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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74화 (74/206)

< -- 74 회: #5 -- >

"나를 위해서?"

내게서 대답이 없자 그가 나를 재촉한다.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이 남자,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나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랑 덜컥 결혼하고 나서 나중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사랑?"

그의 입술 끝이 묘하게 올라간다. 그에 따라 목소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그 웃기지도 않는 선 끝에 감싸인 여운이 마치 너 제정신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극과 극, 어울리지 않는 거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반대로 나는 사랑은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사랑의 결실이 나였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랑이 있음을 알고도 사랑을 거부해야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다.

"그렇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 짓지 마세요. 제 말은 사실이니까. 덜컥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나중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분명 후회해요. 장담한다구요. 그리고 뮤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 왜 그렇게 결혼에 부정적이신지 모르겠네요."

"너와 결혼하자고 했잖아."

"그러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이 남자가 왜 이렇게도 철없는 아이처럼 구는 거람? 그는 분명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텐데 말이다. 아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간주하고 있는 거겠지.

"사랑하지도 않는 저와 귀찮지 않을 거란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거잖아요."

"하!"

"그렇게 비웃지 마세요. 나중에 진짜로 후회하지 마시고요."

"그럼 너는?"

"네?"

"너를 위해서 이 결혼에 반대하는 이유가 뭔데?"

마치 내게는 이 결혼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의 말투에 나는 웃음이 나오려했다. 그렇다고 웃지는 않았지만. 왜 자꾸 이렇게도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건지. 혹 내가 나를 위해 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내 말이 거짓처럼 느껴졌던 걸까? 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본 그의 눈동자엔 아무런 뜻도 없어보였다. 그저 순수하게 내 말에 대한 궁금증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 마냥.

어쩐지 슬퍼졌다. 갑자기 펑펑 울부짖을 수 있을 것처럼.

우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눈물이 나올 때 참는 것 역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 뜻과는 무관하게 나는 어느새 울고 싶을 때 울어서는 안 되는 아이로 자라고 말았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는 아이로 자라고 말았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었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했지만 또 나를 너무 연약하게 키운 걸지도 모르겠다. 고작 10살짜리 아이를 강하게 키운다고 해서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으로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엄마 아빠를 괜스레 원망해보곤 한다.

바보, 유나.

이건 그저 투정일 뿐이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부리는 투정.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 엄마 아빠. 정말로 미워서 그런게 아니니까.

"우리 아빠는요."

나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저 의미 없는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는요. 엄마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 보았던 사람이에요. 엄마를 제외한 모든 것을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요. 우리 엄마는…… 아빠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놓고 아빠를 따라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죠. 물론 사랑을 위해서요."

그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전 그런 두 분의 딸이에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는 이 나라의 황제도 아니고 이 루벤스 제국의 자랑인 이 남자도 아니다. 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아마 내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두 분에게도 역시 그랬을 거다. 틀림없이.

"전 그런 사람들의 딸이에요. 그런 두 분의 가장 귀한 결실이 바로 저라고요. 한 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었어요."

"……."

"정말 어마어마한 사랑이었지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라는 말을, 저는 부모님께 매일같이 듣고 자랐어요. 물론 그 자격이란 것이……그런 사랑 받을 자격이란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파도가 몰아쳤다. 나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설령 보이는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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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그 남자에게는 한없이 허름했을 그 여관방에서 나는 그에게 안겼다. 공작성에 간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소소꽃차를 마시지 못했다. 그가 금했기 때문에.

16살 그와 첫 관계를 맺고 난 후로 지금까지 소소꽃차를 꾸준히 마셔왔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시기는 했지만 하루에 한 잔씩 꼬박꼬박 챙겨 마신 건 관계를 맺고 난 후 부터다. 그랬던 나였기에 소소꽃차를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불안한 것이었다.

그 날, 나는 안기는 것이 싫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그는 날 억지로 안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거부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의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언젠가는 그에게 안길 테니까. 소소꽃차를 마시지 않은 이 상태로,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내가 소소꽃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안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으윽!"

오랜만의 관계는 거칠었다. 그는 한없이 내게 파고들었고 나는 두 손으로 그의 등을 감사안고 최대한 그가 부드럽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토닥거려댔다. 그런 내 노력이 소용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에게 안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이렇게 날 안아주어서 다행이라고. 어쩌면 이 온기가 지금 내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 작품 후기 ============================

주말 잘들 보내셨나요?

주말 내내 이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ㅠㅜ

12월 연말이라 그런지 망년회다 뭐다 주말이 더 바쁘네요.

그래도 다들 술을 적당히 드시고,

대신 노는 것만 신나게 노세요. ㅎㅎ

주는대로 다 마셨다간 몸 버립니다 ㅠㅜ

댓글 써주신 분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분한분 리플 달아드리고 싶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용량을 올려드리는 것을 더 좋아하실 듯하여

열심히 써 보았습니다.

월하한유님~ 유나 그림 너무 감사드려요.

둘 다 너므너므 예쁘네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ㅎㅎ

크리스마스 선물.... 받아본지가 까마득하네요 ㅠㅜ

감사합니다.

다들 좋은 꿈 꾸시구요^^

선작 추천 코멘트 달아주신 모든 분들, 복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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