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8 회: #4 -- >
그동안 생각하지 않으려했고 그냥 무심히 넘기려던 것들의 묶임이 스르르 풀러 내린다. 결국 난 꺼내려하지 않았던 질문 중 하나를 꺼내 그에게 물었다. 조심스럽게 실타래를 풀듯이 그렇게.
내 질문에 가만히 웃던 그가 한 손으로 내 턱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익숙한 태도로 내 입에 입을 맞춰왔다. 말캉말캉한 그의 혀가 내 입 속을 헤집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탐하고 또 탐한다. 그 속에 담긴 그의 열기는 마치 그의 화를 대신하려는 듯 강렬하고 뜨거웠다.
"황태자의 이름까지 팔아먹어가며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 노력이 가상해 따라가 보니 네가 있더군. 물론 그 때 왜 그런 생각이 든 건지 쯧쯧. 지금 생각해봐도 미친 짓이었지. 원래대로라면 얼마든지 무시했을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한번 장단에 맞춰줘 볼까 그리 생각했었다."
"……황, 태자 전하의 이름을 팔아요?"
긴 키스 때문일까. 살짝 목이 메었다. 깔끄러운 목을 침으로 누르며 달래고 있는데 그가 내 궁금증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뭐라고? 누구의 이름을 팔아?
"어차피 사형감이였어."
"……."
배롤린 남작. 정말 미쳤구나. 어쩌자고 일을 함부로 벌인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절세미인이라든가 혹은 절세미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이 남자와 내가 만날 수 있도록 발악을 한 배롤린 남작의 미친 행동을 이해해 보려 노력이나마 해보았겠지만, 아쉽게도 난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대체 내 무얼 믿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날 이 남자가 나를 죽였다하더라도 입도 뻥긋하지 못할 인간이 바로 배롤린이라는 거다.
그는 진정 내가 알브레히트 공작을 한 눈에 반하게라도 할 만큼 대단한 위인으로 여겼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내 어떤 점에 알브레히트 공작이 호기심을 느껴 날 거부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걸까? 대체 내 어딜 보고? 내 어느 점이 그에게 그런 용기를 심어줘서 그런 만용을 저지른 거지?
그리고 이 남자, 이 남자도 이상하다. 그 뻔한 수작을 능히 알고도 남았을 텐데, 그럼에도 왜 나를 안았단 말인가? 그 덕에 결과는 배롤린 남작 뜻대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남자의 말에 의하면 배롤린은 뜻대로 일은 성사시켰을지 몰라도 그 성취감 외에 그가 원했던 보상은 목숨을 연맹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했으리라.
"대체……왜 날 안았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내 비하를 하자는 게 아니구요. 정말,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아요."
멍하니, 허공을 의미 없이 바라보던 내 시선이 옮겨졌다. 그에게로. 내 뜻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그의 손에 의해서다. 시야가 가려지고 천장 대신 그의 얼굴이 시선에 온통 사로잡힌다. 가만히 날 내려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조금 쉰 것 같은 낮은 목소리였다.
"충분히 쉬었겠지?"
아니요. 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려했다. 조금 더 쉬어야한다고.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 때문에 혼란스러워 더욱 더 쉬고 싶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그는 내 의견에 그리 이해심 많은 남자는 아니었다. 적당히 내 말을 따라주긴 했지만 잠자리에 관해서는 늘 제멋대로다. 물론 웬만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나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그의 입술이 내게로 내려왔다. 애초에 내 거부는 필요 없었다는 듯 단단하고 막힘없는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와 나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느새 봉긋 솟은 꼭지가 그의 손아귀에 굴려지는 아릿함을 느끼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슬그머니 그의 무릎이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내 몸을 노골적으로 만개시킨다. 벌어진 공간 속에 자리 잡고 그새 우뚝 서버린 그의 몸을 내 아래쪽 예민한 곳에 부드럽게 비벼댔다. 그에게 익숙해져버린 몸은 방금 전의 통증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에 다시금 꽃이 몽우리를 맺듯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달큰하게 달아오르는 육체의 변화를 느끼며 나는 다리를 그의 다리에 사이에 얽어매었다.
"아흑."
가슴에 닿는 습기에 놀라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 안 가득 복숭아 꼭지를 베어 물고는 핥아대는 바람에 그만 호흡이 엇나가버리고 말았다. 크게 쉬려던 호흡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가슴 꼴은 오히려 그에게 더 내밀어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쫑긋 서버린 봉우리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쾌락으로 인해 허리가 나도 모르게 비틀려댔다.
반대쪽 가슴을 손아귀에 쥐고 마구 한참을 주물러대던 그가 손을 천천히 아래쪽으로 보냈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아름답게 피어오른 골반까지 야릇하고도 미묘한 손길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의 손이 스쳐지나간 피부 위에 불이 이는 착각이 인다. 조금씩 더 비밀의 장소로 옮겨져 간다. 허벅지에 잠시 머무르던 손이 곧 허벅지 안으로 향하더니 기어코 축축한 열기를 뿜어내는 곳에 이르렀다. 그 야하면서도 노골적인 손동작에 그의 손이 채 닿지 않은 한 곳이 미치도록 간질거려댔다.
"읏, 그, 그러지 마,"
마치 날 약 올리려 대는 것 같았다. 숲 근처를 빙빙 맴돌며 중심을 스치고 다시 맴돌고, 중심을 스치고 다시 맴돌고. 그 야속함에 짜증어린 신음성이 절로 새어나갔다. 그러던 그의 손가락이 속살을 어루만지며 드디어 들어왔을 때, 난 그 낯선 감각에 몸을 마구 흔들어대야 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낯섦에 몸이 굳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낯선 것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이다. 내 몸도 그러했다. 그 낯설음이 무서워 손가락을 빼내버리고 싶었다.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으로 내 몸을 덮쳐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이 남자 때문에 그저 속절없이 내 몸을 그의 손가락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톡톡.
꽃잎을 가르고 벽을 굵어대듯 들어오는 침입자의 낯섦도 잠시, 어느새 무언가를 갈구하듯 하염없이 달아올라버린 내 몸은 그의 손가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심지어 환영하듯 끌어당기기조차 하였다.
숨이 막힌다.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몽롱해진 시선으로 내 젖을 빨아대는 그를 마냥 쳐다보았다. 그는 마치 정복자 같았다. 내 모든 것을 가져간. 봉긋한 가슴이 그의 입술에 의해 빨리고 이완되는 것이 반복될 때마다 호흡은 더욱 거칠어져갔다. 몸이 아니라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침투한 질 벽을 그가 긁어댈 때마다 온 몸이 움찔 거려댔다.
씨익.
고개를 들어 붉어진 내 얼굴과 몽롱해진 눈빛을 확인한 그가 포식한 맹수의 그것처럼 미소 짓는다.
"널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절대 잊지 마."
"하아, 하아."
쪽. 예민해진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그에 대한 허전함도 잠시. 그가 자신의 몸 끝부분을 손가락 대신 입구에 가져다댄 채, 천천히 안으로 침투시키려 하고 있었다.
"분명히 기억해. 지금 널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하아, 하아."
"넌 다른 사람에게 안긴 적이 없다. 오로지 나뿐이야."
"하아, 하아."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
그건 경고와도 같았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그런 강한 명령과도 같은.
드디어 그의 몸이 내 안으로 강렬히 파고들었다.
"흑."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전 행위의 통증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멈추고 싶진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통증이 쾌락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쪽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에 감아보았다. 그를 더욱 더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습한 동굴 속으로 파고들던 그의 몸에 힘이 더해지면서 어느새 그는 빠르게 움직여대고 있었다. 다시금 합쳐진 아랫도리가 뜨겁게 맞물리며 서로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나온다. 나는 그의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몸에 힘을 주자 절로 밑 부분에도 힘이 가해졌다. 그러자 그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반응일지라도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힘껏 그의 몸을 안았다.
"하악, 하악."
날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고? 그럼 당신도 기억해.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절대 잊지 마.
마음이 술렁거린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선 안 될 일이다. 단호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는, 쾌락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리라.
============================ 작품 후기 ============================
역시 월요일은 월요일이네요 ㅠㅜ 괜스레 피곤한 날? ㅎㅎㅎ
분명 어제 푹 잤는데도 이 모양이네요 ㅠㅜ
Maybe I Can님, M.
K님, 별빛같은마음님, 페르디엔님, 정우규리하님, 린다0919님, whomi님, lulullu님,쭈니^^님, 유키렌님, 게으른냥님~
코멘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분한분께 댓글 달아드리고 싶지만 저주받은 제 손가락을 용서하소서 ㅠㅜ
무척이나 졸린 아름다운 밤입니다. 하하하;;;;
다들 좋은 꿈 꿈꾸세요^^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 분들, 복받으세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