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8 회: # 5-5 그 남자 -- >
"위험한 날이에요."
"뭐?"
"……임신가능성이 높은 날이라구요."
소소꽃차를 안마시고 있잖아요.
작게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안기 위해 입술을 내렸다. 가슴 부근에 닿는 뮤의 뜨거운 입김에 그녀가 다시 바지락 거려댔지만 뮤는 무시했다. 안을 거라 했다. 소소꽃차를 마시지 말라고는 뮤 본인이 명했고. 그렇다면 아이가 생겨도 상관없다는 자기의 뜻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정말로, 정말로 상관없었다. 뮤에게 있어 결혼은 아무하고나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가장 덜 귀찮고, 가장 덜 귀찮게 굴고,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알면서 행동할 줄 알고, 공작 가(家)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평민이었어도 물론 상관없었다.
그 누가 알브레히트 공작 가(家)의 공작부인을 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라이니 공국의 귀족이다. 물론 그것이 그의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녀가 알고 보니 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입소문을 더 쉽게 가라앉게 만들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아, 잠깐만요, 잠깐만요."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는 부산을 떨어댔다. 첫날밤에도 이러진 않았다고 생각하며 뮤가 조금은 신경질 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귀여운 유두가 뮤의 자극으로 봉긋이 솟아 있었다.
그런 뮤의 표정에 그녀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미안하다는 뜻을 얼굴에 띄운다. 그래도 여전히 안 된다는 듯 손바닥으로 뮤의 가슴을 밀어냈다.
"들었어요."
"뭘?"
뮤가 마지못해 물었다. 아무래도 이 대화를 빨리 끝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바에야 서둘러 대화를 마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약혼녀 순위가 바뀌었다고요."
대체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나.
뮤는 탐색하듯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쩌다 듣게 된 정보를 그에게 알려주듯 담담한 표정뿐이다.
"지금 스잔나 노르젠 후작영애와 혼약이 오가고 있다면서요."
"……."
뮤는 말을 삼켰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혼약이 오가고 있다는 말을 자신의 연인의 입으로 듣는 건 꽤나 생소한 것이었다. 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런 뮤의 표정을 그의 연인은 어떻게 판단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제법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리고 다정하게 그리고 어린아이를 설득하듯 진솔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이었다.
"결혼을 하실 거라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는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귀족가의 남자들이 부인 외의 정부를 별도로 두고 있다는 것이 그리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라뇨. 최소한의 예의는 그 분께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공작, 아니 뮤님과 제 사이를 모르는 사람이 이 나라에 없다 해도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구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뮤는 자신의 어린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듣고 온 건지 모르겠다. 뮤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그녀가 했던 말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끄집어냈다.
"최소한의 예의?"
심술궂게 비틀린 뮤의 입술사이로 비집고 나온 그 생뚱맞은 단어는 정말 웃기고도 웃긴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방금 전 그녀도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멀쩡한 부인을 두고도 정부를 떳떳하게 만드는 것이 귀족들이다. 물론 여자들도 똑같았다. 멀쩡한 남편을 두고 애인을 따로 만드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만한 것이 남아있던가? 어쩜 이렇게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이런 앙큼한 말을 뱉어낼 수 있는지 점점 더 그녀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이미 나에게는 너란 정부가 있는데? 최소한의 예의를 운운하긴 그렇지 않나?"
뮤는 일부러 정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연인은 놀라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저 맑고 침착한 말간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다. 담담한 그녀의 표정에 뮤는 혀를 찼다. 이런 표정 따윈, 딱 질색이다. 상처받은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척 꼿꼿한 척 상처가 다 아문 척 괜찮은 척 담담해 하는 척 하는 모든 것들이.
그 눈빛에 못 이겨 결국 뮤가 입을 열었다.
"노르젠 후작이 열심히 자기 딸을 내게 밀고 있기는 하나 나는 관심 없다."
"……혼약이 오가고 있다는데요?"
"본인도 모르는 혼약을 대체 누가 오가고 있다고 그러던가? 누구지? 네게 자꾸 헛소리를 해대는 인간이?"
"글……쎄요."
말도 안 돼는 헛소문을 퍼트린 자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씹어버릴 기세로 말하자 그녀가 흠칫 어깨를 떨어댔다. 그 모습에 뮤는 피식 웃었다. 보나마다 범인은 뻔하지. 저렇게 대놓고 놀라면 모른 척 하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겠는가.
레니아 롱아르가 알려준 모양이지.
뮤는 어린 그의 여자가 공작성에 머물고 나서부터는 레니아 롱아르와 만나기 수월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었다. 그래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하고픈 얘기를 대신하고 있다고. 레니아 롱아르를 공작성으로 부른다 해도 뮤는 상관없었지만 그의 여자는 그런 생각 따윈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자기의 위치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여자 같으니라고. 알려하지도 않아 더욱 괘씸한 여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선긋기에 뮤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여튼 맘에 들지 않은 구석 천지군. 그런데도 이런 그녀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거부해봐야 소용없어. 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내 아이를 가져도 상관없다고. 네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내 첫아이로 공식 발표가 날 거다."
뮤는 이쯤에서 이런 구질구질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여전히 뮤의 몸은 뜨거웠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화제 역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 따윈 무시하고 그녀가 다시 묻는다.
"……결혼 안하세요?"
그 순간 뮤는 정말로 화가 나려 했다. 답답한 것도 정도가 있고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작정하고 자기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닌가.
"너와 한다고 했던 말 잊었나?"
뮤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여전히 그의 말을 장난정도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그녀가 모른다 해도 뮤는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는 자신의 여자를 놓아줄 생각 따윈 이제 없었다. 언제든지 훨훨 날려 보내 줄 수 있다 장담했었던 말들도 다 잊었다. 뮤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충족시켜주는 그녀의 몸도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로 만족스러운 사람을 다시 구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느니 그녀를 옆에 두는 것이 낫다. 게다가 새로 다른 사람을 만든다 하여도 그 사람이 지금의 그녀만큼 만족스러울지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하겠다. 오히려 그녀의 존재는 뮤에게 기적과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마세요."
제법 단단하게 그녀가 말했지만 뮤는 무시했다. 계속해서 헛발질만 해대는 그녀의 말을 참고 받아주는데 더 이상 인내심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뮤는 고개를 숙여 아까 탐했고 그녀와 대화중에 계속 탐하고 싶었던 그 봉긋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향긋한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한 가지 꽃향기가 아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꽃향기와 그녀의 체향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그 향기는 그녀만의 것이었다.
"흑!"
쓸데없는 말에 보복이라도 하듯 거친 뮤의 움직임에 어린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강한 신음성이 뻗어 나온다. 그 소리가 꽤나 아프게 들려 뮤는 그녀에게 느꼈던 괘씸함을 잠시 묻고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동작을 바꾸었다. 그런 뮤의 움직임에 맞추듯 그녀가 자신의 작은 손으로 뮤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내 아이를 낳아. 몇이 되었든 상관없으니 낳아. 그리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나를 거부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미리 말해두지."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며 뮤가 경고하듯 그의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뮤는 화가 난 이 순간에도 그녀의 품 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경고를 하기 위해 속삭였던 그녀의 귓불을 무심코 깨물어버릴 만큼 귀엽기도 했고.
뮤가 귓불을 깨물자 그 아픔에 그녀가 아앗! 소리를 질렀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뮤의 손길에 정신없어보였다.
그리고 사실, 유나는 정신이 없었다. 귓불에 느껴지는 아픔에 신경 쓰자니 화끈거리는 밑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그 강렬함에 집중하자니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의 몸이 주인의 모든 의지를 배신하고 그의 손 끝자락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 다정함이 진짜인 듯 착각할 만큼 그녀의 몸이 사정없이 떨려댔다.
"하-."
뮤의 입에서 낮고 진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위로 몸을 덮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몸이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이 가까움이 맘에 들었다. 뮤는 그녀의 허리 밑으로 팔을 두르고 더 가까이 자신에게로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기운 없이 딸려온 몸이 그가 준 열기의 노곤한 흔적인 것 같이 느껴져 뮤는 웃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연인의 얼굴을 내려 보았다. 자신의 손바닥만 한 얼굴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눈, 코, 입이 참 신기하다. 뮤는 자기도 모르게 연인의 눈에 코에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뜻밖의 입맞춤에 놀란 그녀가 동그랗게 눈을 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입술을 그녀의 이마 위로 내렸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
안겨있는 여자의 눈엔 놀라움이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의 눈엔 그저 덤덤함이 담겨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생각을 읽어보려 머리를 굴려보는 듯 했지만 곧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또다시 뮤가 웃었다. 그러자 마치 뮤의 웃음을 처음 본 사람마냥 여자가 또다시 놀란 표정을 짓는다.
뮤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동자에 오롯이 담긴 스스로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이걸 놓는다고? 어림없지.
품안에 들어온 이 새를 놓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낮게, 여자의 귀에조차 닿지 않을 말을 나지막하게 내뱉으며 뮤가 다시 움직였다. 어린 연인이 다시 자신의 몸을 조금이나마 수월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젖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뮤의 몸은 너무 뜨거웠다. 대신 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주었다. 그녀의 온 몸을 살살 녹여가며.
길고 긴 밤이다.
어스름한 빛이 어둠을 스르륵 녹이는 그 시간이 될 때까지도 뮤는 연인을 품 안에 안고 있었다. 까무룩 하게 으스러지려는 정신을 부여잡고 유나는 벌써 몇 번이나 맞이했던 절정을 다시금 느껴야 했다. 그리고,
"하악, 하악."
마지막 사정이 분출되었을 때, 유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유나가 다시 일어났을 때 침대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이미 시간은 아침이라 부를 수 없는 늦은 오후였다. 가만히 침대에 앉아 멍하니 어젯저녁 일을 떠올려보던 유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
심장이, 뛰고 있었다. 주제할 수 없이, 미치도록.
============================ 작품 후기 ============================
* M.
K님, 주말 ㅠㅜ 미리 공지라도 띄울걸 그랬나봐요. 하지만 저도 몰랐다능!!!
* 메를리위님, 잠을 잘 주무셔야 합니다!! 잠은 소중하니까요^^ 표지가 정말 이쁘지용? ㅎㅎㅎㅎㅎㅎ 유나야, 너는 좋겠다. 누가 너도 그려주고 ㅎㅎ
* 크로이츠필님,응, 유나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ㅎㅎㅎ
* 나사tk님,아기라.... 그게 쉽게 가능할까요.....? ^^;;
* whomi님,매번 과한 칭찬 과분합니다ㅎㅎ 그래도 감사드려요^^
* 배고파5님, 뮤가 멋대가리가 없죠! 청혼이 뭐 저따위야!!!! ㅎㅎㅎ
* 린다0919님,아... 지금보면 얼굴이 빨개질만큼 민망한 것이.... 있긴 있죠... 아마 다른 아이디로 올린 글이여서 제 글인지는 모르시겠지만 ㅎㅎ 물론 지금 글도 그리 썩-.
- 나중에 다시 수정할 생각하면 아후....
* 루이영원님, 유나가 너무 현실적인 아이여서 그래요... 현대판 신데렐라는 아예 생각도 않하고 있거든요ㅎ
* 월하한유님,아잉~~ 제가 더 감사드리죠~~~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ㅎㅎ 복받으실 거예요 ㅎㅎ
* momorica님,스토... 푸훗!!!!! 뮤, 너 이제 스토커라는 말도 들었어!!! ㅎㅎㅎ 아 쌤통이다. ㅎㅎㅎㅎ
* 레이렌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두 사람의 행복은........... 뮤가 일단 좀 굴러야 겠죠 ㅎㅎㅎ
* 유키렌님,아잉~~ 부끄럽네요~ ㅎㅎ현실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을 동시에 그리려 나름 노력했는데 알아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ㅎ
* 페르디엔님, 일언지하에 거절!! 뮤, 완전 쌤통이죠!!! ㅎㅎㅎ 주말 내내 옷자락!!!! 으흑!!! 저도 옷자락 부여잡았답니다. 속이 울렁거려서 ㅜㅠ
* 안젤로니아님, 감사합니다아아아아~~~~ ㅎㅎㅎ 더 열심히 쓸게요^^
* 신은류님,한참 쌓이면 그 때 보세요ㅎㅎㅎ
* 별빛같은마음님, 뮤는 마법사거든요 ㅎㅎㅎ원래 아이와 여자는 눈깜짝할 사이에 사건이 터진다죠 ㅠㅜ
* aaaara님,놀랍습니다! 사실 꼭 귀족이 아니어도 되는데 칭구녀석이 쫑알거려대서 쳇!
* 크샤나크님, ㅎㅎㅎ 그래 뮤!! 유나한테 잘해! 너 나중에 후회한다 ㅎㅎ
오늘도 졸린 아름다운 밤입니다 ㅎㅎ
그래도 집에 트리를 설치해 놓으니 참 좋네요.
졸린 눈 비벼가며 트리 밑에 누워있었더니 낭만도 모르고 가서 잠이나 자라는 엄니...
다들 좋은 꿈 꾸시고요 ㅎ
선작 코멘트 추천 해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