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8 회: # 7 -- >
"아-, 포션도 포션이지만 술이 아까워 죽겠네."
속상한 맘으로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마신게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어."
"비싼 포션을 마시다니. 그것도 술 때문에."
……끝까지 라니는 포션 타령을 하고 있었다.
"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게임이나 하자!"
"무슨 게임?"
레니의 말에 나는 슬쩍 해적룰렛을 눈짓해보였다. 이 해적룰렛은 게임방법은 간단하나 벌칙으로 무엇을 걸었느냐에 따라 무척이나 심각해질 수 있는 게임이었다.
"너 혼자 말하기 억울하다면서. 킥킥."
"아, 아."
해적룰렛을 보는 내 음흉한 표정에 레니의 표정도 덩달아 음흉해졌다. 투지가 불타오르는 모양이다.
나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술병을 열고 레니와 라니의 잔에 따라주었다. 아까 쿠션을 갈아줄 때 잔도 새 걸로 바꿔줬는지 깨끗한 잔이었다. 그리고 내 술잔에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따랐다. 레니와 나의 박력 있는 얼굴에 덩달아 굳은 라니의 얼굴까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경건한 태도로 술잔을 부딪쳤다.
"……첫잔은 원샷?"
레니가 묻는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션으로 다시 태어난 이상 이게 첫잔이지."
"조, 좋아."
라니까지 호기롭게 외쳤다. 우리는 동시에 잔을 입으로 가져가 그대로 술잔을 꺾었다. 홀짝홀짝이 아닌 꿀꺽꿀꺽이다. 원샷을 해도 얌전하게만 하던 라니가 이번에는 제법 터프하게 손목을 꺾는다. 그런 라니의 모습에 레니와 내가 짓궂게 박수를 치며 낄낄거려댔다.
"벌칙이 뭔데?"
"으흐흐흐. 구멍에 칼을 꼽았을 때 걸리는 사람은!"
나는 손가락을 까딱 거려댔다. 아래 위, 아래 위. 손가락의 위치에 따라 레니의 시선이 왔다갔다 거린다. 그러다 위! 에서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레니의 시선도 손가락 위쪽에 고정되었다.
"진실 된 대답! 무조건 진실만을 말할 것! 걸리지 않은 나머지 두 사람이 걸린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거지. 단 1개씩만 할 수 있어. 걸린 사람은 그 질문에 백프로 진실로만 대답하는 거야. 어때?"
일명 진실게임이다, 진실게임. 벌칙으로 꿀밤 맞거나 병나발을 불거하는 하는 것 등등은 시시하다. 게다가 술 마시는 건 우리들 사이에선 벌칙이 될 수 없고. 음음, 당연하지. 어떻게 그게 벌칙이란 말인가. 오히려 상에 가깝지. 벌칙이란 건 희소성이 있는 것이어야 하는 법이다. 좋은 희소성이든 나쁜 것이든. 그중 세상에서 가장 희소성이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은밀한 사생활 이야기다.
"좋아!"
레니가 후후후 웃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아마 내게서 뜯어낼 이야기 거리에 기분이 들썩거리는 모양이지. 하지만 반대로 레니가 걸릴 경우 나도 마음껏 뜯어내 줄 테다. 호승심이 마구 불타오르는 우리를 지켜보던 라니도 작게 하지만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진실게임이.
순서는 가위 바위 보로 결정되었다. 라니가 제일 먼저, 그 다음이 나, 레니는 마지막 순서로.
"각오하라고!"
레니가 싱긋 웃으며 나에게 경고해댄다. 하지만 나는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이 게임은 랜덤이다, 랜덤. 랜덤은 운에 가까운 것이지 실력으로 이기는 게 아니다. 나는 두 손을 깍지 끼고 꺾었다. 우두둑……뼈 소리를 기대했지만 내 손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라니, 시작해!"
레니의 말에 라니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장난감 해적검을 하나 들어올렸다. 그리고 신중한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 조심스런 태도에 레니와 나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드디어 결정을 했는지 한 구멍에 해적검을 스르륵 밀어 넣는다. 검은 막힘없이 들어갔다. 그리고……잠잠하다. 그렇게 라니는 일단 통과했다. 해적왕이 퓽! 튀어나오지 않았단 말이다.
"하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하는지 모르겠지만 라니의 안도의 한숨에 내 가슴은 반대로 콩닥콩닥 뛰어댔다.
이번엔 내 차례다. 나는 과감하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찔러 넣든 빨리 찔러 넣든 어차피 복불복이 아니던가. 게다가 해적검을 굳이 고를 필요도 못 느낀다. 다 똑같은 해적검인데 골라봤자지. 해적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멍이 중요한 법. 그냥 앞에 놓인 해적검을 하나 들어 올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눈앞의 구멍에 검을 쑥 밀어 넣었다. 그런 내 거침없는 행동에 레니가 헉! 급히 숨을 들이마셨지만 다행이도 해적왕은 잠잠했다.
"레니, 네 차례야."
"음."
레니는 신중하게 검을 골랐다. 레니는 나보다는 소심했지만 라니보다는 과감했다. 해적검을 들고 신중하게 여기저기 살펴보던 레니는 곧 결정을 내렸는지 그 곳에 해적검을 집어넣었다.
"……."
아직까진 괜찮았다. 게임은 아직 진행 중이다.
다시 라니의 차례가 다가왔다. 라니는 이미 해적검을 집어 들고 있었다. 처음처럼 신중한 태도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어느 한 곳에 쑤욱- 찔러 넣는다. 그 동작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
잠잠하다.
하아. 라니가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해적검을 찔러 넣는 그 일련을 동작을 하는 동안 쭉 숨을 멈추고 있던 라니였다.
그런 라니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고는 해적검 하나를 집어 바로 아무데나 찔러 넣었다. 해적왕은 여전히 잠잠했다.
"너, 너무 막하는 거 아냐?"
"바보. 어차피 신중하게 해도 똑같아."
여유롭게 웃으며 레니의 불평을 가볍게 받아쳐 준다.
"그래?"
"그럼. 어차피 랜덤인데 뭐."
내 말에 레니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해적검을 집어 방금 내가 그랬듯 아무데나 찔러 넣었다.
퓽!
"……."
"……."
"……."
해적왕이 튀어나왔다.
허공을 향해 부유했다 바닥으로 내려앉은 해적왕의 초라한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적왕이 여기까지 날아왔단 소리는……,
"걸렸구나!"
"아니, 난, 나는! 니가 괜찮다며!"
"나는 괜찮았잖아. 하하."
아, 흥분돼 죽겠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빈 잔에 술을 꽉꽉 채워 넣었다. 걸렸구나,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환하게 웃으며 목을 축인다. 이렇게 달콤하고 알딸딸할 수가 없다. 그런 내 옆에서 라니도 자신의 잔을 들어 홀짝홀짝 마셔댔다. 아마 라니는 저 잔 바닥이 보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레니는, 훗. 레니는 굳은 얼굴로 멍하니 앉아 바닥에 초라히 엎어져 잇는 해적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라니의 즐거운 미소를 모른 척 하던 레니가 크게 결심한 듯 고개를 치켜 올렸다.
"좋아. 물어봐! 벌칙은 벌칙이니까."
"레니, 난 너의 그 화끈한 성격이 정말 마음에 들어."
"괜히 헛소리 하지 말고, 질문이나 해."
버럭, 레니가 고함을 친다. 하지만 그런 고함 따위에 기죽을 내가 아니지. 나는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의 의미심장한 얼굴을 감추지 않으며 레니를 빤히 쳐다봐주었다. 일렁이는 내 시선에 레니의 얼굴이 못생기게 일그러져 갔다.
긴장되지? 긴장되지? 흐흐, 긴장 될 거다. 암, 긴장해야지. 반드시 긴장해야지. 그 동안 네가 나한테 한 짓들을 생각해 봐라. 응? 네가 나한테 토해내라고 닦달해가며 얻어간 정보들의 수위를 떠올려 보라고.
나는 레니의 굳은 얼굴을 한껏 감상해 주었다.
"네가 페터 리제도 공자를 먼저 덮쳤다고? 푸히히히히."
참을 수 없는 웃음에 내가 경박스럽게 낄낄거려댔어도 레니는 인상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질문! 키스 마크가 제일 많이 새겨진 장소가 어디야? 물론 머리, 어깨, 배, 무릎, 손발은 빼고."
"!"
"……."
컥! 레니가 단말성의 신음을 뱉어낸다. 완벽히 굳은 얼굴은 신기하게도 그 색만 빨갛게 혹은 파랗게 변해댔다. 그 생생한 변화의 놀라움을 즐기며 나는 대답을 재촉하듯 요염한 눈짓을 레니에게 보내주었다.
"유, 유나야아?"
"어허! 게임은 게임. 벌은 벌. 걸렸으면 제대로 대답해야지. 안 그럼 재미없지 않겠니?"
"이런, 악독한!"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내뱉는 레니의 목소리는 마치 나를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목소리에 나는 코웃음을 쳐주었다.
"나하고 알브레히트 공작과의 생생한 밤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졸라댔던 너에 비하면 아직 이 정도 질문은 귀여운 거지. 안 그래?"
"밤……이야기?"
내 말에 놀란 건 레니가 아니다. 라니였다. 라니는 완전히 놀랐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라니의 모습에 슬쩍 걱정이 밀려올라왔지만 애써 그 걱정을 누르며 나는 최대한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라니, 너도 걸리면 각오해."
"뭐, 뭘?"
"걸리면 너라도 예외는 없어. 우리는 사정없이 마구 물어봐 줄 거거든."
"아, 진짜?"
"킥킥. 응."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레니를 향해 어서 말하라고 눈짓을 보내주었다. 계속되는 내 재촉에 한숨을 푹푹 내쉬던 레니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남자들은 다 그런 걸까?"
"나도 몰라. 네 얘기를 듣긴 했지만 나도 페터 오빠가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
"아……."
"그리고 페터 오빤 공작님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유독 가슴에 집착하거든."
"……그래?"
"응. 덕분에 네 말대로 가슴은 빨리 커질 것 같아."
……레니야,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그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너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거야. 잘 생각해보렴. 난 분명 가만히 있었어.
============================ 작품 후기 ============================
미안, 레니야.... 유진유민쓰마미님이... 그런 걸로 안커진대.... 나도 몰랐단다...
난 소설 뒷부분에 너의 가슴을 엄청 크게 키워줄려고 했는데 ㅠㅜ 넌 끝까지 콩알이겠구나ㅠㅜ다 내 탓이란다. 미안하다 ㅠㅜ
졸려요... 너무 졸려요... ㅎㅎ
다들 안녕히주무세요.
추천, 선작, 코멘트 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 세레네티님ㅠㅜ 그러게요~ 유나가 맘 고생 그만해야 하는데... 더 할게 있어서 내가 미안타 ㅠㅜ
* 검은라벤더님ㅎㅎㅎ 후기가 있는 글이 올라올때까지는 끝난게 아닐 겁니다. 네, 아마. ㅎㅎ
* dlkajlet님 ㅎㅎ뮤가 너무 안나왔죠? 이번엔 아예 안나왔는데 ㅠㅜ 일단 술판이 좀 끝나야 뮤는 나올 것 같네요
* 유키렌님ㅎㅎㅎ좋은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ㅎㅎ 걱정마 유나야, 나중엔 뮤도 고생좀 할거야...
* 쿠니쿠마님ㅠㅜ 그러게요~ 저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데요... 끝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네요 ㅠㅜ
* 루이영원님 ㅎㅎㅎ유나야~ 이젠 좀 밝아지려무나 ㅎㅎㅎ 드디어 만났지요~ ㅎㅎ 라니와 대체 언제 재회를 시켜야 하나.. 내내 걱정했는데 드디어 만나는 씬까지 왔답니다!! 아, 기뻐요 ㅠㅜ
* 별빛같은마음님 그니까요ㅠㅜ 전화를 안받으면 어쩌자는 건지 ㅠㅜ근데 성질을 내니는 건 정말 양심없네요. ㅎㅎ 제 친구요? ㅎㅎㅎ정말 독특한 아이죠-.
-;; 그래도 제가 아끼는 녀석이랍니다. ㅎㅎㅎ
* M.
K님ㅎㅎ견인~생각만해도 조금은 후련해지네요 ㅎㅎ 6시는.... 저는 감히 꿈도 못꾸는 시간이랍니다. 6시를 맞이하고 자는 건 모를까^^;;
ㅎㅎ그러게요. 이제 슬슬 뮤도 불쌍히 여겨주세요. 자기 딴에는 해줄 거 다해주는데 사실 제대로 된 대접은 못받잖아요ㅠㅜ 유나의 마음이야 어쨌든 유나는 그걸 표현안해주니까.
* 셀레네현이님ㅎㅎㅎ 공작아저씨랑 유나 아기 ㅎㅎㅎㅎ뮤야, 너보고 아저씨랜다.
ㅎㅎㅎ 한국 법으로 유나는 미성년자지만 루벤스제국법으로는 성인이랍니다. ㅎㅎㅎ 뮤는 미성년자를 안은게 아니랍니다. ㅎㅎㅎ 그리고 싸움씬은 사실 제가 좋아하는-.
-;;;;;;;쩝 ㅎㅎ
* whomi님 저도 우정물같은거 좋아하거든요 ㅎㅎㅎ 사실 아카데미물을 쓰고싶었는데ㅎㅎㅎ 넵넵~ 이젠 라니와 레니도 친해져서 셋이 뭉쳐다닐 예정입니다 ㅎㅎㅎ
* 우왕ㅋㅋ님ㅎㅎ라니에 대한 유나의 마음? 6년간의 삶의 버팀목이죠 ㅎㅎ 라니와 뮤는 유나에게선 의미가 다를 거예요. 일단 그 둘의 성별이 다르잖아요 ㅎㅎㅎ 하는 짓(?)도 다르고 -.
-;; ㅎㅎㅎ 레니야, 네게서 익숙한 친구의 냄새가 난댄다 ㅎㅎㅎㅎ 나도 네게서 익숙한 내 친구의 향기를 맡곤 하지 ㅎㅎㅎ 제 친구도 레니같은 놈이 있답니다-.
-;;
* kartias님 ?? 저 여자였슴까? ㅎㅎㅎ ㅎㅎㅎㅎㅎ 맞습니다 ㅎㅎ
* 크샤나크님ㅎㅎㅎ걱정마세요 ㅎㅎ 뮤는 술판을 허용해 줄테니까요. 맘에 들진 않겠지만 ㅎㅎㅎ
* 게으른냥님ㅎㅎㅎ 나두 고급술!!!
ㅠㅜ 감기 조심하세요 ㅠㅜ 아프지 마세요 ㅠㅜ
* MashMarigold님 ㅎㅎㅎ 앞으로도 유나는 혼자가 아닐거예요 ㅎㅎㅎ
* 세이님ㅎㅎㅎ저도 여자들의 우정얘기 좋아요 >.
<휴우증은 ㅠㅜ 있답니다. 원래도 술은 잘 못마시는데 이렇게 무리하게 달려버리면 물을 마셔도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아 참 힘들어요 ㅠㅜ
* 샤이니스타님ㅎㅎ오타지적 감사드려욤~~ ㅎㅎ
* 메를리위님 ㅎㅎ술판~사실 즐겁게만 마시면 매력적인 아이죠, 술이란 놈은. ㅎㅎㅎ 페터 리제도 공자와 또 한명의 희생자 루이 공자 ㅎㅎㅎ 완전 뿜었습니다. 그런식으로 묶일 수도 있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