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는 아름답다-85화 (85/206)

< -- 85 회: # 6 -- >

-롱아르 백작 가(家).

"축하해."

"으응, 고마워."

"긴장했어?"

"아마도."

아름다운 날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드넓게 펼쳐진 새파란 하늘도 아름답고,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태양빛도 아름답고, 그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지상의 꽃들도 아름답고, 오늘 약혼식을 치루는 레니도 아름답고 그리고……,

"그런데 유나야."

"응?"

"……어떻게 된 거야?"

"……글쎄."

그리고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서있다 지금은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뮤아르노와 알브레히트도, 저 남자도 아름답다. 아니, 사실은 저 남자가 제일 많이 아름답다.

"완전 놀랐어. 다들 나한테 공작님이 오기로 했었느냐고 얼마나 물어대는 줄 알아? 같이 온다고 왜 진작 말 안 해줬어?"

그야 나도 몰랐으니까 그렇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게 아무 말 없던 남자였단 말이다.

"초대장 받았다는데? 롱아르 백작 가(家)에서 보낸 거 아니야?"

"……초대장이야 예의상 보내긴 했지. 보내면서도 올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보낸 거라고. 아마 대부분의 가문들이 파티를 열 때 알브레히트 공작 가(家)에 초대장을 보낼 걸? 참석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야. 초대장 보냈다고 해서 다 참석해야 한다면 이미 공작님 몸은 남아나지 않았을 거야."

"기집애. 나한테는 왜 안 보냈냐?"

"너한테 왜 보내냐? 넌 초대장 같은 거 없어도 그냥 통관데. 너는 무조건 환대하라고 사람들한테 다 일러놨어."

"……기집애. 감동시키긴."

"훗훗. 감동했지?"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는 레니는, 정말 빛이 났다.

"이 목걸이랑 귀걸이, 뷰티크 살롱에서 공작님이 사주셨던 그거 맞지?"

"응? 응."

"정말 예쁘다. 화려하고. 이 목걸이 덕분에 네 심플한 드레스가 오히려 다른 드레스보다 훨씬 더 눈부셔 보여."

"그래? 내 눈엔 목걸이가 너무 화려하기만 한데."

"예쁘다니까!"

"예쁘긴 하지."

예쁘다. 물론 예쁘다. 이게 얼마짜린데 안 예쁘겠는가. 단지 내 취향이 아닐 뿐이다. 사실 오늘도 이 목걸이는 하지 않으려 했었다. 밋밋한 내 목을 본 저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지만 않았더라도 귀걸이만 한 채 여기 왔었을 테지.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나한텐 그래."

"그래도 귀걸이는 자주 하고 다니잖아. 안 그래?"

"아, 응."

작은 고갯짓에 귀걸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살랑거린다. 나는 귀에 대롱대롱 달린 귀걸이를 슬쩍 만져보았다.

"머리칼에 가려져서 그런가? 화려하지만 이건 왠지 맘에 들더라. 자주하게 돼."

"응, 저번에 갔을 때도 너 그 귀걸이 하고 있었어."

그랬다. 부담스러울 만치 화려한 에메랄드 목걸이와 한 세트인 이 에메랄드 귀걸이 역시 그 찬란한 빛을 마음껏 뽐내는 호화로운 물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귀걸이는 자주하게 된다. 세공도 디자인도 적당한 크기도 무게도 모든 게 다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에메랄드빛이, 저 남자의 눈빛과 닮아있다.

"훗. 오늘은 태양이 하늘에서 길을 잃어버려 너에게 쏟아져 내렸다고 해도 그냥 믿어줄게."

"어? 설마 그거 내가 좋아하는 로맨, 흐흠 흐음. 문학소설에 나왔던 문장 같은데?"

"문학소설은 개뿔. 네가 별장에 롱아르 백작님 몰래 숨겨 놓아야 할 만큼 대단한(?)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지."

"……그거 재밌지?"

레니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슬퍼."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슬퍼?"

"응. 슬퍼."

"왜?"

레니의 한쪽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간다. 그러니까 고양이 상이 따로 없다. 또 무슨 소릴 하려는 거냐는 그 노골적인 경계에 맞서 나도 노골적인 한숨을 내쉬어주었다. 그러자 레니의 몸이 움찔 거려댔다. 한없이 떨려대는 저 눈빛은 불안이라는 이름의 공포다. 레니야, 네가 나를 경계하든 말든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유리하단다. 오늘 내겐 거리낄게 없잖니.

"네가 이해를 못해서 슬퍼."

"무슨 이해?"

"소설 속 그 찬양의 대상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이었잖아. 순수하고 순수한. 남자의 손도 못 잡아본. 그런데 이미 넌 페터 리제도 공자와 진한 관계를 맺-읍!"

"오호호호호호. 유나야, 오늘 와줘서 정말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은 이미 처음에 한 인사말임에도 불구하고 레니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꺼냄으로써 내 뒷말을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이 달아오른 것이 적나라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화장이 귓불까진 덮을 수 없는 법! 하지만 레니의 머리칼은 붉은 색이다. 운 좋게 레니의 붉은 머리칼이 붉어진 귓불을 자연스레 가려주어 나는 속으로 쳇쳇 거려야 했다.

그런데……뭔가 좀 이상하다? 대체 뭐가? 나도 모르겠다. 대체 뭐가 이상한 거지? 가만히 레니의 얼굴을 뜯어보던 난 그게 무엇인지 가까스로 알아냈다.

"그건 그렇고, 레니야?"

"응?"

"너 입술이 많이 부었다? 긴장했다고 또 입술 깨물어댔냐?"

"……이런. 많이 부었어?"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특히 아랫입술이 부은 것을 보니 긴장하면 입술을 깨물어대는 레니의 나쁜 버릇이 발동된 모양이다. 나는 혀를 쯧쯧 차댔다.

"애냐? 긴장된다고 입술이나 깨물고."

"……그럴 수도 있지. 보기 흉해?"

"아니 흉할 정도는 아니야. 그런데 남들이 보면 오해하겠다."

"무슨 오해?"

"키스해서 부은-."

"아하하하하하. 유나야,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난 어쩜 이렇게 친구를 잘 뒀을까? 하하하. 걱정하지 마. 네 바람대로 오빠랑 나는 더 없이 행복하게 잘 살 테니까. 고마워, 정말 고마워. 감동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아. 하하하하"

"내가 언제-."

"너 같은 친구를 둬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했었니? 친구야, 와 줘서 고맙다.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하하하. 사랑해, 유니시이나!"

고함을 지르듯 내 말을 끊어대는 레니의 눈물겨운 노력에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말 필사적이구나, 너.

나는 조금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레니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레니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진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니시이나 영애."

그 때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페터 리제도 공자가 내게 다가왔다. 단정하고 마냥 착해 보이는 이 공자의 손(?)이 예상보다 훨씬 날렵해 당황했던 기억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건지. 나는 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페터 리제도 공자."

"감사합니다."

페터 리제도 공자의 등장에 레니는 나를 보며 간절한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유나야?"

그 눈빛을 슬그머니 외면하자 레니가 나를 부른다. 간절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언뜻 들으며 약혼식으로 긴장한 예비 신부의 긴장감을 잘 나타난 목소리 같기도 하다.

"왜?"

나는 레니와 일부러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장난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내 웃음에 레니가 더 긴장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다소 의아하게 여긴 페터 리제도 공자의 표정 때문에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때 레니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우습게도, 레니의 구원자인 그 사람은 지금의 내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말정말 피하고 싶은 그 사람과 나는 매일 밤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브레히트 공작님."

"아, 축하하지."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공작님.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러면서 레니는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레니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몰랐어?

몰랐어.

정말?

정말.

소리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의심스런 눈초리 좀 풀어라, 레니야. 그렇게 쳐다봐도 정말 모른다니까. 정말이다. 정말로 나는 이 남자가 이곳에 참석하겠다고 한 연유를 알지 못한다.

레니와 나의 들리지 않은 그 시끄러움에 그가 피식 웃었다. 레니는 그의 웃음에 놀란 토끼눈을 해보이다 곧 내게 양해를 구하곤 페터 리제도 공자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새 손님이 도착한 탓이다. 하긴, 오늘의 주인공이 한 사람하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오늘은 모두가 그들의 손님 아니던가.

그런 레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허리에 온기가 느껴진다. 그가 자기의 손을 내 허리에 두른 것이다. 그 자연스럽고 익숙한 행동에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실수였다. 여기는 파티장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귀족 가(家)의 파티장. 그리고 이 남자는 귀족들에게 있어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이요 과심의 최상층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다.

"어머어머!"

"꺄악! 저것 좀 보세요."

"세상에, 맙소사. 믿기지가 않네요."

그가 손을 내 허리에 두름과 동시에 은근슬쩍 이 남자를 힐끔거리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어린 탄성이 우리 둘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온 몸이 뚫릴 것 같은 그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심지어 따가울 지경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내가 허리에 놓인 그의 손을 치우려 했지만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손 모양과 다르게 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있잖아요, 전 걱정스러워요."

"뭐가?"

한 숨이 뒤섞인 내 말에 그가 되물었다.

"제 온 몸에 바늘구멍이 생길 것 같아서요. 저 도끼눈……아니 저 뜨거운 시선들 때문에요."

"아."

마치 그제야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지만, 내가 당신의 그런 허접한 연기에 속아 넘어가줄 줄 아는가. 내가 몰랐다 해도 먼저 눈치 챘을 사람이 이 남자인 것을. 그저 관심이 없어 무시하고 있을 따름일 터.

하긴, 이 남자한테 나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할 수는 없겠지 싶다. 앞으로는 정말 혼자 다니지 말아야겠다. 특히나 이런 파티장에 와서는 더욱더. 이젠 아를랜디 눌리아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영애들한테 맞고 다니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리제도 백작의 생일 파티에서 아를랜디 눌리아 영애를 마지막으로 난 단 한 번도 눌리아 영애를 보지 못했다. 내가 공작성에 들를 때마다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찾아오던 영애가 아니던가. 그런 악착스런 성질을 가진 영애가 어째서 내가 공작성에 들른 것도 아닌 아예 머물고 있는 지금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걸까? 왜? 찾아와 난리를 쳤어도 진작 난리쳤을 사람이.

나는 힐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숙여 나를 마주본다. 에메랄드의 영롱한 눈빛이 나를 향하게 어쩐지 속이 울렁거려댔다.

"이상해요."

"뭐가?"

"그러니까 아를랜디 눌리아 영애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거든요. 딱히 보고 싶어서가 아니고요. 그렇게 공작성에 뻔질나게……, 아니 자주 찾아왔었는데 말예요.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 작품 후기 ============================

다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친구들하고 파티룸 빌려서 진창 놀았더니-.

-;;; 몸이 죽겠네요.

오늘은 많이 쓰질 못했답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끄적거려논 것이 있으니 아마 내일 일찍 집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여러 편 올릴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졸려요 ㅠㅜ

타니안님, 스마일98님, 세이님, 천상유하라님, 월하한유님, 게으른냥님, 유진유민쓰마미님, 추야님, 크샤나크님, 검은라벤더님, 정우규리하님, M.

K님, 메를리위님, 별빛같은마음님, 루이영원님, momorica님, 워킹데드can님, 페르디엔님, 초록방울님, 긍정레니님, 징가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__)(--)(__) 꾸벅꾸벅.

미친 듯이 졸린 관계로 한분한분 답 못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 별빛같은마음님~ ㅎㅎ 저도 순수했답니다. 저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답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파티룸 빌려서 밤새 놀기 전까지만 해도 저도 정말 순수했었답니다(하아~ 먼산)

한번 이야기 물꼬가 터지면 방대한 지식들이 흘러들어오더라구요 ㅎㅎ 저도 다 친구들의 수다로 배웠답니다. ㅎㅎ

선작 추천 코멘트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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