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3 회: #4 -- >
"루비 목걸이? 예쁘네. 근데 저건 나보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 저거 살까?"
"응. 괜찮을 것 같아."
"너는 저 터쿼이즈 귀걸이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레니가 가리킨 귀걸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예쁜데, 너무 커. 나 귀걸이 덜렁거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래도 파티 장에서는 좀 화려해도 된다고!"
그렇게 레니와 옥신각신 말을 주고받다 결국 내가 고른 건 아쿠아마린 귀걸이였다. 색깔도 내가 좋아하는 색인데다가 디자인이 심플한 것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그걸 고르자 레니는 또 그런 스타일만 고른다고 투덜거려댔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는 내가 고른 귀걸이를 힐끔 보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이 귀걸이와 저 터쿼이즈 귀걸이, 페리도트 브로치와 레니아 롱아르 영애가 고른 루비 목걸이."
그의 말에 레니와 페터 리제도 공자 고개가 그를 향해 동시에 돌아갔다.
"루비 목걸이는 레니아 롱아르 영애와 페터 리제도 공자의 약혼 선물로 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뜻하지 않은 그의 말에 레니와 페터 리제도 공자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돌아왔다. 잠시 서로 마주보던 둘은 곧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알브레히트 공작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담이 사람들을 시켜 서둘러 포장한 보석들을 모조리 내게 안겨주었다. 레니의 루비 목걸이만 제외하고.
"……."
"왜?"
"제가 고른 건 귀걸이 이거 하난데요?"
아무리 그에게서 뭔가를 받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에 이 정도면 부담스러운 법이다. 게다가 그는 내게 꼬박꼬박 대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대체 이번엔 무슨 대가를 내게 요구하려고 이렇게 비싸고도 비싼 것들은 한 번에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그가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는다.
"불만인 건가?"
"……순수하게 주시는 거면 감사히 받죠."
"순수하다고 하지."
"정말이요?"
나중에 대가를 찾는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내 말에 그는 기어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튕긴다. 어쩐지 손가락에 감정이 듬뿍 들어간 모양이다. 심히 아픈 걸 보면. 만약 손가락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분명 으르렁 소리가 났을 거다.
"하여간 경계심만 바짝 세운 고양이마냥 굴긴."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그러세요?"
"하! 나 때문이다?"
"그럼 아니에요? 먼저 대……를 언급하셨잖아요."
"대, 뭐?"
주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대가를 완벽하게 발음하지 못한 내 말에 그가 짓궂게 웃으며 되묻는다. 그 모습이 참으로 얄밉지만 그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 테지. 나와 이 남자의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마담의 눈은 황홀감으로 젖어있었으니까. 아마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마담의 눈빛을 바꾼 결정적 원인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보석을 재빨리 품에 갈무리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어쨌든 준다는 거니까 잘 받아야지. 나중에 내게 살이 되고 피가 될 소중한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런 내 모습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머릴 쓰다듬어주었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는데 뜬금없이 그가 생각지도 못한 소릴 내뱉었다.
"왜 하필 그런 수수한 옷을 약혼식 날 입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입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고른 그 옷을 살려줄 만한 보석이 여기엔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군.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곧 그 옷에 어울릴만한 보석을 알아봐 주겠다."
"……."
맹세코 나는 이 남자에게 보석이라던가, 보석이라던가. 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이 들으면 내가 보석 사달라고 이 남자한테 마구 졸라댄 줄 알겠다.
아니, 그 것보다 이 옷을 왜 수수하다고만 하는지 모르겠네. 치마가 무려 실크다. 실크에 러프는 어울리지 않기에 장식이 많이 붙지 않은 탓에 수수하다고 하는 모양인데, 실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비싼 천이란 말이다.
게다가 이 실크 한 장씩 따로 떼어내 팔아도 꽤 짭짭한 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질도 최고급 이였다. 하여간 드레스라고 한다면 풍성한 레이스에 보석이 덕지덕지 붙어야만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게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수하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디자인이 심플해서만은 아니야. 잘 어울리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포인트가 부족한 느낌 때문이지. 게다가 간소한 복장이라 네가 집에서 입는 것들과도 느낌이 비슷하니까."
내 얼굴에 스쳐지나간 감정 선을 읽은 모양인지 그가 한 마디 덧붙인다.
"포인트요?"
내 말에 그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쭉 훑어보았다. 찐득찐득한 시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조금은 그 시선이 괜스레 쑥스러웠다.
"네게도 잘 어울리고 옷 라인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견해는 어쩔 수 없어. 네 머리칼과 치마의 색이 비슷해 잘 어울리지만 둘 다 하늘빛이라 청순한 느낌 외엔 별 다른 느낌이 없잖아, 안 그런가? 허전해 보이는 목도 그렇고. 그 목에 짙은 푸른색의 화려한 목걸이를 하면 괜찮을 듯 한데 아쉽게도 여긴 색은 고사하고 맘에 드는 목걸이조차 없군. 약혼식 전에 구해보도록 할 테니 걱정 마라."
걱정한 적 없어요. 대체 왜 그러세요?
그의 평에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그 때, 마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담은 뷰티크 살롱에서 맘에 드는 목걸이를 찾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안절부절 못하며 당황해했지만 그래도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얼굴에 사교용 미소를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마담은 대단한 여자였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하나 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전부 다 내오지 않았나?"
"하나, 아직 하나 더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신다면 곧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마담의 말에 귀찮다 거절의 말을 뱉으려던 그는 한번 보기나 하지 낮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리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마담은 뒤에 선 점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의 지시를 받은 점원은 재빨리 나가더니 곧 손에 보석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마담이 서둘러 그 상자를 받아 테이블에 놓자 나와 레니는 호기심에 몸을 바짝 숙이고 상자를 쳐다보았다.
"사실 이 물건은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공작님의 안목에 맞추려면 제일 먼저 이것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송구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마담이 상자를 열자 붉은색 벨벳 천위에 화려한 에메랄드 귀걸이와 목걸이 세트가 빛을 발했다.
"우와."
"어머."
나와 레니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그의 눈동자 색보다 약간 진한 에메랄드 보석 세트는 한 눈에 봐도 무척이나 화려한 것이었는데 목걸이에만 무려 30개 이상의 에메랄드가 둘레에 박혀 있었다. 레니와 내 감탄사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마담이 입을 열었다.
"여기 박힌 에메랄드는 그냥 에메랄드가 아닙니다. 에메랄드에 마법 석을 덧씌워 그 빛을 영원히 발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지요. 어떤 강도에도 쉽게 깨지지 않고 또 빛을 잃지도 않습니다. 또한 덧씌워진 마법 석이 해독 마법 석이기 때문에 이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몸에 독이 침투한다 해도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해독이 가능합니다. 모두 38개의 에메랄드와 1000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번갈아 연결된 타원형으로 제작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지요. 에메랄드의 크기는 모두 17캐럿으로 동일합니다. 천 개의 다이아몬드 중 반은 브릴리언트 컷으로, 나머지 반은 로즈 컷으로 세팅이 되어 있어 빛에 반사되는 광채가 상당히 세련되고 아름답습니다. 비록 공작님께서 찾으셨던 푸른색은 아니지만 아가씨께서 입고 계신 옷에 어울리는 화려한 장신구를 찾으신다면 이 보석과의 매치가 상당히 어울릴 거라 생각됩니다."
"흐음."
그는 장황한 마담의 설명에도 그렇다할 반응 없이 목걸이를 들어 보더니 성의 없는 태도로 목걸이를 상자에 툭 던져버렸다. 그 한없이 가벼운 행동에 마담의 어깨가 움찔하고 내 어깨도 움찔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겠군. 말한 대로 드레스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사지."
그의 말에 마담은 활짝 웃었고 나는……, 나는 그냥 있었다. 대체 저 화려한 보석을 나름 괜찮다고 말할 정도면 이 남자 머릿속에 그냥 괜찮은 보석이라든가, 굉장히 괜찮은 보석은 어떤 건지 심히 궁금해진다. 희희낙락한 모습으로 보석 세트를 포장해 내게 내밀던 마담의 뿌듯한 얼굴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손으로 들어온 이 상자가 무척이나 무거웠다.
============================ 작품 후기 ============================
* M.
K님, ㅋㅋㅋ미친 듯이 날뛰는 뮤? ㅎㅎ
* 정우규리하님, 수혜자 페터공자? 푸하하하. 그렇네요. 그렇게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ㅎㅎㅎ
* 유진우먼쓰마미님, ;;;;정말인가요????
;;;;;;;;;;;
* HeartToHeart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 바움님, 유나에겐 원래 능력이 있답니다. 꽃을 잘 키우죠-.
-;;
* 게으른냥님, 프롤 시점은, 하아~ 언제쯤 그 시점까지 뿌딱뿌딱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열심히 쓰고 있기는 합니다.
* 페르디엔님, ㅜㅠ 무리한 말이었나요? ㅠㅜ 그건 그렇고 러브지수가 뭔가요? 페르디엔님 코멘트 옆엔 러브지수가 있더라구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으니 감사드릴게요^^
오늘도 무척이나 졸린 밤입니다.
다들 좋은 꿈꾸세요.
^^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 모든 분들 복 받으세요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