접 나설 일은 절대 없다니까요. 그러니 가서 일 보세요, 제발."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누가 봐도 정원은 이제 거의 다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그림처럼 야생화와 사람의 손길이 적절히 섞인 이 정원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구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변했다, 이곳은. 심장이 뿌듯할 정도로.

"알겠습니다."

가만히 정원을 바라보던 루이 토킨 공자가 결국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의 눈에도 정원일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것으로 보였을 거다.

"절대 직접 나서지는 마십시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정말 약속해요."

가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주의를 주듯 말했을 때는 정말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루이 토킨 공자도 잔소리를 한다. 요즘 들어 왜 내 주위에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늘어 가는 건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루이 토킨 공자가 저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가 완벽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나무 그늘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 겨우 들어갔네."

사실 다리가 아팠더랬다. 공자를 빨리 들여보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편하게 앉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의자를 가져와 앉기는 땅이 너무 울퉁불퉁했고 그렇다고 이렇게 땅바닥에 주저앉으면 잔소리가 날아올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들어가서 쉴 수도 있지만 그건 또 싫었다.

"땅은 나중에 라니한테 천천히 손보라고 해야겠다. 무성하기만 했던 이곳을 이 정도까지 정돈해 놓은 게 어디야."

생명과 관련된 모든 일은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곳 역시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일부 귀족 가(家) 중에는 부러 바닥에 돌을 깔지 않고 천연 흙길로 해놓은 곳도 많았기에 이 정원 바닥이 정리되지 않은 것 정도는 흠이랄 것도 아니리라. 오히려 내 눈에는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며 열심히 마무리 정돈을 하는 아문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혼자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으려니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인다. 그래도 내가 일하겠다고 나서면 다들 호들갑 떨어댈 것이 분명하니 어쩔 수 없지.

"아, 시원해."

오히려 나무 그늘은 추울 지경이다. 그래도 저들에게는 마냥 시원하기만 한 바람이겠지. 바람이라도 시원한 것이 어딘가. 지금보다 더 더워지면 바람조차도 뜨거울 텐데.

나는 바람결에 사르르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그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아, 저 광경,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자 그날이 떠올랐다. 공작성에서 텔 밭을 처음 찾아냈던 그날이. 그날도 지금처럼 나무에 기대 앉아 하늘을 보았었다. 그러다 잠들었지. 꿈을 꾸었다. 그리운 꿈을. 그 남자가 꿈속에서 나를 깨웠다. 그리고 입술에 키스하고 가슴을 애무하고 나를 당혹케 만들었다. 그가 가지고 왔던 백화주는 참 맛있었더랬다.

"한잔 하고 싶군."

입 안 가득 그윽했던 향기가 떠오르자 절로 입맛이 다셔진다. 그 백화주를 어디서 구할 수 있으려나?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어마어마하게 비싼 건 아니겠지. 저녁에 공작성으로 돌아가서 그 남자에게 말이라도 해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한 병 구해줄는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청량한 기운을 담고 있는 바람이 머리칼을 속눈썹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평화로웠다. 기분 좋은 웃음이 입가에 걸린다. 정신이 조금씩 몽롱해져갔다.

안 그래도 아침까지 그 남자한테 혹사당했던 내 몸은 지금의 휴식을 무척이나 반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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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가 결혼을 했다.

순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라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배롤린 남작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라니를 바라보며 뭉클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부러 배롤린 남작의 얼굴은 보지 않으려 애썼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로써 라니는 라니 배롤린이 아니라 라니 토킨이 되었다. 그 사실이 감격스러워 나는 한동안 입조차 다물지 못했더랬다.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음?"

식이 끝나기 전 곁에 선 남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을. 팔짱을 낀 채로 고요히 서 있기만 하던 그가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을 잠시 마주하며 나는 턱으로 배롤린 남작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더 얌전하게 굴고 있으니까요. 궁금해지잖아요."

"아아."

빙글빙글. 그의 입가에 웃음기가 머묾과 동시에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이 남자는 이런 이중적인 표정조차 눈부시게 아름답다. 심장이 덜컹거려 슬그머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세웠다.

"경고를 했을 뿐이야."

"경고만으로 저 배롤린 남작을 천박하지 않게, 더러운 짓을 못하게 만들었다고요?"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자 그가 피식 거려댔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경우라면 경고라도 충분한 법이지."

"……."

아하. 결국은 그런 거였군. 목숨으로 협박한 거였어.

하긴 배롤린 남작 같은 사람을 다루기엔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목숨이 아까운 걸 아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결혼식이 끝나고 바로 피로연으로 이어졌다.

저택은 작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바람에 홀은 비좁게 느껴질 만큼 사람들로 우글거려댔다.

이게 다 내 옆에 선 이 남자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파티장이 아니고서야 이 남자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고위급 귀족이 아닌 이상 더더욱. 그래서인지 그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거의 모든 귀족들은 다 이 결혼식에 참석한 듯 보였다. 심지어 리나는 아무런 친분이 없어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가문에게서조차 초대장을 보내달라는 서찰을 많이 받았노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니의 약혼식 때는 아무도 이 남자가 참석할 거라는 걸 몰랐고 상상조차 못했기에 이런 불상사가 없었다지만 이 결혼식은 다르다. 신랑이 무려 그의 보좌관 아닌가. 그의 참석은 누구라도 추측해 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는 이 남자의 곁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지만 눈치 빠른 이 남자는 그런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강하게 내 허릴 감싸 안아버렸다.

"……떨어지고 싶은데요."

"왜?"

"당신의 약혼녀 후보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으니까요."

사실 약혼녀 후보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이 남자의 정부라서 게다가 요즘은 공작이 무척이나 아끼는 정부라는 소문이 났단다. 어쨌든 나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이 남자 못지않게 굉장한 것이었다. 아마 이 남자 곁에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쫓을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곁에 딱 붙어 있는 것보다 심하랴.

"약혼녀 후보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의 약혼녀 후보들을 언급하는데도 그의 표정과 말투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그 모습에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결혼한다면 너와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나 보군.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참으로 형편없는 기억력이야."

============================ 작품 후기 ============================

아, 아름다운 밤입니다. ㅎㅎㅎㅎ

주말 잘 보내시구요~~

추천 선작 코멘트 주신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으세요~^^

* 워킹데드can님ㅎㅎㅎ감이 좋으시네요~~~~!! 좋은 꿈 꾸셨을 땐 반드시 로또를 사세요!!!>.

< ㅎㅎㅎㅎㅎㅎㅎ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앙살이님ㅎㅎ행복하시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매번 최대한 많이 써서 올려보려고 노력한답니다........

* M.

K님ㅎㅎ원래 김치국물이 맛있거든요................... 헉!!!!! 죄송합니다. 저 원래 이런 유머하는 여자가 아닌데ㅠㅜㅎㅎ

* 루이영원님 ;;;;후덜덜;;;느낌이 싸~하신가요? 원래 대놓고 악질적인 여자보다 정말 착한여자가 더 무서운 법이지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정말 천사같은 여자가 더 무섭지요. 그리고 사실.... 이건 겪어봐야 사람들이 알더군요..... 물론 안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 유진유민쓰마미ㅎㅎㅎ홍홍홍~ 매일매일 오려고 노력중입니다. ㅎㅎㅎ 요즘 뮤가 황궁에 가고 바빠서 욕구가 많이 쌓였걸랑요~ 이해해주세요 ㅎㅎㅎ

* lulullu님 ㅎㅎ담편 드립니다 ㅎㅎㅎ사실 공작한테 접근하는 뇨자가 너무 많네요 ㅠㅜ

* 유키렌님ㅎㅎㅎㅎ그러게요~ 뮤에게 꼬이고 싶어하는 뇨자들이 너무 많네요. 귀찮아서 다 등장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등장 안시킬 수도 없어서 쓰긴 씁니다 ㅠㅜㅎㅎㅎ 다음편 얼른 가져왔답니다 ㅎㅎㅎ

* 페르디엔님;;;;;;다들 후작영애를 불안해하시는 군요. 제 기분이 묘합니다. 혹시 저처럼, 오히려 착한 사람한테 당해본 적이 있으신지...... 요??? 하하하하;;;;;;;;;;

* 월하한유님 ㅎㅎ다음화를 드렸답니다~ 저는 상냥합니까? ㅎㅎㅎㅎ 후작영애 ㅋㅋㅋ다들 경계하고 계시는 군요 ㅎㅎ

* 뚱땅왕비님 ㅎㅎㅎㅎㅎㅎ그 남자 시점 페이지를 늘려보도록 노력하겠슴돠 ㅎㅎㅎㅎㅎ

* 사랑솜님ㅋㅋㅋㅋㅋㅋ그러게요~ 유나가 라니 엄마처럼 굴고 있기는 하죠 ㅎㅎㅎ 라니랑 레니가 다 결혼하고 나면 유나는 다른 문제로 뮤랑 싸우지 않을까요? ㅎㅎㅎ 그리고 쿤, 쿤 ㅠㅜ

* 검은라벤더님ㅎㅎㅎ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isceso님ㅎㅎ흑역사가 생성하셨군요 ㅎㅎㅎㅎ

* 크샤나크님 ㅎㅎㅎ아잉~ 뮤는 씻고 기다리고 있어야지요 ㅎㅎㅎㅎ 새론은 저도 좋아한답니다 ㅎㅎㅎ

* 게으른냥님ㅎㅎ 님은.... 예민한 감각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쉿~~~!!!!!!!!!!!!

* 티오레나님ㅎㅎㅎㅎ사실 뮤가 알아서 처리해 줄거예요. ㅎㅎㅎㅎ맞습니다. 문제는 유나의 삽질인데.... 사실 그런 성격은 제가 좋아하질 않아서 삽질하는 장면을 쓰지 않을 거랍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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