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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72화 (72/206)

< -- 72 회: #5 -- >

똑똑.

다시금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나는 무릎에 기댔던 고개를 들어 문을 쳐다보았다.

왜 또?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인해 가슴이 세차게 뛰어댔다. 저녁식사는 아까 물렸다. 다시 문을 두드릴 이유가 또 있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레니와 르노에 있는 호텔에 숙박이라도 한 번 해보는 건데.

가슴이 쉼 없이 콩닥거려댄다. 아까 대답하지 않았다고 다시 저녁 식사 여부를 물으려하는 건가? 하지만 문 밖에선 아까완 다르게 아무런 말도 없었다.

똑똑똑.

다시금 선명하게 울리는 소리에 나는 이제 진짜로 겁을 집어먹었다. 일단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보아 도둑은 아니다. 그럼 대체 뭘까?

똑똑똑.

계속되는 똑똑똑.

왜 자꾸 노크하는 거야?

이젠 숨까지 막혀오기 시작한다.

누구냐고 물어야 할까?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확실히 대답해 줘야 하는 건가? 일단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나쁜 일은 아닐 거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해야겠다. 여관 측에서는 내 의견을 확실히 받아두려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판단하자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겨난다. 심호흡을 하느라 대답할 시간이 더 지체되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준비를 하고 입을 열려는 그 때, 익숙한,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문 열지? 심장이 엄청나게 뛰고 있는 걸로 봐선 잠들지 않은 게 분명한데."

"!"

"문 열어."

"……공작, 아니 뮤님?"

그의 목소리였다. 내가 어떻게 저 목소리를 다른 목소리와 구분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문 밖에서 그 놈의 공작님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도 작게 들려오는 듯하다.

"이깟 문 부수는 건 일도 아니니 어서 열어."

어쩐지 그는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나는 긴장으로 굳었던 다리를 재빨리 내리고 문을 열었다.

덜컹.

"아!"

그가, 그가 맞았다.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남자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남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뜻하지 않은 그의 등장에 심장이 아주 조금, 그래 아주 조금 콩닥거린다. 방금 전 사정없이 뛰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뜀박질이다.

"……."

그래, 인정한다. 솔직히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외로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반가웠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컥했을 만큼.

"여기엔 어떻게……?"

"기껏 붙여준 호위는 내팽개치고 잘 하는 군."

"아, 그게."

"그리고 잡은 여관이 왜 이따위야?"

"여기가 가장 좋은 여관이라던데요?"

"누가?"

"마부가요."

그가 자기 입으로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은 여관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고 그가 데려다 줬으니 내 말에도 일리는 있다.

"방은 왜 이런 곳으로 잡았는데?"

"좋은 방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얻은게 여기야?"

"그래도 금화 4개나 냈어요."

"하."

내 말에 그가 낮게 코웃음을 친다. 가만히 날 내려다보던 그가 내 손목을 잡는다. 그리고 방을 나섰다. 아무 영문도 몰랐지만 나는 순순히 그를 따랐다. 내 손을 잡은 채 그는 계단을 한층 더 오르고 또 한 층을 더 올랐다. 그리고 맨 위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와우."

방금 전 내가 있었던 방과는 수준이 다르다. 그렇다고 공작성에 있는 방과 비교는 불가하지만 어쨌든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제대로 바가지 썼다는 사실을. 크기도 훨씬 컸지만 이 방에 놓인 가구들은 한 눈에 봐도 처음 내가 있었던 방의 가구들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는 방을 쭉 한번 둘러보고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이 방은 얼마예요?"

"……."

"안 알려줄 거예요?"

"알아서 뭐하게?"

"앞으로는 바가지 쓰지 말아야지요. 될 수 있으면."

내 대답이 웃겼나보다. 아니, 맘에 들지 않았나보다. 그의 입가에 다시금 삐딱한 웃음이 걸리는 걸 보면. 그건 기분 좋아 보이는 그런 웃음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자 기분이 왜 이렇게 가라앉아 있는 걸까? 갑작스럽지만 멋지게 짜잔~ 등장했으면서 태도는 한없이 차갑다. 짜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마치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온 것 같은 모양새에 왠지 모를 섭섭함이 일었다.

"왜? 또 가출하게?"

"……가출이요?"

맙소사. 내 귀가 정상인가?

나는 지금 웃긴 얘기를 듣고도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는 단어를 들었다. 그에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그의 입가에 머문 웃음기가 더욱 진해진다.

그 웃음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기분 나쁘면 아예 웃질 말라는 말이 입술까지 닿았지만 애써 꾹 눌렀다. 그의 이런 미소를 볼 때마다 나야말로 짜증난다는 사실을 이 남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화가 나면 그냥 웃기 마!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말로 해 달라고!

"하아."

하지만 더 짜증나는 건 그런 모습조차 저 남자는 잘 어울린다는 거다. 심통이 날 정도로.

"가출의 뜻, 모르세요?"

"설마."

그래, 나도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르기엔 그가 너무 똑똑하지 않은가. 아님 설마 그 곳을 내가 내 집으로 여기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역시나 모르겠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따위는.

"이야. 여기엔 술도 있네."

나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저녁을 먹지 않았다. 빈속에 마시는 술이 얼마나 속을 미치게 하는지에 관한 경험은 한번으로 족하다. 과감히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그가 앞에 앉으며 혀를 차 댔다.

"술꾼이 됐군."

"맛있어요."

"어련히도."

어쩐지 그의 말투가 재밌다. 순간 술판을 거하게 벌인 레니에게 대체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사람처럼 한숨을 푹푹 쉬어대던 롱아르 백작이 떠올랐다. 왜 갑자기 롱아르 백작이 생각난 건지 모르겠다. 방금 전 그의 말 속에 롱아르 백작과 비슷한 흔적이 묻어있었나 보다. 물론 눈앞의 이 남자가 롱아르 백작보다 배도 훨씬 덜나왔고 몸매도 훨씬 좋고 얼굴도 훨씬 잘생겼으며 심지어 목소리도 환상적이지만.

"저녁은?"

"생각 없어요."

"그럼 술은 마시지 않겠군."

흠, 롱아르 백작보다 기억력도 좋은 것 같다.

"……그렇겠죠."

나는 빈속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한 내 말을 콕 집어 기억해내는 그의 말에 가능한 늦게 대답했다. 그래도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생각해 봤는데요."

"조건 다 받아들이겠다고?"

"……."

하여간 눈치도 좋지.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주 느긋하게 앉아 여유로운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그의 저런 여유로움이 짜증날 때가 있다. 특히 오늘 같은 날. 그게 왜인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은 알지도 모른다. 내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 같은 시선 때문일 거다. 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 같은 저 시선 때문에. 그래서인지 나는 그 앞에서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어차피 한다 해도 금세 간파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조건을 수락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어째서 소소꽃차를 마시지 말라는 건데요? 제가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뭐 좋은 일이라고. 서로 곤란하지 않겠어요? 아이, 에게 도요."

"어째서?"

"어째서라니요. 뮤님께는 골치 아픈 존재가 생기는 거고, 제게도 역시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생기는 거니까요. 아이에게는……. 아이는 사생아가 될 거예요. 누구에게도 좋은 상황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씀해 보세요. 왜 소소꽃차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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