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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34화 (34/206)

< -- 34 회: #3 -- >

내가 사랑하는 꽃 중에 연보랏빛 꽃잎 사이 하늘빛 이슬 여러 개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의 꽃이 있다. '텔'이란 이름의 그 꽃은 꽃잎의 색깔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품고 있는 꽃 밥의 색깔은 한결같이 하늘색이다.

내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하늘색.

그래서 엄마는 나를 위해 정원에 텔을 가득 심어주었었다. 그리고 그 꽃을 나의 꽃으로 정해주었다.

하늘의 사랑을 받는 꽃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엄마야 말로 하늘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그렇게 빛이 나는 엄마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또 눈이 부셔서, 나는 당장이라도 엄마가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텔은 너의 꽃이란다, 유나야.>

엄마가 직접 만들어 안겨준 텔 꽃다발에 고개를 묻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 텔은 나의 꽃이 아니라 엄마의 꽃이야. 엄마의 머리카락도 나와 같은 하늘빛이니까. 그리고 나보다 엄마에게 더 잘 어울리는 걸.>

그랬다. 텔은 엄마의 꽃이었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내게는 할머니 되는 분께서 오래전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기도 훨씬 전에 텔을 엄마의 꽃으로 정해주셨다는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텔은 엄마의 꽃이었고 그리고 나의 꽃이기도 했다.

영롱한 하늘빛의 꽃 밥들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낸다. 어둠에 잠겼지만 그래도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그 푸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달빛을 머금는 그리움의 하늘이 얼마나 아련한지 텔은 그러한 그리움을 머금는 꽃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쿤이 이사 가고 며칠 동안은 밤마다 정원에 나가 텔 무리들 한 가운데 앉아 쓸쓸한 맘을 달래곤 했었다.

"아가씨. 공작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시녀장의 말에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그녀가 내민 상자를 쳐다보았다.

"거기 두세요."

"네."

작은 장사였다.

또 보석인가?

하지만 며칠 전의 대가는 그가 별장에 나서기 전 내게 직접 걸어주지 않았던가.

그날 그가 내게 준 대가는 하늘빛의 사파이어였다. 짙은 푸른빛이 아닌 투명하도록 맑은 하늘색의 사파이어. 그런 사파이어는 본 적이 없어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었다.

"생각대로 잘 어울리는군."

하늘빛의 사파이어라니. 처음 본 것이었다. 하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하늘빛을 지닌 사파이어는 워낙 드물어 바다 물결의 짙은 빛의 푸른색인 사파이어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다고.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

"네."

내 값어치가 높아지고 있단 증거를 대가로 확인하고 있다니. 참 멋지네. 어쩐지 아니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싸구려보단 고가가 좋지 않겠나 싶어 그냥 고갤 끄떡였다. 암만 비싸봤자 이 남자에게는 별게 아닐 것이 분명할 테니.

"걸어주지."

그는 항상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그 말들을 꺼내 아는 척 하지는 않는다. 그 편이 그도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가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이 하늘빛 사파이어 목걸이는 내 마음에 쏙 들어 나는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샤워할 때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이 목걸이를 풀지 않았다.

하늘빛은, 늘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리운 색이다.

나는 가만히 상자를 쳐다보았다. 그 날의 대가는 이미 내 목에 걸려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뭘까?

나는 소소꽃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꽃차에서 탄 맛이 느껴진다면 모두가 의아해 할 테지만 확실히 소소꽃차는 쓴맛과 탄 맛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혹시 축소화 마법도구인가? 하지만 그것치고는 너무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걸. 레벨5의 크기는 내 양 주먹을 합친 정도의 크기지 이정도로까지 작진 않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상자를 집었다. 열어보면 알 수 있는 걸 뭘 그리 고민하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어?"

상자 안에 담긴 건 노란색 피아노, 샛노란 피아노 모형이다. 아니 모형이 아니라 진짜 피아노다. 비록 축소화 마법에 걸려 이렇게 작아졌지만 그건 분명 피아노가 분명했다.

"레벨……5가 이렇게 발전했던가?"

아니, 이 정도면 거의 최상급 레벨인데!

다시 말하지만 레벨5는 내 양주 먹을 합친 정도의 크기로 변한다. 하지만 내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인 이 건, 게다가 이토록이나 가볍다는 건 이건 레빌7 중에서도 최상급 레벨이 분명했다.

"이건 또 뭐야?"

게다가 그 옆에 함께 담겨져 있는 보석들.

"……내가 판 것들이네."

피아노를 사겠다고 내가 판 것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자수정은 또 뭐고?"

허. 자수정까지. 이 자수정은 신전에서 하룻밤 머물고 난 후의 대가로 내게 호의를 베푼 사제에게 준 것이 아니었던가.

하아.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그 남자, 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디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단 뜻인가?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고?

어쨌든 나중에 내 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 분명하니 기쁜 마음으로 받겠다. 지금 이 심정이 기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기쁘게 받겠다고. 당신한텐 뭐든 쉽게 받을 수 있어. 나는 당신의 정부니까. 우린 그런 관계니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당신에게도 편할 것이 틀림없겠지?

"이 얼마나 편한 관계란 말인가."

나는 희극조로 입을 열었다.

아마 그 남자가 날 계속해서 찾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내가 부담이 없어서기 때문이겠지. 매달리지 않고 간섭하려 들지 않고, 주제넘게 굴지 않으니.

"이 정도면 피아노도 충분히 가져갈 수 있겠네."

기분이 좋았다. 아니 좋아지려 노력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걸 얻었으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정착한 그 곳에서 피아노를 따로 구입할까도 고려해 보았지만 노란색 피아노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가급적이면 가져가고 싶었더랬다. 물론 내게 부담이 되지 않은 선에 한해서. 만약 그 부담이 커지면 과감히 포기하려 했었고. 그런데 사달라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간단히 일이 해결되다니. 정말 네 정부는 대단하구나, 유니시이나. 이 정도 엄지손가락만큼의 크기와 목걸이 정도의 무게 밖에 되지 않는 수준의 축소화 마법도구라면 굳이 대형 마법가방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주머니에 쏙 넣어서 가져갈 수 있겠다 싶어 나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달랬다.

나는 보석들을 다 상자에 집어넣고 피아노 모형만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리고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폈다.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마저 읽고 미리 염두에 두었던 곳에 피아노를 가져다 놓을 작정이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상쾌한 바람은 내가 공들어 심은 꽃밭을 거쳐 그 향기를 내게 전해주었다. 이런 시간은 내게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다. 평화로운 시간. 그리고 향기로 이어진 그리운 사람들과의 추억에 감사하는 시간.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 축소화 마법도구를 피아노에 사용할 거라고 말했었던가?"

이것 참. 불현듯 오는 깨달음에 잠시 내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미소는 곧 사그라지고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이 남자, 날 동정하고 있구나.

그는 내가 뭘 준비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동조해주고 있기까지 한다. 이렇게 도와줄 정도면 지금 장당이라도 내가 떠난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어 할 듯도 같다.

하긴 처음부터 문제는 배롤린 남작이었지 그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어 역할을 해준 나란 존재 때문에 배롤린 남작은 대체 얼마나 쳐 받았을까?

뮤아르노와 알브레히트와 첫날밤을 보내고 돌아온 다음 날, 배롤린 남작이 얼마나 행복해 했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나를 보는 눈빛에 금화가 새겨져 있었지. 그런 배롤린 남작 때문이라도 나는 뮤아르노와 알브레히트 그 남자가 더 이상 내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지시킨 뒤 떠날 필요가 있었다. 그 남자도 더는 찾지 않는 날, 배롤린 남작이 다시금 이 루벤스 제국으로 날 끌고 오면 그 땐 진짜 여러 명의 사람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역겨운 사람들로 가득. 천하의 뮤아르노와가 안았던 여자니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나~ 유나~~~~."

저 멀리서 레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힝~ 우렁찬 말울음 소리와 더불어 내 방으로 서둘러 걸어오는 복도 시녀들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레니가 창 밖에서 있는 힘껏 나를 불러재끼고 있었다.

"유나~~ 유나~~~아!! 빨리 내려와, 빨리!"

"왜?"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어딜?"

"우리 집!"

"……롱아르 백작 가(家)?"

내 말에 레니의 고개가 무섭도록 빠르게 끄덕여진다.

"빨리 내려와, 빨리,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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